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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첫사랑 회복 (5) /
“신앙과 삶의 성공자가 되게 하는 첫사랑!”
+ 본 문 : 출애굽기 3장 1절 - 12절 (구약성경 84쪽)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아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성공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지만, 실패의 자리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실패자는 그 실패의 자리에 넘어진 채로 지포자기하며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성공자는 그 실패를 오히려 새로운 비전의 디딤돌로 삼고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 모세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이면서도, 애굽이라는 대제국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 왕자로 대접받으면서 자랐고,
많은 학문을 배우고, 권세와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히브리민족이라는 뿌리의식은 어쩔 수 없었던지, 자신의 민족을 두둔하다가 애굽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 발각되면서, 화려한 왕궁생활을 뒤로한 체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모세는 그렇게 실패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의 목동의 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다가 끝날 인생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모세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실패자 모세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아가 부르시고 성공의 청사진을 제시하셨으며,
실패자 모세는 그 성공 청사진에 OK 사인을 하고, 순종함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모세는 그렇게 자신의 실패를, 오히려 새로운 비전의 디딤돌로 삼고 일어선 성공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실패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함으로 모세는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신앙과 삶의 성공자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실패자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되는 첫째 비결은 부르짖는 기도에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입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보십시오. 요셉의 시대는 가고, 히브리민족은 애굽의 노예가 되어 고된 고역으로 힘든 세월을 보냅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히브리 민족은 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 부르짖음이 상달됩니다.
그 부르짖는 기도를 드리는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이 모세가 마침내 대 애굽 제국의 바로의 권력을 이기고,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어 내잖아요.
이렇게 실패자 모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부르짖는 기도와 그 기도의 응답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 삶의 자리, 비록 그 삶의 실패의 자리에서라도,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바로 이 우리의 부르짖음을 기도라 하고, 들으심을 상달이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들으심으로 상달된 기도의 성취를 우리는 응답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신앙과 삶의 성공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마땅히‘부르짖는 기도’부르짖어 상달되고 응답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특별히 요즘은 바로 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 가 절실한 때입니다.
나라와 경제를 위해서, 가정 - 특히 자녀를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힘써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없는 한 나라의 권력보다 더 강하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렇게 중요한 ‘부르짖는 기도’ 를 지금 드리고 있습니까?
이렇게 중요한 부르짖는 기도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가장 집중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종근당’ 이라는 제약회사를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이 회사는 이름이 ‘종근당’ 일 뿐만 아니라, 회사의 상징인 로고도 종입니다. 땡그렁 땡그렁 종입니다.
이처럼 이 회사의 상징이 종이 되고, 회사의 이름이 종근당이 된 데는 그만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서울 서대문에 있는 영천 시장은 콩나물 장수 아줌마들이 많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콩나물 장사들 중에 신앙심 깊은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꼭 교회에 들러 “우리
자식들이 믿음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해달라!” 고 부르짖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 어머니의 부르짖는 기도는 이루어졌고, 그의 아들들은 모두 다 훌륭한 사람들로 성장했습니다.
그 아들들 중 하나가 훗날, 종근당이라는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어머니가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셔서 열심히 기도하시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자기와 자기의 모든 것이, 어머니의 새벽기도 때문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새벽기도를 생각할 때면,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옛날에는 교회마다 새벽기도회는 물론, 예배시간 한 시간 전, 30분 전, 5분 전에 종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약회사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새벽종소리와 새벽기도회의 어머니의 기도 응답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자신의 제약회사 심벌마크를 '종(鍾)' 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신도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부르짖는 기도를 드렸고, 기도응답으로 사업은 번창했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새벽기도를 안 드리시는 분들, 내일 새벽부터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부르짖는 새벽기도로 시작하는 사람의 삶은 반드시 형통할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새벽에 부르짖는 아버지의 기도, 어머니의 기도가 사라지면서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자식들의 삶이 팍팍해지기 시작합니다. 범사에 불통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나라와 경제를 위해서, 가정 - 특히 자녀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새벽기도, 골방기도, 중보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 실패자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되는 두 번째 비결은 충성된 사역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는 출애굽의 지도자로, 언제 모세를 부르셨습니까?
오늘 본문 출애굽기 3장 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아멘!
그렇습니다.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양무리를 치고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실패자로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하나님은 한 번도 안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40년 만에, 평상시대로 양을 치다가 호렙산으로 간 모세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셨고, 또 나타나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저 애굽의 바로 밑에서 학대받은 히브리민족의 부르짖는 기도를 내가 들었고, 그 기도응답으로
지금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지금 양무리를 치는 사역을 하고 있는 너 모세를
지금 그들의 지도자로 삼겠다고,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부름을 받는 사람들의 사건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다 때가 있구나.’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때를 알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계속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잘 믿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실패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기도하고, 준비하는 사람 앞에 하나님은 반드시 나타나 만나 주시고
부르시고, 역사하십니다. 큰 일을 이루십니다. 형통케 하십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은 멋있게 지어진 왕궁이나 저택에서, 연회장에서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호렙산, 훗날 우리가 성지라 말하는 시내산에 나타나 만나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화려한 궁전이나 부잣집 안방에서 탄생치 않으시고 말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양을 치던 보잘것 없는 다윗을 왕으로 부르셨고, 양 떼를 치던 아모스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비록 우리의 사는 자리가 보잘 것 없고 초라할지라도, 하나님은 지금 기도로 준비하고
사역자로 일할 준비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룰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에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말씀하시고, 그 교회와 그 교회 사람들을 통해서 큰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바랍니다. 바로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준비된 사역자들이 되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바로 우리 해남중앙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에게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말씀하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위해서, 이 한국 땅과 세계를 위해서 큰일을 이루실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그렇게 믿습니까? 그렇다면 부르짖는 기도와 지금 주어진 모든 사역에
충성봉사 하므로 준비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저는 믿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가 저와 여러분이 부름받는 영적 호렙산이 됨을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성전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영적 시내산 봉우리가 됨도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교회는 죄악 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영적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로 가는 영적 통로가 됨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포합니다. 지금 비록 실패자일지라도 충성 된 사역에 헌신하는 분들은
반드시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될지라! 만사형통 할 것이라! 믿습니까?
+ 실패자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되는 세 번째 비결은 영적 교제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3장 2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아멘!
여호와의 사자가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씀입니다.
‘건조하다’ 는 뜻을 가진 ‘호렙’ 이라는 말 그대로, 호렙산은 매우 건조한 광야입니다.
‘싯딤나무’ 라는 아카시아 나무와 그리고 떨기나무와 가시 덩쿨만이 자라는 광야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보니, 한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신기하게도 꺼지지를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불은 자연적인 불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모세는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고 말하면서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렇게 모세가 본, 척박하고 메마른 광야에 자라나는 가시 떨기나무는 어찌 보면 애굽 땅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 히브리민족의 비천한 모습과 같았습니다.
거기서 불까지 붙었다는 것은, 지금 큰 고난과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위기의 불에 타 없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고난 받는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크게 나타내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모세가 만난 분은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바로 이 때 하나님은 모세를 두 번이나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셨는데,
이때 “부르다.” 라고 표현된 단어는 “크게 소리쳐서 청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크게 소리쳐 모세를 청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지금 실패의 자리에서 40년 동안이나 헤어나지 못한 모세를 청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토록 크게 소리쳐 모세를 청하여 부르셨을까요? 영적교제를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영적교제를 나눔으로, 모세의 실패를 치유하시고, 성공자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실패자 베드로를 크게 소리쳐 청하여 부르시는 영적교제를 통해 치유하여 주시고
대사도, 순교자로 마침내 승리자의 반열에 세우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은 그 자리에서 소리쳐 청하여 부르십니다.
그 어떤 실패의 자리, 그 어떤 좌절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 있든지 소리쳐 청하여 부르십니다.
왜 부르실까요? 우리와 아름다운 영적교제를 나누고 싶어서 그렇게 소리쳐 청하여 부르십니다.
근래에 나온 책 가운데 네트워크 이론의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라는 사람이 쓴
'링크' 라는 과학서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에 의하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는 아주 좁아졌고, 그래서 이 지구상의 70억의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따지다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세상 참 좁네!" 라고 말합니다.
세상 참 좁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서너 사람만 통하면 이렇게 다 아는 사람입니다.
링크라는 책에서도 저자 바라바시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웃과 링크 - 연결되어 있다.“ 고 말합니다.
이런 링크 - 곧 연결 연결을 이용하여 평균 여섯 단계만 걸치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연결이 되고, 그래서 이웃이 됩니다.
이 여섯 단계만 걸치면, 윤석렬 대통령은 물론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도 다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여섯 단계까지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 번에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 나는 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로 영적 링크, 영적 네트워크, 우리말로 하나님과의 영적교제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를 소리쳐 청하여 부르십니다.
그 어떤 실패의 자리, 그 어떤 좌절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 있든지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아!’ 하고 크게 소리쳐, 우리를 청하여 부르십니다.
왜 부르십니까? 자녀 된 우리와 영적교제를 나누고 싶어서 그렇게 소리쳐 청하여 부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실패자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된 비결은 아버지와의 영적교제에 있습니다.
+ 실패자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되는 네 번째 비결은 낮아짐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3장 5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고 명령하십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을 생각하다보니까, 신발에 얽힌 재미있는 죠크 하나가 생각이 납니다.
어떤 술에 취한 사람이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타자마자 옷을 홀라당 다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시기사가 말합니다. “아니 손님, 여기서 옷을 다 벗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그 술 취한 사람이 말합니다. “아니, 그러면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닙니까?”
기가 막힌 택시기사가 “손님, 집이 아니라 택시 안입니다. 택시.”
그랬더니 그 취객이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니예요? 아니 그러면 진작에 말씀하시지,
난 여기가 우리 집인 줄 알고 신발을 벗고 들어왔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면, 집 구조가 이렇듯 당연히 신발을 벗는 것으로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나, 중동지역 사람들이 사는 집 구조는 신발을 신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집에서도 그들이 신을 신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중동지역에서 신발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왕의 신발, 관리의 신발, 평민의 신발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중동지방 노예들은 신발을 신을 수가 없고, 또 하나는 이부자리도 덮고 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노예는 동물과 같다는 의미에서 동물처럼 신발을 못 신게 하고, 동물처럼 지푸라기를
깔고 누워 자고 생활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부자리를 못 덮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대 중동지방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노예 - 곧 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발을 벗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나 존경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신발을 벗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인도 사람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간디의 무덤 앞에서는 신발을 벗는답니다.
그리고 성경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오를 때면 반드시 신을 벗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모스크에 들어갈 때면, 신발은 물론 양말도 벗고, 발을 씻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중동지방의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는 명령은
‘이제부터 너는 나의 종이요. 나는 너의 주인이 된다.”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과거에 어떤 신분의 사람이었건,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일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과거는 다 벗어버리고, 다만 종으로 낮아지고 섬겨야만 합니다.
애굽에서 배우고 누렸던 화려한 추억은 다 벗어버리고, 다만 종으로 낮아지고 섬기라 하십니다.
목자로서의 신분, 편안했던 가정환경도 다 잊어버리고, 다만 종으로 낮아지고 섬기라 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너는 이제부터 나의 종이라는 말씀이요. 명령이요. 선언입니다.
‘네 신분, 네 자존심, 네 고집 다 벗어버리라. 다만 종으로 낮아지고 섬기라!’ 명령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되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내 과거, 내 미래 다 벗어 버리고,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결코 쉽지 않는 좁은 길이지만,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에 종처럼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요. 종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종처럼 섬기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이라야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고 거절하지 마십시요.
오늘 본문 10절 이후에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세는 무려 5번이나 거절하고, 또 거절합니다.
“...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절)
“사람들이 널 보낸 분이 도대체 누구냐 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하리이까?”(13절)
“그래도 안 믿으면 어찌 하리이까?”(4:1)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10절)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13절)
이처럼 모세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계속해서 거절하고, 또 거절합니다.
마침내 그런 모세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고 - 화를 내기에 이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그런 모세에게 인내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대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네 형 아론이 말 잘하니, 그가 널 대신해서 말하게 할 테니, 넌 몸만 가라!”
그리고 지팡이 하나를 주십니다. 이 지팡이는 각종 이적을 행하는 이적의 지팡입니다.
이 이적 지팡이는 마술 지팡이가 아니라, 우리도 이미 받은 말씀의 지팡이며, 약속을
성취시키는 약속의 지팡이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성공의 자리에 있습니까? 실패의 자리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범사에 형통하는 성공입니까? 불통하는 실패입니까?
지금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자리가 어떠한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의 신앙과 삶입니다.
지금부터 저와 여러분의 신앙과 삶이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공하는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신앙과 삶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비결은 충성된 사역에 있습니다. 세 번째 비결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영적 교제에 있습니다.
네 번째 비결은 종이 되어 겸손히 섬기는 낮아짐에 있습니다.
+ 지금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결단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침묵기도를 드리겠습니다.
+ 마무리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