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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칠곡)
 
 
 
카페 게시글
▒☞여행과 길손 스크랩 무학산 불굴사
뜬구름 추천 0 조회 67 20.01.05 20: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무학(舞鶴)산 불굴사 (경북경산시와촌면강학리) 산 이름과 같이 학이 춤을 추는 산에 천년고찰이 숨어있다

옛 말에 건너다 보니 절터라 하였던가 전통사찰들이 자리한 곳에는 많은 전설과 음양오행과 풍수지리등

으로 아주 잘 골라 명당중의 명당이라 할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불굴사는 대구 동구 능성동(예비군 훈련장)을 거쳐 와촌면 소재지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2차선 도로가 이정표와 함께 길을 안내한다.

4차선 큰 도로에서 약 2km 굽이 돌고 숨가쁘게 올라가면 천년 고찰인 불굴사가 자리하고 있다.

불굴사는 근래에 들어 이름이 많이 알려져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찾는 절간

으로 변하고 있다.

이유인 즉, 원효대사가 불굴사 석굴에서 수도한 것과 김유신 장군이 불굴사에서 삼국통일을 염원하면서

수련하였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팔공산 갓바위와 불굴사 석불입상이 약사여래불로서 음양

의 조화를 이루는 한쌍의 부처로서 지형적으로 보면 팔공산 갓바위는 양지로서 갓바위 부처님은

양기를 뜻하는 남성상을 불굴사 석불입상은 음지에 위치한 관계로 음기를 가진 약사불로서 하루에

두곳의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설화가 전해내려 오고 있을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불굴사 경내로 들어가는길에 어디에 어떤 용도로 사용하던 석재인지는

모르지만 연꽃문양을 한 석재가 길가에 놓여 있었다.

불굴사에는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었다. 옛적에도 없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지금 어느곳을 보아도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실례일까?

 절간을 찾아 가면 불자가 아니라도 예의상 고성방가는 금물이고 먼저 큰 법당을 찾아 참배 하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여 큰 법당인 적멸보궁에 들어가 삼배 올리고................

적멸보궁에 특이하게도 한글로 된 주련(사찰 전각의 기둥에 걸려 있는 글 = 내용인즉, 인류는 불제자, 중생은 부처님, 세계는 불국토, 우주는 불법계)이 걸려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메세지가 전달될까?

 여기 적멸보궁의 내부를 보면 부처님상이 아닌 불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 속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나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곳이 적멸보궁이고

명칭을 붙이는 것을보면............

 

 

좌측에는 조성년대를 알수없는 아미타불탱화가 걸려있다.

적멸보궁앞에 자리한 보물 제 429 호 불굴사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시대의 3층 탑으로 이중기단위에

삼층몸돌을 쌓아 올린 균형이 잘 잡힌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석탑이란다.

상륜부 일부가 없어진것 외에는 그런데로 잘 보존되었다고 설명되 있었다.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10년 (690년)에 처음 건립되어 크게 융성할때에는 12개의 부속암자를 거느릴

만큼 사세가 좋았다고 안내되 있었음.

삼층석탑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석재 멧돌의 일부와 절구의 일부인듯한데 그 옛날 불굴사가 융성할때

사용하던 것일까?

 적멸보궁의 왼쪽에 있는 건물이 염불당이다. 이곳은 스님들의 수행장소인듯하고 여기 또한 주련이

한글이다. (대중속에 부처님이 있다. 마음속의 번뇌를 버려라. 평등심은 해탈의 길이다. 선행을 서로

미루지 말라.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라등등)

염불당의 벽에 그려진 벽화다.

스님들께서 법고 사물을 두드리고 치는 모습은 모든 중생의 성불을 위한 교화를 하화중생이라 하던가?

불굴사 약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 (불굴사 석조입불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01로 2001년에지정)은

조선 영조때 큰 홍수로 인해 흙 속에 묻혀 오랜 세월을 지내왔으나 전라도 송광사 노스님의 꿈에 현몽

하여 발굴하여 모셨다고 전한다.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쓴 남성상이나 불굴사 약사불은 쪽두리를 쓴 신부같은 여성상이라 음양의 이치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바닥의 큰 자연석위에 세워져 있으나 왼쪽손이 훼손된 상태인 것을 지금의 모양으로 보수를 하였다고

안내 되 있었음.

 바닥의큰 자연석

약사보전앞의 석등과 배례석(석등과 배례석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음)

이제 불굴사의 겉 모습을 보았으니 진짜백이 불굴사가 창건되기전 원효대사가 수행하고 김유신 장군이

통일 염원을 기원하며 수련하였다는 석굴을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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