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호사가들은 요즘 대차대조표 그리는 재미에 빠져 있다. 정치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가 경제 권력의 정점 삼성에 ‘이건희 사면’이라는 연말 선물을 덜컥 안겨주면서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이다. 삼성이 청와대에 건넬 ‘답례품’이 무엇일지가 벌써부터 관심사다.
표면적으로 나오는 답례품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다. 청와대가 내건 사유부터가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 번째 도전에 나서는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반드시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 전 회장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활동이 꼭 필요하다는 체육계·강원도민·경제계의 강력한 청원이 있었다”라고 사면 이유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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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포토 ‘이건희 사면’에 대한 보은으로 삼성이 세종시(위) 수정안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 분위기다. 한 수도권 한나라당 의원은 “입버릇처럼 법치를 얘기하던 MB가 자기 말을 뒤집는 엄청난 부담을 무릅쓰고 단독 사면을 단행하는 이유가 동계올림픽 하나일 리가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정치권의 눈이 쏠리는 곳은 역시 세종시다. 세종시를 둘러싸고 야권은 물론 박근혜 전 대표와도 위태로운 승부를 벌이는 MB로서는 “삼성이 세종시로 간다”라는 발표만큼 전세를 뒤집을 확실한 카드가 없다. 실제로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이전에도 삼성 계열사 중 구체적인 기업 이름까지 거론되며 세종시 이전 계획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온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전기 부산공장이 세종시로 이전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와 해당 기업과 부산시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MB의 기막힌 사면 시점도 화제
당장 1월11일로 예정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에 삼성이 포함될지를 두고는 관측이 엇갈리지만, 삼성이 언제고 어떤 형태로든 세종시 문제로 ‘보은’할 것이라는 전망은 일치한다. 한 여권 인사는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그려 보였다. “세종시가 얼추 도시 꼴을 갖추려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세종시 인프라가 갖춰질 때쯤 이전을 시키겠다며 ‘장기 계획’을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 삼성은 실제 이전 부담을 지지 않고도 MB에게 훌륭한 ‘보은’을 하는 셈이 된다. 그런 약속이 나중에 부담이 될 일도 없다. 정부도 안 지키는 약속인데 기업인들 다르겠나.”
굳이 세종시 문제가 아니라도 삼성을 향한 ‘충정’은 눈물겹다. 2009년 연말 국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복수노조 시행을 1년6개월 유예하는 수정안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됐다. ‘페이퍼 노조’를 만들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는 삼성으로서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무노조 경영에 타격이 올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MB의 ‘기가 막힌’ 사면 시점 선택 역시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27일 원전 수주 발표로 포문을 연 청와대는, 이후 숨돌릴 틈도 없이 대형 이슈를 쏟아냈다. 12월29일 이건희 전 회장 사면, 12월30일 용산참사 협상 타결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좋은 소식 두 가지 사이에 불리한 뉴스 하나를 끼워넣어 파괴력을 줄였다. 사면 타이밍이 조율된 흔적이 보인다”라고 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