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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에서 배우는 나무 사랑의 방식
5월 21일 토요일.
반을 넘어선 아라곤 길이지만 루에스타에 머무는 시간은 짧을 수록 좋다는 기분이었다.
상게사에서 묵을 요량이므로 거리가 22km남짓에 불과하지만 새벽같이 나선 이유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한낮의 뙤약볕을 피하려는 것도 이유중 하나지만.
폐가들 사이로 난 급경사 내리막길과 레갈 강(rio Regal) 다리를 건너가면 다시 울창한
숲길이 시작된다.
여름캠핑지대를 지나면 11c에 지었다는 로마네스크 예배당 산티아고 아포스톨(Ermita
de Santiago Apostol) 건물이 남아있다.
루에스타 최후의 산티아고 소수도원 유적이란다.
여기 까지는 전날 석양에 산책삼아 걸어본 길이다.
아라곤 길은 계속되던 숲길에서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임도?)로 바뀌어 간벌과 벌목
중인 산으로 이어진다.
이른 아침나절이어서 다행인 긴 오름 길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곳곳에서 나는 이제까지와 다른 나무 사랑의 방식을 배우는 중이다.
마치, 부모의 과보호가 자식을 무력하고 무례하게 만드는 것 처럼 나무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나무를 쓸 모 없는 불구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나라는 나무를 촘촘히 심은 후 과감하게 간벌을 하지 않아 균형잡힌 성장을 하지
못하고 키만 자람으로서 전혀 쓸 모 없게 돼버린다.
이에 반해 이곳 사람들은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과감한 간벌과 전지로 몸집을 키우고
키를 조절하여 효용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미려한 수목을 만들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집 마당의 나무들을 통해 나무사랑의 새 방식을 실습중이다)
해발856m 고원지대로 오르는 도중에 본 이에사 저수지는 대해에 흡사하여 '피레네 해'
(Sea)라고 붙여진 별명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었다.
고원지대의 특성은 일체의 나무들이 거목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람막이가 없기 때문인데 여기라고 예외일 리 있는가.
그러나 시각적 장애물이 없으므로 일품 조망권이 확보되는 이점도 있다.
멀리 나바라 지방으로 이어지는 하얀 풍력발전기들과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마을들의
명멸이 파노라마 같은 전망이다.
도로에서 이탈한 카미노는 완만한 평원을 마냥 춤추며 내려간다.
한 때, 창고가 딸린 주택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아주 큰 돌집의 잔해가 눈길을 끌었다.
저 큰 집의 돌들은 돌밭을 개간했다는 증거물일 것이며 집단 거주의 취락이 형성될 때
까지 저 집은 한 개척가족의 단란한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1당 100의 기계 이전, 삽과 괭이 시대의 일이다.
비포장 도로의 지혜
루에스타의 기분은 이미 완전무결하게 전환되었다.
몰리나르 개울(arroyo del Molinar)을 건너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운두에스 데 레르다
(Undues de Lerda) 마을이다.
인구70명 미만의 오래된 마을이며 사라고사 주의 작은 지자체 마을이다.
루에스타에 머물지 않고 여기까지 더 진행하려다 포기했던 알베르게 마을이다.
루에스타에 비해 분위기와 인심이 삭막하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다시 숲길이다.
찔레꽃 넝쿨이 엉켜 통과하기 불편하도록 우거진 숲을 빠져나오면 밀밭 농로다.
곧, 산간의 평화롭고 조용한 아라곤 지방에서 나바라(Navarra) 지방으로 넘어간다.
이를 알리는 이정표석을 지나면 상게사 한하고 비포장 도로다.
왕래 차량이 거의 없으므로 먼지가 일지 않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보다 촉감이 부드러워
걷기 편한 길이다.
4km이상을 걸어다녔던 소학교(초등학교) 통학로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 길이다.
길에서 마주친 이들이 내게 '아니모'(animo/힘내세요)를 합창하며 지나갔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상거가 상당한 이웃마을 나들이를 도보로 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들은 하나같이 여유롭고 태평스런 표정이다.
소중한 돈과 시간을 바쳐가며 헬스클럽의 워킹-머신과 런닝-머신에는 매달릴 지언정
평소에 걷는 것은 한사코 기피하는 우리의 도시인들.
30분 걸으면 도착할 집에 가기 위해 1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탈 정도로 걷기를 거부하며
걷는 이가 없는 작금의 우리 시골길.
안타까운 대조다.
우리의 현실을 타파할 묘책은 과연 없는가.
이와 함께 내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견한 특이한 점중 하나는 차량의 통행량이 많은
길 외에는 포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을 골목까지 샅샅이 포장하고 도로는 물론 농로까지도 아스팔트 또는 시멘트 포장을
하는 우리나라와 대조되는 점이다.
이즈음 들어서 휘청거리고 있지만 GDP가 우리의 1.5배 이상인 그들에게 포장 여력이
없기 때문이겠는가.
거시적 장단점을 심도있게 고려하지 않고 미시적 편리성에만 집착하는, 도로문화(?)가
일천한 우리에 비해 그들의 심오한 지혜일 것이다.
외로운 나그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
상게사까지 6.5km에 달하는 세석길(細石)은 소위 볼거리가 없는 건조한 길이다.
그래서, 길 지근 밀밭 둑에 서있는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돋보였을 것이다.
"14c부터 인적없는 도로변(calzada romana/로마시대 길?)에 서있는 전설적인 나무"
라는 뜻인 듯 한 설명판이 있다.
쉼터가 될 만큼 충분한 그늘을 만들고 있으므로 나무 주위를 잘 다듬어 놓을 법 한데도
아쉽게도 방치상태다.
수령이 6c에 이르는 나무라면 보호수로 대접받을 만한 나무임이 틀림 없는데.
무료하다는 푸념을 알아들었나.
길가에 사도 야고보 길의 심벌중 하나인 지팡이가 호리병과 안내판을 달고 서있다.
"2008년 9월 10일 사망한 순례자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부르고스 리살데스(Francisco
Javier Burgos Lizaldes)를 추모하며"
솜포르트 길을 내는데 크게 기여한 사라고사의 순례자 리살데스가 한창 나이인 53세에
상게사 인근(여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몇시간 후 상게사 관광안내소에서 친절한 여직원으로부터 들은 설명이다.
그 때, 그는 이 길을 혼자 걸었단다.
누군가 동행했더라면 응급조치를 받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터.
인적없는 길의 외로운 나그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만성맹장염을 앓으면서도 강행한 내 행동이야말로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이었는가.
맹장의 파열로 사망한 후 다행히도 어느 선량한 순례자에 의해 발견된다면 그 곳에는
<한국인KIM JIN KEY 2011년 X월 X일 복막염으로 사망하다>는 푯말 하나 박힐 것이다.
아무리 무모한 강심장이라 해도 사전에 알았다면 강행하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아라곤 길에서 기분 좋은 날.
뜨음했던 국산자동차와의 만남이 아라곤 길에서는 최초로 이뤄진 날이니까.
동구 밖에서 환영이라도 하려는 듯 서있는 현대자동차를 보았다.
시내에서는 LG에어컨의 실외기가 반가웠다.
사도 야고보 길에서 한국제품을 보는 날은 예외없이 기분좋은 날이었는데 오늘도 역시.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제품을 지구의 극동에서 극서로 옮겨온 이들이야 말로 애국자다.
루에스타에서 22km 상게사(Sanguesa)에 진입했다.
토로스광장(Plaza de Toros), 막달레나거리(C/Magdalena)를 지나 엔리께 라브리트
거리(C/Enrique Labrit)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
프랑스 길의 폰페라다에 이어 두번째로 아주 일찍, 맨 먼저 도착했다.
다음 알베르게 마을까지 여유롭게 갈 수 있는 시간임에도 멈췄다.
나바라 지방에서 맞는 첫 고도(古都)의 인력(引力)에 순응한 것이지만 남은 이틀간의
거리 안배차원이기도 했다.
리셉션(recepcion/접수) 시간이 12시부터다.
상주하지 않고 접수만 받는 관리인은 내게 키(key)를 맡기고 갔다.
순례자가 적은 루트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14명을 수용하는 2층 침실에는 단층과 복층침대가 섞여있으며 1층은 자그마한 주방과
식당 및 서가로 꾸며진 5유로짜리 아담한 알베르게다.
석양이 되면서 속속 도착함으로서 일찍 만원이 되었다.
하카 이후 연일 재회하는 스페인 청년과 간 밤에 한방을 쓴 지독한 코골이 이탈리아노
(Italiano)들을 또 만났다.
아라곤 길이 없으면 상게사도 없다
대형 수퍼에서 소고기를 비롯해 거창하게 구입해 모처럼 비프 보카디오를 만들어 먹고
맥주도 마셨다.
내일 도시락까지 준비한 후 산책길에 나섰다.
마을과 아라곤 강 주변을 산책하다가 들른 관광안내소(Oficina de turismo)가 의외로
크고 자료도 풍부했다
한국 늙은이라니까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가.
아름다운 꼬레아... 나이 든 책임자의 응대다.
참고하라며 영문 자료들을 챙겨주는 적극적인 자세가 인상적이어서 카메라를 꺼냈다.
사진을 받고 보내온 그녀의 e-mail에도 아름다운 한국에 한번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4계절 사진을 함께 받고 표현한 의례적 수사일 수 있지만 나는 한국의 자연
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관광사대주의에 매몰되는 것은 자기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외국을 보기 전에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을 심도있게 답사해야 하는 이유다.
사도 야고보의 여러 길중에서 2개의 루트가 나바라 지방을 통과한다.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하는 프랑스 길과 아라곤 길이다.
해발1.640m에서 시작한 아라곤 길은 100km의 아라곤을 벗어나 나바라에 진입할 때는
해발400m대로 내려앉는다.
이 아라곤 길이 통과하는 나바라 지방의 첫 마을이 여기 상게사다.
2007년 기준 인구 5.128명으로 아라곤 길에서는 나바라 최대의 마을이며 나바라 주의
지자체 중 하나다.
아라곤 길이 없으면 상게사도 없다.
왜냐하면 상게사는 12c초에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돕기 위해 형성되었다니까.
나바르(Navarre) 왕 알폰소1세(Alfonso I)는 팜프로나(Pamplona) ~ 비아나(Viana)의
순례길에 진력하면서도 하카에서 나바르로 오는 순례길의 보강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1122년 아라곤 강 둑에 상게사 마을이 건설된 것이라고.
순례자를 위할 뿐 아니라 원활한 통상(通商)을 위해서.
원래의 상게사는 현 위치에서 북서쪽 2km 떨어진 곳으로 지금 로카포르테(Rocaforte)
로 불리는 마을이란다. <계 속>
첫댓글 이베리아길 이국 향기와 서남동길 갯내음. 두 곳을 넘나드는 카페지기님의 현란한 글에 감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