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수의 카자흐스탄 견문록 - (2차카작행10) 다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했습니다
2월 9일(목) 오후 5시 50분 인천발 알마티행 아시아나항공을 탔습니다. 박성흠 권사님께서 운전해 주신 교회 승합차를 타고, 이성환 목사님 내외분, 이경숙 집사님, 양재진 집사님, 둘째처형인 김순례 권사님, 큰아들 범신이의 환송을 받았습니다. 무거운 짐은 4주전에 우진트랜스로 부치라는 박사장님의 말씀을 따랐어야 하는데, 누군가 괜찮다는 바람에 모두 들고 나왔다가 오버차지(1키로당 10달러)로 30여만원을 날렸습니다. 오면서 안 사실인데, 알마티행 비행기는 여객기로서보다 수송기 기능이 중요하다 보니 융통성이 없답니다. 화물운송료에서 이익을 보기 때문에 봐주는 게 없거나 적다는 것이지요. 미국행 비행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아까워 큰아들더러 도로 가져가서 우진트랜스로 부치라 하려 했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는 바람에 그냥 부쳤는데 오면서 알아보니 3배는 비싸게 받은 모양입니다. 이것도 공부라 생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첫 나들이도 아니건만, 3시간 전에 도착해 짐을 부치고 함께 음료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박연기 청년으로부터 오늘 진천에 있는 미국회사에 합격했다는 기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항공대 기계과를 나와 신실하게 하나님 섬기는 청년이며 교회 제자이기에 새벽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더욱 감사하고 충성하라는 말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1시간 전쯤, 교회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서는 기분은 참 묘합니다. 무언가 딱 단절되는 것만 같은 느낌, 참 안 좋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 공항에 혼자 서 있을 때는 정말 더 그렇습니다. 무섭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통관 절차를 거친 후(안경점하는 후배가 유행 지난 썬그라스를 다발로 주었는데, 무사히 통과되었음), 각자 출국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아내가 망설입니다. 초청장에 적힌 대로라면 아내는 사업차 가는 것으로 써야 하지만, 정직한 아내는 그럴 수 없다고, 확인하면 어쩌느냐며 “관광”이라 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업 및 관광”이라 썼습니다. 혹시나 시비가 생길까 싶어, 담당직원한테, “우리 셋은 가족이다. 나는 대학교수로서 안식년을 맞아 연구하러 가는 것이며, 두 가족도 함께 가서 거주하며 지내는 것”이라 미리 말했습니다. 빠져 나온 후 아내한테 별탈없었느냐 물었더니만 그 직원이 웃으면서 그러더랍니다. “남편은 연구하는데, 아내는 사업하고 관광해요? 이상하네!”
5시 20분에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간 5시간 걸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갈 때 6시간 40분, 올 때 5시간 30분이라 했습니다. 한참을 가니 둘째아들 선범이는 지루해 못 견디겠는지 자꾸만 노트북을 하겠다는 해서 말렸으나, “노트북 게임하게 해주면 어학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말에, 다시 머리 위의 짐을 뒤져 게임 씨디를 찾아 주니, 신나게 두드립니다. 다행히 전쟁하는 내용은 아니고 롤러코스터라는 놀이동산 짓는 게임이라 안심되었습니다. 하지만 밧데리 용량이 적어 40여분만에 꺼지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는지 엠피쓰리를 귀에 꽂고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서 계속 영화와 다큐를 보내주어 나는 많이 지루한 줄 모르고 왔습니다. 잠시 졸기도 하고요. 처음에만 바깥 경치가 보이다가 이내 어두워지면서 바깥은 보이지 않아 좀 아쉬웠습니다. 바깥경치 보려면 낮에 운행하는 아스타나항공을 이용해야 하겠습니다.
옆자리의 사람에게 말을 붙였는데 알고 보니 어느 회사인지는 모르나 알마티 지사장 일을 하는 모양인데 여러 가지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알마티에서 흔히 보는 포스터 “카작 2030”의 의미에는, “2030년부터는 오직 카작말만 쓰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우즈벡은 독립과 동시에 러시아어를 추방하고 우즈벡말만 쓰게 했는데, 카작은 40여년간의 유예기간을 주어, 그 기간에 차세대 어린이들에게 카작어를 배우게 하여 2030년에 이르면 카작어만 통용하게 한다는 매우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카작어를 할 줄 알아야만 고급관료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 시간으로 자정을 넘겨 12시 20분에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뭘 열심히 적기에 나도 적어야 하는 줄 알고, 러시아와 영어로 적힌 문서에, 본적, 주소, 부모의 성명, 결혼 여부, 여행 목적과 기간, 초청자의 신원 등등 한참 끙끙대며 적다가 생각하니, 이미 비자 받을 때 제출했던 현지인의 초청장에 적힌 내용이라, 중복되는 짓을 왜 시키나 싶어, 작성하다 말고 다가가 확인해 보니, 미처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고 온 사람들만 적는다고 해서, 얼른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선글라스가 적발되어서 그런지, 우리 짐이 많게 보여서 그런지 밑반찬류 넣은 통이 의심받아 그런지는 몰라도, 이리로 따라오라고 해서는 “식사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기에, “나는 학생이다. 공부하러 왔다. 1년간 있을 거다”고 서툰 영어로 말하니 “오우 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물건과 돈을 뺏기는 것은 아닌가 긴장했는데 무사히 통과한 것입니다.
바깥에는 이미 한우리 민박집 박석화 사장님이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얼른 화답을 하고 짐을 찾아가지고 나와 알마굴 가가리나의 한우리민박집에 도착했습니다. 하도 춥다고들 겁을 주어 에스키모처럼 내복에 털모자에 중무장하고 내렸는데 웬걸, 영상의 날씨였습니다. 원래는 추워야 하고, 실제로 상당히 추웠는데 한 열흘 동안 이상난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나 기후 변화의 불길한 조짐들, 좋지 않습니다.
아파트는 날이 밝으면 나가서 까즈구대학 어학당 다니기 좋으면서 한우리 가까운 곳에서 내일 나가서 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까즈구대학 어학연수가 러시아와 카작어와 역사까지 가르치며 일요일만 빼고 매일 아침부터 오후 1시까지 한다니, 학교 공부는 병행할 수도 없거니와 한 학기 동안 그 연수를 철저히 받으면서 과외비가 시간당 1만원 수준이니 과외교습을 우리와 함께 받도록 해야겠습니다. 아파트 얻는 대로 박사장님과 함께 키르기스스탄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그 아드님이 비자 발급 일로 그곳에 가 있어 어차피 가시는 길이라니 나도 아내와 아들도 함께 편승하기로 한 것입니다. 여름에 그렇게 지저귀던 새들, 겨울에는 안 오느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일어나면 알 것이라고 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 이곳 새들의 울음소리를 아내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곳에서의 6개월, 이제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복스런 기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린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