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통영 12공방: 전통장인정신이 현대적 디자인과 만나다
품질경쟁에서 품격경쟁시대가 되었다. 품격은 제품의 품질에다가 스토리와 디자인을 가미
할 때 생긴다. 다문화가 교류하며 공존하는 21세기 글로벌 시대는 오감으로 체험하며 느낌
으로 소통하는 문화콘텐츠산업은 바이오산업, 스마트산업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핵심성장
동력이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 대규모 토목공사, 수출중심의 경제로서는 '문화의 경제화'
시대에 창조경제의 꽃을 피울 수 없다. 차도 스마트폰도 디자인이 최종 승부처이다.
전통수공예문화의 온존처(溫存處)인 통영 12공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시작된다.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자 1593년 선조는 전라, 경상, 충청 삼도수군을 통합한 삼도수군통제사 벼슬을 내렸고,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다. 아울러 배와 무기 등 군수물자와 갓, 소반, 칠기, 부채, 종이 등 진상품과 소금, 어망 등 생필품을 만들었다. 인근 거제도에 세계적인 조선소가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지정학적인 배경과도 관련된다.
통영 12공방은 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한산도에서부터 두룡포(지금의 통영)로 삼도수군통
제영을 옮긴 이후, 전국의 공인들을 불러들여 공방을 세우면서부터 시작하였다. 한 지역에
다양한 분야의 공인이 모여 조직적 공방을 갖춘 곳은 찾아 보기 힘들다. 세계적 문화관광지
중 하나인 된 베니치아의 무라노섬만 하여도 유리 수공예 한 분야에만 특화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향(鄕), 소(所), 부곡(部曲) 등 특수부락이 있었다. 이 중 ‘소’ 는 수공예인 집단촌이었다. 조선왕조에서는 ‘소’는 지방의 ‘외공장(外工匠)’과 한양의 ‘경공장(京工匠)’으로 분화된다. '경공장'은 공조 관아 편입되어 장인은 종7품에서 종8품, 종9품 등 관직을 제수받았다. 일정 기간 의무공역(公役)을 하면서도 사적인 생산과 판매 활동이 허용되어 시장이 형성되고 점차적으로 커지면서 조선 후기 수공업산업의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통영 12공방의 전통을 면면히 지키고 이어가시는 분들이 있다. 나전장 송방웅 선생, 갓일
정춘모 선생, 소목 김금철 선생, 두석 김극천 선생, 염장 조대용 선생, 소반장 추용호 선생!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jbob70?Redirect=Log&logNo=120114282662
명나라와 왜국도 알아 주었던 조선의 명품을 만든 12공방의 전통을 현대에 다시금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크래프트 12> 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통영
의 전통공방 장인들과 현대적 스타일의 디자이너들이 상호공생네트워크로 작업하고 있다.
통영의 12공방을 되살린 전통공예 창작예술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크래프트 12>는 2009 서울 리빙디자인 페어와 이탈리아 밀란 가구 페어에서 세상에 알려
지기 시작하였다. 서울 리빙디자인 페어에서 갓으로 만든 전등, 삼베로 만든 가리개 등을
보면서 전통 공예의 꿈을 다지는 젊은이도 있다. 세계적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밀란 가구 페어를 둘러 보고 “유럽의 수공예 디자인과는 또 다른 한국만의 수공예 솜씨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들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우리나라에서 12라는 숫자는 '많다, 넓다, 크다' 라는 3 가지 서사적 의미를 표상한 것이다.
첩첩 산중 열두 고개, 열두 폭 분홍치마, 대갓집 열두 대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통영 12
공방은 12개 공방이 있다는 숫자적 의미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공인들이 한 곳에 모여
수공예 예술의 꽃을 키우는 큰 공방’ 인 것이다. 통영 갓, 통영 장, 통영 소반, 통영 경대,
통영 부채는 장인의 혼과 손길에서 우러나온 명품으로 전통문화의 품격을 보여준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통영의 장인들을 찾아와 배우고 전통수공예 예술에 현대적 감각의 디자
인을 접목하여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수공예 예술 전통의 정체성을 살리며 창의적 실용미를 더하고 있다. 통영의 수공예 예술의 가치를 알고 시대인이 원하는 명품을 만드는 미래의 주역이 많다면 통영의 미래가 그만큼 밝으리라.
1, 2, 3 경대, 접시, 꽃병은 모두 나전장 송방웅 선생 작품.
4 소반은 소목장 추용호 선생 작품. 5 낮은 거실장은 나전장 김종량 선생 작품
이미지 출처: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47690
인터넷에서 통영이 고향인 어느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의 블로그를 만났다. ‘내 그림이 어디
서 왔는지 찾아가 보네’ 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통영 12공방에서 내려온 예술 DNA가/내 손끝에도 묻어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진
다//<명품명장 통영12공방 이야기>를 통영에 내려와 읽으니/ 마치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
진을 재현한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나이가 들면서 고향을 찾는 건/비빌 언덕이 있다는 안
도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통영과 12공방이 내게 그런 언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성수 옻칠미술관 관장은 '전승과 전통의 차이' 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거의
전통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전승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생활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더 나아가 예술 창작에까지 이르는 것, 그리하여 독창적 문화를 발전
시키는 것이 전통이라는 뜻이다.” (‘명품명장 12공방 이야기’ 조재수. 디자인하우스, 2009. P156)
“나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개 컬렉션을 모아서 <크로스포인트>를 만든 손혜원
대표는 "그저 옛것이라고 해서 다 전통이 아니다. 컨스턴시(Constancy), 즉 지속적으로 살
려가야 할 것이 전통이다" 라고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말한다.
'소설의 어머니' 박경리 선생은 풋풋한 서민적 향토애가 지극했다. 그래서 “통영사람에겐
12공방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예술의 DNA가 있다”고 생전에 자주 말하였다. 돌아 가실 적
에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
"나의 유품 가운데 세 가지를 소중히 다루어 달라. 첫 번째는 오래된 재봉틀, 두 번째는 국
어사전, 세 번째는 통영 소목장이 만든 장롱이다. 재봉틀은 나의 생활이었고, 국어 사전은
나의 문학이다. 통영 장롱은 나의 예술이다." (‘명품명장 12공방 이야기’조재수/2009. P32)
우리의 전통 한옥은 다분히 여성지향적이다. 사랑방은 남성의 생활공간이라면 안방은 여성의 공간이다. 그래서 안방마님이란 말이 있다. 집은 대목수가 짓는 하드웨어라면 가구와 집기는 소목수가 꾸미는 소프트웨어다. 탁 트힌 시원스런 기상의 남성적 양기와 다정다감하고 아기자기한 여성적 감성의 음기가 서로 어울린 우리의 전통생활공간이 아니었던가?
고도성장 속에서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던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깨어진 지금 시대에는 소프트 파워가 창조경제의 원천이다. 장인정신이 빗어내는 전통문화콘텐츠를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할 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통영 12공방과 Craft12 프로젝트를 주목한다.
수도권 집중화를 벗어나 지방문화와 경제를 살리지 않는 한 창조경제는 구호에 불과하다.
첫댓글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
잡지 발간하면서 나름 장인들 많이 만나 봤습니다.
국가적 지원과 더불어 장인들의 법고창신에 의한 작품들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속 뜻과 일치되어 반갑고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