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에 참여함
고린도전서 11장 23-29절 /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성경 해석의 원리 및 성경 해석법을 성경 해석학 과목으로 가르칩니다. 교회에서 설교자로 성도를 섬김에 있는 목사는 설교를 성경 해석학에서 배운 바를 잘 적용하여서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함으로써 그 내용이 지닌 의미를 잘 풀어 거기에 담긴 주님의 뜻을 성도들에게 설명하여 주며 또한 가르쳐야 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함에 있게 하는 유익에 있게 할 것입니다.
성경해석학에서 다루는 성경해석법에서는 성경은‘문법적-역사적 해석법’을 성경 해석에 적용할 것을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의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성찬’에 대한 문제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에, 본 글에서는‘문법적 해석’을 왜 고려하며 해나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실예가 될 것이기에 문법적 해석에 의한 설명을 해 나가면서‘성찬에 참여함’에 대하여 설명 드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록된 계시’로,‘성문계시’, 또는‘문서계시’라고도 말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글자(문자)라고 하는 것을 사용하여서 돌판에, 또는 종이에 기록되어 문서의 형식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사용된 문자는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는데,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자음 문자 하나하나가 모여 단어를 이루고, 또한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어구를 이루고 또한 문장을 이룹니다. 이 문장은 예컨대,‘동사(창조하셨다)+주어(하나님이)+목적어(하늘과 땅을)’형식을 기본형식으로 갖추고 있어서 질서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훗날‘문법’이란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의해서 파악을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문장은 문법 학자들에 의하면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어의 형식과 단어의 관계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 문장이 지니고 있는 뜻(의미)에 영향을 주므로 이를 파악하여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단어는 독립되지 않고 언제나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단어가 다른 단어와 연결하여서 본문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밝힙니다. 그러므로 단어의 연결을 살펴보도록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절인“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에서 보도록 합니다. 여기에서“합당치 않게”라는 말이“누구든지”에 걸리는지 아니면“먹고 마시는”데에 걸리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일반적으로는 전자의 의미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해석되는가 하면“ⓐ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라고‘합당치 않게’를‘누구든지’에 걸리는 것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누구든지…합당치 않은 자’로 보고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은 자는, 곧 합당치 않은 자는 누구든지 주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수 없다,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해석하게 됩니다. 즉, 스스로 떡을 먹고 마심에 합당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자는 성찬에 참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참여하기를 꺼려하게 됩니다.
(2)그러나 문법을 보면 그런 뜻이 아닙니다.‘합당치 않게’는 부사로서 동사를 수식하고 있는 것이지, 명사를 수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합당치 않게’라는 말은‘누구든지’란 사람에 걸리는 것이 아니고‘먹고 마시는’것에 걸립니다. 따라서“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지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받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게 먹고 마심에 있는 자라고 하는 사실을 깔고 있는 것으로 성찬에의 참여함에 있는 것이 이러한 것인데, 성찬(성만찬/주의 만찬)의 자리를 가질 때 그 자리에 참여함에 있는 자 누구에게서든지 간에 합당치 않게 주의 떡을 먹음에 있고 주의 음료를 마심에 있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하는 것에서 말하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당시에 성찬(주의 만찬)이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는 염려스러운 사건 때문에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교회에로의 연합에 있는 회집(집회/예배모임)을 가질 때 성찬(주의 만찬)을 위해서 자리를 가져나가는데 그 자리가 유익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는 자리로 가져나가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에서 그러는가 하면, 성도들 간에서 논쟁과 분열이 있어 그들 간에 나뉘어 갈라지는 일이 있는 것에서 입니다. 교회 모임에서의 성찬(주의 만찬)의 자리는 주께 가진 한 믿음에서 주의 몸으로의 하나 됨에 있는 것에서 가져나가지는 믿음의 교통함에 있는 교제인데, 성찬의 자리에서 먹고 마심에 있는 식사가 성만찬이 아니라 서로 파당을 이루고 저들 끼리끼리 그냥 먹고 마시는 자리로 가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은 부자는 환대하고 가난한 자는 무시하여 외면하는데다가 심지어는 다 함께 자리를 같이 할 때까지 기다리며 모두가 성찬에 참여함에 있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인데 다른 사람을 기다렸다가 함께 음식을 나누지 않고 먼저 음식을 먹음으로 각기 제 먹는 것에만 마음이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배만 채우며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하기까지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섬김은 외면함으로써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배고픈 사람이 있는 일이 발생하는 상황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의 자비의 부요함에 있는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시키는 일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그리스도의 자비가 공급되는 교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는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기에, 그들이 떡을 먹고 음료를 마시는 것을‘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누구든지‘합당하게 먹고 마심’에 있어야 할 주의 만찬인 식탁이 자기들의 배만 채우며 즐기는 먹음에 있고 마심에 있는 것으로 더럽힘에 있는 식탁이 되고 있기에‘합당치 않게 먹고 마심’에 있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에게서는 눈치를 보게 되며 성찬에 참여하기를 주저하고 꺼려하게 됩니다. 바울은 주의 몸으로 생명이 주어지고 주의 피로 죄 사함을 얻게 함의 기억에 있는 성도들이 그 은혜를 끄집어내어 서로 이야기하며 주께서 베푸신 구원에 그들의 믿음이 견고히 서 나가기를 위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섬김에 있는 주께서 베푸시는 식탁인 성찬이 그렇게 되어서야 되겠는가를 말하는 것에서 성찬이 그러한 것이라면 그것은 합당치 않게 주의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시는 것이니, 이는 주께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느냐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주의 떡을 먹음으로써 오히려 죄를 범하며 주의 잔을 마심으로써 오히려 죄를 범함에 있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니, 그들은 자기들이 먹고 마시는 주의 떡과 주의 잔으로 정죄를 받음에 있는 것이 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님이심을 믿는 믿음에 있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합당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주의 죽으심과 그 보혈의 공로가 우리들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죽으심과 그 보혈의 공로를 아는 자,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래서 구원 얻은 믿음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합당하게 성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죽으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없이 단지 모여서 먹고 마시는 데 즐거움을 두고서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사실 성찬을 죄로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비록 오늘날에는 성찬을 교회가 행하는 예식으로 가져나가는 형식에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가져나가는 것에서 행하는 성찬이 분병에 참여하며 분잔에 참여하는 것에서 엄숙함과 경건함으로만 가져나가는 것에만 의미를 두며 이것을 중요하게만 여길 뿐이지, 정작 주의 죽으심과 그로 인한 생명에 의해 주의 몸을 이루고 있음에 분별력을 가져나가지 않으면 그에게는 주가 거하고 있지 않고 다만 육의 욕망으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 떡과 잔을 범함에 있는 것이 됩니다. 그는 떡을 먹을지언정, 그리고 잔에 담긴 음료를 마실지언정, 영원한 참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인자의 살에 있는 새생명 된 몸으로의 연합,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신 피에 있는 새언약의 은혜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니, 그러한 성찬의 참여는 주의 구원의 은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죄를 먹고 마심으로 인해서 정죄에 이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할 뿐인 무익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로마서 5장 16-20절을 보면, 바울은 믿는 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의 의를 얻는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 또는 생명 안에서 다스림을 받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문맥에서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속죄)사역에 의해서 성령이 믿는 자에게 새생명을 주심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영원한 생명이란 단지 영원토록 오래 산다는 시간의 길이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며 영원한 그분의 나라에 함께하는 참여에 있는, 성령에 의하여서 나타내게 되는 새생명의 질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미 교회에서 누림에 있습니다. 한 분 성령님을 받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믿음으로 한 분 주님을 섬김에 있는 한 몸에 있는 것에서 다 같이 성찬에 참여하여 인자가 베푸신 떡과 잔을 나눔으로써 한 분 그리스도를 소유함에 있는 것에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