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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지는 2007년 마지막 저녁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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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기위하여 명상랑도네는 2007년 12월 30부터 2008년 1월 1일까지 2박3일 천불지산새해일출맞이산행을 계획하게 되였다. 새해일출은 아무곳에서도 볼수있겠지만 2008년을 천불지산에서 맞이하게된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년말이라 다들 다망해서 일부회원님들이 한해마무리를 짖지못해 대오는 두개조로 나누어 떠나게되였다. 우리일행 넷은 30일아침에 떠나게 되였고 나머지 여섯명은 바람님을 길안내로 31일아침에 떠나 천불지산정상에서 서로 만나기로 하였다....
우리가 지나온 오랑캐령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산행이틀전부터 눈꽃이 날리더니 폭설까지 내렸다.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지만 안해는 근심부터 한다.
눈이 오니 어찌가느냐 날씨가 춥고 바람이 세찬데 무슨 고생이냐... 등등...좌우간 이해못하는 안해의 표정이지만 새해일출을 보면 한해의 사업이 멋질거라고 하니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남편의 사업을 은근히 지지해주는 안해였다... 눈이오니 산행은 더욱 즐거운것이고 바람이 세차도 등산장비가 구전하니 어려울것없고 힘들수록 산행은 더욱 멋진거라고....
룡정에 도착하니 다행히 어제하루 막혔던 삼합길이 오늘오전부터 통하게 되였다. 이날따라 어찌나 추웠던지 룡정에서 뻐스를 기다리면서도 두발을 동동굴렀다.
오랑캐령을 넘어 뻐스에서 내리자마자 골짜기로부터 불어오는 윙윙 세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멋모르고 맨손에 사진기를 꺼내들었다가 대뜸 아려나는 열손가락을 제꺽 몸속에 감추어버렸다. 그때에야 최서해의 탈출기에서 이 오랑캐령을 넘으면서 찬 겨울바람을 맞았던 그 때의 그 느낌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 단락을 여기서 다시한번 회억해본다.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령을 넘어서 망망한 평야와 산천을 바라볼 때, 청춘의 내 가슴은 리상의 불길에 탔다. 구수한 내 소리와 헌헌한 내 행동에 어머니와 안해도 기뻐하였다.
오랑캐령에 올라서니 서북으로 쏠려오는 봄새 찬바람이 어떻게 뺨을 갈기는지.
<에그 칩구나! 여기는 아직도 겨울이로구나.>
어머니는 수레우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얼요, 이 바람을 많이 마셔야 성공이 올것입니다.>
나는 가장 씩씩하게 말하였다. 이처럼 나는 기쁘고 활기로왔다.
다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떠나기를 고대했다.
우리가 지나야 할 골짜기와 산
대오는 출발! 등산장비를 구전하게 갖춘 대나무님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잠간 휴식중...
골짜기를 따라 작은 산을 한개넘어 정상에 이르니 겨울바람이 너무세차 모두들 불어오는 바람에 등을 돌리고 몸을 움추린다.
얼굴을 가려도 눈시울이 아려나고 수갑을 껴도 손이 시려나니 더 어찌 사진을 찍을 방법이 없었다...
저 아래 골짜기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센지 몸이 밀리워 바로설수가 없어 비탈길을 택해 걸었다.
젊고 씩씩한 대오...
오늘 운명적으로 머물게 되였던 저 림장지기의 집!
사실 천불지산은 성급자연보호구라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였다. 이번 산행도 진장님덕분에 안배하게 되였는데 전화가 미처 통하지못하여 천불지산정상에 오르는 길목에서 산림지기에게 붙들렸었다.
산속에서 전화가 통하지 못하여 30여분 뒤돌아걸어서 오봉산령에까지 가서야 진장님과 전화통화가 가능했다.
사진은 오봉산령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오봉산 두 봉우리이다.
다시 뒤돌아오면서 바라본 우리의 목적지-- 천불지산정상
우리가 넘어온 해발962메터의 산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오후 네시까지 산속의 눈길에서 다섯시간 헤매고나니 날도 저물었고 몸도 지쳤으니 그대로 천불지산을 오른다는건 무리였다.
그래서 염치를 불구하고 이 집에서 하루밤 묵기로 하였다. 이튿날도 다섯시간 눈길을 헤매며 날이 저물어서 정상에 도착해서야 알았겠지만 이날 살림지기인 황아저씨가 길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큰 코를 다칠번했다.... 추운 산속에서 헤매다 군불땐 뜨뜻한 구들우에서 등이 뜨끈뜨끈한 하루밤을 보낸것도 감사하겠지만 그보다도 천불지산정상에 있는 림장의 집열쇠가 어디에 있는것까지도 가리켜주셔서 참으로 황아저씨는 우리들의 귀인이 였다. 백번 감사를 드려도 그 은혜를 다 할수가 없으니 여기서나마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러니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그렇게 희극적이였다. 길을 가로막을때는 이게 웬 원쑤냐 미워도 했겠지만 사실은 "원쑤"가 아닌 은인인줄은 모르고....그리고 하루밤 함께 지내고나니 누구보다도 친근한 사이가 되였다...(천불지산정상은 령하 20도에 겨울바람이 하도 세차서 아무리 등산장비를 갖춘다해도 맨땅에 텐트를 친다는건 무리에 무리였다. 비록 구들이 얼어붙어 불을 땔수가 없었지만 바람을 막을수만 있어도 족하였다. 삼림지기인 황아저씨가 예전에 천불지산정상에서 2년간 지낸 경력이 있었으니 집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었던것이였다... )
쏘세지두개로 확실하게 친해놓은 황둥개...ㅎㅎㅎ 돌아올때까지도 내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튿날 눈보라속에 짐을 챙기고 다시 정상으로...
또다시 출발
길도중에 그물에 걸린 산새를 구해주다
산을 높게 오를수록 눈이 깊게 쌓여 무릎을 넘을 때가 많아 지칠대로 지쳤지만 마음만은 하냥 즐거웠다.
산을 오르다 발견한 나무의 종기
어이구 힘들어라~ 아직도 얼마를 더 가야해요? ....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겨운 표정인 청솔님.
사실 나도 오륙십근되는 짐을 지고 눈길속을 걷다보니 지칠대로 지쳤었다. 청솔님이야 더 말할곳 없었다...
다들 숨이차서 짐을 진채로 벌렁 뒤로 누워서 휴식하는데 대나무님은 그래도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좋단다.
에라 나도 몰라... 이렇게 짐을 진채로 눈우에 벌렁 누우니 세상에 이보다 더 편안한 일 없었다...
휴식하고는 다시 걷고 걷다가는 다시 휴식하면서.... 이날 두번째조가 올라오면서 평시보다 두세배는 넘게 휴식한 눈위에 찍힌 우리의 흔적을 보구 정말 힘들긴 힘들었겠다 하면서 수고많았다 인사했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우리 젊음 대장부들에게는 아무런 고생도 아니지...ㅋㅋㅋ
네시간 고생끝에 드디여 보이는 천불지산정상의 탑-- 하지만 아직도 한시간은 더 걸려야 할 눈길....
천불지산정상에서 바라본 2007년 마지막 노을-- 오른켠의 높은 산은 천불지산 최고봉인 孔斯列(해발 1331메터)
저녁 텐트속에서... 대나무님과 별님. 두 젊은이가 어찌나 체력이 좋은지 나까지도 탄복!
대나무님도 등산애호가라 등산장비를 구전하게 갖추었고 지금도 주일마다 등산을 끊지 않는다.
별님은 마운틴벨리라는 등산장비상점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으로서 다년간 백두산등산가이드로 활략했는바 등산지식에 해박한 젊은 친구이다. 사실 대나무님과 별님과의 산행은 이번에 처음이다. 이번 합동산행을 통하여 두분의 솜씨가 얼마나 재빠른지 탄복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고생끝에 정상에 도착해서 성공제스처를 보여주는 청솔님.
해가지고 밤이 어두워서야 두번째조는 여섯시간행군끝에 눈길속을 헤치고 드디여 도착! 폭설로 차가 들어올수가 없어 지신진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신벗님은 아드님과 아드님친구등 셋이서 삼림지기의 집에서 하루밤 묵고 이튿날 새벽 눈길을 걸어 날이 휘뿜히 밝아오기시작할때에야 정상에 도착했다... 한조는 저녁늦게 한조는 새벽녘에 어둠속에서 서로가 만나는 순간 우리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눈우에 뿌렸었다....
도대체 일출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춥고 인적이 닿지않은 이 산속에서 헤매야 하는지... 하지만 이튿날 새벽 천불지산정상에서의 황홀한 일출을 보았을땐 모두들 어제의 간난신고를 깡그리 잊었고 희망에 부풀었었다.... 태양은 그렇게 우리들의 희망이다....
산행일지가 뜻깊어 몇번 나누어 올리렵니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