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생거진천
안 병 복
만추, 입동이 지나고 11월도 찬바람에 잎새 떨군 나뭇가지가 쓸쓸히 흔들리는 날, 나는 일행과 함께 진천 나들이를 나섰다. 충청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진천은 청주, 천안, 안성, 입장, 증평, 음성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차령산맥의 푸른 정기를 받아 미호천을 중심으로 광활한 옥토가 펼쳐진 고장이다. 수해와 냉해가 없어 농사가 잘 되었고 인심이 후덕하고 살기 좋아 예로부터 “살아서 머물 만한 고을”이란 뜻으로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리어 왔다고 한다. 또한 진천은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나는 예전에 한번 진천 보탑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보탑사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고 농다리가 예전부터 궁금했다. 우리 일행은 진천에 도착해 볼거리 중 먼저 정송강사(鄭松江祠)를 보았다. 이곳은 조선전기 문신이며 시인인 정철(1536-1593)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현종 6년 (1665)에 후손 양(癢)이 당시 우암 송시열과 상의하여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에 있던 무덤을 이곳으로 옮기고 아울러 사당을 처음 세웠다. 1979~1981년에 고치고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선생의 유품 등을 전시한 유물전시관이 있으며 사당 앞에는 “송강시비”가 있다.
정철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분이다. 그는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며 문학가이다.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으로 1562년(명종 17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판서, 대사간 등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시가에 능하여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엮은 송강가사에 실린 작품 이외에도 많은 시조를 지어 정철은 우리 국문학사상 가사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는 분이다.
넓직한 경내와 사당은 아담한 환희산에 둘러싸여 아직도 샛빨간 단풍이 남아 있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과 나무에 붙어있는 노오란 은행, 민들레 홀씨, 새파란 쑥 등 파아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송강시비에 가을향기 나는 낙엽을 한줌 더 수북이 올려놓고 단풍과 함께 사진을 한 컷 찍었다. 기품 있으시고 멋스런 수염의 영정 사진도 담은 후에 나는 진천의 명소 보탑사로 향했다.
보련산 보탑사(寶蓮山 寶塔寺), 진천읍 연곡리는 도덕봉, 약수봉, 옥녀봉 등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마치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난 모습처럼 아름다워 예부터 연곡리라 하였다고 환다. 연곡리 절터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큰 절터로만 전해 왔는데 그 중심에 보탑사가 삼국시대 목탑건축의 전통을 잇는 3층 목탑을 세움으로써 새롭게 되살아났다.
이절 보탐사는 1996년에 비구니 스님인 지광. 묘현, 능현 스님이 창건한 근래의 사찰이나 참으로 아름다운 절이다. 입구에는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보호수 느티나무는 말없이 서 있고…, 나는 보탑사 경내로 들어갓다 경내에는 보물 제404호인 고려시대의 진천 연곡리 석비도 서 있다. 또한 주변에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생가가 있어 역사적인 명당지였음을 알 수 있다. 높이 42.73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3층 목탑은 연꽃의 꽃술을 상징하고 있으며,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대탑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목탑은 일반 탑과는 다르다. 걸어서 법당 내부를 오르내릴 수 있는 국내 유일
의 목탑이다. 이 보탑사의 특이한 점은 1층에 심주(心柱)를 중심으로 약사여래(동), 아미타불(서), 석가여래(남), 비로자나불(북) 등 사방불을 모셨으며 심주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점이다. 보탑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셔서 그런지 넓은 경내가 매우 깔끔하고 정갈하며 화초같이 가꾸어 놓은 배추가 김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고 널어놓은 무말랭이도 정겨워 보였다. 구절초 등 소나무엔 앙증맞은 작은 연등이 꽃송이 같이 달려 있고 마치 붓을 닮은 듯 목련의 겨울눈이 가지 사이사이에 맺어 있었다.
봄이면 봄의 전령사 목련이 피고 그 다음 연산홍이 화사하게 꽃피는 봄날의 보탑사 풍경이 내 눈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보탑사의 산신각은 나무집으로 섬세함과 운치가 이 늦가을과 닮아 있었다. 신도들과 함께한 비구니 스님의 낭랑한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 소리가 그윽한 여운을 남긴다. 또 하나 보탑사의 약사여래불 앞에 놓인 수박은 석가탄신일에 진상 하였는데 썩지 않고 그대로 보전되어 동짓날이 되어서 먹는다고 한다. 약 수박, 그 맛이 어떨까? 먹어보고 싶고 궁금하기도 하다. 보탑사 바로 옆에 있는 연곡리 석비는 비문이 새겨지지 않은 백비(白碑)여서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비의 윗부분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으며 고려 전기의 석비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보탑사 주변의 맛집에서 오랜만에 민물 새우탕을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가을 냄새 나는 시래기에 수제비까지, 기름기 졸졸 흐르는 햇쌀밥 한 공기를 뚝딱,, 시골스런 나물들도 생거진천을 기억하기에 충분하였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후에 일행은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태실이 있는 곳, 태실은 태령산성의 정상부에 있으며 자연석을 둥글게 기단으로 쌓고 주위에 돌담을 쌓아 신령스런 구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일행과 함께 용화사의 미륵불을 본 후 천년의 숨결 농다리(진천농교)로 향했다. 농다리는 수많은 설화와 전설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긴 돌다리다. 다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며,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통로이다. 진천 농다리는 100여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자줏빛 지네같은 모습으로 바람이 불면 스스로 물결을 일으키며 강을 떠날듯한 자태로 천년의 이야기를 침묵한 채 사람들의 발길을 잇는다. 지치도록 푸르던 나뭇잎들이 하나둘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면 새벽녘 신비롭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쌓인 농다리는 가을을 기다린다. 농다리에는 아직도 다양한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세계 어느 조각품에 뒤지지 않을 천여 년 세월을 버텨온 농다리를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만추에 걸으니 그 옛날 소달구지와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가는 아낙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데크길이 잘 조성된 미르숲, 산 정상까지 올라가 농다리와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니 마음이 유순해진다. 생거진천 문화축제(10월초)때는 이 지역의 다양한 농산물들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마지막 코스 초평호에서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섬 같은 산을 바라보다. 단풍이 한창인 10월에 왔으면 더 아름다웠겠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아직은 노오란 기가 조금은 남아있는 11월의 끝자락도 좋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의 진천 나들이를 마무리 했다.
나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설화인 사자성어 “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을 생각하며 우리 선인들의 해학에 미소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