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가 불러온 추억의 편린들
부산 여행을 떠나는 날, SRT열차를 타기위해 수서역으로 갔다. 집이 대치동이라 네 정거장 거리지만 처음 타보는 SRT열차인지라 서둘러 출발했다. 말로만 듣던 SRT열차를 타고 간다니 기대로 가슴이 부풀렀다.
수서역에서 일행을 만나 열차를 타기 위하여 승강장으로 가니 유선형의 날렵한 열차가 서있다. 50년대 검은 연기를 칙칙푹푹하며 달려 오던 수인선의 작고 시커먼 증기기관차가 오버랩되어 잠시 SRT기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기차 여행할 때마다 놀라는 것이지만 오늘도 승차할 때나 승차하고 앉아있어도 예전처럼 차표 보자는 사람이 없다. 또 내려서 나가도 역시 표 보자는 사람이 없다.
그때에는 의례 줄서서 표를 구입해야 했고, 승차 전에 표에 구멍을 뚫는 체크를 하고 승차 후에도 종종 표 검사를 했었는데.....
나의 고향은 수원에서 16Km밖에 안 떨어진 시골인데도 50년대 초 6.25후 얼마 동안 수원 가는 버스가 없어 지나가는 추럭을 얻어 타거나 걸어 다니는게 일반적이었다. 좀 편하게 가기위해서 십리 길을 걸어가 협쾌열차(꼬마기차)를 타고 가기도했다.
꼬마 기차일망정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차를 보고 놀라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검은 연기를 칙칙푹푹 내뿜으며 달려오는 증기 기관차가 무서워 뒷걸음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집채만 한 검은 소가 식식대며 달려오듯 시커먼 증기 기관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적을 울리며 칙칙폭폭 들어오는 광경은 당시 나로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와 비슷한 느낌은 나중 수원역에서 서울 가는 기차를 보고 또 한 번 더 큰 경이와 두려움을 느꼈던 추억이 지금도 뚜렸하다. 수인선 간이역 야목에서 본기차가 기차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더 큰 기차가 있다니...
수원역에서 본 경부선의 기차는 산채만 했고, 우람한 화통에서 연신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기적을 울리면서 말 그대로 치치폭폭 굉음을 내며 달려오던 그때의 기차는 경이의 대상이었다. 나는 무서움에 야목에서의 처음처럼 뒤로 한참을 물러섰고 저렇게 큰 쇳덩어리가 움직인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협쾌 열차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 시골 집채 만했다면 이건 초등학교 교실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어릴 때 느꼈던 그 엄청난 놀라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중 경부선 다니는 기차를 보고서야 그 우람하다고 생각했던 시골 기차가 협쾌 열차라는 걸 알았다.
몇 백 미터 가까이에 신작로가 있어도 버스라는 말자체가 없던 시대이다 보니 수원에 가기위해서는 비록 산을 넘고 마을과 들판을 지나 4~5Km 를 걸어야 했지만 기차 타고 가는 것을 큰 자랑으로 생각했던 때였다. 당시 대부분 집에 시계도 없던 시절이라 어림잡아 나오다 보면 어떤 때는 너무 빨리 나와 역사도 없는 벌판 간이역 정거장에서 겨울에는 추위에 떨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던 일찍 나오는 바람에 기차를 탈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었다. 십리 길을 헐레벌레 달려 왔는데 눈앞에서 기차를 놓쳐 몇 십리를 걸어가야 했던 추억은 지금도 생각하기조차 싫다.
언제인가 할머니와 같이 수원에서 전파상을 하는 삼촌 집을 가기위하여 몇 가지 농산물을 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기차 타러 간이역인 야목으로 가는데 시간을 잘못 집었는지 몇백미터 앞에서 꼬마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던 낭패감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기차가 잘못 한 것도 없는데 괜히 속으로 미웠다. 할머니와 나는 철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물이 흐르는 개울 위 철길을 건널 때는 부들부들 떨며 엉금엉금 기어서 건너던 추억이 아련하다.
당시 기차는 지금과 같은 여객차량도 아닌 화물칸 몇개를 달고 다니는 기차였지만 탔다는 그자체가 좋았다. 어른들은 바닥에 보자기 같은걸 깔고 앉아 갔지만 나 같은 애들은 서서가며 획획 지나가는 밖의 경치를 보는 게 즐거웠다. 정거장 없는 간이역에서 타면 표는 역무원이 열차 안에서 표 검사를 하면서 끊어 주었다. 그래서 돈이 없이 탄 경우에는 화물열차라 옆 열차와 연결동로가 없어 최대한 구석으로 밀리며 버티다가 다음 정거장에서 다른 열차 칸으로 옮겨 다니며 숨박꼭질을 하기도 했다.
또 내려서도 표를 체크 하는 바람에 표 안사고 탈 경우를 대비해서는 항상 몰래 빠져나갈 개구멍을 몇 개씩 눈독 들여 놓았던 기억이 생생한데 요즘 기차는 타고 내려도 한번도 표 보자는 사람이 없는 게 너무 신기하였다.
속도도 보통 빨라진 게 아니어서 50-60년대 밤새 달리던 거리를 요즈음은 2시간에 주파한다. 아침 9시에 출발했는데 동탄에 잠간 정차했다가 대전 대구 거쳐서 2시간 만에 부산에 내려놓았다. 탈북자 유튜브를 보면 탈북자들이 KTX나 SRT를 타보고 빠르고 편리함에 놀라는 대화를 종종 들은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살아온 나도 오늘 처음 SRT를 타고 과거 밤새 달려갔던 부산을 2시간 만에 주파하여 도착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대화 몇 마디 한것 같은데 도착하여 내리라고 한다. 내려도 표 보자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유유히 입구 표시만 되어있는 출구를 통하여 밖으로 나왔다.
첫댓글 오래 전에 국제극장 영화를 보고
부산에 가서 1박2일로 관광지 다 둘러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