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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모수는 속으로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환화궁엔, 그들 중 아무도 없고, 오로지 공주마마를 사랑하고 돌봐드리는 이들만 있으니, 환화궁에 편안히 계시면 더욱 즐겁고 행복하실 텐데요.”
해모수의 말에 설이매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그 말을 진심으로 하는 거예요?”
해모수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요. 거기서는 전혀 불편이 없어요. 누구 하나 나에게 욕하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내 앞에서 설설 기며 나를 아주 잘 대해줘요.”
설이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거기에도 없는 게 있어요.”
“······?”
“거기엔, 거기엔, 당신이 없어요.”
처연한 목소리로 자기 심사를 적나라하게 털어놓는 설이매의 눈은 문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없는 그곳은 지옥이에요.”
설이매가 고개를 돌려 해모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해모수는 눈을 마주치기가 곤란해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을 죽도록 증오했어요. 당신을 만나면 꼭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어요. 아니,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려 했어요. 나도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싶었어요.”
방안의 분위기는 좀 무겁게 가라앉았다. 두 시녀가 설이매 뒤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있고, 해모수는 설이매의 왼편에 멀찍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설이매가 간절한 눈빛으로 해모수를 쳐다보았다.
“해모수. 나 좀 어떻게 해줘요, 네? 당신을 잊게 만들든지 아니면 나를 죽이든지, 당신이 죽든지······.”
“공주마마!”
해모수가 설이매의 말을 가로막았다.
“좀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 때 궁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아니에요. 내 몸이 쉰다고 해서 마음도 괜찮아질 것 같진 않아요. 그리고 난 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곳은 지옥인데, 어떻게 나 혼자 거기로 돌아가란 말이에요? 당신은 왜 나를 그렇게 박대해요? 나를 좀 가련하게 여겨 주면 안 되나요?”
해모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설이매를 쳐다보았다.
“궁에서 사시는 게 그렇게도 힘든가요?”
“그래요. 당신이 없어서.”
“공주마마. 그건 틀린 말입니다.”
해모수의 직설적인 부인에 설이매가 해모수의 얼굴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본다.
“지금은 제가 없어서 외롭고 슬프고 괴롭다고 생각되겠지만, 제가 마마 곁에 늘 있다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마마는 또 다시 외롭고 슬퍼질 겁니다.”
설이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딴 여자, 기진이나 연은소를 맘에 둔다면, 내 곁에 있더라도 난 늘 슬플 거예요.”
“마마,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이에요?”
“마마의 가슴 속엔, 아무도 채워줄 수 없는, 빈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공간은 저도 채워드릴 수 없습니다.”
“처음 듣는 말이군요.”
“다물 임금의 <행심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건 삼신일체三神一体 상제上帝, 창조주께서 만들어 놓으신 빈자리입니다.”
“흥미롭군요. 창조주 삼신일체 하나님은 왜 그런 빈자리를 내 마음 속에 만들어놓으셨을까요?”
“비단 공주마마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엔 그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삼신일체三神一体 하나님만이 앉으실 수 있는 보좌입니다. 폐하께서 앉으시는 대전의 옥좌에는 아무도 앉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궁전에도 천제天帝, 하늘 임금님이신 삼신일체 하나님만 좌정하실 수 있는 보좌가 있습니다.”
설이매 공주는 매우 신기한 듯, 해모수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폐하께서 어좌에 앉아계시지 않고 문무백관만 어좌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어전회의를 열 수 없겠죠? 그곳은 뭐가 텅 빈 것처럼 너무나 허전하겠죠?”
설이매가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한가지로, 우리 마음 속 궁궐의 보좌에도 하나님이 앉아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늘 허전함과 답답함과 컬컬함, 외로움, 슬픔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외적인 일에 몰두할 때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홀로 고요히 앉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걸 감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늘 외롭고 슬픈 이유가, 내 마음 궁전의 보좌에 삼신일체 하나님께서 앉아계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공주마마의 마음 속 보좌에 하나님께서 좌정하시면, 제가 없더라도 당분간은 외롭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 외로움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메워 주실 겁니다.”
“그럼 당신의 마음 속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계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해모수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내 마음 속 보좌에는 앉아계시지 않는가요? 하나님은 당신과 나를 차별하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마음 속 보좌를 점령하려 하시지 않습니다. 천제님은 매우 겸허하고 온유한 분이어서, 우리가 직접 요청하지 않으면, 절대 우리 마음 속 보좌를 침범해 오시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천제님이 어떻게 우리 마음속으로 와요?”
“삼신일체 하나님 가운데, 하늘의 하나님을 천일신天一神이라 하고 땅의 하나님을 지일신地一神이라 하며, 인간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태일신太一神이라 한다고 <행심록>에서 말하고 있어요.”
“그럼 하나님이 세 분인가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하나님의 본체本体는 한 분이나 작용은 셋이라고 <행심록>과 성현들의 글이 가르치고 있어요.”
“참 어려운 말이군요. 본체는 한 분이나 작용은 셋이라.”
설이매가 뇌까렸다.
“우리 맘속에 좌정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땅의 하나님, 지일신이래요. 하지만, 하나님의 본체는 한 분이므로, 결국 천일 하나님, 태일 하나님도 우리 맘속에 함께 좌정해 계신다고 할 수 있어요.”
“내 맘에 하나님이 좌정하게 하시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진실한 욕구로 그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천제 하나님은 하늘 임금님이에요. 그분을 모신다는 것은, 그분을 나의 임금님으로 모신다는 뜻이에요.”
“그럼 나는 항상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건 너무 힘들고 불편하잖아요?”
“제가 몇몇 사람에게 그걸 권유했더니,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고 하나님을 마음속에 임금님으로 모시지 않으려 해요. 자기 자유를 잃을까봐서.”
“그게 아니라면 뭐죠?”
“하나님은 매우 인격적이고 너그럽고 자애로우셔서, 결코 우리에게 이것저것을 강요하시지 않아요. 단지 우리를 향해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 뜻을 보여주려 하십니다. 우리가 만일 그 뜻을 따르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행복과 기쁨, 자유로움, 평화, 안식과 쉼이 주어진다고 <행심록>이 가르치고 있어요.”
“내가 그 뜻을 거부하면요?”
“거부하면 천제님은 그냥 거부당하시는 거예요. 거절당할 때 하나님은 몹시 섭섭해 하시고 슬퍼하시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우리에게 자기 뜻을 강요하거나 강제하시지 않아요.”
“내가 천제님을 맘속의 보좌에 나의 임금님으로 모시고 그 분의 뜻을 따른다면, 내게 뭐가 주어진다고 했죠? 기쁨이요?”
“네, 기쁨과 행복, 자유로움, 안식과 쉼, 평안이 주어진다고 했어요.”
갑자기 설이매가 목소리를 높였다.
“상제님은 나빠요! 왜 우리 맘속에 자기가 앉을 보좌를 만들어 놓고 우리가 하나님을 그 보좌에 모시지 않으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외롭고 착잡하고 슬프게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나라의 궁궐에는 임금님의 보좌가 반드시 있어요. 임금의 보좌가 없는 나라도 있나요?”
“아마 없겠죠.”
“그와 같이, 우리 마음도 하나의 나라와 마찬가지예요. 반드시 천제 삼신일체 하나님이 앉으실 보좌가 있어요. 그 보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의 평안과 복락, 행복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나라에 임금님의 보좌가 없고 임금님이 아니 계시면, 모든 백성은 큰 혼란에 빠지지 않겠어요?”
“하지만, 임금님이 아니 계셔도 백성들이 착하다면, 모두 행복하게 살 거예요.”
“네. 그럴 겁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죄다 착한 나라는 온 세상에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반드시 악인들, 남의 것을 훔치려 하는 자들, 남의 여자를 노리는 자들이 있어요.”
“그건 그렇군요. 하지만, 우리 마음만 착하다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아니 계셔도 행복할 텐데요?”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공주마마께 질문을 하나 여쭙겠습니다. 제가 아는 공주마마는 매우 착한 분입니다. 그런데 왜 공주마마의 마음속에는 슬픔, 근심, 외로움, 고통, 지옥이 가득 차 있을까요?”
“······?”
“제가 대답해 드리죠. 그건, 제아무리 착한 사람들 마음속에도 악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이매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그 악을 제어하고 억압해 무찌르기 위해, 우리 마음의 보좌에 선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천제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대력大力으로 내 악을 정복하고, 상제님의 성품이 내 것이 될 때, 난 하나님처럼 행복과 자유, 안식, 평화, 기쁨을 누리는 거예요.”
“······.”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자신의 보좌를 만들어 놓으신 게, 하나님의 크나큰 자비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우리로서는 천만 다행한 일이에요. 만일 하나님이 앉으실 보좌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악에 빠져,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상제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왜 우리의 마음 속에 악이 공존하나요? 그것도 상제님이 만드신 건가요? 악이 없이 선만 존재하도록 우리를 만드실 수 없었나요?”
“공주마마는 참으로 총명하시군요.”
해모수가 잠시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이 문제를 <행심록>이 약간 다루었지만 불충분해서 제가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래서요?”
“상제님은 악이 없으며 인간의 악을 만들지도 않으셨답니다. 인간이 악하게 된 것은 인간이 처음에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천제님께 반역을 저지른 후에 인간 속에 생겨난 본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천제님을 반역했다니 무슨 뜻인가요?”
“원래 인간 마음의 보좌에 천제님이 앉아계셨고 그 때는 인간이 늘 행복했을 뿐만 아니라 악과 죄를 몰랐는데, 그 보좌에서 천제님을 쫓아내고 자신이 그 보좌를 점령하자 악과 죄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어떻게 쫓아냈어요?”
“상세한 것은 저도 잘 모르지만, 천제님의 다스림 받기를 인간이 거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왕이 되려 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상제님은 우리 인간 마음의 보좌에서 순순히 쫓겨나셨나요?”
“천제님은 처음 인간에게 두 길을 제시하셨다고 합니다. 여전히 마음 속 왕좌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길과, 독자적으로 스스로가 자신의 왕좌를 점유해 왕이 되는 길 말이죠. 그리고 스스로가 자신의 왕이 되면 인간이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천제님의 자비로우심을 의심하고, 스스로가 마음속의 왕좌에서 천제님을 내쫓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요.”
“참으로 동화童話 같은 얘기군요.”
“맞아요. 이건 동화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어린아이는 믿어도, 마음이 세파에 닳은 어른은 믿을 수 없는 동화죠.”
“그럼 당신은 나를 어린애로 보아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공주님은 어른이십니다. 하지만 어른이라도 마음이 어린애처럼 순수하면 이를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경험하기로, 진실이니까요.”
“어떻게 경험했는데요?”
“내가 예전에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내가 나의 왕이 되어 내 멋대로 살 때는 늘 괴롭고 힘들고 외롭고 착잡하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내 왕좌에 천제님을 모신 후에는, 언제나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하답니다.”
“그건 어떤 자기 암시, 혹은 심리적 작용에 의한 착각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전에 제가 천제님을 모시지 않았을 때, 두려운 일이 일어나자, 자기 암시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애를 썼는데, 약간의 효과가 있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해모수가 설이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부언했다.
“공주님, 내 마음 보좌의 천제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평안, 이 놀라운 하늘의 기쁨, 이 엄청난 행복은 결코 그렇지 않은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너무나도 현실적이며, 너무나도 황홀한 실제입니다. 그 어떤 것도 이를 모방할 수가 없습니다. 술도, 마음을 마비시키고 흥분시키는 약초도, 남녀의 애정도, 그 어떤 것도 이 놀라운 기쁨과 견줄 수 없습니다.”
해모수가 안타까운 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었다.
“이것을 손에 잡혀 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 체험해 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상적 경험이나 지성의 이해와 지각과 추론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황홀함과 기쁨을 표현할 말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살 된 어린애가 어떻게 꿀의 달콤함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자주 경험하는가요?”
“그렇고말고요. 자주가 아닙니다. 항상 평안하고 거의 언제나 마음이 행복합니다. 때때로 천제님께서 내 마음을 만지시면 천궁天宮의 한없는 쾌락이 내 마음 속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어옵니다. 환경을 초월해서 그렇습니다.”
설이매가 침묵을 지키며 애써 사색하는 눈치다.
설이매의 침묵 사이로 해모수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이 거세지는지 문풍지가 몹시 울었다. 해모수가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린다.
“바람이 거세지면 안 되는데.”
해모수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설이매에게 말했다.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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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1. 21.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