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은 설렘이다.
그럼에도 선뜻 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훌쩍 떠나기에는 발목을 잡는 현실의 끈들이 워낙 단단하고 질긴 탓이다.
이런 여건 때문에 앞뒤를 재다 보면 스스로 여행을 계획하고 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혼자서는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내 일상에
울산문협의 구마모토 여행은 상당한 매력이었다.
일상에 안주하면서도 뭔가 다른 체험을 꿈꾸는 21명은
5월 1일 오후 4시 울산 문화예술회관 뒷길에 모였다.
<분주한 부산항>
항구든 역이든 떠나는 곳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부산항은 5월 첫날을 설렘으로 채웠다.
여행지와 여행목적이 뚜렷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대형 여객선 카멜리아 (Camellia)>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배가 석양을 걸친 채 쉬고 있다.
카멜리아 (Camellia)호로 동백꽃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부산시와 후쿠오카시의 시화(市花)가 모두 동백꽃이라니
두 도시를 운항하는 여객선의 이름으로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하기 위한 의미가 담긴 이름의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사실 때문일까,
나도 민간외교사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저절로 생겼다.
<새벽 3시까지 담소를 즐기다 보니 졸릴 수밖에...ㅎㅎㅎ>
배 안에서 밤을 보낸다는 것은 신선한 체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곧 황당해졌다.
선내의 숙소는 다인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녀회원들을 섞어서 방을 배정해 놓은 것이다.
일부는 여회원들끼리 배정을 받았지만, 일부는 남회원들과 같은 방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가이드에게 사정을 해서 겨우 큰 방으로 옮기게 된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한 번 배정받은 방은 바꿀 수 없는 것이 규정이란다.
다행히 큰 방이 비어 있어서 바꾸긴 했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은 안 된다며
가이드는 귀여운 생색을 냈다.
<하카타 항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
입국수속은 꽤 오래 걸렸다. 심사가 까다로워서였다.
양쪽 검지의 지문스캔과 얼굴사진을 찍는 것이 신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한 컷 찍었다.
"사진 찍지 마세요!"
카메라 플래시 램프가 껌뻑, 하는 바람에 놀란 듯 업무 중이던 직원이 소리쳤다.
이미 찍은 걸 어쩌랴만 지문 스캔하는 모습과 얼굴사진 찍는 모습을 촬영하지 못한 게 내내 아쉽다.
<우리를 태우고 다닐 전용차량>
멀건 미역국과 강낭콩조림, 깍두기, 우엉조림이 전부인
간단한 선식으로 아침을 때운 까닭일까.
밤새 잠을 설쳤을 텐데도
전용차량에 오르는 회원들의 몸놀림이 가볍다.
선식(船食)이 워낙 조촐해서 선식(仙食)이 된 듯하다.
<카와쿠다리(川下り) 체험을 위한 돈코부네>
야나카와(柳川)는 이름과 걸맞은 곳이다.
수양버들이 머리를 감는 여인을 연상케 할 만큼 긴 가지를 늘어뜨린 채 그늘을 만들고 있다.
돈코부네는 뗏목과 쪽배의 중간쯤 되는 배다.
돈코부네가 魚丹(どんこぶね)였을 수도 있겠지만
느리게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완행열차와 같은 격의 이름인 鈍行(どんこうぶね)이라는 이름도 맞을 듯하다.
<물에 비친 철쭉의 모습>
이 물길은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다.
원래는 해자(垓子)였는데 오늘날은 주요관광수입원이 된 것이다.
주변풍경은 집도 꽃도 길도 모두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무엇이든 겉으로 다 드러난 것보다 약간은 숨은 것이 아름다운 법.
물에 옅은 핏빛으로 비친 철쭉의 모습이 은근히 아름답다.
야나카와에는 요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 요괴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처녀의 엉덩이를 만지는 걸 좋아했다는
젊은 뱃사공의 설명에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꽃향기보다 더 크게 터지는 웃음의 향기에도 물의 흐름은 여전히 차분했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청둥오리들>
야나카와는 예로부터 장어(うなぎ)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루터의 작은 매점에는 말린 장어뼈를 팔고 있었다.
배를 타는 중에 누군가가 권하는 것을 나는 먹지 않았다.
사공이 말했다.
"カルシウムが いっぱいです.(칼슘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내키지 않았다.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고소하다고 했다.
오늘날의 야나카와는 온갖 동물의 서식지가 된 듯했다.
우리가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본 동물은 아주 많았다.
바위에 들러붙어서 몸을 말리는 뱀, 역시 몸을 말리고 있는 자라 가족들.
사람을 겁내지 않는 청둥오리들까지 그야말로 살아있는 물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리들은 유람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며 빵부스러기들을 먹으려고
배 옆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덕분에 화질이 별로 좋지 않은 카메라로도 제법 괜찮은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야나카와 주변의 성처럼 생긴 가옥>
주변의 집들은 대개 소인국의 성을 연상케 했다.
특별히 꾸미지 않았고, 아담한 모양새였지만
유람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런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키는 작달막하지만 어딘지 정다운 여인이 유랑객을 맞아줄 것만 같았다.
<꽃으로 꾸민 야나카와 주변의 가옥>
일본 사람들은 참으로 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나카와 주변만이 아니라 길을 가다가 보이는 집들도 거의가
꽃이 없는 집은 없었다.
그야말로 손바닥 만한 공간만 있어도 자잘한 꽃송이를 매단 식물들로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울까, 향긋한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렇게 꽃을 심어서 유람객을 기쁘게 하는 것만으로도
저들이 얼마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많은 민족인가를 짐작케 했다.
그것이 비록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일지라도...
<야나카와 유람의 마지막 지점>
50여분간의 유람이 끝났다.
물길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유람은 끝이었다.
흔들리는 배에서 내려서느라 그랬을까,
정보가 부족해서였을까.
청하지도 않은 노래로 여행객을 즐겁게 하던 젊은 사공에게
약간의 팁을 주는 것이 예의라는 사실을 몰랐다.
돌아온 뒤에 알고 나니
사공의 노래에 박자까지 맞추고 앵콜까지 청한 것이 약간은 미안하고 부끄럽고 민망하다.
첫댓글 카페가 워낙 조용한 것 같아서 지난 5월 1일~3일까지의 구마모토 여행기 퍼다 놓습니다.어설픈 사진, 글솜씨지만 도움 되시길...
카페를 활성화 시킵시다~
우와 가 보고 싶은 곳입니다. 여행기도 맛깔나게 잘 보았습니다.
분재이므로 23일에 한 꼭지씩 게시물이 없을 때 올릴게요.
눈이 즐거웠습니다.
세련샘의 글은 사진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
고마버용 필력이 모자라 감상을 다 적지 못한 것이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