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심불무별(心佛無別)
마음과 부처가 차별이 없다
심불무별(心佛無別). 마음과 부처가 차별이 없다는 말.
일체법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부처와 중생 또한 별도의 실체가 아니라 단지 마음이 지어낸 차 별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60권본 『화엄경』 권10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說偈品)」에 나오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세 가지에는 차별이 없네."라는 구절에 근거한다.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권6에
"아래 두 구절에서는 앞서 한 말들을 종합하여 (마음 · 부처 · 중생에) 차별이 없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마음이 부처를 지어내므로 마음과 부처가 차별이 없으며, 마음이 범부를 지어내므로 마음과 범부가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인식과 주관과 대상이 모두 동일한 근거에 의지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고 한다."라고 하 였다.
下二句 會以顯同 하이구 회이현동
謂心作佛 心佛無別 心作凡夫 心凡無別 能所依同故 云無別也. 위심작불 심불무별 심작범부 심범무별 능소의동고 운무별야
☞ 심불무별(心佛無別)
心 마음 심. 佛 부처 불. 無 없을 무. 別 다를 별.
출처 :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
심불무별(心佛無別)은 불교의 마음공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면 "나는 곧 부처이니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본래의 의미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심불무별(心佛無別)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심불무별(心佛無別)이란 본래의 청정한 마음과 부처의 깨달음 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부처는 따로 존재하는 특별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 마음의 본성을 완전히 깨달은 사람입니다. 중생은 그 마음을 갖추고도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에 가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본성의 차이가 아니라, 깨달음의 차이라 하겠습니다.
『화엄경』의 구절인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에는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라는 말씀은 바로 이 점을 밝힙니다.
마음은 모든 법이 일어나는 근원이며, 부처는 그 마음의 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존재이고, 중생은 같은 마 음을 가지고 있으나 번뇌에 덮여 있을 뿐입니다.
비유하면 맑은 거울이 먼지에 가려 있다고 해서 거울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지를 닦으면 본래의 밝음이 그대로 드러나듯이, 수행은 새로운 부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갖추어진 불성을 드러내는 과 정입니다.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서
"마음이 부처를 지으므로 마음과 부처가 차별이 없고, 마음이 범부를 지으므로 마음과 범부도 차별이 없 다."라고 한 것은 모든 경험과 분별이 마음에 의지하여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탐욕과 성냄을 일으키면 범부의 삶이 되고, 자비와 지혜를 완성하면 부처의 삶이 됩니다. 같은 마음이 어 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범부도 되고 부처도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자와 수행자가 받아들여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심불무별은 수행을 게을리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불성을 믿고 정진하라는 격려입니다.
자신의 본래 마음을 믿되 교만하지 말고,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려 놓아 버리며, 계 · 정 · 혜를 닦아 본래의 청정심을 드러내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자기 마음을 밝히라."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끝으로 한마디로 요약하면 심불무별(心佛無別)은 "부처는 내 마음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번뇌를 걷어내 면 드러나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부처가 되기 위해 새로운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 중생 속에 마음과 부처가 같이 있고,
마음에는 중생과 부처가 들어있고,
부처엔 마음과 중생이 모두 함께 있다네.
마음이 맑으면 부처라 이름하고,
마음이 흐리면 중생이라 이름하니
번뇌가 모두 걷히면 본래 부처 따로 없네.
이렇게 보면 셋은 서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를 서로 다른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번뇌만 걷어 내면 부처가 될 수 있으니 심불무별(心佛無別)은 중생에게는 큰 희망이라는 생각이 듭니 다. 그래서 수행은 부처를 밖에서 찾는 일이 아니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걷어 본래의 청정한 마음 을 회복하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은 가을 기운이 선다는 입추(立秋)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최고 기온은 39도라 이르고 있네요. 최고점이란 오랫동안 머무는 법이 없으니 서서히 내려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 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배움과 수행이 함께하는 맑고 향기로운 법향(法香) 가득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