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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둥이’
사람들이 북적이던 주말이 지나고 나면 휑하다. 달도 별도 없는 그믐밤이면 무언가 튀어 나올 것 같은 어둠이 낮게 깔린다. 낮은 포복으로 먹이를 노리는 조심스런 움직임이 포착된다. 스윽 지나치면 등골이 오싹하다. 가로등 불빛에 실체가 확인되고서야 ‘허, 들 고양이네’ 가슴을 쓸어내린다.
살림채에 들고서 몇 년 동안 익히 보아 온 고양들이다. 하나같이 경계심 늦추지 않고, 사람 기척만 있어도 소리 없이 모습을 감추는 녀석들이다. 사람들이 들고 나면 닭 뼈며, 생선토막, 고기 굽다 탄 것들을 한 쪽에 놓아둔다. 아랫집 개 난희를 배려한 것이긴 해도 밤에는 늘 고양이들의 몫이었다.
그날도 저녁 무렵, 두엄더미에 잔반을 처리하러 가는 길에 검정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두엄 가에 있는 뼈다귀를 먹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에 후다닥 뒤로 물러나며 몸을 사린다. 나도 모르게 ‘응, 괞찮아, 뼈다귀 더 있는데 가져다 줄게’ 하면서 감자탕 먹고 나온 뼈다귀들을 챙겨 다시 두엄더미로 갔다. 그 때까지 고양이는 그곳에 있었다. 한 두 발자국 조심스럽게 먹이로 다가간다.
몇 발자국 떨어져 자세히 들여다보니 배 쪽은 흰색이고 등 쪽은 검정색인 아기 고양이다. ‘야-옹, 야-옹’ 울음소리가 날카롭지 않고 들으면 들을수록 애기 울음소리처럼 애처롭다. 한 참을 그렇게 서 있다 돌아서는데 이놈이 따라 오는 것이 아닌가. ‘허, 이놈 봐라’하면서 현관 앞에 이르렀는데 주위를 맴돈다. ‘그래,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하면서 밥그릇을 챙겼다. 아랫집 개 난희를 위해 마련해 두었던 밥그릇이다. 난희는 주인집에 묶여 몇 달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냉동실에 있던 용가리 치킨을 프라이팬에 구어 작게 잘라서는 밥 위에 올렸다. 나도 모르게 손놀림이 바빠졌다. 그 사이 고양이는 현관 앞을 떠나지 않았다. 밥그릇에 먹이를 놓아주고는 잠시 ‘어, 이건 뭐지’ 당황했다. 아랫집 개 난희라면 꼬리를 흔들며 허겁지겁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놈 고양이는 밥그릇에 관심이 없는 척 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등을 비비는 것이 아닌가. ‘허허, 그래, 고맙다고... 알았어, 어여 먹어’ 그래도 다리 사이를 떠나지 않고 울어대 슬그머니 대문을 닫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문틈으로 들으니 ‘양-양-양’ 맛있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 날 아침. 대문을 여는데 어젯밤 그 고양이가 장작더미 근처에서 다가온다. 뛰어 오거나 꼬리를 흔들어 반가운 기색을 표하지 않은 채, ‘야-옹, 야-옹’ 소리만 입에 물고 느릿느릿 제 걸음으로 걸어온다. ‘이 놈, 들 고양이 맞아’ 반가운 마음에 무릎을 구부려 머리를 쓰다듬는데 가만히 있다. 한 참을 쳐다보는 것 같더니 옆으로 눕는다. 경계를 풀었다는 표시다. ‘허허, 이놈이 집고양이처럼 구네. 그래, 아침밥 줘야지’
밖에서 일하다 점심나절이 되어 대문 앞마당으로 들어서는데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나타났다. 친근함을 표시하며 다리 사이를 비집더니 현관 옆 쪽마루에 있는 박스에 쏙 들어 가 눕는다. ‘하하, 거기가 네 집이라고... 웃긴 놈이네’ 하면서 한편에 놓아두었던 천 조각을 깔아 주었다. 처음엔 그저 검정색 고양이라 ‘검둥아’ 라고 무심코 불렀었다. 저놈이 업둥이네. 들어와 살겠다고 하는구먼. 그래, 이제 네 이름은 ‘둥이’다. ‘둥아, 둥아’. 그렇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그 고양이는 내게 특별한 고양이가 되었다.
2. 너도 외로운 게로구나.
연못으로 통하는 주방문을 열면 쪽마루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하기 전에 앉아 담배 한 가치를 피우는 장소다. 바깥일을 하다가 커피 한 잔을 들고 연못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쉼터이기도하다. 평소처럼 커피 한 잔을 타서 담배를 피우고 앉아 있는데 ‘둥이’가 쪽마루 위로 뛰어 오른다. 내 몸에 등을 한 번 비비더니 돌아서서 앞다리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잠깐 사이 책상 다리를 하고 있는 무릎 위에 올라와서는 몸을 말아 둥지를 틀어 눕는다. ‘야옹’하면서 얼굴을 올려다본다. ‘이놈이 꼭 집고양이처럼 구네...’ 순간의 어이없음이 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건 순간이었다.
‘너도 외로운 게로구나.’ 울컥하는 심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끌벅적 사람들이 한 번 들고 나면 혼자 남은 적막에 나 자신 꽤나 외로웠던 모양이다. 한 마리 들 고양이와 내 모습이 겹쳐지니 말이다. 야옹거리더니 앞발로 가슴을 타고 오르며 눈을 맞춘다. 황색 눈이라고 느꼈는데 세로로 타원을 한 검은 눈동자가 보인다. 울음소리와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아기 행세인데 눈을 읽을 수 없으니 무섬증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놈이 무릎에서 내려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심코 등을 쓰다듬고 배를 간질였다. 순간 기지개를 펴듯 앞다리를 쭉 뻗으며 기분 좋은 자세다. 서로의 탐색이 끝났다.
그 후로 이 놈 하는 품새가 가관이다. 아침이면 현관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야옹거린다. 닭 모이를 챙기려 걸음을 떼면 물고기가 유영하듯 딛는 다리 마다 몸을 비비며 따라 붙는다. 아는 체를 하지 않고 걸으면 몇 걸음 앞서 나가 벌렁 들어 눕는다.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 아는 체 하라고...’ 등과 배를 쓰다듬고 목을 긁어주면 눈을 꼭 감고 턱을 내민다. 양쪽 눈썹이 초승달처럼 사뿐히 내려앉는다. 한 번은 모른 척 계속 걸어갔더니 앞발로 내 다리를 잡는다. 잠깐 멈춰 선 사이 발톱을 펴 바지를 타고 오른다. ‘햐, 이놈. 인정투쟁이 대단 한 걸.’ 보아 달라는 것이다. 안아 달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움칫거리며 몸을 사리고 어딘가로 피신 할 요량이다. 뒤란이나 장작더미로 몸을 피했다가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하면 슬며시 나타나 주변을 기웃거린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고 안심을 시키면 상대방에게 은근슬쩍 다가가 아는 체를 한다. 그 사람이 쓰다듬고 정을 표하면 어느새 그 사람의 무릎에도 올라앉는다. ‘이 놈, 들 고양이 맞아요...’ 저마다 새로운 경험이다. 그런데 유독 아이들만 나타나면 숨어버린다. 캠프에 참여한 저학년 아이들은 ‘둥이야...’를 목매어 외치며 한 번 쓰다듬어 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어지간해 곁을 내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급하고 기다림에 서투르다.
아랫단 터에 토끼장이 들어서고 토끼 네 마리가 입주를 했다. 가을 어린이 캠프에 맞춘 선물이었다. 캠프 기간 중 처음에는 아이들을 피해 멀찌감치 도망가 있던 둥이가 공간이 조용해지자 모습을 나타냈다. 토끼 먹이를 주는데 난데없이 둥이가 토끼장에 뛰어 들었다. 토끼장 지붕을 지나 망만 쳐져 있는 토끼장 마당에 내려앉았다. 토끼들은 이리 저리 흩어지고 난리가 났는데 한쪽 구석에 턱 하니 눕는다. 공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다. 혼자 있던 녀석이 자기만한 동물들이 들어오니 친구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가가 보아도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토끼들을 보고는 이내 밖으로 나온다. 그 후로도 몇 번 토끼장을 들락거리던 둥이는 체념을 했는지 나를 따라와서도 토끼장 문 밖에서만 야옹거린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네 친구들을 만나야지...’ 머리를 쓰다듬는다.
3. 평화로운 한 때
서쪽 산자락으로 해가 숨어버리면 낮게 어둠이 깔린다. 딱 그 시간이면 일을 끝내고 닭 모이와 토끼 먹이를 챙긴다. 한가로이 쪽마루에 앉아있는데 둥이가 무릎에 올라오려고 앞발을 턱하니 걸쳤다. 장독대에 어른거리는 물체가 있어 보니 누런 고양이다. 둥이와 비슷한 시기에 집 가까이를 기웃거리던 고양이다. 둥이는 동작을 멈추고 소리도 멈춘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둥이와 형제일지도 모르고 친구일지도 모르는 누런 고양이는 나와 나란히 앉아 있는 둥이를 먼발치에서 한참을 지켜보다 사라졌다.
아침저녁 둥이 먹이를 챙기자 ‘허, 이놈. 밥걱정은 안하겠구나.’ ‘며칠사이 이놈 살찐 거 봐.’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한다. 매일같이 보다보니 몸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몸집이 아기 티를 벗었다. 그래도 울음소리는 영락없는 아기다. 일상의 눈과 몸짓은 고요해 어떤 상태인지 읽기가 어려운데 울음소리만은 어떤 신호인지 금방 알아들을 수 있다. 밥 달라고 할 때와 먹이를 먹으며 기쁨에 찼을 때 소리가 다르고, 친근함을 표시하는 소리와 놀아달라고 떼쓰는 소리, 경계 할 때의 소리와 상대에게 겁주는 소리가 달랐다.
가을비가 내리고 초겨울처럼 갑자기 추워진 날 밤. 쪽마루 아래로 옮겨준 박스 잠자리마저 추위를 견딜까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 현관 안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박스에 헌옷을 깔아 주었더니 제가 먼저 알고 뛰어 들어가 눕는다. ‘하, 너도 춥구나. 어찌 네 집인 줄 알고 자리를 잡니...’ 집안으로 들일 수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날카로운 둥이 울음소리에 중문을 열어 보니 현관 안이 난리법석이다. 땅콩 담아둔 박스는 넘어져 흩어져 있고 여기저기 신발들이 난장이다. 얼핏 열려진 신발장 문을 재끼고 선반 맨 위 단에 몸을 웅크린 채 요란스레 울어대고 있는 것이다. ‘하, 이놈이 갇혔다는 생각을 했구나..'
‘둥아, 괜찮아. 이리와’ 하면서 안아서 내려주니 그제야 다리 사이로 몸을 비비며 울음소리가 평상시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닭장까지 따라온 둥이는 닭장 사료 옆 닭들이 알을 낳는 선반으로 풀 적 뛰어 올랐다. 순간 환희의 눈빛이 스치는가 싶더니 둥지가 몸을 말아 눕는다. ‘둥아, 거긴 닭들 알 낳는데야...’ 가자하는데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그날 밤 둥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에 랜턴을 비추어보니 그 자리에 둥이가 있다. ‘그래, 오늘은 거기서 자거라.’ 갇혔던 공포가 둥이의 가출로 이어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닭들에게 쫓겨났을 둥이는 어스름할 무렵 집으로 찾아들었다.
가을 추위가 한 번 지나가고 날이 따듯해지자 둥이 하는 모양새도 한결 생기가 돌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일 시작하기 전 커피 한 잔을 들고 쪽마루에 앉아 있으면 둥이 하는 모양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허, 저 놈 똥 누는 모양보소...’ 반송 둥치에 앞발로 땅을 파더니 거기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사람모양 뒷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일을 보고선, 다시 앞발로 흔적을 묻는다. ‘오, 깔끔한데’ 여기저기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똥을 싸 놓는 강아지들과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어쭈. 나무 오르는 솜씨가 다람쥐 뺨치는데...’ 유연한 몸동작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를 오르내리며 사냥꾼의 본성을 마음껏 드러낸다. ‘저 놈 뭘 먹어...’ 하면서 보니 사마귀를 어르며 물었다 놓았다 희롱하더니 씹어 먹는다. 하루는 쥐를 물어다 놓고 내가 나가니 앞발로 이리저리 채며 자신이 밥값은 했노라고 광고를 하고 있다. 이삼일이 지났을 무렵 무심코 털신을 신는데 안에 무언가 있다. 잡은 쥐를 내가 신는 털신에 넣어둔 것이다. 전리품을 확실히 증명하고 싶었나보다.
햇볕 좋은 날 작은 평상에 몸을 편 채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밤새 웅크렸던 몸이 풀리면 발가락 사이사이를 하나하나 핥는다. 뭉툭하던 발에서 발가락을 펴면 꼭 사람 손 같은 느낌이다. 발가락마다 발톱이 뾰족하다. 앞발가락을 핥고는 뒷다리를 어깨 쪽으로 들어 올려 쪼그려 앉은 자세로 발가락 사이를 핥는다. 그 다음엔 깃털을 정성껏 핥는다. 다리, 가슴, 등, 꼬리까지. ‘호, 그래서 늘 단정하구만...’하는데 이번엔 앞발을 뭉툭하게 말아 쥐고는 침을 묻힌다. 그리곤 그 발로 눈과 주둥이 주변을 비빈다. ‘하, 고양이 세수네...’ 둥이가 누워 있는 평상 한쪽에 엉덩이를 걸치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턱밑을 쓰다듬으면 눈을 꼭 감고 초승달 모양을 한 채 턱을 재낀다. 배를 쓰다듬으면 온 몸을 펴 기지개를 한다. 뒷발로 내 손을 잡고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는 이빨로 물고 핥고 한동안 정신이 없다. 그리곤 앞발을 내 다리에 턱 걸쳐놓고 무릎에 오르려 한다. 앞발을 쥐고 발톱을 펴보니 고리 모양의 발톱이 날카롭다. 교감하는 관계에선 발톱을 구부려 뭉툭한 발이 되지만, 사냥과 적대적 관계에선 발톱을 드러내리라. 평상시 발톱은 숨겨져 뭉툭한 발이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발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본성이란 같은 것이다. 관계 맺기에 따라 달라질 뿐.
4. 야생의 세계
며칠 새 유독 고양이 무리가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중 누런 바탕에 흰 띠를 한 덩치 큰 고양이가 유독 위협적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둥이와 똑 닮은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둥아...’하고 불렀는데 스윽 사라져가는 것이다. 둥이라면 야옹거리며 다가왔을 텐데. 한 눈에 봐도 형제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놈은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는 했다. 둥이 또래의 누런 고양이는 늘 하던 모양 조심스레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고양이라고 하기보다 강아지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작고 검은 물체가 닭장 주변과 토끼장 주변에 어른거린다. 사방이 고양이 무리다.
현관 앞에 놓여 있는 둥이 밥그릇에 남은 밥을 누런 고양이가 먹는 모습을 둥이는 그저 지켜보고 있다. 어느 날엔가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쫒아가 보니 다른 고양이가 후다닥 줄행랑을 놓는다. 둥이 먹이를 탐하는 침입자의 으르렁거림인 셈이다. 둥이는 자기 먹이를 누군가가 먹어도 소리 내 쫒지를 않는다. 멀리서 지켜 볼 뿐인데 침입자들이 오히려 난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둥이는 먹이를 먹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뒷발을 구부리고 꼬리를 휘감은 채 ‘양양...’ 맛있는 소리를 내며 먹던 일상에서 뒷발과 앞발을 살짝 구부린 채 수시로 주변을 경계하며 먹이를 취했다. 날이 추워지면서 먹이다툼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날 밤 쪽마루 아래 둥이 잠자리를 보니 없다.
다음날 아침에도 둥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하여 다른 곳으로 옮겼나 싶기도 하고 해서 아침밥을 챙기지 않은 채 일을 시작했다. 산에서 땔나무를 할 시기다. 늦가을이지만 며칠씩은 초겨울 날씨인지라 구들방에 불을 지피는 날이 많아졌다. 산 중턱에서 간벌해 놓은 나무들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데 저만치 산자락에서 집으로 가는 둥이 모습이 보인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현관문이 보이는 둔덕에서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다. 낯선 모습이다. 안전을 확인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한 지게 짊어지고 내려와 보니 둥이 모습은 없다. ‘허, 이놈이 어디로 갔나...’ 치근거리는 게 귀찮기도 하더니만 막상 보이지 않으니 허전하다. 오후 내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둥이를 이리저리 눈동자가 찾고 있다.
어둠이 지는 시간, 닭과 토끼 먹이를 챙겨주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살림집 옆 창고 쪽에서 둥이 소리가 들렸다. 내 기척을 살피다가 다가오는 모양새다. ‘어, 둥아. 왜 그래...’ 둥이가 뒷다리를 절며 다가왔다. 왼쪽 뒷발은 아예 땅을 짚지 못하고 발 세 개로만 몸을 움직였다.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몸을 구부려 쪼그리고 앉으니 무릎 사이로 파고든다. 뉘이고 저는 다리를 만져보니 다행히 물린 상처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다리를 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떤다. 마사지 하듯이 다친 다리를 비벼주었다. ‘밥 줄게...’ 하면서 집으로 가는데 절뚝절뚝 따라오는 둥이. ‘상처받고 집에 온 아이’를 보는 심정. 꼭 그랬다.
저녁먹이를 주고는 현관 안에 헌옷가지를 깐 박스를 새로 마련했다. ‘이제부턴 이 안에서 자.’ 하면서 둥이를 안아 박스에 눕혔다. 축 늘어진 몸으로 아픈 울음만 내 뱉는다. 먹이 그릇도 안으로 들이고 외부 침입자들로부터의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다만 지난번처럼 갇혔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현관문은 둥이가 들락거릴 수 있게 열어 두었다. 다음 날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따라 다니며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먹이를 먹고는 새 보금자리에 누워 앓는다. 사방을 경계하느라 몸은 긴장되어 있다. 몸을 추스르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삼일 째 되는 날부터는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다시 나무 위를 오르고 평상에 누워 해바라기를 하는 평화가 찾아들었다. 그날 밤 둥이가 자고 있는 현관 쪽이 소란스럽다. 서로가 겨루는 날선 울음소리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 아침에 문을 여니 둥이가 보이지 않는다. 또 한 번의 힘겨루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5. 개와 고양이
‘어, 난희네...’ 아랫집 개 난희가 일 년여 만에 올라왔다. 그동안 주인집에 묶여 있어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새끼를 낳고 풀린 모양이다. ‘아이고, 난희야. 그새 많이 늙었네.’ 축 쳐진 젖에 혹까지 하나 달았다. 삐쩍 마른 모습으로 ‘나 왔어요.’하듯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대략 난감이다. 늘 입에 맞는 먹이를 챙겨주었으니 난희는 기대를 안고 올라 왔을 터. 허나 개와 고양이는 견원지간인지라 난희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순간 둥이는 경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눈을 맞출 수가 없어 피하는데 난희는 순식간에 현관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어...하는 사이 둥이 밥그릇에 남은 먹이를 싹싹 핥고는 성에 차지 않아 밥그릇을 중문 쪽으로 밀어붙여 놓았다. 모른 척 일만하니 어느 사이 난희가 보이지 않는다. 저녁 무렵이라 둥이 밥을 다시 챙기는데 언 듯 보니 둥이 잠자리 박스 안에 똥을 싸놓았다. ‘허걱, 난희 심술이 대단한데...’ 한껏 영역 표시를 하고 간 셈이다. 똥을 치우고 옷을 뒤집어 깔아 놓았다.
밤에 나타난 둥이는 밖을 경계하며 먹이를 먹고는 문밖으로 나간다. 그날 밤 둥이는 현관 안 박스에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 난희의 경고가 먹힌 셈이다. 쪽마루 아래에 둔 둥지에 잠깐 들어갔나 싶더니 그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때로부터 둥이는 집 주변의 보금자리 외에 비상 아지트를 마련한 듯싶었다. 아침에 나타나 먹이를 먹고는 집 주변에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나를 따라다니며 장난을 치다가 어느새 보면 없다. 저녁을 먹고는 마실을 가는지, 몸을 피하는지, 아니면 정분이 났는지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나와 마주치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거나 안아달라고 타고 오르려 애쓴다. 주변의 심상치 않은 변화가 내 손길을 더욱 필요로 하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아래 식당이 분주한 가운데 가마솥에선 닭이 끓고 있었다. 둥이도 냄새를 맡고 기웃거리는데 난희가 나타났다. 둥이는 보이지 않고 난희만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계단을 타고 오르내리는데 개는 계단으로 다니지 못하고 빙 돌아서 다닌다는 사실을 또 처음 알았다. 고양이가 계단과 난간을 자유자재로 타고 오르는 것과 달랐다. 난희의 수고에도 나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자신의 기득권을 똥으로 영역 표시한 대가일지 모르겠다. 둘 다를 챙기지 못할 때 어느 한쪽을 선택 할 수밖에 없는 미묘한 감정에 마음이 시끄러웠다. 어둠 속에서 둥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며칠 후 닭 모이를 주러 내려와 있는데 난희가 나를 지나쳐 집으로 올라간다. ‘어, 둥이 있는데...’ 현관 옆 쪽마루에 있었을 둥이가 황급히 반송 나뭇가지에 몸을 숨기고 웅크린 채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저곳 먹이를 찾아다니던 난희는 나를 보자 꼬리를 심하게 흔들며 애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수밖에. 그 순간 둥이가 현관 옆 쪽마루에 올라서더니 난희를 보고 으르렁거린다. ‘헉, 고양이가 개하고 맞장을 떠.’ ‘둥이야...’ 하고 부르며 쪽마루에 앉았다. 둥이는 내 옆으로 와 자기가 이곳의 주인임을 확인시키며 난희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지난해까지 고양이만 보면 쫒아내던 난희는 이제 자기가 손님인 것을 아는 분위기다. 둥이 눈치를 보면서 내 주변을 돌다가는 근처에 앉아 내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눈을 마주치기가 미안해 딴 짓을 하는데도 난희는 한참을 머문다.
“개가 지닌 무조건적인 사랑과 의리에 감동받은 순간, 고양이의 자존감과 독립성에 감탄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개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의리는 주인에게만 해당된다.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도 꼬리치며 구애를 하지만 주인만큼의 충성심과 애정을 표하지는 않는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꼬리치지 않는다. 먹이를 덥석 물지도 않는다.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상대를 파악해가며 교감한다. 집 고양이가 사람과 교감하지만 성장하면 집 밖으로 나가 들 고양이가 된다. 둥이가 제 발로 찾아들어왔듯 어느 날 떠나갈 것이다. 지금은 내게 밥을 구하고 있지만 야생의 세계에 존재하는 생존 법칙을 병행하고 있다. 집안으로 들여 집고양이를 만들지 않으려는 내 생각과도 일치한다. 발톱이 드러나지 않은 뭉툭한 발로 맺는 관계가 있고,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발톱을 세워야 하는 관계도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6. 둥이와 작은 둥이의 동거
한겨울에 접어들면서 ‘이건 뭐, 개판이 아니라 고양이 판이네’ 할 정도로 밥그릇을 넘보는 고양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밥 주는 시간을 어찌도 그렇게 귀신같이 아는지, 어느 곳에 있다가 나타나는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밥그릇 주변을 맴돌다 내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곤 한다.
문제는 둥이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타난 이후 둥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경계하며 주변을 살폈다. 대문 밖에 두었던 밥그릇을 대문 안으로 옮기고 밥을 먹을 땐 문을 닫아 주지만 불안한 모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스스로 대문을 조금 밀어내고 밖을 주시하고는 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열린 틈 사이로 순식간에 머리를 디민 고양이들이 둥이를 쫒고 먹이를 가로챘다. 우당탕 소리가 나 중문을 열면 도둑고양이는 줄행랑을 놓는다. 웬만한 정도는 둥이가 물러나 중문 앞 탁자 위에 올라가 있지만 쎈 놈 일 경우는 아예 신발장 안 선반 구석에 몸을 숨겼다.
주인 노릇을 할 의사도 없고, 힘도 없어 보였다. ‘저 놈, 바보 아니야’하면서도 악착같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 하지 않는 둥이가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다. 손님들로 인해 너덧 마리의 닭백숙을 끓인 후 남은 뼈다귀들을 모아 놓고 일주일 여 나누어 주었을 때다. 먹이 걱정 없는 날들이었다. 닭 국물에 뼈에 붙어있는 살까지 풍성한 식탁이 끝나갈 무렵 남은 닭 뼈들이 둥이 밥그릇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그 때 못 보던 놈이 하나 나타났다. ‘어, 저놈은 아기네’ 험상 굳게 보이던 누런 고양이와 꼭 닮은 새끼 고양이였다. 둥이 삼분의 일가량 몸집에 ‘아옹, 아옹’하는 애기 소리를 내며 문틈으로 머리를 넣었다 뺐다 애를 쓴다. 둥이는 밥그릇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그러기를 며칠 저녁밥을 주는데 열린 문틈으로 쑥 들어와 둥이 밥그릇에 머리를 디민다. 밥을 먹고 있던 둥이는 자리를 내주며 쫒지 않는다. ‘허, 동생 챙기는 거여...’ 웃음을 참으며 그 모습이 신기해 여러 번 중문을 열어본다. 그 때마다 새끼 고양이는 놀라서 문틈으로 나갔다가는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괜찮아...’ 하는데도 나만 보면 줄행랑을 놓는다.
‘참, 둥이는 특별한 케이스야...’ 속말을 하며 쪽마루 아래 둥이 잠자리를 보는데 새끼 고양이가 둥이 잠자리에 같이 들어가 있다. 둥이는 야옹거리고 새끼고양이는 눈이 말똥말똥하다. ‘하하, 그래 너는 작은 둥이로 하자. 둥이가 겨울에 춥지 않겠구먼.’ 아침이 되어 보니 작은 둥이는 없다. 예전에 머물던 곳에 갔으려니 하면서 둥이 아침밥을 주는데 조금 먹고는 계속 밖을 주시한다. 이전의 경계하는 눈빛이 아니라 기다림의 몸짓이다. 수시로 밖을 드나들면서 먹이를 먹는데 절반을 남겼다. 한참 후에 보니 밥그릇은 비어 있고, 둥이와 작은 둥이가 나란히 현관 안 박스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울컥,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둥아, 너도 형제가 생겼구나...’ 야생의 세계에서도 인간세상 만큼이나 돌봄의 정서가 있음에랴. 내가 문을 열면 둥이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따라오고, 작은 둥이는 저만치 도망가 눈치를 본다. 쪽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려면 영락없이 둥이가 무릎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속정을 털어놓듯 초승달 눈을 하고 잠자듯 꼼짝을 않는다. 일어서려면 몸을 축 늘이고 일어나지 못하게 앞발로 내 무릎을 누른다. ‘하, 이놈 참...’ 그 순간에도 작은 둥이는 눈치만 볼 뿐 다가오지 않는다.
보기엔 복스럽고, 치우기엔 부담스러운 눈이 천지를 뒤덮은 날. 대문 안과 밖,쪽마루를 무대삼은 둥이와 작은 둥이의 각본 없는 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다. 나와 작은 둥이 사이에 ‘둥이’가 징검다리가 되어 한 남자와 두 마리 들 고양이의 동거가 새로이 시작되고 있다. 한 겨울 마음의 평화로다.
첫댓글 얼마 전에 여호와의 증인 교인이 전도하러 행인서원에 들렀답니다. 서원에 들어서자 "왠 산자락에 한옥이, 절인가?" 의아하게 생각했겠죠? 그러다가 텃밭에 뛰어 노는 토끼랑 풀어 논 닭들, 툇마루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고양이을 보았더래요. 그러곤 전도지 몇 장을 떨구어 놓고는 "천국이 따로 없네. 여기가 천국이야" 혼잣말을 하며 돌아가더랍니다. ㅎ ㅎ
그렇다면, 찔레는 이브 없는 아담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