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6.05.16.(토)
■ 장소: 다락골 성지(대전 교구. 충남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 길 78-6) ☎041-943-8122,8123
■ 참가자: 1구역 소공동체 남녀 교우 43명.
♣청양 다락골 성지 (www.daracgol.or.kr)
(33312) 충남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 길 78-6 (2시간 17분) ☎041-943-8123, 041-943-8122
- 매일 오전 11:30 미사 (월요일 제외)
- 40명 이상 예약 시 식사 가능, 대형버스 30대 주차 가능.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에 저를 온전히 맡깁니다. - 최양업 신부님 세 번째 친필 서간 中 |
▶다락골 성지는 인생의 시작(탄생, 삶), 그리고 끝(죽음)이 모두 하느님의 것임을 깨닫는 곳입니다. 줄무덤 성지는 불러줄 이름 하나 없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있는 곳입니다. |
▶새터 성지는 '길 위의 사제'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인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탄생한 유서 깊은 교우촌 자리입니다. |
● 천주교 박해 때 죽임을 당한 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묻힌 줄무덤 성지
● ‘길 위의 사제’, ‘땀의 증거자’, ‘한국의 바오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 (1821-1861) 탄생지.
- 다락골(본래 지명은 ‘다래골’) = ‘달을 안은 골짜기’, ‘최양업’ 일가 신앙을 잉태하다.
- ‘최양업’ 신부 탄생지이며 유년기를 보낸 곳이며, 그의 부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탄생지입니다.
1791년 신해박해의 모진 서슬에 조부 ‘최인주’가 피난 와 정착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이기도 합니다.
- 병인박해 때 수십 명의 무명 신자를 운구해 매장한 곳입니다.
- 2008년 성지 조성을 하였고 순례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한 봉분 속에 황급히 줄을 지어 가족끼리 시신을 묻었다고 해서 ‘줄무덤’이라 합니다.
● 병인박해(1866) 때 홍주 감옥과 공주 감영(또는 황새바위)에서 치명하신 교우들을 야음을 틈타
교우들과 가족들이 시신을 한 봉분에 여러 명 모아 매장한 무명 순교자 묘소 37기 ‘줄무덤’
(현재 40기 중 37기가 보존되어 있음)
- 줄무덤은 산기슭의 위치에 따라 1, 2, 3의 장소로 나뉘어 있습니다.
1줄무덤(경주 최씨 화숙공파의 순교지들)은 초기에 17기가 매장돼 있었으나, 파묘와 유실 등의 이유로 현재 14기가 있습니다.
2줄무덤(화숙공파가 아닌 다른 최씨들)은 1줄무덤 서남쪽의 밑으로 20m쯤 떨어진 지점에 깨끗하게 손질된 10기의 봉분이 있습니다.
3줄무덤(다른 성씨의 순교자들)은 1줄무덤에서 100m 떨어진 능선 너머에 13기가 있어 줄무덤에는 총 37기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 마을 노인들은 “‘최양업’ 집안에서 이들 유해를 순교지로부터 야음을 타 이 마을 뒷산인 이곳에 매장하였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대전 교구와 청양 성당에서 이곳 줄무덤을 조사하여 그중 14기가 순교자의 무덤인 것을 밝혀냈습니다.
1982년 이곳에 무명 순교자비를 건립하고 사적지로 조성하였습니다.
● 1839년 기해박해 때 ‘성 모방’ 신부와 ‘성 샤스탕’ 신부가 잡혀가 순교의 칼을 받기 직전 교우들과 마지막 미사를 드린 곳.
- 건축가 ‘김영섭(시몬)’이 설계한 성당은 다섯 개의 삼각형이 모여 별 모양을 이루는 파격적인 기하학 디자인으로
2000년 한국 가톨릭 미술상 건축 부문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 2008년 대전 교구 60주년 기념 성당으로 축성한 대성당은 불을 끈 상태에서도
원형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에 의해 창가로 스며드는 밝은 빛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 성당의 초대 주임신부가 성당을 설계할 때 ‘빛과 자연을 품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 제대에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손뼈 유해와,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정 야고보’ 신 부 순교 성인 다섯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 다락골 성지 대성당에는 다락골 성지 유물인 국내 유일한 '양팔 없는 십자가상‘이 모셔져 있는 데,
독일의 한 성당을 형상화한 것이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슈바르츠발트 지역의 한 성당을 재건하던 중 발견된 이 십자가는 오 스트리아 작가 ‘셉 아무뮬러(Sepp Aumuller)’가 제작한 것)
- '양팔 없는 십자가상‘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팔이 없으십니다. 우리들의 팔이 필요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팔을 통해 모든 인류가 사랑을 베풀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팔을 빌려주십시오." |
● 무명순교자상
죽음의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가운데서도 부활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순교자의 미소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 충남 청양 새터 성지(성가정 성지) (다락골 성지 1km 아래)
- 김대건 신부와 더불어 최초의 유학 신부이며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1821~1861)의 출생지.
- 새터 성지는 다락골에서 남쪽 1km아래에 있으며 박해시대 교우촌이 있던 곳입니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1839)가 태어났고 복자 이성례 마리아(1801-1840)와 결혼하여,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와
그의 다섯 형제들을 낳아 성가정을 이루고 살던 곳입니다.
● 생가터에 마련된 ‘최양업 신부 탄생기념 경당’
- 2023년 12월 새터 성지에 박물관과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경당’ 건립
이곳에 마련된 '최양업 신부 탄생기념 경당'은 최양업 신부가 경신박해를 피해 생쌀을 먹고 은신하며 미사를 드린 울산 ‘죽림굴’의 모습 을 재현한 것입니다.
길고 널찍한 바위로 제대를 삼고, 제대 위 천장에는 ‘최양업’ 신부가 밤마다 보았을 별자리를 새겼으며, 그의 삶을 담은 곧은 대나무를
길게 잘라 거푸집에 대고 건물에 대나무 문양을 넣었습니다.
- 최양업 신부가 조선으로 돌아오신 뒤에는 11년 6개월 동안 충청·전라·경상도를 누비며 127개 교우촌을 발로 걸어 다니셨습니다.
매년 7,000리(약 2,800km), 365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약 7.7km, 바쁜 사목 시즌에는 하루 80~100리(약 32~40km)를 걸으시며
밤새 고해성사를 드리고, 날이 새기 전에 또 다음 교우촌으로 떠나셨습니다.
한 달에 주무신 날이 고작 나흘 뿐, 짚신 하나에 의지해 산길과 고갯길을 넘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매년 3번 반 걸은 셈입니다.
- 평생 순교를 간절히 원하셨지만, 1861년 6월 15일, 40세의 나이로 경북 문경 길 위에서 과로와 장티푸스가 겹쳐 선종하셨습니다.
-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지만, 박해 속에서 12년 가까이 온몸으로 신앙을 증거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땀의 순교자'라 부릅니다.
최양업 신부 시복 '기적 심사' 첫 단계 통과... '기적'' 인정까지 두 단계 남았다.
(2026.04.04. 가톨릭평화신문) https://news.cpbc.co.kr/article/1171867
한국인 최양업 사랑으로 길을 걷다/한국 두 번째 사제/일상의 순교모델/시복 시성 기원(천주교 수원교구)
https://www.youtube.com/watch?v=lL1A2CSDo6w (1'12"55)
☞ 출처: 청양 다락골 성지 홈페이지&리플렛, goodnews, 가톨릭평화신문, 천주교 수원교구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