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오늘의 점심으로 초밥을 먹어도 되겠냐는 친구의 질문에 기계적으로 한 대답이다. 워낙 우유부단한 성격 탓일까, 괜찮다는 말은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이다. 괜찮다는 말은 한없이 가볍고 의존적이다.
그날은 꽃잎이 비처럼 내리던 봄이었다. 나는 시험이 끝나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왔고 아버지의 항암치료도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호재가 겹쳐 가족 모두가 둘러앉은 밥상은 봄철을 맞은 축제 분위기여야 했으나 그 누구도 호탕하게 웃을 수 없었다. 아마 당일 병원에서 들은 찝찝한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CT상에서 미세한 복막 전이가 의심된다.’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찍은 CT에 대한 영상의학과의 해석이었다. 췌장과 복막 쪽에 암으로 의심되는 미세 음영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해당 소견을 본 담당 전문의께서는 ‘정상인 것 같은데….’라며 말을 흐리셨다. 아마 3개월 전에 찍은 정상 CT와 비교했을 때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담당 전문의께서는 정상이라는 말 대신 2개월 뒤에 다시 CT를 촬영해보자는 말만 하셨다.
그 누구도 길고 긴 항암치료가 끝난 우리 아버지께 ‘괜찮다’라는 말 한마디 해줄 수 없었다. 복막 전이라는, 암의 병기를 4기로 진행 시키고 앞으로 더 험난한 치료 과정을 암시하는 무서운 한 단어 앞에서. 영상에 적힌 소견이 잘못된 것 같다고, 그동안 항암치료 수고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아버지의 담당 전문의도, 고작 4년간 의학 공부를 마친 본과 2학년이었던 나조차도. 괜찮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기에 너무나 무거웠다.
아마 그때부터 아버지와 옆을 지키던 어머니는 상상 속의 복막 전이와 싸웠을 것이다. 마라톤의 결승선을 통과했다 생각했던 아버지는 더 험난한 길이 계속된다는 절망감과 싸웠을 것이고 분홍빛으로 물든 한창의 봄 풍경은 어머니 눈에 잿빛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에게 괜찮다는 말과는 역설적으로 하루하루 밥그릇에 담기는 밥의 양이 줄어들었던 것은 아마 이런 싸움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이 말을 듣기까지 2주가 걸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존에 수술을 받았던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님께 CT 영상을 직접 들고 갔다. 그토록 무거운 말이었건만 교수님의 입 밖으로 괜찮다는 말이 나오기까지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책장을 빼곡히 채우는 원서들과 문밖에 줄을 이루는 환자들이 대변하듯, 그의 수많은 경험과 배움은 말의 무게를 가뿐히 이겨냈다. 괜찮지 않았을 때 생기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수 없이 제기되는 부정적인 가정문들을 배제할 수 있어야만 현존할 수 있는 말. 그래서 한없이 무거운 말. 그 말은 비어있던 밥그릇의 밥을 채우고 눈을 가리던 색안경을 치워 주었다. 아마 괜찮다는 말은 한없이 무겁고도 영향력 있는 말일 것이다.
예전에 동기 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주변 사람이 아플 때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이 무력해서 의대에 오게 되었다고. 나 또한 의대에 입학하면 가족이 아플 때 한마디라도 거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2주 동안 내 입에서 실없이 나온 괜찮을 거란 말들은 무게가 없어 공중을 떠돌다 흩어졌다. 배움의 길은 멀고도 멀다는 말이 떠올랐다.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누군가의 담당 전문의가 되어도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다. 교수님께서 너무나도 쉽게 하신 괜찮다는 말이 위대해 보임과 동시에 멀고 희미해 보였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오전에도 병원 실습을 돌았다. 병동의 환자분께서 수술 후 불편감이 있으셨는지 나에게 괜찮은 거냐고 여쭤보셨다. 아마 수술 후에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함부로 괜찮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약간의 미소를 띠며, 환자분께 수술 후라서 그러실 수도 있는데 불편한 점은 이따 교수님 회진 오셨을 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말씀드리며 병실 문을 나섰다.
“괜찮습니다.”
오늘도 동기들에게 수없이 뱉은 말이지만 병원에 들어서면 뱉을 수 없는 말. 환자분께, 그리고 내 부모님께, 괜찮다는 말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내 한마디가 변화시킬 모습을 떠올린다. 슬그머니 지어진 미소에서 왠지 모르는 쓴맛이 난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발걸음 소리처럼 들린다. 저벅저벅. 멀게만 보이는 길 끝에 있을 목적지를 향한 좁은 보폭의 걸음은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