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갈대는 초겨울 때가 더욱 우아하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논바닥을 뒤로하고 논둑에 우뚝 걸쳐있는 갈대는 무리지어 있을 때도 멋있고 혼자 있을 때에도 보기 좋다. 특히, 무리 지어 있을 때는 근엄하기까지 하다. 갈대가 석양을 받을 때는 잘 다듬어진 창을 내세운 것처럼 용맹스럽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 때면 흔들거리는 갈대 무리는 대항하는 민초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의미 있는 몸짓을 하기도 한다.
갈대의 생김을 보면 머리 쪽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그 만큼 몸체가 가늘고도 길다. 흔들려서 각도가 커질 때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도 같은데 잘도 일어난다. 심한바람이 불 때에도 그렇다. 강하고 단단한 나무는 부러지지 않을 듯하면서 부러지기도 하는데 갈대는 영 부러지지 않는다. 아니, 넘어지지 않는다. 외형상으로 보면 얼추 조금의 바람이 불어도 그만 망가질 것 같은 그 형상인데 그는 견딘다. 그래서 갈대가 매력 있는 가 보다. 잘 생기지도 않고 강인해 보이지도 않는 것이 멋있고 탄력 있으며 잘 견딘다. 화려한 꽃도 아닌 것이, 든든한 나무도 아닌 것이 꽃보다 화려한 멋이 있고 나무보다 든든한 성품이 있다. 바닷가에 있던, 논둑에 있던, 산 속에 있던 어디든지 어울리는 갈대는 그래서 더욱 매력이 있는가 보다.
사람들은 때때로 소나무 같은 사람, 장미 같은 사람을 예찬하기도 하지만 나는 갈대의 멋을 알고부터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지극한 멋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외면의 아름다움이 없기에 겸손할 수 있고 내면의 견딤이 있기에 믿을 수 있는 그런 갈대와 같은 사람이 좋다. 어디든지 어우러지고 어떤 자리에서도 자기의 멋을 지킬 줄 아는 사람. 불균형인 듯 하면서 어떤 상황이든 규모 있고 균형 잡힌, 자기를 잃지 않는 사람은 분명 갈대의 여유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른 아침의 갈대는 부지런한 모습으로 보인다. 보초병이 경계를 서는 것처럼 꼿꼿하게 서서 주변을 지키고 보살피는 이른 아침의 갈대는 근면한 아비의 모습과도 같다. 한 낮의 갈대는 끈기와 참을성이 좋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렇게 따가운 태양 빛이 내리쪼여도 갈대는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견디는 철인 경기의 승리자처럼, 오만하게 버티는 절개 있는 여인처럼 순연하게도 보인다. 해질 때쯤의 갈대는 죽음을 앞둔 열사의 모습과 같다. 그 때의 갈대가 보여 주는 근엄함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항상 그래온 것처럼 떳떳한 사람의 눈빛과도 같다. 석양에 비친 갈대의 몸짓은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나 사자의 눈빛과도 같다. 이처럼 갈대는 하루 종일 살아 있고 멋있으며 매력적이다.
나는 이런 갈대를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갈대와 같은 사람……. 나는 또한 갈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갈대가 무리 지어 있는 것처럼 갈대와 같은 사람이 무리 지어 모여 있다면 참으로 살기에도 좋을 것이다. 겸손하면서도 믿음이 있는, 그런 전통을 지키고 사는 동네. 생각만 해도 장수할 것 같은 동네이다.
◆ 이종오 프로필
서울 마포 출생 / 한국신춘문예 시부문 등단 / 한국신춘문예 수필부문 신인작품상 수상 / 아름다운 시낭송회 회원 / 서정수필회 회원 / 순수창작문학회 회원 /1983년부터 용담중, 정읍고, 백운증, 정읍농공고, 삼례공고, 장계공고 중등학교 교사 역임 / (현)전주공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