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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26.01.02.(금)
아침 일찍 고산3동 행정센터에 들러 경로우대 교통카드를 발급받았다. 올해 대구는 만 72세 부터 가능하다. 시내버스를 타도 ‘사랑합니다’ 소리와 함께 복지혜택을 받는다. 가슴이 철렁한다. 어쩌다 벌써 이 나이가 되었는가? 기쁨보다 서글픔이 들었다가 지나간다. 세월이 날개를 달고 지나간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새롭게 시작하라는 시기다. 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잘하고 있는 일을 더 깊이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나는 시작보다 지속을 좋아한다. 탁월함보다 지속성에 방점을 찍고 살아간다. 큰 재능은 없다.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뿐인 장점인 성실함이 내 무기이다. 습관으로 단련된 끈기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모든 일에는 관점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경산 처형 부부와 시지 ‘낙동생오리’에서 모임을 가졌다. 언제 와도 실망하지 않는 집이다. 깔끔한 오이절임과 물김치, 부추겉절이, 궁합으로 구운 생오리가 입맛을 살려낸다. 주인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블로그의 후기도 많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상냥하게 대하면 상대도 좋은 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처형이 카페는 못 가본 곳으로 가자고 한다. 한참 생각하다가 가까운 대구미술관 맞은편에 있는 ‘덕천 418’카페가 떠올랐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건너편 길에 차가 줄지어 주차한 것을 보고 검색은 해 본 곳이다. 수성구 삼덕동으로 중구 삼덕동과 동네 이름이 같다. 추운 날씨라 조용하다. 입구에서 바라본 규모에 입을 딱 벌리게 한다. 노란색으로 치장한 대문이 인상적이다. 제주도 전통집 대문처럼 중간에 세 개의 봉이 걸려있다. 실제 입구는 옆에 작게 따로 있다. 대지 전체가 천 평이 훌쩍 넘어 보인다. 멋지게 키운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푸른 하늘을 이고 손님을 맞이한다.
입구에서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면 아담한 3층 건물이 보인다. 정원의 풍경에 비해 카페 건물은 가정집처럼 밋밋하고 멋이 없다. 2층에서 주문을 하고, 주로 1층과 3층을 이용하지만, 실내는 좁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한여름과 한겨울이 아니면, 넓은 정원 곳곳에 자리한 야외 탁자와 벤치에서 차 한 잔의 운치가 그려진다. 3층 야외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도 도심 속의 시골 분위기이다. 북으로는 멀리 팔공산 능선이 굽이치고, 남쪽으로는 미술관 너머 대덕산과 범물동 뒷산인 용지봉으로 연결된다. 참 자리를 잘 잡았다. 카페라테 한 잔을 음미하고 있노라니, 건너편 눈에 익은 사람이 앉는다. 옛 직장동료인 행정실 K 실장이다. 점심을 먹고 친지들과 바람 쐬러 왔다고 한다. 반갑다. 얼굴이 예전 그대로다. 전혀 시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편한 마음으로 지낸다고 하니 세월도 비껴가는가보다. 안부를 묻고 건강 덕담을 주고받았다. K 실장은 내 초등학교 3년 선배다.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 때 만나 동창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 아들 절친 J 의 모친이 어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들은 늦은 밤까지 장례식장에 있다가 자정 무렵 잠깐 집에 왔다. 이제 겨우 60대 초반의 나이다. 큰 병도 없었는데 며칠 전부터 체한 현상이 있어 방치했다가 심근경색이 왔다고 한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공기업에 다니는 두 아들은 출가시키고, 이제 편한 여생을 보낼 시기인데. 안타깝고 슬프고 황당하다. J 는 고등학교 시절 아들과 가창에 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잘 아는 사이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하늘에 달렸다는 종교적인 답만 가능하다. 아들은 내일 운구도 도와주고 장지까지 갈 예정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와 시간의 차이만 있는 인생! 혼자 남은 J 의 아버지 생각을 하니 아득하고 막막할 뿐 눈물만 나온다.
다른 큰 사건(?)이 생겼다. 간밤에 달팽이들이 알을 50여 개 낳았다. ‘라라’와 ‘민트’ ‘코코’ 누가 낳았을까? 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자웅동체(암수 한몸)라 두 마리만 있어도 많은 양의 알을 낳는다. 사육 통 한쪽 모퉁이에 작은 팥알 크기의 살색 알이 소복이 쌓였다. 좋은 소식일까? 내일 사육 통을 큰 것으로 바꿔 어미들은 큰집으로 옮기고, 알만 작은 집에 두려고 한다. 보름쯤 지나면 새끼들이 태어난다. 대략 70-80% 정도 부화된다고 알고 있다. 상상만 해도 감당이 안 된다. 비위가 약한 나는 그저 징그럽고 한편 신비하다. 집사람에게 어떻게 처리할지 물으니, 새끼는 남에게 분양하겠단다. 나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새해 둘째 날도 훌쩍 잘 지나간다. 눈 뜨니 아침이 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날이 저문다. 올해는 맑은 소식만 많이 들리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별일 없이 소소한 하루를 감사히 보냈다.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7. 2026.01.09.(금)
아침부터 많이 망설였다. 집사람은 약속이 있어 나가고, 혼자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했다. K ***으로 낙점했다. 혼자 밥 먹기도 좋지만,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 탐구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여기는 먹고 나서 속이 편한 것이 장점이다. 가성비가 높은 실비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내를 거치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여기서 먹는 것이 옳을까? 자존심, 체면 등 잡생각이 꼬리를 문다. 정답은 없다. 내 삶의 주체는 나 아닌가? 마음 가는 대로의 삶이 좋다. 배식받으니 남자 쪽은 자리가 없어 여자들 틈에 자리가 났다. 맞은편과 옆에 70대 후반쯤 친구로 보이는 여자들은 작은 소리로 계속 소곤거린다. “오늘 탁구장에 누가 왔다.”든가, “잘 오던 그 친구는 보이지 않네.” 등 식사 중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 앞쪽에서 “콰다당” 소리가 났다. 아니, 이럴 수가! 몸피가 있는 한 여자가 어쩌다가 식판을 바닥에 엎었다. 바닥에 음식이 낭자하다. “저 여자 밥 많이 달라는 여자네.” “삼 년 동안 왔지만, 식판 엎은 것은 처음 보네.” 여기저기서 수군댄다. 그때 내 옆의 아저씨가 “오늘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군.” 한다. 그러자 앞에서 “뭐, 천당과 지옥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는데.”라고 여자가 되받는다. 혼잣말로 내면을 드러내 주고받는 말이지만, 알 수 없는 씁쓸함에 입안에 든 김치를 오래오래 씹게 한다. 직원이 황급히 물걸레로 뒤처리하니, 조용하던 식당 안에 밀려온 거센 물결이 이내 잠잠해진다.
식사 후 근처 고산도서관으로 갔다. 이사 오기 전에는 파동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파동은 대구 신천 강변에 있어 산책하다가 갈 수 있어 좋았다. 여긴 파동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장서량도 많다. 처음 이사 와서는 자주 와야지 마음먹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좋아지길 소망한다.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과 최근 발간된 ‘히든 포텐셜’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읽기가 잘 안된다. 욕심 많게 두꺼운 책 두 권을 뽑아 왔기에 대충대충 수박 겉핥기로 훑어봤다. ‘싱크 어게인’은 앞부분 내용을 몇 번 보았지만, 뒷부분은 걸음마이다. 노안이라는 핑계로 책을 멀리 한 게 원인이다. 글을 쓴다고 긁적거리면서 정작 중요한 독서는 게을리하는 사이비가 내 본모습이다. 많이 고민을 하지만, 깊은 사유가 들어간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가벼운 신변잡기가 내 한계이다. 무리를 하면 좋지 않다. ‘싱크 어게인’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핵심 내용을 도표나 삽화로 정리해 놓아 이해를 돕는 것이 마음에 든다.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 눈이 아프다.
귀가하면서 좋아하는 소설가 백영옥의 에세이 ‘힘과 쉼’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대출받았다. 요즘 집에서 중국 무협 드라마 ‘소오강호’에 빠져 있기에 책을 잘 읽을지 의문이다. 무협 드라마는 언제 봐도 싫증 나지 않는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라 더 정감이 간다. 주인공이 어려운 환경의 출생, 갖은 고난 속에서 성장, 죽을 고비에서 귀인을 만나 무공과 실력이 일취월장, 절대로 죽지 않고,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긴다는 것이 전형적인 특징이다. 우리 고전소설과 비슷한 점이 많기에 편하고 부담이 없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고, 많은 갈등의 사건 구성을 통해 재미있게 즐기면 된다. 007 영화나 고전 서부영화도 같은 맥락이라 즐겨 본다. ‘소오강호’도 여러 버전이 있지만, 요즘은 2018년도 37화로 된 작품에 빠져 있다. ‘소오강호’란 중국 음악 연주곡인데 제목으로 삼아 멋있다. 덕분에 ‘소오강호’ost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연주를 듣는 맛도 좋다. 책도 좋지만, 재미있고 즐기는 삶과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오후에 간송미술관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모처럼 파동 용두골 숲에 가려다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간송미술관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광복 기념행사인 ‘삼청도도’ 전시는 지난 12월에 마무리했고 상설 전시중이다. 가을부터 다섯 번째 방문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돌아보았다. 전에 없던 새 회화가 보인다. 풍속인물화로 유명한 혜원 신윤복의 그린 두 점의 산수화이다. ‘계명곡암’(시냇물이 소리쳐 흐르고 골짜기가 어둡다.)이란 산수화는 깊은 산에서 시냇물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이다. 위 상단에 ‘시냇물 소리쳐 흐르니 바람은 물 위를 스치고, 계곡이 어두워지자 비는 산으로 이어진다.’라는 제사를 음미하며 자세히 살핀다. ‘송정관폭’(소나무 옆의 정자에서 폭포를 바라본다.)은 정자에 앉아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를 그렸다. 자연에 푹 빠진 선비의 즐거움에 고요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란 해설이 곁들인다. 이 두 작품은 혜원 신윤복의 자세하게 묘사한 풍속인물화가 아니라서 또다른 매력을 준다. 좁은 소견이지만, 겸재 정선이나 현재 심사정 또는 오원 장승업의 산수화는 구도나 크기가 굉장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듯하지만, 이 작품은 크기도 작고 단순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그게 또 색다른 끌림이 아닐까. 다시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한 점씩 다시 보면서 해설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좋다.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자세히 오래 여러 번 조금씩 살펴보는 것이 기쁨을 배로 주는 방법이다. 힘찬 한석봉의 글과 세심하게 쓴 안평대군의 서예 작품도 멋이 있다. 중앙의 도자기는 국보로 고려를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조선을 상징하는 ‘백자청화철재동채초충난국문병’이 마주 보고 있다. 음식이나 차, 술 등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하나 실제는 알 수가 없다. 이는 고려 귀족과 조선의 왕족이나 선비들의 감상용이 아니었을까 나름 짐작한다.
5전시실에서 영상으로 재해석한 ‘감응’과 ‘흐름’을 반쯤 누울 수 있는 의자에 기대어 편안하게 감상한다. 하지훈 디자이너가 제작한 ‘자리’이다.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는데 마음에 든다. ‘감응(感應)’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사군자 작품을 디지털 영상으로 해석했다. 180도 반원형의 커다란 화면에 펼쳐지는 영상의 파노라마는 선비의 마음이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듯 표현하고 있다. 사군자에 담긴 오묘한 느낌과 뜻을 사계절의 흐름 속에 해석한 다양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준다. 사군자에 숨어있는 선비의 사유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10여 분이 지나, 이어서 ‘흐름’이 상영된다. 흘러가는 하루,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인간의 삶과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한 선비가 쪽배를 타고 폭풍의 바다를 가는 영상이 인상 깊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무 설명도 없이 영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대로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신윤복의 ‘미인도’, 이인문의 ‘총석정’ 등 아름답다. 20여 분이 꿈결같다. 깔끔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본 듯 훈훈하고 황홀하다. 다시 석양의 시간이다. 올해 화두는 ‘느리게’ ‘천천히’로 삼았건만 쉽게 되지 않는다. 수양 부족이다. 언제쯤 느긋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열심히 보낸 하루에 감사하자. 탈 없이 보낸 이 멋진 기적의 날이 고마울 뿐이다. 내일 아침 밝은 해를 기다리며 하루를 접는다. 고맙습니다.
8.2026.01.16.(금)
어제저녁에 갑자기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뵙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암사 쪽은 산행 시간이 길다. 아픈 다리를 생각하면 짧은 거리가 좋다. 나는 오르막은 잘 올라간다. 뒤쪽 와촌면 선본사 주차장을 검색하니 승용차로 50 여분 걸린다. 혼자 가면 대중교통도 괜찮다. 버스를 검색하니 ‘수성 6번’을 타고 반야월역, 지하철로 하양역에 내려 ‘803번’을 타면 1시간 20분 거리이다. 버스 환승 시간을 고려하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물과 간단한 간식도 준비했다. 모처럼 혼자 산행에 들뜬 마음이었다. 새벽에 문제가 생겼다. 집사람이 계속 코피를 쏟는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 지혈이 잘 안되어 애먹다가 다행 아침에 그쳤다. 병원 가보자고 하나 알아서 한다고 한다. 모세혈관이 파열되었던 모양이다. 아픈 사람을 두고 혼자 갓바위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쉬웠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집사람을 위해 점심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파동 오거리에 있는 ‘샤브향’으로 낙점했다. 이 집은 다른 ‘샤브샤브집’ 보다 깔끔하고 번잡하지 않아서 즐겨 찾던 곳이다. 오랜 시간 영업을 계속해 온 이유는 손님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11시 30분.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휙 돌아보니 준비된 신선한 채소가 마음에 든다. 전에는 육수를 매운맛, 맑은 맛 반반했지만, 오늘은 탁한 것을 싫어하는 집사람을 위해 맑은 육수만 신청했다. 기본과 풍성한 채소 샤브샤브 요리를 푸짐하게 먹었다. 점심 후, 처음에는 간송미술관에 가서 ‘흐름’과 ‘감응’ 영상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모처럼 전에 살던 고향 동네에 왔기에 나는 용두골이 가고 싶었고, 집사람은 대자연아파트 옛 지인들을 만나기로 했다.
용두골 입구 대구 신천에는 허옇게 얼음이 얼었다. 오래전에 네 식구가 여기서 스케이트 타던 추억이 생각난다. 30여 년 전 집사람은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서 열린 ‘생활체육 전국빙상대회’에서 ‘대구애빙회’회원으로 홀로 3관왕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오늘은 스케이트는 탈 정도의 투명한 얼음은 아니다. 물막이 보를 건너가니 아래쪽에 오리 대여섯 마리와 왜가리 두 마리가 한가롭다. 사람이 옆을 지나가니 왜가리는 날개를 활짝 펴 훌쩍 날아오르지만, 오리들은 상대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반응이 없는 고놈들이 귀엽다. 산길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뭄 탓인지 바싹 마른 낙엽들만이 흙먼지 속에 나뒹군다. 20 여분 올라가니 배드민턴장이 나온다. 잠긴 문을 열고 살짝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친하게 지냈던 Y 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무너졌다. 이사 가기 전에는 거의 매일 산에 오면 이 근처에서 운동도 하고 하모니카 연주도 한 곳이다. Y 님과 많은 이야기도 나눈 곳이다. 공을 치지는 않았지만 다른 회원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특히 Y 님과는 생각의 결이 비슷했기에 얘기가 잘 통했다. 만나지 못해 섭섭했다. 다시 밤나무 숲 쪽으로 올라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원래 산행 목적이 아니었기에 중간쯤 가다가 돌아섰다. 하산길은 왼쪽 숲속 오솔길로 할지 망설이다가, 새봄이 오면 진달래가 활짝 폈을 때 그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올라온 길로 내려왔다. 저 멀리 아치형 다리 입구에서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썼지만, 눈에 익은 사람이다. 아니, Y 님이 아닌가? 무척 반가웠다. 세상에! 이렇게 만나다니. 다시 같이 배드민턴장으로 올라갔다.
지난해 봄에 뵙고, 처음이다. 구장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기에 이유를 물었다. Y 님이 한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지난가을에 자칫 저승에 갈 뻔한 사건이다. 뱀에게 물려 죽을 뻔했다고 한다. Y 님의 손자는 우리 집 첫째 손자 **와 같은 또래이다. 천천히 사연을 털어놓는다. 지난가을 어느 날 일이다. Y 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뱀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하루는 Y 님이 배드민턴을 치다가, 게임 쉬는 시간에 왼쪽 밤나무 숲에 들어갔다. 그때 발밑에서 80cm 정도 되는 뱀이 한 마리 스르르 지나가는 게 아닌가. 보통 때 같으면 그냥 피했지만, 그날은 갑자기 손자 말이 생각나 뱀을 잡고 싶었다고 한다. 한참 서로 노려보다가 한쪽 발로 뱀의 중간 부분을 꽉 밟고 있으니 계속 꿈틀거리다 축 늘어졌다. 지친 뱀의 머리 아랫부분을 오른손으로 꽉 잡았다. 머리 바로 밑을 잡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약간 뒤쪽을 잡았다고 한다. 뱀이 갑자기 머리를 돌려 순식간에 오른쪽 둘째 손가락을 물었다. 금세 피가 뭉클뭉클 솟구쳤다. 깜짝 놀라 뱀을 떨쳐내고 계곡에 내려와 흘러내리는 피를 씻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보더니 여기서는 어렵다고 급히 119를 불렀다. 몇 군데 대학병원에도 받아주지 않아서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생긴 지 얼마 안 된 중형 병원 평리동의 ‘더 필병원’에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저녁 무렵 물린 손가락이 새까맣게 탔고 오른팔 전체를 압박붕대로 꽉 묶었지만, 퉁퉁 부어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뱀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뱀인지 확인하니 최고의 독을 가진 살모사가 아닌가. 본인은 까치 독사인 줄 알았다. 백방으로 해독약을 구해보지만, 빨리 구하지 못하면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 절망 속에서 빛이 들었다. 어렵게 해독약이 구해져 주사를 맞으니, 다음날 부은 곳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의사는 독이 목 근처까지 가서 멈췄기에 천운으로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완치해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듣고 있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어떻게 뱀을 손으로 잡으려는 마음을 가졌을까? 정신이 보통 상태가 아니라고 치매 검사도 했단다. 다행 치매는 아니었다. Y 님은 나보다 세 살 연장자이다. 중년 시절 한 때는 관광버스를 열두 대나 운영한 사업가였다. 지금은 다 접고 손자 돌보고 공치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날 이후 새 생명을 얻었다고 한다.
저녁에 손자들이 오는 날이다. 지난 화요일은 갑자기 첫째 **가 유치원에서 독감이 걸렸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치료한다고 오지 않았다. 한번 오지 않았는데 그새 보고 싶었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둘째 **이와 작은방에서 그림그리기 놀이를 한다. 로켓을 그려달라고 한다. 안 보고 내가 그릴 수가 있나? 이럴 때 AI를 사용해야지. 제미나이로 검색하고 그림을 갤러리에 저장했다가 보면서 손을 잡고 함께 그렸다. 다시 살살 구슬려 쉬운 과일 그림책을 펼쳤다. 감, 포도, 사과, 복숭아를 책 보고 그리니 좋아한다. 얼마 후 태권도학원을 다녀온 첫째 **가 들어왔다. 오자마자 할아버지와 알까기를 하고 싶단다. 구석에 있던 바둑판을 오랜만에 폈다. 그가 즐겨 읽는 만화 삼국지의 전투 장면처럼 양쪽에 흑과 백 10개로 서로 진을 쳤다. 손자는 아직 손가락 놀림이 둔해 알이 똑바로 퉁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보다 낫다. 판의 형세에 따라 일어서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알을 튕긴다. 낙방해도 웃어가며 소리치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세 판을 해서 1승 2패로 내가 이겼다. 싫증이 나는지 이번에는 오목을 두자고 한다. 줄기찬 공격과 33 전법으로 5판을 했다. 손자가 3판 이기게 하니 좋아한다. 이제 TV 보는 시간이다. 정확히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아쉽다고 계속 보려고 떼를 쓰건만 나는 OFF를 누른다. 집에 갈 시간이다. 둘째 이준이는 가기 싫다고 바로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고, 요놈 참.’ 달래려고 옆에서 내가 노래를 만들어 놀렸다. “**이 동생은 삼준이”라고 하니 “동생 삼준이 없어” 대꾸한다. 나는 계속 “삼준이 동생은 사준이, 사준이 동생은 오준이…….” “구준이 동생은 누구일까?” “열준이, 십준이” 어느새 정신없이 까르르 웃으며 돌아선다. 문밖에서 차렷 자세로 인사받고 엘리베이터에 태운다. 깨알같이 소소하고 어영부영한 하루가 저문다. 이게 평범한 소시민의 자잘한 하루이다. 뭘 했는지 몰라도 시간은 잘 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별것 같은 하루이다. Y 님 사건이 충격이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 와 다행이다. 늦은 오후 청춘 탁구장에서도 즐겁게 보냈다. 승률은 보통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이 나이에 함께 경기한다는 자체가 기적이고 자랑스럽다. 잘 보낸 하루가 고맙다. 감사합니다.
9.2026.01.19.(화)
어느덧 김용의 원작 ‘소오강호’드라마 35부를 봤다. 조금씩 보다가 벌써 여기까지다. 이제 뜸 들이고 봐야겠다. 갈등이 최고에 도달한 절정의 막바지다. 37부가 종결이니 마지막 사건의 전개가 예상은 되지만 궁금하다. 고교 시절 무협 소설에 빠졌을 때다. 와룡생의 ‘비룡’ 전집 5권을 머리맡에 두고 무림에 빠졌다. 마지막 5권을 읽을 때는 무척 아쉬웠다. 이제 더 읽을거리가 없다는 허전함에 아껴 읽은 기억이 아스라하다. 정파와 사파의 싸움에서 정파가 이길 것은 뻔하지만 재미있다. 주인공 화산파 제자 ‘영호충’과 마교 교주 딸인 ‘임영영’이 어떻게 맺어질지, 사파의 최고수 ‘동방불패’와 오독교 교주 ‘남봉황’이 사랑이라는 가면 속에 속고 속이는 반전의 재미에 정신이 얼떨떨하다. 인간 세상의 추악함과 사랑, 음모와 배신, 끝없는 권력욕을 그와 대비되는 진정한 자유를 그린 작가가 존경스럽다. 정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화산파의 교주 ‘악불군’은 별명이 ‘군자검’이지만 가장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의 권력욕이 절정에 비로소 드러난다. 겉으로 정의를 앞세우는 정파가 더 추악하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얽매이지 않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묻고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요즘 연일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그들도 이런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문득 달력을 보니 정월도 어느새 19일이다. 19라는 숫자에서 아득한 과거가 살아난다. 타짜가 아닌데 19라는 숫자에서 화투장이 떠오르는 내가 비정상일까? 중학교 시절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배꼽마당 안쪽 끝에 사는 J 군의 집에 자주 모였다. 4명의 동갑 친구는 골목에서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에 흥미를 잃으면 J 집 골방으로 갔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전방의 군인 장교였기에 부모님은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우리는 숙제한다는 핑계로 모였으나, 숨어서 화투 놀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은 달부터 외웠다. 솔은 1월, 매조는 2월, 벚꽃은 3월……. 몇 달이 지나니 우리는 어른들이 하는 화투 놀이의 기초를 다 습득했다. 두장문 ‘섰다’부터 ‘도리짓고땡’, 놀음의 꽃(?)인 속칭 ‘구삥’까지, 영악하게 배웠고 딱지로 즐겼다. 숫자놀이와 게임 등 호기심이 유난히 강했던 나는,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확 빨려 들어갔다. 알리, 독사, 구삥, 장삥, 장사, 사륙(12,14,19,01,04,46)등 족보도 외우고 놀음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카드 놀이에 푹 빠졌었다. ‘포커’ 게임도 ‘하이 로(high Low)’와 ‘와일드’게임 등 변수가 많은 것을 좋아했다. 당시 속칭 총재인 K 음악 선생님에게 많은 방법을 배우고 함께 즐겼다. ‘훌라’ ‘런던 브리지’ ‘십자’ 등 카드 게임 하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카드의 매력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내 패보다 상대의 패를 잘 읽고 가능성에 따라 배팅한다. ‘포커페이스’의 마음을 읽어보는 첩보전과 비슷하다. 완전히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게임이라 더 좋아한다. ‘구삥’에서 1과 9를 손에 잡으면 소위 ‘구삥’이라는 최고의 끗발이다. 넉 장의 화투장을 깔아놓고, 판돈을 걸고 패를 돌리면서 선을 잡은 내가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끗발이 바로 1과 9를 받는 것이다. 지금 그때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골목과 골방의 추억이 아련하고 짠하다. 어쩌면 내 삶에서 호기심과 경쟁력 그리고 몰입의 재미와 즐거움의 출발점도 화투 놀이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도 해본다. 순전히 놀이의 경지에서 탈선하지 않고 즐긴 내가 자랑스럽다.
저녁에 집사람이 달팽이 ‘라라’ ‘민트’ ‘코코’를 깔끔하게 목욕시켰다. 제 집에 넣기 전에 사각 쟁반에 올려놓았다. 반들반들한 패각이 보석보다 예쁘다. 금와인 ‘민트’와 ‘코코’는 밝은 황금색에 흰 몸이라 보는 사람이 눈부시다. 반면 백와인 ‘라라’의 패각은 호랑이 같은 지그재그 무늬가 선명해 또 다른 맛이다. 거실 바닥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사육 통을 밀고 가출한 일이 있기에 어느 정도 속도로 가는가를 보고 싶었다. 세 마리가 20여 분 동안은 쟁반에 붙어 꼼짝을 않는다. 그때이다. ‘민트’와 ‘코코’가 쟁반 가장자리에서 조금 움찔한다. 10여 분 지나니 두 놈이 바닥에 내려왔다. ‘어, 요놈들 봐라.’ ‘민트’는 화장실이 있는 서쪽으로, ‘코코’는 베란다 방향인 동쪽으로 앉았다. 나는 TV는 건성으로 보면서 요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거실 바닥은 흰색 큰 바둑판무늬라 움직임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하는 기분으로 기다린다.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이동한다. 10여 분에 10cm 속도로 배를 밀고 전진한다. 한 시간쯤 지나니 바닥 무늬 한 칸을 지났다. 정중동(靜中動)이다. 석양에 산 넘어 가는 해보다 훨씬 느리다. 달팽이 걸음을 보면서 ‘느리게’와 ‘천천히’를 생각한다. 내 삶도 이제 저렇게 가야 하는 게 아닌가. ‘느리게’를 외치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나를 돌아본다. 삶의 브레이크를 얼마나 잘 잡느냐가 남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평범한 사람도 나름대로 과속이 많다. 멈춘 듯하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슈퍼 카’도 핵심은 강렬한 엔진이 아니라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달팽이 걸음을 관찰하며 내일의 삶을 예측하고 그려보는 재미도 맛깔난다.
오늘은 어쩌다 이상한 일기가 되었다. 삶의 복기 과정에서 별것이 다 나왔다. 거짓이 없는 생생한 민낯이다. 돌아보니 지난날은 다 고마운 시간이다. 글을 쓰면서도 이런 글을 써도 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쭉정이면 어떨까? 관점과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거짓과 위선이 아니면 괜찮다고 여긴다. 돌아보고 누릴 수 있는 지금과 여기가 있어 고맙다.
10.2026.01.24.(토)
춥다. 춥다. 영하의 날씨가 이렇게 계속되긴 오랜만이다. 며칠 전부터 갓바위에 가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선다. 카카오맵으로 대중교통만 검색했다. 하양역에 내려 803번 타는 것은 두 번 갈아타야 한다. 근데 한 번 환승으로 영남대역에서도 가능하다. 급행 803번이 하루에 5번 운행하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좋을 듯하다. 날이 풀리기만 기도한다. 감기 기운이 살짝 있어 어제 친구와 약속도 미루었다. 이럴 때 독서해야 하지만, 휴대전화로 검색하거나 TV 채널만 돌리고 있다. 공부 체질은 아닌 것 같다. 그냥 빈둥빈둥 지내는 것이 좋을까?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것이 좋을까? 어느 쪽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어렵다. 빈둥빈둥 삶이 내 길이다. 마음 가는대로 살고 건강한 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한 국가가 떠오른다. 한때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였던 ‘부탄’이다. 히말라야산맥 티베트고원 최남단에 있는 인구 80만이 안 되는 곳이다. 객관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국민 90% 이상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산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점이 부럽다. 최첨단 AI 시대에 국왕이 통치하고, 첫눈 오는 날을 공휴일로 정하는 독특한 전통을 가진 낭만적인 나라다. 이날은 사람들이 모여서 눈싸움하거나, 따뜻한 음식과 차를 마시며 자연의 변화를 즐기는 날이 된다. 한편으로는 눈이 농사에 필요한 물과 땅의 해충을 없애주는 ‘축복’이자 ‘길조’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한 유년 시절 시골 외가에 간 날, 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외사촌과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을 불러온다.
사흘 구장에 결석했다. 사실 이 기회에 푹 쉬면 컨디션이 더 좋아지리라 생각했다. 천천히 쉬면서 한 박자 느리게 지내보자. 아니었다. 추운 날씨 때문일까? 예상과 다르다. 루틴이 깨어지니 몸도 정신도 맑지 않다. 오늘부터 운동해야겠다. 3시쯤 구장에 가니 왁자지껄하다. 아니, 오는 날이 장날인가? 임펙트 동호회 시합 날이다. 단체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중이다. 마음속으로 반가웠다. 오늘 고수들의 시합을 보며, 한 수 배울 멋진 기회가 아닌가? 청춘클럽 오후반 회원은 Y 선생님과 A 님뿐이다. 우린 한쪽 탁구대에서 한 시간쯤 우리끼리 경기를 하다가 고수들 경기를 관전했다. 대부분은 셰이크 라켓을 사용하지만, Y 선생님과 나는 펜홀드 라켓을 사용한다. 펜홀드로 치는 고수들 경기는 보기 어렵다. 마침, 펜홀드를 사용하는 W 사장님의 결승 게임이 벌어졌다. 두 분은 각각 3부와 4부 실력으로 탁구선수 출신이다. 처음부터 주고받는 공이 환상적이다. 비슷한 실력으로 공이 좀처럼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감탄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력한 드라이브와 백 드라이브가 주된 공격 무기이다. 특히 계속되는 백 드라이브에는 손목을 많이 쓰는 펜홀드의 장점을 살려 좌우로 회전하며 공격하고 방어한다. 저 경지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끝까지 공의 회전을 살핀다. 10여 년 열심히 구장에 다녔지만 8부나 9부 실력인 나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이다. 생활체육의 한계라 부럽기는 하지만 따라하기는 어렵다. 젊은 나이에 강습받고 시작했으면 좀 나아졌겠지만, 그땐 다른 일에 몰두했으니 별로 아쉽지는 않다. 지금 이 정도나마 즐길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이다.
저녁에 집사람이 둘째 손자 **이와 책을 읽는다. 재미있게 책을 읽다가 갑자기 공부를 시키고 싶은 집사람이 펼쳐진 쪽의 숫자를 묻는다. “14”라고 정확히 대답한다. 다시 뒤쪽을 펴서 묻는다. “26” 잘 대답한다. 그러다가 끝부분의 “79” 쪽을 펴서 묻는다. 그때 손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런 것 좀 묻지 마.” 순식간에 한 방 맞은 기분이다. ‘뭐, 요런 놈이 있나?’ 안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애들이 크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될 터인데……. 조금씩 나름대로 잘 배워나가건만 어른의 조바심이 아닐까. 다음에 내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봐야겠다. 나는 입으로 휘파람 부는 기술이나, 혀를 ‘똑딱’거리는 소리로 유혹한다. 입 오므리는 것이 잘 안되어 힘들지만, 똑딱거리는 것은 조금 되니 재미있어한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하모니카 불어주세요.” 하며 거실 탁자 위에서 하모니카를 가져온다.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경쾌한 ‘체리핑크맘보’를 분다. 그때 만화 삼국지를 읽던 첫째 손자 **가 시끄럽다고 소리친다. ‘아이고, 요놈들 봐라.’ 그냥 미소 짓고 그만둔다. 알 수 없고 질서 없는 사건이 줄지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우왕좌왕 천방지축인 기적의 시간이 흘러간다. 답답한 듯, 답답하지 않은 하루다. 별일 없이 그냥 그냥 지나가는 삶이 다행이고 행복이다. 정제되지 않은 감성의 언어들만 전장의 총알처럼 쏟아붓는다. 민낯의 일상이다.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 펼쳐지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