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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기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승인 2015.05.04 17:59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46.
세상일에 있어서 상근기와 하근기가 드물고 대부분이 중근기인 것은
우리가 모르는 신비로운 힘의 작용이 아니라 그냥 통계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능력을 이유로 자학할 일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 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근기가 열등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모든 사람의 근기가 동일한 것일까요? 누구나 우사인 볼트처럼 100미터를 10초 안에 뛰고, 누구나 김연아처럼 미끄러운 빙판 위로 제비처럼 날렵하게 솟구쳐 올라 아름다운 동작으로 깔끔하게 공중에서 3바퀴를 돌 수 있는 것일까요? 연습만 열심히 하면 말입니다.
누구나 뉴턴,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호킹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피카소 같은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구구셈도 힘들어하고 미적분은 난공불락이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되는 것일까요? 과연 노력한다고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끈이론(string theory)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가장 쉬운 예로 구구셈을 봅시다. 10분만에 다 외우는 사람과 하루 종일 걸려도 못 외우는 사람은 능력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틀 걸렸지만 결국 외웠으니 같은 능력이라구요? 다른 것은 몰라도 외우는 시간이, 즉 기억력이 엄청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잘 외워지지 않는 이유는, ‘수의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직자들은 모든 사람이 상근기인 것처럼 말을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안 그러면 손님이 끊어집니다.
유치원이나 학원선생님이 사실대로 말하다가는 손님이 다 끊어집니다. “당신 아이는 이해가 너무 느려요.” “너무 게을러요.” “구제불능입니다.” “난폭합니다.” “꼬마 악마입니다.” 이래 보십시오. 당장 그 다음날부터 안 나옵니다. 그리고 소문이 나서 아무도 안 옵니다. 해당학부형들이 악소문을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내 아이가 저 학원에 가더니 바보가 되었다”, “착한 내 아이가 저 학원에 가더니 나쁜 애들과 나쁜 선생들 물이 들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손님을 끌려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드님, 따님이 정말 똑똑합니다. 대기만성형입니다. 생각이 깊어서 빨리 답을 못내는 것뿐입니다. 생각이 너무 빨라서 손이 급히 나가다 보니 실수로 답을 잘못 쓰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동네 학원수준을 뛰어넘는 영재이지만 최선을 다해 지도해 보겠습니다. 웬만하면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등등 해야 만이 살아남을 수 있읍니다.
필자도 뛰어난 친구와 선·후배를 보면 자신이 하근기임을 절감합니다. 남들이 한 번 듣고 기억하는 내용을 열 번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고, 가까스로 기억해도 내용이 부정확합니다. 10차원 이상으로 얽힌 복잡한 수학문제를 명쾌하게 풀어내는 사람을 보면, 수학자인 필자도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행복은 지능과 관계가 없읍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남의 것을 빼앗는 데는 지능이 필수적입니다. (지능이 이런 데 쓰이다니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특히 법으로 폭력이 금지된 발달된 사회에서는, 지능으로 빼앗아야 합니다. 특허, 판매기술, 신제품개발 등등. 그러나 국가 간의 폭력에서도 외교술, 무기개발, 국가산업발달, 병법 등은 여전히 지능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사람의 최고목표는 행복이지 지능이 아닙니다. 지능에 집착하는 이유는 지능이 높아야 더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지능이 높아야, 남의 것을 빼앗을 수 있고 자기 것은 빼앗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 뜨고 코 베임을 당한다’는 말이 이 말이 아닌가 합니다. 좀 부드럽게 말하자면, 지능이 높아야 한정된 지구자원을 더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능이 낮은 남들의 몫이 더 작아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일어납니다. 내 것, 네 것이라는 소유권은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리 명확한 개념이 아니기에, 얼마든지 가지고 놀 여유가 있습니다. 물론 개념을 가지고 노는 데도 지능이 필요합니다.
북미대륙에 무단침입(無斷侵入)한 서양인들은 북미대륙이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땅은 경작하는 자들의 것이 당연한데, 인디언들은 경작을 하지 않으므로 소유권이 없으며, 경작을 하는 자기들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지능이 높아야 할 말도 있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런 고도의 추상적인 (하지만 황당한) 사고를 해본 적이 없는 인디언들은 “어, 어, 어” 하다가 다 빼앗겼습니다.
작은 땅에 채소, 옥수수, 감자를 심으면 누구나 소유권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설마 아니 그 작은 땅에 들어가 헤집어놓겠습니까? 북미대륙은 끝없이 넓은데 그 정도를 누가 신경 쓰겠습니까? 실제로 인디언들은 초기 서양인 정착자들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북미대륙을 상대로 그리하면 날도둑놈들이지요. 남의 것을 빼앗으려면 날도둑·날강도 심보에다 높은 지능까지 갖추면 금상첨화입니다.
행복은 자기가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지능과는 관계가 없읍니다. 오히려 지능이 높은 자가 더 불행할 수 있읍니다. 너무 아는 게 많고 눈이 높아서, 쉽게 만족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기보다 멍청한 자들이 성공하고 행복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불행이 밀려듭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수는 없습니다. 그 시대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 할지라도 다음 세대의 평범한 사람보다 더 적게 알 수 있습니다. 과학문명이 끝없이 발달하기 때문이며, 범인(凡人)도 교육을 받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으로 제일 많이 아는 사람만 행복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식은 그 시대가 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박학다식한 사람도 다음세대와 비교하면 별로 아는 게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시공간을 사는 우리는 자신의 한계와 환경(時空)이 주는 한계를 슬기롭게 대하면 됩니다.
게임은 자기 규칙으로 해야 합니다. 남이 정한 규칙으로 하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정당에서 당대표나 대통령후보 경선을 할 때, 그 룰(rule)을 어떻게 정할지를 둘러싸고 죽도록 싸우는 이유는, 많은 경우 그 룰이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병법에서 싸우기 유리한 때와 곳을 선점하라 하는 것도, 시(時)와 처(處)가 싸우는 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병이 유리하면 툭 트이고 마른 평원으로, 보병이 유리하면 좁고 질고 언덕이 많은 곳으로, 수군이 유리하면 해전으로 전선을 유도해야 합니다.
임진왜란 때 명장 신립 장군은 기병을 동원했지만 탄금대 인근의 습지에서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국왕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출전을 하지 않은 것 역시, 싸우기 불리한 곳을 거부한 것이 이유입니다. 이순신이 군왕의 명령을 어긴 죄로 잡혀가자, 후임 원균은 적진으로 돌격을 했다가 칠천량(漆川梁)에서 패해 조선수군이 궤멸되고 자신도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복직된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단 12척으로 수백 척 적군을 상대로 승리한 것도 적을 울돌목으로 유인하여 ‘물길이 빠르고 사나운 좁은’ 목이라는 천혜의 지형을 이용한 덕이었습니다. 이처럼 싸움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세상의 행복을 남의 룰로 얻으려 하면 힘들어집니다. 아무리 남들이 스포츠카를 사야 진정 행복해진다고 주장하더라도,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런 말은 스포츠카 제조회사 직원들이 자기들이 행복해지려고 만들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남들이 포도주를 마셔야 행복해진다고 말하더라도,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런 말은 포도주 수입업자들이 자기들이 행복해지려고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입니다.
(배달민족은 5,000년 동안 포도주를 안 마시고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건 간에, 소주나 막걸리를 먹고 행복하다면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남들을 부러워하면, 그로 인해 불행해진 당신을 쳐다보며 남들은 더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피드백현상이 일어나, 더 행복해진 남들을 보는, 당신은 처음보다 더 불행해집니다. 불행의 악순환입니다.
그러므로 불리하다 싶으면 절대로 성문을 열고 나가면 안 됩니다.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전(籠城戰)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적이 엉덩이를 까 똥꼬를 들이대고 욕설을 퍼부으며 도발을 하고 모욕을 하더라도, 이성을 잃고 성문을 열고 나가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건 상대방에게 유리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던 당신이, 무슨 연유로, 이웃이 스파게티를 먹는 것을 보고 불행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게임은 당신의 규칙으로 해야 하지 남의 규칙으로 하면 안 됩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활을 무사도에 어긋나는 비겁한 무기라고 천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궁(弓)이 약했습니다. 긴 사거리와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각궁(角弓)으로 무장한 몽고에 패배한 원인입니다. 아무리 비겁한 놈들이라고 욕을 해봤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적의 기마군단 다케다 가쓰요리의 기병을 상대로, 삼열조총부대를 꾸려 연속사격을 가함으로써 적을 섬멸했습니다. 적이 원하는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전투를 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전쟁의 목표는 승리이고, 승리를 얻음에 있어서 금해야 할 규칙은 거의 없습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무사도(道)가 죽었다고 한탄했지만, 날아가는 총알은 도(道)를 논하지 않습니다. 기병이 돌진하는 것은 멋있지만, 더 멋있는 것은 승리입니다. 패배 앞에서는 황금투구와 은갑옷과 적토마와 방천화극도 멋을 잃고 맙니다. 단순히 멋진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아무리 몽고군이 잔혹했다 하지만 유럽군도 그만큼 잔인했습니다. 몽고군이 잔인하다는 비난은 처참하게 패배한 유럽인들의 변명일 수 있습니다. 징기스칸에게 당한 지 수백 년 후 유럽인들이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피정복민들을 노예로 삼아 사고판(賣買) 것을 보면, 오히려 징기스칸의 원나라가 덜 잔인한 문명국입니다. 원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였고 피정복민을 노예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나라는 모든 종교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공존한 인류역사상 유일한 제국이었습니다. 원나라는 동서를 관통하는 대교역로를 건설하여,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동서무역이 활짝 열렸습니다. 원의 수도 카라코룸에서 동유럽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서, 원나라 영토 내에 수십 킬로마다 말을 대기시킨 역사(驛舍)를 설치하고 우편통신 업무와 더불어 공사(公私) 여행객들에게 숙박편의를 제공하였습니다.)
게임은 자기규칙으로 하는 것이 유리하듯이, 행복도 자기규칙으로 해야 유리합니다. 맹목적으로 남의 규칙을 따를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누구나 기억력, 분석력, 추리력, 이해력, 직관력, 통찰력 등에서 상근기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할까요? 그것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꼭 지적인 능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人性), 즉 사람의 성품입니다. (이것을 병법에서는 ‘천天보다는 지地가 더 중요하고, 지地보다는 인人이 더 중요하다’고 표현합니다.)
탐욕과 진심(嗔心)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여부는 집착이 더 큰 요인입니다. 집착이 큰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인 지능을 이용해 사물의 실상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탐심과 진심이 적은 사람들은, 구태여 고도의 지능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법에 있어서, 무턱대고 남의 걸 좋아하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읍니다. 종종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렇듯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소질을 살려 자신에게 적합한 수행을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상근기입니다. 세상일은 몰라도 이 일만은 그렇습니다. 불법은 수많은 문(門)을 만들어놓고, 아무 문으로나 들어오시라고 중생을 초대합니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문이 없다면, 멀쩡한 벽을 뚫고 자기만의 문을 만들어 들어와도 좋다고 합니다. 심지어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좋다고 합니다. 대도는 무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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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교수(포항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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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2018-05-13 13:37:32더보기
무슨말씀이신지?
님은 우선 병원부터 가서 전문가의 자상한손길부터 받으세요
답글쓰기0 0
서광/ 2018-05-13 13:14:37더보기
댓글 잘 읽었습니다
3년전의 댓글이라 여기 칼럼에 와서 저의 댓글을 읽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고
과학이전의 서양의 모든 종교와 사상은 미신이었다
이말에는 격하게 동감
서양의 미신으로서의 신이나 이데아와 같은것이
한자문화권에서 말하는 도이다
이말에는 일견 동의 하면서도 동의 않되는 점도 있어요.
선불교가 미신과 같다는 주장?
그것 나름대로 현대인이 배울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좀 낡았지만 가장 빠른길은 물론 초기불교부터 해야겠죠
혹시 서광님은 비구니스님이신가요?
불교T.V 방송에서 불교와 심리학을 결부시킨 강의를 본적 있음
답글쓰기0 0
관세음보살스토커 2015-05-11 04:18:22더보기
딱 3번 쉬었습니다
농담이고
오늘 들숨 날숨 3만 8천번을 쉬었더군요
그래도
괴로워요 이 마음이
이뭣꼬 하길래
욕을 해주고
멀쩡한 고양이를 죽이길래 신고했습니다
답글 10 5
서광 2015-05-08 10:38:07더보기
현대는 과학기술의 시대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보아의 양자론이 역사를 창조하는 시대이다.
붓다의 연기론이나,모세의 유일신론같은 것이 아닌 것들이,
세상을 선도하며 수많은 민중들을 먹여살리며 이끌고 있다.
이처럼 막강한 과학에 기반한 철학자로서,
현대제일의 철학자로 불리는 하이트헤드에 의하면,
과학이전의 서양의 모든 종교와 사상은 미신이었다.
즉,존재하지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실체론으로서의 미신이었다.
예수의 신,플라톤의 이데아등이 모두 미신인 셈이다.
그런면에서는 비록 칸트라하나 예외가 될수없었다.
그 역시 인간의 언어습성을 버리지 못한체,
물자체로서의 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미신으로서의 신이나 이데아와 같은 것이,
한자문화권에서 말하는 도이다.
이것은 주역의 태극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 역시 본체와 속성을 나누는 인간의 언어습성에서 나온 미혹이다.
그 미신으로서의 도를 믿는 것이 중국불교이고 선불교이다.
그 선불교의 추종자가 경허이고,성철이며 혜암이다.
모두 현대과학의 눈으로 보면 우매한 자들이다.
그들 모두 시대 흐름에 어두운 답답한 자들이다.
그러한 성철과 헤암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호를 받은 것을 자랑으로 삼으며 이글을 쓰는 작자는,
진정한 구도자가 아니다.
이 역시 미혹하여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일 뿐이다.
답글 12 6
남이사 2015-05-06 18:30:13더보기
자신의 일과는 아무 상관없다.
열심히 살아라.
가장 남는 장사다.
답글쓰기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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