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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1)
하나하나 모두 가치있는 목표였다. 잡스는 자신과 그의 회사를 위해 세운 순수한 목표에 도취되었다. 그는 수익은 자기한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10년후에 "내 30대를 보람있게 보냈다"는 말을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잡스가 30대에 이룩하겠다고 결심한 것중 대표적인 것은 이상적인 작업환경 을 갖추어 사훈대로 애사심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넥스트사는 상하계층과 직위가 없는 수평조직의 기업이 되었다. 명함에는 본인의 이름과 부서만 넣고 직책은 표시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직책과 책임이 라는 장애를 없앤 "균등한 회사"가 되기를 원했다. 실내구조 또한 사람들의 이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 사무실로 이사오기 전 잡스는 2층 에 모든 벽을 없애고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같은 공간을 사용하도록 했다.
깊은산속에 모범도시를 건설한 청교도들처럼 잡스는 타락한 외부세계와 차단되고 선택된자들 만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려고 했다. 넥스사는 회사라기 보다 회원으로 구성된 지역사회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평범한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기업이 되려고 노력했던 애플 사가 추구했던 것이기도 하다. 81년 애플은 타자기를 모두 없애고 PC로 교체 하면서 "비서"라는 직책을 없애고 어감이 좋은 구역협력관(ar-ea associate) 으로 이름을 고쳤다.
미국 서부에서는 같은 표현이라도 그것을 돌려 말하여 듣기에 부드러운 표현 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컴퓨터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반대해안지역에서 사업을 잘할 수 있는 비전"이라는 제목의 책은 지역간 어감의 차이를 잘 모르는 컴퓨터업계 종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책에 따르면 어감의 차이는 이렇다.
*동부 1)절대로 안된다.
2)네.3)지금 당장 하시오.
4)제대로안하면 해고시키겠소.
5)이사무실에서 나가시오.
6)동네술집.7)주차장에서 만납시다.
8)독선주의자.9)젠장.
*서부 1)아마. 2)아마.
3)이사업계획을 승인해줄수 있는지요? 4)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5)이문제에 대해 중지를 모아 봅시다.
6)회사밖 시설.
7)회사밖에서 얘기합시다.
8)도움을주는 사람.
9)관심을갖게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넥스트사는 공평성에 역점을 두어 봉급을 개인별이 아닌 그룹별로 책정했다.
따라서85, 86년에 넥스트사의 급여체계는 매우 단순했다. 즉 고위 간부들의 연봉은 7만5천달러, 나머지는 5만달러였다. 경험, 전문성, 개인의 업무실적 등은 월급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정책은 실리콘 밸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사이프러스 세미컨덕터사의 경우는 주당 6천개 제품생산 이라는 목표치 달성 정도에 따라 수당이 주어졌는데 그 목표는 컴퓨터가 모두 추적하여 기록하였다. 넥스트는 공평하게 획일적으로 봉급을 인상하였지 만 사이프러스의 봉급인상체계는 종 모양의 곡선형으로 되어 있어 직위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사이프러스는 컴퓨터를 이용함으로써 사람이 범할 수있는 실수와 편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컴퓨터가 제공하는 자료를 기초로 봉급 수준을 결정한 반면 넥스트는 직원들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재래방식을 고집하였다.
공평한 봉급 및 주식 배당 이외에 넥스트는 직원들에게 헬스클럽 회원권, 카 운셀링 서비스, 최고 5천달러까지의 융자 혜택 그리고 결혼한 가족 뿐 아니라 동거 가족에게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주었다. 처음에는 동성 동거인들에게 도 의료혜택을 주었지만 보험회사와의 어려운 관계때문에 후에 중지되었다.
집값이 비싼 베이에리어에 집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넥스트사는 연봉의5 0%에 달하는 융자를 저리로 대출해줘 집을 처음으로 구입하려는 젊은 부부 들의 내집마련을 도와주었다.
잡스는 직원들과 회사정보를 공유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회사설립 초기에 전 직원이 매주 한자리에 모여 회사업무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이 모임은 회사가 커가면서 2주에 한번씩 그리고 나중에 한달에 한번씩으로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모든 것을 공개한다는 회사방침은 계속 유지되었다. 잡 스는 "외부인들에게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면 모든것을 공개하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작성일자 : 1994.12.19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2)
보안문제가 중요했기 때문에 정보가 누설되면 앞으로 회사 재정상황과 추진 중인 사업계획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이런 위협적인 말도 익살스럽게하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농담으로 개한테조차 회사사정을 얘기하지 않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해야한다고 말하곤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 그는 언론에공개하고 싶은것이 있으면 이를 서슴지 않고 밝혔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사전 약속도 받지 않은채 손님을 초대하여 회사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모든 것을 대내적으로 공개한다는 원칙은 동료들의 봉급과 같은 민감한 내용에까지 적용되었다. 이 회사 직원들은 동료의 봉급 수준을 알아낼수 있었다. 넥스트사의 모든 정보는 사내 컴퓨터망을 통해 개인 사무실 안에서 검색 될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나 봉급에 대한 정보만큼은 인사과에서 알아봐야했다. 거기서 개인봉급과 주식배당 목록을 찾아 볼 수 있었지만 내용 복사는 금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직원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언제라도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해 했다. 호기심으로 그 내용을 찾아본 사람들은 거의 후회했다. 어떤 사람들은 분야별로 봉급 수준이 예상보다 상당한 차이가 있었는데 그 차이는 능력과 책임에 따른것이 아니라 입사 날짜에 따라 책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동료간에 봉급 수준이 같거나 비슷하더라도 부서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사기가 저하된 사람들은 봉급 수준과 주식 배당에 대한 정보는 모르는 것이 차라리 좋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중서부 지역에 있는 엔지니어들을 주거비용이 훨씬 높은 캘리포니아로 유치 하려면 현재 받고 있는 수준보다 낮은 봉급을 제의하면 오지 않을 것이라는것을 알게된 잡스는 86년말과 87년초 봉급의 2층 체계로 공평성을 유지한다 는 원칙을 파기했다. 엔지니어 한명을 유치하는데 10만달러의 보너스를 제안 했고 이 일로 인해 그때까지 지켜온 원칙이 무너짐으로써 그후부터는 융통성 있는 봉급을 책정하게 되었다.
산타 크루스에 살던 어느신입사원은 프리몬트까지의 거리가 얼마되지 않아매일 그곳에서 출퇴근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사수당"조로 2만달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잡스는 기업의 평등화된 운영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해 일부러 사내상황을 내부적으로 공개하는 정책을 폈다. 그는 넥스트사직원 개개인이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와 같다고 생각했다.
즉 개별적으로 볼때 전문분야는 다르지만 이런 유전정보들이 모두 합쳐져야 하나의 몸을 이룰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경영 철학도 바로 그런 사상을 기초로 형성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마스터 플랜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모든 결정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성일자 : 1994.12.2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3)
사실 넥스트사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기업들(넥스트가 설립될 당시 IBM의 연간매출은 5백억달러에 달했다)이 훨씬 많은 업계의 특성상 적은 인원으로 일어서려는 기업은 큰 기업들의 자본규모를 따라갈 수 없었다. 작은 기업은 "남보다 뛰어난 아이디어"로 승부 를 내야 한다는 것이 잡스의 지론이었다. 넥스트가 경쟁에서 이기려면 직원 들이 회사정보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게해야 했다. 전자장비를 제대로갖춘 넥스트사는 거대한 경쟁상대자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넥스트사가 창립될 당시만 해도 작은 것이 이상적이었다. 잡스는 애플사에서직원들을 데리고 나올 때 넥스트에 오면 거대한 기업에서 누리지 못한 여가를 즐길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유혹했다. 회사는 바로 직원들의 것일 뿐 아니라 규모가 작아 모두가 서로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우수한 품질 의 컴퓨터를 만들어내며 제조 및 모든 활동을 한곳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회사가 성장하면 영근 완두 껍질처럼 작은 회사를 또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87년 작은 규모로는 대기업과 대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는 기업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 하게끔 되었다. "우리의 가장 작은 경쟁상대라 할지라도 자본 규모가 17억5 천만달러다. 세상은 1억규모의 회사를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존하려 면 일정 수준의 규모까지 회사를 키워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회사규모가 적어도 10억달러 이상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입장을 바꾼 잡스는 중간단계 계획없이 바로 10억달러규모의 회사를 세우는데 전념했다. 그는 넥스트사 임원들은 작은규모의 회사에 맞지 않을만큼 우수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떠들어댔다. 가령 필립 윌슨은 30억달러 규모로 2만7천명의 직원을 둔 커민스 엔진사의 인사담당책임자였는데 넥스트의 인사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되었다. 넥스트의 공동설립자로 재무담당책임자인 수잔 반즈는 넥스트사보다 큰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았던 사람이다. 수잔 반즈는 넥스트가 10억달러 규모의 회사가 될 때쯤 되면 그에 걸맞는 조직이 정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거창한 계획이 넥스트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을지도 모른다. 때는 80년대 중반이었고 지금처럼 미국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거의없을 때였다. 이런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는 무한대로 열려 있었고 그들을 가로막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넥스트사가 인력을 갖추고 10억달러규모의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충분히 그 목표를 이룰 수도 있었던 시대였다.
잡스는 넥스트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다른 직원들도 그런 열정을 보이도록 요구했다. 회사 밖의 세계는 너저분하고 평범하며 타락되어 있는 반면 회사안은 불가능이란 없다고 직원 들은 믿기 시작했다. 선택된 소수에 있어 넥스트에서 일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마치 비신자로부터 보호받을 수있는 천년 왕국 종파의 본부와 같았다. 넥스트사 직원들은 일하는 것을 피곤 하게 여기기보다 일을 통해 세속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보다 큰 일을 이룩해야구제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작성일자 : 1994.12.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4)
이런 의지를 가진 넥스트 직원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엄격하고도 세밀한 인터뷰를 거치도록 했다. 애플사나 그 이전의 제록스 PARC에서 그랬던 것과마찬가지로 응시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질문을 받았고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거쳐야만 했다. 최종 인터뷰는 잡스가 실시하였다. 인터뷰 질문은 주로 "왜 커프스 링크를 하는지 또는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따위의 용모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되면 겸손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거만하게 대답해야 할 것인지 갈등 을 겪게 마련이다. 어떤 질문은 이들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또 어떤 질문은 단순히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해 던져지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입사면접시험을 볼때 터무니 없는 질문을 많이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고 주로 머리를 쓰게하는 질문을 많이했다. 면접하는 사람은 "미국에 주유소가 몇개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각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을 경우 그 답을 추론하는 과정이라도 설명해야 했다. 즉 인구가 2억5천만명이고 4명 중 한 사람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5백대의 차가 한 주유소를 사용한다면 답은 12만5천이 될 것이다. 또 "자동 판매기와 주크 박스는 왜 문자와 숫자를 같이 사용하는가"라는 질문도 나온다. 넥스트사는응시자가 얼마만큼 회사를 위해 헌신할 의사가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보다 더 다양한 질문들을 했다.
잡스는 단순히 똑똑한 사람보다 맹목적인 추종 자를 원했던 것이다.
넥스트의 사훈은 진보적이었지만 직원들은 87년 회사가 외부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융자나 기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처음 몇년 동안은 비교적 인색한 급료를 지급했지만 이상적인 회사 설립 목표에는 별로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낮은 봉급으로도 일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순수한 동기를 돋보이게 했다.
어떤 직원들은 일할 수 있게만 된다면 급료중 80%를 삭감해도 불평하지 않았다. 물질적인 보상은 차후로 미루어야 했고, 보상은 컴퓨터가 납품된 후 그 "납품 수당"이나 회사가 상장될 경우 주식의 형태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신생 기업과 마찬가지로 넥스트사도 안정되고 전망이 뚜렷한 기업이 못되었다. 넥스트사가 처음 고용한 사람중에는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에이비 티배니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카네기 멜론 대학원생일 때 새 운용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었다. 잡스는 바로 그 운영시스템을 그가 개발하는 새 컴퓨터에 채용하려고 했다. 모든것을 그 시스템에 걸겠다는 잡스의 말에 감동한 그는 박사 과정을 마치자마자 넥스트에 입사하기로 했다. 넥스트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한 그는 1백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배당해 주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제의를 거절했다.
잡스가 고용한 신입 사원들은 현재의 봉급보다 앞으로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 하겠다는 열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85년에서 첫 컴퓨터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88년 말까지 업무에 대한 직원들의 열의를 알아보기 위해 잡스는 제품에 대해 사전지식없이 채용조건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종교적 맹신 효과를 극대 화하기 위해 회사는 컴퓨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제품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잡스의 말대로 "깊은 신뢰감"을 가져야 했다. 회사 규정이 엄격 했지만 잡스자신만은 그 규정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는 고용하고 싶은사람에게만은 제품을 미리 보여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막상 제품이 공개되고 나면 그 제품보다 잡스와 그의 독특한 경력이 더 큰 관심사가 되었다.
사람들이 넥스트사 직원들을 하레 크리스나의 추종자들 같다고하면 그들은 코방귀를 뀌며 절대로 잡스를 맹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잡스를 맹신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끌어 들이는 잡스의 힘은 대단 했다. 잡스 같은 기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잡스가 과거에 이룩한 일들을 들여다 보면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은 자연히 성공할 수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곁에 있으면 앞으로 저절로 성공 할 수있다는 것은 자명했다.
봉급이나 기타 이유 때문에 넥스트의 채용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넥스트 인사 부장은 최후의 수단으로 잡스를 만나게 했다. 잡스는 능숙하게 사람들을 다루었다. 그는 적절하게 칭찬도 해가며 그 사람에게 적합한 훌륭한 비전 을 심어주곤 했다. 잡스의 제의는 거절 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교육용 컴퓨터를 만든다는 사명감 때문에 넥스트의 채용 제의는 더욱 가치있는 것이 되었다.
작성일자 : 1994.12.30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5)
넥스트는 또 하나의 새로운 종류의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제공하여 최고의 학문을 추구하는 대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을 하게되는 것이다. 매킨토시를 지원한 대학가의 컴퓨터광들은 대학의 필요에 부응하는 컴퓨터를 개발하게 될 넥스트사가 존재한 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해 있었다. 애플사의 마케팅그룹은 대학가에 매킨토 시를 공급하며 만족스러운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애플보다 더 호감을 얻으려면 대학에만 전적으로 매달려야 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는 바로 넥스트였다. 넥스트가 뛰어난 인재를 채용 하면 할수록 더 뛰어난 인재들이 넥스트로 오기를 원했다. 댄 르윈과 스테이 시 브레슬러와 함께 애플대학 컨소시엄을 결성하는데 기여한 캐서린 킬코인 이 넥스트의 채용 제의를 받고 망설이는 가운데 대학 연구소의 컴퓨터 전문 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넥스트사로 가라고 했다. 스탠퍼 드에 있는 한 교직원은 "최고 중에 최고만 넥스트로 가고 있어요. 애플이 최고라면 넥스트는 특수 부대(그린 베레)에 속한다"고 말했다.
애플사에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던 스테이시 브레슬러도 넥스트사로 가기로결정했다. 겉으로 보기에 브레슬러는 초창기 넥스트 직원들이 추구했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매킨토시그룹의 초기 멤버로 큰 성공을 이룩하는데 공헌하였고 대학에 판매한 PC가 잘 사용되고 있는 점에대해 만족해했다. 그는 또 일반 월급쟁이라면 상상도 못할 재산을 모으기도했다. 그는 애플이 최우수 영업사원을 억지로 유람여행 보내는 기간을 제외하고 1년에 52주, 일주일에 7일동안 일에만 매달릴 정도로 일에 중독되어 있었다. 애플사로서도 만족스러워했던 브레슬러를 넥스트로 옮기게 만든 주된 이유는 그가 또하나의 매킨토시가 탄생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다른사람들은 그가 매킨토시의 초창기 멤버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초창기부터 근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라스킨이나 트리블과 함께 창업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 플 본사와 수천마일 떨어진 동부에서 주로 대학에서 게릴라식 마케팅전략을 펼쳤었다. 잡스가 자신과 댄 르윈 그리고 다른 애플출신 사람들과 힘을 모으자고 제의하자 그는 또다른 역사를 창출할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브레슬러 같은 사람이 역사책에 남을만한 일을 같이하자는 잡스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매킨토시의 성공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같은 제의가 얼마나 유혹적이고 매력적이었겠는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넥스트사는 초기에 애플에서 일했던 브레슬러와 킬코인 같은 사람들을 주로 고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여러곳에서 사원을 모집하여 애플의 축소판 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넥스트는 여러 회사의 가장 뛰어난경영기법만 채택해서 대기업들을 이기려 했다.
넥스트는 백지상태에 있었기때문에 잡스와 초창기 멤버들은 모든 것을 선별하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최고중 최고만을 선택하였고 최고가 아닌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런 넥스트사의 탄생과정에는 상당한 모순이 내포되어 있었다. 21세기 모범 기업이 되려고 노력했던 넥스트는 오히려 19세기 중반으로 후퇴하여 한명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하는 것 같았다. 경영주가 최면을 거는 듯한 마력을 지녔을 때 그 사람은 카리스마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잡스가 지닌 카리스마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의 카리스마는 인간의 존재의미를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나오는 힘과도 같았다.
잡스는 아침 식사용 시리얼이나 화장실용품을 파는 일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려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그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컴퓨터 사용자들이 더욱 편리하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세계를 놀라게하는 혁신적인 일을 하여 역사의 한장을 차지하기를 원했다. 바로 이러한 원대한 포부가 사람들로부터 큰 호감을 샀던 것이다.
작성일자 : 1994.01.0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6)
카리스마를 연구하는 브라이언 윌슨이라는 학자는 아주 적절하게 그 성격을 묘사하였다. "
어떤 사람이 자기만이 멸망해 가는 세상 사람들을 구제할수 있다고 외치며 벌거벗은 채 거리를 뛰어다닐때 그를 따르는 사람이 생기면 그는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이고 사회적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추종 자가 생기지 않으면 그는 미치광이에 불과한 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추종자를 확보해 놓은 다음 할 일은 적절한 관리다. 그 지도자가 세운 조직은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여러 방법들을 통해 추종자들을 잘 관리하여 각자의 임무를 수행토록하고 카리스마를 유지해 나간다. 이렇게보면 19세기의 유토피아관과 20세기 후반의 넥스트사는 유사한 점이 많다.
예를 들면 넥스트는 같이 일하려면 재정적 손실, 즉 월급을 덜 받는 것을 감수하도록 요구했고 충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사람들의 접촉을 제한하였다.
모든방문객 및 외부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고 특별 모임을 통해 그룹의 주체의식을 고취해 외부의 비난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잡스는 사람들 스스로가 실패를 시인하도록 하였고 면전에서 사람을 비판했다. 잡스는눈에난 직원들을 심하게 질책해서 무안을 주었고 개인보다 회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명확히 심어 주었다.
잡스가 애플에 있을 당시 구상했던 계획을 실천 했더라면 그는 19세기형 유토피아를 건설했을는지도 모른다.
80년대 초 잡스는 애플사로 하여금 산 호세 남부지역의 수백 에이커에 달하는 불모지를 매입하도록 했다. 잡스는 거기에다 애플 타운을 건설하려 했다.
그는직장 생활과 개인의 사생활에 분명한 경계선이 없는 기업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도시에 사원들이 애플 문화에 몰두할수있도록 주택, 상가및 오락시설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소방서 및 경찰 까지 갖춘 디즈니월드를 모방하려 했다.
결국 애플 타운은 잡스가 떠난후에 야 건설되었지만 그의 폐쇠적인 특성은 넥스트사의 기업 문화에도 반영되었다. 넥스트의 스티브 잡스와 과거의 카리스마적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 금세기 말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과거에는 경제활동을 하는데 카리스마가 중요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속성과 전문 성이 성공의 관건으로 작용하는 관료주의적인 커다란 조직에 있어서 카리스마적 관리체계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카리스마적 관리방식은 베버가 말하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즉 식민주의 구축 노예무역, 해적활동, 군수산업을 위한 민간 자본 활용및 금융분야에서도 카리스마적 인물을 찾아 볼 수 있다. 넥스트는 해적 행위를 하기에는 순수했기 때문에 그 비유는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그 성격상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념이 성공 하기 위해서는 추종자를 잘 끌어들이고 리할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하다. 넥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큰 성공을 거둔 대 기업의 그늘 밑에서 또 급속히 발전하는 산업여건 속서새 컴퓨터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 특히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회사를 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카리스마적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넥스트의 이런 유토피아적 발상은 30대로 구성된 기업의 기본 이념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넥스트가 설립되었을 당시 잡스는 매킨토시에서 인정 하지 않은 한가지를 인정하였다. 그는 그의 직원들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을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 하루업무가 끝나면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중요하다고 역설하였고 회사가 파티를 할 때는 어른들만 모일 것이 아니라서커스단을 초청하여 오락을 겸한 가족놀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동료들은 중년이라는 나이를 인식하게 되었고 잡스 자신도 고삐를 조금 늦추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당시 넥스트는 공식적으로 매킨토시에 매달렸던 20대 젊은이들이 했던 것처럼 24시간 일에만 전념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댄 르 윈과 넥스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선수가 되겠다고공언했고 일주일에 1백시간이 아닌 60~70시간 근무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전의 근무시간을 은연 중에 강요당했고 스테이시 브레슬 러 같은 철인도 지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스테이시는 매킨토시와 같은 역사적인 업적을 다시 만들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87년 넥스트를 떠나 일주일 내내 근무하지 않아도 되는 휴렛패커드사로 자리를 옮겼다. 넥스트에서 모범 사원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주말에도 계속 근무하거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몇 시간을 계속 일할 수 있는 뛰어난 체력을 가져야 했다. 넥스트는 작은 기업이었고 뛰어 넘어야할 난관이 많았다. 그러나 넥스트는 거대한 목표를 실현해야 했다.
넥스트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 의식을 버리고 전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지도자가 하는 대로 따라가야 했던 것이다. 60년대에 캔 케이시가 말했던 것처럼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내리든지 해야 했다. 꾸물거리는 사람은 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작성일자 : 1994.01.0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7)
넥스트사는 창립 당시 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출범했다. 자금이 지나치게 풍족했고 회사의 기본 사업 방침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은 채 재정분석 능력이 부족한 스티브 잡스를 주축으로 운영되었다. 7백만달러를 투입하여 세운 넥 스트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자금을 창립자에게만 의존하게 되자 재정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력이나 인식이 결여되어 결국 넥스트의 기강을 해이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넥스트는 스스로가 막강한 기업체라고 생각했고 자체적으로 이정표를 세워 스스로를 가늠해 보곤했다. 충분한 자본 없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은행 및 투자자를 확보하고 시장을 조사하거나 수지타산을 맞춰보는 일 따위에 많은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사업이 비록 수포로 돌아간다고 해도 사업가는 실패한 원인을 알아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잡스와 넥스트사 창립 멤버들에게는 이런 번거로운 단계가 필요없었다. 자금이 풍족했기 때문에 자금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 애플사가 넥스트를 상대로 낸 소송을 자발적으로 해결해 나갔다. 미리 세운 사업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악의에 찬"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애플의 비난 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넥스트의 창립자들은 애플에서 이룩한 성공에 힘입어 불굴의 의지를 갖게 되었고 모든 것을 경험을 내세워 밀어붙이기 식으로해나갔다는 사실이다. 애플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창립자들은 넥스트에 와서도 일반 사람들, 즉 "평범한 중생"들을 도와주어야 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기들은 영원불멸의 생명을 가졌고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에서 퍼스널 컴퓨터 세계를 창조한 신적 존재라고 믿었다.
단적인 예로 잡스는 넥스트에 관한 보도자료로 겸손과는 거리가 먼 내용을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애플을 20억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상당 히 기여했고 애플의 매킨토시 부문의 매출을 10억달러로 끌어 올렸다고 말하였다. 리치 페이지는 자신을 포함하여 넥스트의 창립자들은 모두 스타들로 이루어진 팀이라고 했다. "넥스트 구성원은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사람들처럼 좋은 기록을 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업가는 결국 망하게 될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잡스를 비롯한 창립 멤버들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나이런 자신감은 그당시 산업계에 팽배해 있었다. PARC의 일원이었고후에 아도브 시스템사의 공동창립자이면서 잡스의 친구인 존 워노크는 85년 넥스트가 창립될 당시 "우리가 모든 것을 잘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많은 이윤이 남는다"고 생각했고 넥스트도 바로 그런 사고의 산물이라고 회고했다. 넥스트는 퍼스널 컴퓨터의 여명기에 태어난 것이다.
애플에서 넥스트로 대거 이동한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고 자신만만해 했다.
이들은이례적인 컴퓨터 업계의 급속한 성장이 그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이런 성장이 밑받침 돼 주지 않았더라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사실을 알지 못했다.
80년대의 시장은 퍼스널컴퓨터 수요의 급증으로 조금은관대했다. 그러나 넥스트가 컴퓨터를 제조하여 선보일 때가 되자 업계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냉혹한 시대로 접어들어가고 있었다.
작성일자 : 1994.01.06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8)
매킨토시가 캠퍼스에 급속히 확산된 것을 직접 경험한 잡스와 그의 동료들은 대학의 필요에 맞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면 과거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넥스트는 각 대학을 찾아가 교수와 교직원들이 과연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파악한 다음 컴퓨터를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20 여개 대학연구소로 이루어진 컨소시엄은 이미 IBM, 휴렛팩커드 및 애플같은대기업과 대학의 필요에 부응하는 강력한 "3M"컴퓨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상태였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당시 원가가 1만5천달러인 컴퓨터를 2만5천달러로 높이면서 판매가를 3천달러로 하여 이윤을 남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이런엉거주춤한 태도는 넥스트에 절호의 기회를 준 셈이 되었다. 중간관리 자의 욕심과 기존의 기술에 지나치게 집착한 기업들이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을 잡스는 꼭 성공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넥스트는 쉽게 그 일을 할 수있고 그 분야에 대한 계획만 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넥스트가 주 고객으로 겨냥한 대학들도 넥스트의 자신감을 북돋우어 주었다.
잡스와그의 동료들이 애플이 제기한 소송 때문에 변호사와 면담을 가진 같은날 스탠퍼드 대학의 중요 인사들과 만났고 그들로부터 처음으로 극진한환대를받게되어상당한용기를얻었다.운좋게도 그 다음 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전국 대학 컴퓨터 행정관 모임인 에듀컴(Educom)회의가 개최되었고 넥스트는그들의 주 고객 앞에서 자신들의 계획을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맞이하게 된 것이다. 잡스와 동료들은 그 회의에서 넥스트의 향후사업계획을발표하였다. 넥스트는 대학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여러분들은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가르쳐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회의에 참석한 한 사람은 스탠퍼드 대학 행정관이었던 마이클 카타에게 "나는 2백명의 IBM 엔지니어들이 오스틴 연구소에서 차세대 IBM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지만 넥스트에는 여기에 참석한 6명이 있기에 이들에게기회를주면 더 훌륭한 제품을 개발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러 대학을 방문하고 대학이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본 넥스트 사는 많은 자문을 얻었을 뿐 아니라 스탠퍼드, 카네기 멜론, 브라운, UC버클리 텍사스, 미시간, 일리노이즈, 라이스, 프린스턴, 듀크 및 MIT대학 등과 협조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들 대학중에는 애플-대학 컨소시엄 소속대학이 상당수 있어서 넥스트사는 매킨토시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것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 댄 르윈은 대학이 어떤 종류의 퍼스널 컴퓨터를 사용해야하는지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했고 용모가 수려하고 성격이 사교적이어서 기술 선택과 같은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대학의 지원을 얻는데 잡 스보다 르윈은 역할이 더 컸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수영으로 단련된 건장한 체구(스텐퍼드 대학의 마이클 카터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슈퍼맨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다)때문에 그는 어딜 가나 돋보이고 눈에 띄었다. 게다가 그는 잠재 고객과 면담을 할 때 그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침 착성을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컴퓨터 판매원을 싫어 했고 되도록이면 그들을 멀리하려했다.
그러나르윈만은 믿고 친구로 여겼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역사적인 성공 을 같이 이룩했던 것이다. 이제 넥스트가 르윈과 같은 팀이 되어 또다른 역사를 만들자고 제의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넥스트를 계속 지원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낙관론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넥스트사는 창립 후 처음으로 전직원이 휴식하며 자유롭게 토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고 그자리 에서 사람들은 넥스트의 종합사업계획과 추진일정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제기하였다.
이런 장면이 에미상을 받은 존네이던이라는 영화 감독에 의해포착되었다. 네이던의 초기작품 중에는 "최고를 향하여"라는 기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 있는데 그는 여기서 애플컴퓨터를 성공의 모범사례로 묘사했다. 애플의 한 판매과장이 "우리가 바라는 세계는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개종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말에 대해 한 텔레비전 비평가는 애플의 철학은 무시무시하다고 비판했지만 스티브잡스는 그 영화 를 좋아했다. 네이던이 특출한 기업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잡스와 넥 스트사를 소개하고 싶다고 제의하자 잡스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회사변호사들은애플과 소송이 아직 계류중에 있기때문에 절대로 외부인을 회사안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작성일자 : 1994.01.13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29)
그러나 잡스는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영화촬영을 허락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이다.
네이던은 언론매체가 일반적으로 "어두운 구석"을 주로 찾지만 자신은 "신 명나는 문화적 모델"을 중점적으로 찾아서 묘사하겠다고 말했다. 잡스는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더욱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그의 추측은 어긋나 버렸다. 당시는 방송 법상 사전 검열이 금지되어 있었다.) 게다가 잡스는 자신이 사실상의 감독 역할을 하게돼 카메라설치 위치를 지시하고 민감한 주제를 피해갈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네이던은 예술적인 영화작품을 만들려했고 잡스는 영화 감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려 했다. 이를 감안한다면 영화가 완성된 것 자체 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영화는 불신과 의견 충돌로 가득찬 회사를 그렸다. 즉 생동감있는 사람들이 적나라한 논쟁에 휩싸여 있는 회사를 묘사 한 것이다. 영화는 사실 그대로를 묘사한 것이다.
85년 가을쯤 되자 넥스트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면해야할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들은 현재 대학가를 석권하고 있는 제품들을 제치고 자사 컴퓨터제품이 우위를 차지하려면 넥스트사 제품은 보통 뛰어난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뛰어난 성능을 갖추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87년 봄까지 제품 을 출하하여 87년 가을에 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은 일년에 한번 대량 구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넥스트가 그 시기를 못맞추면 다음해 같은 시기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되면 회사의 자본이 남아 있지도 않을것이며 기술적 우위를 지키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느 직원은 "우리가 제품을 87년봄까지 출하시키지 못한다면 사업을 아예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잡스도 세상은 자기를 위해서 그냥 멈추어 서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넥스트사가 그 시기를 놓치면그 다음 판매주기가 돌아올 때까지 재정적으로 버틴다해도 컴퓨터는 이미 구식이 되어 버릴 것이다.
매킨토시팀의 일원이었다가 후에 넥스트에 합류한 조안나 호프만은 87년봄까지 제품을 출하하겠다는 목표의 실현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녀는 현실 왜곡"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비현실적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하면 디자인 선택을 성급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어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결과적으로 일을 더욱 지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잡스는 그녀의 발언을 중도에 제지했다. "우리는 어디든 말뚝을 박아야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운영경비 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87년 한해에 충분한 제품을 팔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회사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될 것이다." 넥스트의 창립멤버 중 한사람이며 하드웨어 엔지니어인 조지 크라우는 "신용 이 떨어질 것" 이라며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비난했다. 이말을 듣고 화가난 잡스는 목청을 높이며 "나 혼자서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없지않은가" 라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제품 을 만들어서 출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리에게그런기회가 주어졌다. 기회는 우리의 것이다. 이 일을 해낸 사람은 아무도없다.
우리에게는 18개월이라는 시간이 있다. 시일에 맞추어 제품을 만들어내지못하면 냉혹한시장원리에 따라 회사는 망할 것이다." 잡스는 자기가 애플에 있을 때 사람들이 머리를 잘 쓰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더 현명하고 똑똑하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일을 더 잘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잡스는 사람들이 머리를 잘쓸 뿐 아니라 초창기 애플 사람들이 그랬듯이 열성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고등교육기관을 아끼기 때문에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잡스는 말했다.
고등교육기관에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그들은 대학 행정관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의 대당 가격은 3천달러를 절대로 넘으면 안되었다.
잡스는대학이 세운 그 기준만큼은 어겨서는 안되며 더 좋은 제품을 더 높은가격에 제의한다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잡스는 대학측의 요구를 충분히 귀담아 들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그들은 속도를 3배로 증가시키면 4천달러를 지불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3천달러를 넘어가면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법의 가격은 3천달러다." 불행하게도 그는 나중에 이 문제 때문에 건망증에 걸리게 되었다.
작성일자 : 1994.01.16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0)
86년1월 넥스트와 애플은 결국 법정 밖에서 합의를 보게 되어 소송문제들이 해결되었다.
넥스트는 앞으로 6개월동안 애플에서 직원들을 데리고 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애플컴퓨터보다 우수한 넥스트컴퓨터를 가지고 애플제품과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잡스는 그런 조건들이 앞으로 마케팅에 훨씬 유리할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합의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송 때문에 넥스트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소송이 해결될 때까지 잡스와 엔지니어들은 컴퓨터 디자인업무를 중단한 채 마케팅담당 댄 르윈과 함께 전국 에 있는 대학을 방문하여 그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86년1월 소송이 해결되고 새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자 넥스트는 이미 계획 보다 일이 뒤처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5년 가을에 완제품을 87년봄까지 출하하겠다는 계획의 실현성이 희박했다면, 86년초 회사가 두번째로 교외 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는 그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져 있었다. 이번에도 네이 던이 영화에 그 장면들을 담았다. 잡스는 그 모임에서 "이제 밀월여행은 끝났다 는 사실을 명시했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합의를 들먹이거나 소송 때문에 피해를 입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식의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세계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넥스트는 또 하나의 신생기업에 불과했으며 앞으로 만들 제품들이 얼마 만큼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인가에따라 그 장래가 평가될 것이다.
사실 부족한 것은 시간뿐 아니라 자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잡스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넥스트사는 애플직원들을 잘 사귀어서 넥스트를 위해 그들 명의로 직원할인율을 적용해 매킨토시를 구입 토록 하지 않고 직접 구입했다. "우리는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다른 지출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라고 잡스는 불평했다. 수잔 반즈는 넥스트가 거래처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거래처는 넥스트의 자본 규모가 2천만달러 내지 3천만달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재정이 튼튼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그들에게 주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외부인들이 그런 인상을 받은 것이 과연 이상한 일일까. 잡스가 소파에 앉아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회사 발전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모습은마치 말 많은 뚱보가 가만히 앉아서 다이어트의 미덕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같았다. 팔로 알토에 호화로운 사무실을 갖고 폴 랜드에게 거금을 주고 로고 를 만든것등을 봐서도 알 수 있지만 잡스는 우선 지출하고 나중에 보충한다 는 사고방식을 가졌다. 넥스트는 "전쟁"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이 전쟁의 테마는 이른바 "시장에 제품을 출하할 때까지 자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는 것이다.
넥스트는 86년 자금이 다 떨어지게 되었지만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외부 투자가의 자금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잡스는 지금까지 쓰고 싶은 곳에마음대로 돈을 쓸 수가 있었다. 그러나 Inc라는 잡지가 후에 돼지 저금통을 가지고 사탕을 교환해 먹은 어린 아이보다 7백만달러를 더 헤프게 사용한 넥 스트사를 "최고의 기업"으로 선정한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초기부터 재정이 튼튼했던 넥스트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기에 지출도 기형적으로 했다. 잡스와 넥스트 고위 간부들이 자본활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경제적인 경영을 시도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그때는 자금이 이미 사라져 버린 후였다.
잡스가 넥스트를 창립할 당시 그는 이 회사가 자신과 넥스트사 직원들의 것이 되도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넥스트가 직원들의 것이 될것이라는 것을 내세워 초기에 직원들을 채용했다. 86년 자금이 고갈되었을 때 그는 사실자기 돈으로 자금을 다시 회전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중한 기업가라면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초기 자본을 다 탕진하고 나면 창립자 개인의 재산을 아껴쓰기 위해서라기보다 회사 자체의 존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다른 투자가와 재정 위험을 분담해야 하는 것이다. 공동으로 투자할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창립자는 그 회사에 더 투자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되고 고객들도 그런 회사 제품을 구입하지 않게될것이다. 이제 넥스트는 외부 투자가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시험해봐야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잡스는 동부 및 서부 지역에 있는 여러 모험투자회사에 회사 설립 취지서를 보내어 투자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85년 넥스트가 창립된 해 잡스는 애 플에서 이룩한 성공에 힘입어 마력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30세된 잡스가 마이더스처럼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었기 때문에 장래가 유망한 이 기업에 투자하려는 모험투자가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잡스는 외부투자를 허용하지 않았고 86년에 와서 그는 저자세 로 외부의 도움을 청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작성일자 : 1994.01.18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1)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그는 협상의 여지가 없이 "수 락 아니면 그만두라"는 식의 제안을 했고 더욱이 회사의 가치를 3천만달러로 못박아 놓았다.
(10%의 지분에 투자한다해도 모험자본가는 3백만달러를 투자해야 했다. 이 수치는 지금까지 넥스트에 투자된 금액의 절반에 해당된다. 넥스트가 아직 제품을 만들지 않아 매출이 없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잠재 투자가들은 3천만달러가 터무니없이 높은 수치라고 생각했다.
잡스는투자가들에게 3천만달러가 아니면안된다는 근거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 수치 는 넥스트의 재정상태와는 아무런상관이 없었고 다만 상장되기 전 최고의 가치를 지닌 트리로지라는 회사보다높게 책정하기 위한 욕심때문이었다. 3천만 달러는 기록을 경신할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잡스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모험 자본가들은그를 멀리했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넥스트사를 구한 것은 전혀예기치 않은 로스 페로라는사람이었다.
넥스트는 페로를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86년 전국적으로 방영된 존 네이던의 "기업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넥스트라는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뉴욕타임스지에 게재된 "미국 자본주의 영웅들은 이제 더이상 큰것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앉아서 탁상공론만 할 뿐이다 라는요지의 논평을 보면 회사내 의견대립상황을 생생하게 보도하지 못했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페로는 그 프로그램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잡스에게 매료 되어 그를 "Mr. Electricity(전기씨)"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페로는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할 말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다음날 페로는 잡스에게 전화를 걸어 그 프로그램에 대한 찬사를 늘어 놓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했다.
그의 제안은 너무도 시기적절했다. 잡스는 전화를 끊고 "누가 전화했는지 절대로 알아 맞히지 못할거야. 매우 좋은 기회가 생겼어"라면서 기뻐했다. 잡 스는 넥스트의 절박한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주일이 지난후 전화를 걸어 페로의 제안을 다시 확인했다. 페로는 그의 제안이 아직 유효하다고 말하며 3명의 고위간부를 캘리포니아로 보내 넥스트사를 방문하도록 했다. 잡스 가 애플에 있을 당시 페로의 일렉트로닉데이터 시스템사 직원이 비슷한 목적 으로 애플을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별 결실을 거두지 못했었다. 페로가 보낸 직원들이 다녀간 다음 잡스는 직접 페로에게 연락했다. 페로가 보낸 사람들은 컴퓨터 산업에 대한 투자가치를 조사하는 전문가들로서 제안서를 세심하게 검토했다. 잡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는 넥스트의 재정상황이 드러나면 불리한 입장에 놓일까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숫자놀이에 능한 MBA출신 사람들이 회사사정을 더깊이 알아 내기전에 페로가 스스로 판단하여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페로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잡스가 요구한 대로 직접 캘리포니아로 와서 수십명의 넥스트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환대를 받은 페로는 제시된 조건과는 상관없이 이 회사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투자금액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나는 기수를 뽑을 뿐이지 말을 선택하여 실제로 말을 탈 사람들은 바로 기수들이다. 나는 여러분을 투자 상대로 선택하였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사업을 추진해야한다"고 말했다.
억만장자가 돈이 떨어진 작은 기업에 "여기 백지 수표가 있으니 당신이 알아서 금액을 써 넣으시오"라고 말한 순간 잡스 같은 백만장자라도 그것이 바로 구제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수잔 반즈는 외부 사람들이 잡 스와 넥스트를 볼 때 자금이 풍부하다고 믿는다고 불평했지만 잡스 자신도자기보다 돈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이 정말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다른 모험 자본가들에게 제의하여 거절 당했던 조건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을 페로에게 제시했다. 그 조건은 넥스트의 가치를 1억달러로 산정해서 마련한것이다. 주의깊은 사람이 그 제안을 받았다면 1억달러라는 수치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수 있지만 페로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페로가 넥스트 방문기간중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넥스트 사람들은 잠깐회의를 열고 의견을 나눴다.
작성일자 : 1994.01.20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2)
그 자리에서 넥스트의 한 고위 간부는 잡스에게 "지금 로스가 우리가 제의한 만큼 줄의사가 있다면 앞으로 일이 잘 풀리면 더 줄 수도 있겠지"라고 말했다. 이말을 듣고 잡스의 눈에서는 희망의 광채가 빛났다. "우리가 바로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시오."
페로는 완벽한 후원자였다. 그는 크로서스 왕 만큼이나 굉장한 부자였고 "기 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심 없이 돈을 투자하려했다. 잡스는 이 기회를 그대로 넘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늘 그렇게 했듯이 이번 기회도 약간 과장 되게 묘사하였다. 그는 넥스트가 전에는 외부 투자를 모두 거절 했지만(투자 가들이 넥스트를 거절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페로의 제안은 너무 감명 깊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잡스는 페로에게 투자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는 식으로 말하였다.
넥스트에 투자할 때 투자 규모를 생각하기 보다 투자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 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넥스트가 대학만을 위해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대학도 투자에 참여해야 한다는 소문은 곧 대학 연구 소에도 전달되었다. 잡스는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끈질기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그만 두라는 식의 태도를 고수했다. 그는 대학 회계사들이 넥스 트에 와서 장부를 뒤져가면서 세밀한 조사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의사를 확실히 했다. 잡스의 제안은 간단 명료했다. "우리는 과거 성공한 제품들을 만든 사람들이다. 원한다면 우리에게 모든것을 걸어도 좋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일을 해나갈 것이고 장부조사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모험자본가와 대학에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가장 기초적인 잣대로 넥 스트의 가치를 대충 평가해 봐도 그의 제안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페로가 결단을 내리자 스탠퍼드와 카네기 멜론 대학도 넥스트에 투자 하기로 결정했다. 페로는 2천만달러, 잡스는 추가로 5백만달러 그리고 두 대학이 합해서 66만달러를 투자하여 넥스트의 가치를 1억달러에서 1억2천6백만 달러로 높였다. 잡스는 회사 지분 중 63%를 소유했고 페로는 16%, 스탠퍼 드 및 카네기 멜론은 각각 0.5% 그리고 넥스트 직원들은 20%를 소유하게 되었다. 두 대학이 투자한 금액은 페로의 투자액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돈보다 잡스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넥스트의 사업 계획안이 로스 페로의 검토를 거쳤고 두 명문대학 연구소가 넥스트의 제안을 승인했기 때문에 넥스트는 내세울 명분이 새로 생기게 되었다. 즉 넥 스트는 튼튼한 재원과 밝은 미래를 확신할 수 있었다. 페로가 넥스트라는 회사의 가치 평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으로 잡스가 넥스트에 투자한 1천2백만 달러는 장부상으로 7천9백만달러로 평가되었다. 1년반만에 얻은 자산치고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기업가"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모든 것이 넥스 트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파산직전에 있던 넥스트는 갑자기 구제되었고 무제한의 자금력을 가진 로스 페로와 명문 스탠퍼드 및 카네기 멜론 대학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있는 회사치고 제품 없이 회사 가치가 1억2천6백만달러로 평가 된 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잡스는 우쭐대며 말했다. 넥스트는 회사 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전에 그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회사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았다.
왜 로스 페로가 2천만달러라는 거금으로 넥스트사의 지분 16%인수에 만족했을까? 이만한 금액을 다른 신생기업에 투자했더라면 더 큰 지분을 차지할수 있었고 뉴스위크지기사처럼 "창립자의 첫 아들을 제외한 모든것을 살 수있다 고 호언 장담하던 그가 넥스트에 투자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명백 한 이유부터 짚어 나가도록 하자.
첫째, 페로는 사업을 할 때 엄격하고도 냉정하게 원칙을 지켜나가는 모험 자본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데 이런 사람들을 흔히 "천사"라고 불렀다.
"천사"라는 말은 브로드웨이 연극을 재정 적으로 지원하는 개인 투자가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들 "투자천사"는 위험 부담이 훨씬 큰 창업 초기에 다른 모험 자본가들보다 관대한 자세로 투자 하는 것을 즐겼다. 어떤 "천사"들은 경영권을 휘두르고 싶어 했다.
작성일자 : 1995.01.23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3)
예를 들어 필립 로마노라는 사람이 식당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신생 기업에 투자하여 천사가되려고 했을 때 그는 "그것은 내가 거는 모험이기 때문에 내 방식대로 할 것"
이라며 경영에 간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설계자 스스로가 모든것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페로는 넥스트에 서 권한을 행사하려하지 않았다.
페로가 넥스트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두번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억만장자 에게는 넥스트에 투자한 2천만달러가 하루 아침에 날라가든, 몇 배의 이윤을 남기든 그의 자산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로는 넥스트에 투자한 금액의 10배의 이득을 보고 싶다고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는말라 고 말했다.
페로는 넥스트사가 안전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넥스트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잡스와 함께 과거 매킨토시를 개발했고 다시 넥스트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들의 업적을 생각한다면 "컴퓨터 업계의 과거 25년 을 돌이켜 봐도 신생 기업치고 이들 처럼 위험 부담이 적은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때는 텍사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넥스트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유전 바로 옆을 파고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 분석가들은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테크놀로지 스톡워처스사의 대표 인 리처드 셰퍼는 넥스트가 책정한 1억2천6백만달러라는 자산 가치를페로가묵인했다는 사실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셰퍼는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진 회사라면 완제품을 개발한 단계가 아니라 제품을 출하하여 연 2천만내지 3천 만달러 가량의 매출을 올려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페로는 정상적인 산업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돈보다 활기가 넘치는 젊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넥스트에 투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30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넥스트에 젊음의활기가 넘친다는 것을 인정했다. 30대의 젊은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오래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고 그는 말했다. 페로는 잡스가 자주하는 것처럼 의학 및신경 생리학 학위 2개를 소지한 버드 트리블을 예로 들어가며 넥스트에는 특별히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있다고 자랑했다. 게다가 그는 교육 발전에 많은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작은 인문계 대학까지도 기증의 형태든 아니든, 넥스트 컴퓨터를 이용하여 특수 소프트웨어에 수록되어 있는유명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잡스의 설명에 매료되었다. 일년전 EDS를 GM에 넘겨주고 아직 페로 시스템스라는 컴퓨터 서비스회사를 설립하기 전 단계에 있던 페로는 어려운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잡스의 구상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퍼스널컴퓨터 혁명을 주도하는 선봉자였고, 페로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잡스는 그를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넥스트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혁명을 제일 잘 지켜 볼 수 있도록 맨앞좌석을 차지하는 것과 같았다.
넥스트는 또 페로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잡스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리의것을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컴퓨터를 꼭 미국에서 제조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이러한 의지는 일본의 위협을 안이하게만 생각하는 미국 산업계를 일깨우려는 페로의 이상과 맞아 떨어졌다. 그는 뉴욕에서 일본으로 수출되는 주요 품목은 고철과 폐지라고 곧잘 말하곤 했다. 이런 고철과 폐지는 자동차 와 전자 제품을 담은 상자가 되어 돌아온다. 미국은 보잘것 없는 세일즈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그는 통탄했다. 미국에서 생산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 를 가졌다.
미국이 자기가 개발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일본을 배우는 것이 낫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미국도 일본만큼 우수한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미국 산업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페 로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예술가인 노먼 록웰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혼합하여 놓은 이미지로 잡스를 묘사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위협을 응시하고 있는 익명의 프로레타리아 영웅을 묘사한 혁명 포스터를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다. 손과 작업복은 기름과 때로 얼룩져있고 얼굴에는 강철같은 굳은 결의를 나타내며 근육질인 몸은 육체미 선수를 연상케한다. 페로는지극히 미국적인 동기를 상상했던 것이다.
프로레타리아식 강철인간 대신에 전자 시대에 막노동으로 귀감이 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인물로, 펩시 세대 의 산업지도자로, 기강이 해이해진 동료들에게 모범이될 수 있는 인물로 그리고 돈을 빨리 벌려고 월가를 찾아가는 똑똑하고 최고중의 최고 인물로 백만장자인 잡스를 꼽을 수 있다.
작성일자 : 1994.01.2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4)
페로가 갖고 있는 잡스에 대한 이미지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이었다. 그렇기때문에 페로는넥스트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잡스를 천재쯤으로 생각했고, 그의 가족은 노먼 록웰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쯤으로 여겼다.
페로는내셔널 프레스 클럽(신문회관)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나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끝으로 말을 맺고자 한다. 아주 총명한 젊은이에 관한이야기인데 그는 너무 똑똑하여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공과강의를 청강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지만 너무 가난하여 대학에 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취미로 밤이면 차고에서 컴퓨터 칩을 가지고 여러가지 작업을 했다. 노먼 록웰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처럼 생긴 그의 아버지가 하루는 와서 "팔수 있는 것을 만들든지 아니면 일자리를 구해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지 60일만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무 상자안에 첫번째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넣게 되었다.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그가 사실상 세계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좀 야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페로가 거창하게 묘사한 잡스의 약력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잡스는 가난해서 대학 다닐 형편이 안되기도 했지만 시작한 공부를 마치려는 의지도 약했다. 오레곤주에서 등록금이 비싼 리드 대학에서 잡스는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졸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잡스 같은 사람이 갈 수 있는 대학은 리드말고도 많았다. 그리고 최초의 애플컴퓨터는 스티브 잡스가 아닌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발했음에 도 불구하고 페로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페로가 "기업인"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잡스가 "똑똑하고 겸손하며 자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잡스의절친한 친구조차도 잡스를 그렇게 묘사하지 않을 것이다. 잡스가 마의 거인들을 모두 정복했다는 페로의 다음과 같은 말을 또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젊은이는 자본 집약적인 IBM과 대결하여 모두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81년 발표되어 큰 성공을 거둔 IBM 퍼스널 컴퓨터와 그성공으로 타격을 입은 애플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누가 누구를 통째로 잡아먹었단 말인가.
또잡스가 자금관리에 있어서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현재 잡스가 50년 사업 경험과 맞먹는 사업수완을 가졌다는 페로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잡스는 2년을 더 기다려 주가가 8배로 뛸 때까지 참지 못하고 85년 최저 가격으로 애플사 주식을 거의 모두 매각해버렸다. 잡스가 얼마나 경솔했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잡스는 자기가 없으면애플이 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매킨토시 잡지의 창간인인 데이비드 번넬에게 애플이 망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만 남겨놓고 애플주 모두를 팔아버렸다고 말했다.(애플주 하나를 남긴 이유는 계속 주주 보고서를 받아보고 머지않아 닥쳐올 애플의 자멸을 지켜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잡스가 애플 주식을 팔았다고 해서 잡스가 장담한 대로 주가가 극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주식 및 증권거래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잡스 는 85년 중반 및 후반 단계별로 몇달에 걸쳐 그의 주식 대부분을 매각한 사실을 알수 있다. 그러나 애플 주식 값이 뛰어오르기 바로 직전 주식을 매각 함으로써 잡스가 입은 막대한 자금 손실에 대한 소문은 여러가지 양상을 띠며 잡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모험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잡스가 3억달러를 잃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금액은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이지만 증권거래소 자료를 보면 3억달러라는 수치도 낮게 책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계산 방법은 자료에 따라 다르고 주식 매각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실제로 손해 본 금액은 거의 7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시기를 못 맞추어 애플주를 청산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상쇄하기 위해 넥스트는 보통이 아닌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어야 했다.
86년 페로가 넥스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이유 중 마지막 이유를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다.
그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였기 때문에 가장 흥미 있는일이기도 하다. 페로는 79년 빌 게이츠로부터 당시 신생 기업이었던 마이크 로소프트사를 매입하지 않은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해 24세된 게이츠는 회사 매각에 관한 협의를 위해 댈러스에 있는 페로의 집무실로 갔다.
작성일자 : 1994.01.27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3)
예를 들어 필립 로마노라는 사람이 식당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신생 기업에 투자하여 천사가되려고 했을 때 그는 "그것은 내가 거는 모험이기 때문에 내 방식대로 할 것"
이라며 경영에 간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설계자 스스로가 모든것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페로는 넥스트에 서 권한을 행사하려하지 않았다.
페로가 넥스트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두번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억만장자 에게는 넥스트에 투자한 2천만달러가 하루 아침에 날라가든, 몇 배의 이윤을 남기든 그의 자산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로는 넥스트에 투자한 금액의 10배의 이득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는말라 고 말했다.
페로는 넥스트사가 안전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넥스트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잡스와 함께 과거 매킨토시를 개발했고 다시 넥스트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들의 업적을 생각한다면 "컴퓨터 업계의 과거 25년 을 돌이켜 봐도 신생 기업치고 이들 처럼 위험 부담이 적은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때는 텍사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넥스트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유전 바로 옆을 파고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 분석가들은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테크놀로지 스톡워처스사의 대표 인 리처드 셰퍼는 넥스트가 책정한 1억2천6백만달러라는 자산 가치를페로가묵인했다는 사실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셰퍼는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진 회사라면 완제품을 개발한 단계가 아니라 제품을 출하하여 연 2천만내지 3천 만달러 가량의 매출을 올려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페로는 정상적인 산업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돈보다 활기가 넘치는 젊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넥스트에 투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30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넥스트에 젊음의활기가 넘친다는 것을 인정했다. 30대의 젊은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오래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고 그는 말했다. 페로는 잡스가 자주하는 것처럼 의학 및신경 생리학 학위 2개를 소지한 버드 트리블을 예로 들어가며 넥스트에는 특별히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있다고 자랑했다. 게다가 그는 교육 발전에 많은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작은 인문계 대학까지도 기증의 형태든 아니든, 넥스트 컴퓨터를 이용하여 특수 소프트웨어에 수록되어 있는유명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잡스의 설명에 매료되었다. 일년전 EDS를 GM에 넘겨주고 아직 페로 시스템스라는 컴퓨터 서비스회사를 설립하기 전 단계에 있던 페로는 어려운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잡스의 구상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퍼스널컴퓨터 혁명을 주도하는 선봉자였고, 페로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잡스는 그를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넥스트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혁명을 제일 잘 지켜 볼 수 있도록 맨앞좌석을 차지하는 것과 같았다.
넥스트는 또 페로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잡스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리의것을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컴퓨터를 꼭 미국에서 제조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이러한 의지는 일본의 위협을 안이하게만 생각하는 미국 산업계를 일깨우려는 페로의 이상과 맞아 떨어졌다. 그는 뉴욕에서 일본으로 수출되는 주요 품목은 고철과 폐지라고 곧잘 말하곤 했다. 이런 고철과 폐지는 자동차 와 전자 제품을 담은 상자가 되어 돌아온다. 미국은 보잘것 없는 세일즈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그는 통탄했다. 미국에서 생산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 를 가졌다.
미국이 자기가 개발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일본을 배우는 것이 낫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미국도 일본만큼 우수한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미국 산업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페 로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예술가인 노먼 록웰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혼합하여 놓은 이미지로 잡스를 묘사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위협을 응시하고 있는 익명의 프로레타리아 영웅을 묘사한 혁명 포스터를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다. 손과 작업복은 기름과 때로 얼룩져있고 얼굴에는 강철같은 굳은 결의를 나타내며 근육질인 몸은 육체미 선수를 연상케한다. 페로는지극히 미국적인 동기를 상상했던 것이다.
프로레타리아식 강철인간 대신에 전자 시대에 막노동으로 귀감이 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인물로, 펩시 세대 의 산업지도자로, 기강이 해이해진 동료들에게 모범이될 수 있는 인물로 그리고 돈을 빨리 벌려고 월가를 찾아가는 똑똑하고 최고중의 최고 인물로 백만장자인 잡스를 꼽을 수 있다.
작성일자 : 1994.01.2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6)
넥스트에 투자한 스탠퍼드 및 카네기 멜론대학에 얽힌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대학들은 스탠퍼드와 카네기 멜론대학이 넥스트사를 조사하여 넥스 트의 재정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밖에 있는 비평가 들도 막대한 이권이 있기 때문에 두 대학이 명예를 포기하고라도 투자에 참여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뉴욕타임스"지는 그런 대학을 비난하는 사설 을실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혹에만 넘어갔지만 대학 총장들은 돈에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대학이 넥스트에 투자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잡스와 페로의 불가사의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대학이 신생기업에 투자한 경우가 있었다. 70년대부터 많은 대학은 투자형태를 다양화시켜 기업에 투자하여 지분을 소유하였다. 그린넬대학이 그 대학 졸업생이며 인텔사 창립자중 한사람인 로버트 노이스가 설립한 회사 에 투자하여 많은 이득을 본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대학이 한 회사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린넬 대학이 투자한 30만달러는 거의 30배 로 그 가치가 불어났다. 그러나 잡스가 제의한 조건이 위험부담이 있는 장기 적인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해도 대차대조표상으로도 앞뒤가 안맞는 제의였다.
스탠퍼드는 모험자본가들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넥스트의 재무사항을 조사하도록 했고 그 결과를 검토한 대학 투자가들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그러나 잡스는 높은 이윤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학 총장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도널드 케네디는 잡스를 좋은 친구로 생각 하고 있었고 그에게 아버지같은 충고를 즐겨했다. 케네디는 대학 직원들의반 대에도 불구하고 잡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잡스는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도 2명의 고위 간부의 도움을 받았다. 리처드 시어트 총장 그리고 아버지 같은다정한 친구였던 패트 크리신 부총장의 지지를 받았다. 잡스가 두 대학의고 위층 사람들과 절친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페로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학조차도 억만장자의 존재 앞에서는 굽힐 수밖에 없었다.
87년 잡스-페로간의 협상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스탠퍼드대학 교수 클럽에서 열린 파티석상에서 잡스는 넥스트사를 페로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영화 를 만든 네이던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날 저녁 식사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앞날을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넥스 트는 교육에 기여한다는 훌륭한 명분을 갖고 있고, 세계에 애플 Ⅱ와 매킨토 시를 선사한 잡스가 있고, 컴퓨터교육에 주력하는 2개 대학의 지지를 받고있고 돈뿐 아니라 입지가 확고한 사업가로서의 자문을 줄 수 있는 로스 페 로가 있었다. 그는 잡스와 그의 참모진들이 딴길로 새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는 제너럴 모터스(GM)로부터 돈을 받고 물러설때까지 제너럴 모터스사를지켜보며 비판적인 충고를 했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적대감을 일으키지 않는범위내에서 넥스트사의 충실한 야당이 될 이같은 생각에 고무되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자신은 진주를 만드는 조개 안의 모래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개는 나 때문에 고생을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관대했다. 그는 젊은 영웅들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을 고생시키려하지 않았다.
페로는 넥스트의 새로 구성된 이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CMU의 행정 관인 페트 크레신도 이사로 임명됐다. 크레신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잡스를칭찬했고 다재다능한 그를 부러워했다.
이사회의 세번째 좌석은 잡스가 차지했다. 이들 셋이 회사를 관리감독하는 사람들이었다.
잡스는 의도적으로 이런 조직을 구성했다. 잡스는 3명의 이사만 선출하고 나머지 두 자리는 꼭두각시를 내세워 자신의 열세를 보강토록 했다. 페로는 이사회에서는 공포의 인물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지만 잡스와 의견이 대립되면 자신의 의견을 누 그러뜨리는 상충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페로는 GM의 이사진들이 "꼭 두각시같다"고 비난했었지만 자기 자신도 같은 입장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아이로니컬한 일이다. 그러나 페로가 이윤을 바라보고넥스트에 투자한 것이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는 일년에 4차례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넥스트사 로 오거나 본인이 참석할 수 없으면 대리인을 참석시키거나 전화상으로 나머지 두명의 이사회 멤버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잡스와 넥스트 이사진들에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페로는 그들의 뛰어난 재능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일반 사람들에게 날카롭기로 유명한 그의 감독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작성일자 : 1994.02.06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6)
넥스트에 투자한 스탠퍼드 및 카네기 멜론대학에 얽힌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대학들은 스탠퍼드와 카네기 멜론대학이 넥스트사를 조사하여 넥스 트의 재정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밖에 있는 비평가 들도 막대한 이권이 있기 때문에 두 대학이 명예를 포기하고라도 투자에 참여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뉴욕타임스"지는 그런 대학을 비난하는 사설 을실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혹에만 넘어갔지만 대학 총장들은 돈에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대학이 넥스트에 투자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잡스와 페로의 불가사의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대학이 신생기업에 투자한 경우가 있었다. 70년대부터 많은 대학은 투자형태를 다양화시켜 기업에 투자하여 지분을 소유하였다. 그린넬대학이 그 대학 졸업생이며 인텔사 창립자중 한사람인 로버트 노이스가 설립한 회사 에 투자하여 많은 이득을 본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대학이 한 회사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린넬 대학이 투자한 30만달러는 거의 30배 로 그 가치가 불어났다. 그러나 잡스가 제의한 조건이 위험부담이 있는 장기 적인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해도 대차대조표상으로도 앞뒤가 안맞는 제의였다.
스탠퍼드는 모험자본가들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넥스트의 재무사항을 조사하도록 했고 그 결과를 검토한 대학 투자가들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그러나 잡스는 높은 이윤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학 총장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도널드 케네디는 잡스를 좋은 친구로 생각 하고 있었고 그에게 아버지같은 충고를 즐겨했다. 케네디는 대학 직원들의반 대에도 불구하고 잡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잡스는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도 2명의 고위 간부의 도움을 받았다. 리처드 시어트 총장 그리고 아버지 같은다정한 친구였던 패트 크리신 부총장의 지지를 받았다. 잡스가 두 대학의고 위층 사람들과 절친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페로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학조차도 억만장자의 존재 앞에서는 굽힐 수밖에 없었다.
87년 잡스-페로간의 협상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스탠퍼드대학 교수 클럽에서 열린 파티석상에서 잡스는 넥스트사를 페로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영화 를 만든 네이던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날 저녁 식사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앞날을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넥스 트는 교육에 기여한다는 훌륭한 명분을 갖고 있고, 세계에 애플 Ⅱ와 매킨토 시를 선사한 잡스가 있고, 컴퓨터교육에 주력하는 2개 대학의 지지를 받고있고 돈뿐 아니라 입지가 확고한 사업가로서의 자문을 줄 수 있는 로스 페 로가 있었다. 그는 잡스와 그의 참모진들이 딴길로 새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는 제너럴 모터스(GM)로부터 돈을 받고 물러설때까지 제너럴 모터스사를지켜보며 비판적인 충고를 했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적대감을 일으키지 않는범위내에서 넥스트사의 충실한 야당이 될 이같은 생각에 고무되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자신은 진주를 만드는 조개 안의 모래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개는 나 때문에 고생을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관대했다. 그는 젊은 영웅들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을 고생시키려하지 않았다.
페로는 넥스트의 새로 구성된 이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CMU의 행정 관인 페트 크레신도 이사로 임명됐다. 크레신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잡스를칭찬했고 다재다능한 그를 부러워했다.
이사회의 세번째 좌석은 잡스가 차지했다. 이들 셋이 회사를 관리감독하는 사람들이었다.
잡스는 의도적으로 이런 조직을 구성했다. 잡스는 3명의 이사만 선출하고 나머지 두 자리는 꼭두각시를 내세워 자신의 열세를 보강토록 했다. 페로는 이사회에서는 공포의 인물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지만 잡스와 의견이 대립되면 자신의 의견을 누 그러뜨리는 상충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페로는 GM의 이사진들이 "꼭 두각시같다"고 비난했었지만 자기 자신도 같은 입장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아이로니컬한 일이다. 그러나 페로가 이윤을 바라보고넥스트에 투자한 것이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는 일년에 4차례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넥스트사 로 오거나 본인이 참석할 수 없으면 대리인을 참석시키거나 전화상으로 나머지 두명의 이사회 멤버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잡스와 넥스트 이사진들에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페로는 그들의 뛰어난 재능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일반 사람들에게 날카롭기로 유명한 그의 감독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작성일자 : 1994.02.06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7)
후에 페로의 대통령 후보 출마를 도우려는 뜻에서 넥스트의 임원들은 페로가 넥스트의 이사회 이사였을때 얼마나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는가를 무심코 밝혔다. 예를 들어 버드 트리블은 페로가 넥스트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라고 항상 물어 보았고 그들에게 "당신들은 전문가들 이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잡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잔 반즈는 페로가 잡스와 의견충돌이 생기면 "스티브, 나는 당신에게 모든것을 맡겼기 대문에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지만 이 방법을 생각해 본적이 있나"라고 그를 확신시켰다는 예를 들면서 페로가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이런 관계는 페로와 잡스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유도했지만 잡스와 넥스트 는 페로의 뛰어난 지도력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람들은 페로가 넥스트를잘 이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넥스트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고 그는 투자가를 선택한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잡스의 생각은 옳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잡스는 이름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군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 잡스가 이사회를 구성할 때 자기와 그토록 절친한 사람들을 기용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조개 안에 약간이나마 모래가 들어갈수 있도록 했더라면 더 낳은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페로와 두 대학을 끌어들임으로써 잡스는 재정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아무런 계획 없이, 깊은 통찰력 없이, 그리고 일상 업무에 더 숙달된 사람들과 경영 책임을 분담하지 않고 잡스를 강요하는 사람 없이 갑자기 쏟아진 자금은 그를 방종에 빠뜨려 초창기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회사를 과대 평가하게 만들었다. 억만장자를 투자가로 얻은 넥스트는 일을 처리하는 솜씨가 더서툴러졌다. 잡스와 넥스트는 돈이 떨어지면 당연히 페로가 돈을 더 내놓을것이라고 생각했다.
87년 넥스트는 처음과 똑같은 위기를 맞았다. 과분하게 돈이 많았지만 그냥 일축해 버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소파나 램프, 커튼을 고르듯 컴퓨터를 골랐더라면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를 완성하여 발표하기까지 컴퓨터의 외양에 쏟아 부은 정성이 빛을 보았을 것이다. 넥스트 창립 당시부터 잡스는 컴퓨터의 외장에 시간과 자금을 아낌 없이 투자했다. 잡스는 세밀한 부분까지 빠뜨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검토하여 완벽성을 확인했다(내부에 사용되는 나사까지도 직접 확인했다). 그의 컴퓨터에 대한 비전은 순수했다. 즉 기능이야 어찌 됐건 컴퓨터 자체로서 의 가치를 인정 받아야했다. 그의 자존님이 완벽한 금속 덩어리로 결정화되 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잡스는 컴퓨터 부품들을 입방체형 상자 속에 내장해야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한번 마음먹은 것은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고 나갔듯이 이번에도 그 생각을 꼭 실현시킬 작정이었다. 그는 입방체 형태로 컴퓨터를 만들면 사람들에게 신선감을 주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어서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엔지니어들의 요구를 가볍게 거역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입방체의 모서리 길이는 1피트이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 상자 안에 들어갈 기판이나 기타 다른 부품들의 크기는 외부 상자의 크기에 맞춰져야 했다.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피트여야 했다. 이 크기는 그단 순성 때문에 우아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다른 경쟁사들의 컴퓨터 크기가 점점작아지고 있는 추세를 고려한다면 넥스트는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잡스는 애플사에 있을때 같이 일한 경험이 있던 산업 디자이너인 하트무트에스링거를 믿고 그의 계획을 대담하게 추진시켰다. 잡스는 입방체 디자인을 에스링거의 디자인 회사인 프로그 디자인사에 맡겼다. 그 디자인에 든 비용 은 밝혀진 바 없지만 랜드에게 지불된 금액만큼이나 막대한 돈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비록 랜드 자신도 받지 못하였지만 에스링거는 랜드와 같은조건을 내세웠다. 디자인의 기본 계약금에 추가해 넥스트는 컴퓨터 판매량에 따라 로열티를 지불키로 했다.
불행하게도 에스링거는 잡스처럼 자기 도취에 빠진 인물이었다. 다른 고객들 은 그의 방만한 성품을 견제했지만 잡스는 에스링거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재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작업하는 예술가"를 방해해서는 안되었다. 경비 의 과다에 개의치 않는 잡스 같은 고객을 확보한 에스링거는 심미적으로 볼때 획기적인 디자인을 고안해 냈지만 제조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넥스트사 직원들은 에스링거가 수년 동안 매달 수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잡스와 에스링거는 넥스트 제품을 사용할 잠재 고객들이 스미소니아 국립 박물관에 전시될 만큼 뛰어난 컴퓨터의 외양보다 컴퓨터의 기능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더 중요한 것은 입방체 모양은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외양을 만들기 위해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필요한 부품을 선택 사용했다는 것이다.
잡스가 입방체를 마그네슘으로 주조하여 만들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자 컴퓨터의 제조 비용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마그네슘은 주로 전구나 정밀 기계 그리고 폭죽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물질이다.
잡스는 마그네슘의 2가지 특성 때문에 컴퓨터 외피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 라고 확신했다. 이 소재는 강력했고 고객이 컴퓨터를 다룰때 플라스틱 외피 의 부드러운 촉감보다 견고한 느낌을 줄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또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가정용 컴퓨터의 인가 요구 조건으로 내세우는 무선 주파수 방해를 억제하는 전자파 방어막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당시 개인용 컴퓨터보다 더 강력한 컴퓨터도 가정용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FCC의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잡스는 "개인용 메인프레임"이라고 묘사한 그의 신제품 이 최고의 제품이 되기를 원했고 마그네슘은 그의 의지를 실현시키는데 많은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마그네슘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업체들은 마그네슘이 다루기 어렵고 가연성이며 주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용을 회피해 왔다. 마그네슘을 주형에 넣으면 플라스틱보다 빠른 속도로 굳기 때문에 공기 방울이 생기거나 다른 결함이 생길 가능성이 더욱 높다.
작성일자 : 1994.02.08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8)
에스링거는 넥스트에서 만들어낼 입방체는 플라토를 만족시킬 만큼 한치의 오차가 없는 완벽한 거이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안그래도 만들기 어려운 모양을 만들어 내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몰고 갔다. 에스링거는 눈속임없이 외피를 만들어 낼 주형은 모퉁이 없이 완벽한 입방체여야 한다고 했다.
이런규정은 상당한 비용을 요구했다. 어떤 물질을 주조하더라도 주형틀 가장자리에 약간의 모서리를 잡아주면 그 주조물을 빼기가 훨씬 수월하다. 링 모양의 팬에 빵을 굽는다고 생각해 보자. 팬 가장자리에 모가 나 있으면 빵을 빼기가 훨씬 쉬운 것과 같은 원리이다.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주형에도 4분의 1에 불과한 미미한 각도라도 각 모서리에 각을 잡아주면 훨씬 수월하게주형을 뜰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링거는 모서리 없는 입방체를 요구 했다.
에스링거가 요구하는 입방체를 만들 수 있는 특수 주형이 만들어졌다. 이 주형은 각 면이 서로 분리될 수 있고 주조물이 완성되면 각 면이 동시에 밖으로 벗겨지는 특수한 주형이었다. 이 주형을 만드는데만 65만달러가 들었고전국 구석구석을 수소문한 후에야 이런 특수한 기술을 갖춘 금속 주조 공장 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잡스는 마그네슘 외장은 그가 평소 좋다고 생각했던 레코드플레이어의 암과 같은 광택이 도는 검은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주형으로 떠서 만들어내는 주물은 주형이 맞물리는 부분에 가느다란 돌출선이 생기게 마련이다. 돌출선은 사포가 부착된 기계로 갈아 냈는데 그 기계를 조금만 세게누르면 가장자리에 상처가 남게되어 폐기처분 해야 했다.
그래서 넥스트는기계로 사포 작업을 하는 업체와 계약을 맺어 그 공정을 컴퓨터로 자동화시 켰다. 15만달러에 달하는 그 기계는 주형을 뜨면 외장 가장자리에 남게 되는돌출선을 제거하는 일만 했다.
개인용 컴퓨터의 외장은 일반적으로 베이지색으로 통일되어 왔지만 이를 넥 스트가 검은 색으로 만들게 되면 그 전통을 깨는 것이 된다. 또 검은 색으로는 흠을 가리기도 어려웠다.
엷은 광택이 도는 페인트는 판판한 표면 위에고르게 칠해 지지도 않았고 흠집을 덮어 주지도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페로는 넥스트측에 제너럴 모터스(GM)사의 페인트 전문가들 을 찾아가라고 제의하면서 직접 그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GM은 컴퓨터외장에페인트칠을 해달라는 넥스트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왜 페인트칠이 잘 안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검은 색은 그 색소의 특성상 결함을 가려주는데 가장 약한 색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GM은 결함이 제일 적은 자동차에만 검은색을 칠한다. 넥스트가 사용한 검은색 페인트는 컴퓨터를 출하 하기 위해 스티로폼에 넣기 전 싸는 플라스틱 봉지의 마찰에도 견디지 못할정도로 취약했다.
이 입방체 외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단점들을 통해서 잡스 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시행 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여 추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 나타나는 결점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직원들 이 잡스가 정한 입방체의 규격이 물리학 원칙 상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해 도 그들의 의견을 일축해 버렸다.
그는 모든것이 완벽해야만 만족스러워했다. 그 완벽성을 실현시키는데 드는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장을 개발하여 마지막까지 마무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초 넥스트가 계획했던 것보다 10배나 더 들었다.
비용이 많이 든다해도 잡스는 그의 계획을 수정하려하지 않았다. 넥스트의 고위 간부들은 모든 면에서 그랬듯이 잡스가 선택하는 기술 사양을 그대로받아들였다. 그들은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신생 기업에서 일하려면 위험 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잡스는 그들이 자기가 함께 일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일깨워 주었다(그런데 잡스가 넥스트이 전에 애플에서 일한 경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 한다면 그가 일했던 두개의 집단 중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작성일자 : 1994.02.10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39)
넥스트는 외부에서 자문을 주는 사람들에게 후한 대우를 해서 넥스트사 직원 들처럼 편한 마음으로 일하게끔 했다. 잡스는 불가능에 가까운 디자인을 고안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일찍이 애플에서도 일한적이 있던 데이비드 켈리 라는 디자이너는 넥스트의 입방체 외장을 만드는 일을 맡았고 모니터를 올려놓을 토션 바가 보이지 않게 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외장의 모양과 모니터를 디자인하는데 걸린 시간을 계산하면 6년간 투입된 사람의 노동력과 맞먹는다. 프로그디자인사처럼 데이비드 켈리 디자이너는 입장체외장 디자인 을 다 완성하여 그 제품이 발표되면 큰 찬사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불평없이 일을 했다.
잡스는 첨단 자동화장비가 갖추어진 회사내에서 컴퓨터를 제조하겠다는 계획 을 세웠고 그 계획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야 했는데 이는 후에 가장 어리석은 처사였음이 드러났다.
초기에 잡스는 훨씬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었다. 그는 컴퓨터 부품제조는 하청업체에 맡기고 넥스트는 팔로알토 사무실에서 컴퓨터조립및 테스트만 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어진 좁은 공간안에서 1백명에 불과한 직원을 가진 넥스트가 1억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86년 마음을 바꾸어 넥스트가 모든 제조공정을 직접 맡아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첨단자동화 장비를 갖추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품질에 대한 기준을 새로 설정하고 회사내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했다. 그는 로스 페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효율적인 제조활동을 할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페로는 "네가 넥스트 제품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오사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후에 말하곤했다. 잡스는 또 보안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회사내에서 제품을 제조하면 비밀이 누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장 좋은 비결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잡스는 그의 공장을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BMW를 사고 싶어하는 것처럼 넥스트 컴퓨터도 사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훌륭한 스포츠 카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아십니까. 유럽으로 가서 공장을 방문하여 거기서 직접 차를 사면 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잡스는 앞으로 컴퓨터를 구입할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고객은 자신이 주문한 컴퓨터를 보기 위해 바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와서 조립라인을 직접 살펴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새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생산자동화계획을 실현 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자금이 필요했다. 기존공장에 별도의 자금을 투입한다는 것은 막대한 부담이 되었다. 넥스트는 컴퓨터 하드웨어 생산에 우선권을 부여해서 하드웨어를 계속 판매해야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앞으로 넥스트의 강점이 될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해 노력을 집중적으로 쏟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잡스는 전자제품의 소형화 디자인기술에 매료되어 있었다. 컴퓨터 제조에는 반도체 칩 및 광섬유회로기판 기술이 핵심이다. 잡스는 "광섬유대신 실리콘 위에 탑재"하라는 모토를 내세 우면서 컴퓨터에 여러 개의 칩을 탑재할 필요가 없도록 하나의 IC에 여러 개의 칩을 통합할 수 있는 주문형 칩을 개발하도록 엔지니어들에게 지시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이 제품 이 완성될 때까지 대신 판매할 제품이 없어서 자금을 회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넥스트 자체에서 컴퓨터 부품을 조립하겠다는 잡스의 결정은 재정적으로도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넥스트와 같은 작은 컴퓨터 업체나 중소형 업체 혼자서는 도저히 경제적으로 감당해낼 수 없기때문에 실리콘밸리에 무수히 많은 하청업체에게 맡기는 것이 관례였다.
거대한 컴퓨터업체인 IBM과 디지털 이퀴프먼트사(DEC)도 컴퓨터 제조는 혼자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잡스는 이번에도 반대 방향으로 키를 돌렸다. 로스 페로의 묵인아래 잡스는 계산상으로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 그의 계획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페로는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제조업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수십억달러 상당의 매출을 올리는 제너럴 모터스와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넥스트사건물에 생산시설을 설치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작성일자 : 1994.02.13 (전자신문)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40)
잡스는 처음에 모든 사람들은 그의 요구를 모두 받아 들여야 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회사 근처건물에 입주한 임대자들을 내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가령 지올로지컬 서베이사와 같이 넥스트사보다 오래 전부터 그곳에 터전을 잡은 업체가 넥스트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리 없었다. 그 회사가 말을 듣지 않자 잡스는 워싱턴에 있는 앨런 크랜스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캘리포니아에서 자기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크랜스턴은 잡 스의 요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그 회사는 이전하지 않아도 되었다.
잡스는다른 곳을 알아 봐야 했기 때문에 결국 샌프란시스코만 건너편에 있는 프리몬트를 공장 부지로 정했다. 잡스와 수잔 반즈는 그들이 애플에 있을때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넥스트는 꼭 성공할 수 있다는 농담을 사석에서 자주 했었다. 그러나 잡스는 몇년전 완전 자동화된 매킨토시 공장 설립 당시저질렀던 실수를 넥스트 공장 설립 과정에서도 똑같이 범했다.
잡스는 마음 내키는대로 기계를 구입해서 설치했다. 가격보다 기계의 색이 더 중요시 되었다.
매킨토시 공장 설립과정에서 그렇게 했듯이 모든 기계와 로봇의 색깔이 서로 조화되도록 다시 칠해야 했다. 더구나 그는 비용이 얼마 들든지 조립 라인의 방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도록 모든 기계와 로봇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조립 라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그는 앞으로 공장을 견학하러 오는 고객들이 발코니를 따라 걸어가면서 컴퓨터 보드 제조 공정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조립 라인의 방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장시설은 잡스가 계획한 대로 한번도 마케팅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다. 공장은 일부 초청인사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공장 내부에는 밝은 조명이 설치되었고 아트 갤러리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색 벽면에다 특수 타일로 마루를 깔았다. 로비에 유리 벽을 세웠고 잡스의 지시에 따라 여러 번 이리저리 옮겨 가며 설치했다. 세련된 모양의 계단을 만들고 로비에는 2만달러나 되는 검은 가죽소파를 갖다 놓았다. 또 화장실은 최고급으로 디자인하고 세련된 비품만 사용해 "건축 다이제스트지"의 표지사진에 실릴 정도로 넥스트 공장의 디자인은 완벽했다.
코트를 걸어둘 만한 곳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실내장식 디자이너는 실내가 어수선해 보일까봐 옷장이나 옷걸이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직원들은 뾰죽하게 튀어 나온 곳을 찾아서 코트를 걸어야 했다.
잘정돈되고 근사한 넥스트사내부는 다른 공장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20 세기 후반의 근로자들은 이제 더이상 어두컴한 19세기식 공장에서 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잡스가 디자인한 공장은 사무직과 생산직 근로자들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환경을 조성했다.
프리몬트공장에서 일하는 넥스트 근로자 들은 팔로 알토의 애플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호화로운 환경 에서 일했다. 그러나 프리몬트 공장에는 두가지가 빠져 있었다. 즉 합리적인 재정운영과 인간성이 흐르는 근무환경이 결여된 것이다.
잡스는 매킨토시 공장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관리한데 대해 문책을 받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몰랐다. 그당시 애플Ⅱ 의 매출이 상당히 호조를 보였기 때문에 잡스의 실책이 얼마만큼의 손실을 가져왔는지 아무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매킨토시 공장운영 모델을 넥스트 공장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엉성한 구석이 많았다. 새로운 것을 추구해 보겠다는 열의에 찬 잡스는 넥스트 공장에서 교육에 적합한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겠다는 원래의 설립취지보다 미국에 있는 다른 업체와는 형태가 다른 공장을 만들었다는데 더 큰 자긍심을 가졌다. 미국에 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가보면 대체로 근로자의 수도 만을뿐 아니라임금수준도 낮았고 대부분 여성이거나 소수민족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고도의 자동화시설을 갖춘 넥스트 공장에서는 거의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은 고학력 백인근로자로 임금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컴퓨터 제조공정에 지나칠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가졌고 바로 곁에 똑똑한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을 거느리려고 했던 그의 개인적인 성향때문에 그는 사업 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그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소량이라도 비용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보다 고학력자들 의 수를 세기를 좋아했다. 다른 회사의 경우 전체공장근로자의 70%가 중.고 등학교 출신인 실정인데 넥스트는 생산직 근로자 70%가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자랑한 바 있다. 이런 최고급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넥스트는 거의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첨단 시설을 구비해야 했고 엔지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윈드터널을 자체 내에 구비해야 했다고 잡스는 말하고 있다. 이런 일은 상식에도 어긋났고 사업적인 측면에서 타당하지 못한 조치였다.
작성일자 : 1995.02.1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40)
잡스는 처음에 모든 사람들은 그의 요구를 모두 받아 들여야 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회사 근처건물에 입주한 임대자들을 내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가령 지올로지컬 서베이사와 같이 넥스트사보다 오래 전부터 그곳에 터전을 잡은 업체가 넥스트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리 없었다. 그 회사가 말을 듣지 않자 잡스는 워싱턴에 있는 앨런 크랜스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캘리포니아에서 자기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크랜스턴은 잡 스의 요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그 회사는 이전하지 않아도 되었다.
잡스는다른 곳을 알아 봐야 했기 때문에 결국 샌프란시스코만 건너편에 있는 프리몬트를 공장 부지로 정했다. 잡스와 수잔 반즈는 그들이 애플에 있을때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넥스트는 꼭 성공할 수 있다는 농담을 사석에서 자주 했었다. 그러나 잡스는 몇년전 완전 자동화된 매킨토시 공장 설립 당시저질렀던 실수를 넥스트 공장 설립 과정에서도 똑같이 범했다.
잡스는 마음 내키는대로 기계를 구입해서 설치했다. 가격보다 기계의 색이 더 중요시 되었다.
매킨토시 공장 설립과정에서 그렇게 했듯이 모든 기계와 로봇의 색깔이 서로 조화되도록 다시 칠해야 했다. 더구나 그는 비용이 얼마 들든지 조립 라인의 방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도록 모든 기계와 로봇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조립 라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그는 앞으로 공장을 견학하러 오는 고객들이 발코니를 따라 걸어가면서 컴퓨터 보드 제조 공정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조립 라인의 방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장시설은 잡스가 계획한 대로 한번도 마케팅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다. 공장은 일부 초청인사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공장 내부에는 밝은 조명이 설치되었고 아트 갤러리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색 벽면에다 특수 타일로 마루를 깔았다. 로비에 유리 벽을 세웠고 잡스의 지시에 따라 여러 번 이리저리 옮겨 가며 설치했다. 세련된 모양의 계단을 만들고 로비에는 2만달러나 되는 검은 가죽소파를 갖다 놓았다. 또 화장실은 최고급으로 디자인하고 세련된 비품만 사용해 "건축 다이제스트지"의 표지사진에 실릴 정도로 넥스트 공장의 디자인은 완벽했다.
코트를 걸어둘 만한 곳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실내장식 디자이너는 실내가 어수선해 보일까봐 옷장이나 옷걸이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직원들은 뾰죽하게 튀어 나온 곳을 찾아서 코트를 걸어야 했다.
잘정돈되고 근사한 넥스트사내부는 다른 공장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20 세기 후반의 근로자들은 이제 더이상 어두컴한 19세기식 공장에서 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잡스가 디자인한 공장은 사무직과 생산직 근로자들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환경을 조성했다.
프리몬트공장에서 일하는 넥스트 근로자 들은 팔로 알토의 애플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호화로운 환경 에서 일했다. 그러나 프리몬트 공장에는 두가지가 빠져 있었다. 즉 합리적인 재정운영과 인간성이 흐르는 근무환경이 결여된 것이다.
잡스는 매킨토시 공장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관리한데 대해 문책을 받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몰랐다. 그당시 애플Ⅱ 의 매출이 상당히 호조를 보였기 때문에 잡스의 실책이 얼마만큼의 손실을 가져왔는지 아무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매킨토시 공장운영 모델을 넥스트 공장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엉성한 구석이 많았다. 새로운 것을 추구해 보겠다는 열의에 찬 잡스는 넥스트 공장에서 교육에 적합한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겠다는 원래의 설립취지보다 미국에 있는 다른 업체와는 형태가 다른 공장을 만들었다는데 더 큰 자긍심을 가졌다. 미국에 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가보면 대체로 근로자의 수도 만을뿐 아니라임금수준도 낮았고 대부분 여성이거나 소수민족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고도의 자동화시설을 갖춘 넥스트 공장에서는 거의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은 고학력 백인근로자로 임금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컴퓨터 제조공정에 지나칠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가졌고 바로 곁에 똑똑한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을 거느리려고 했던 그의 개인적인 성향때문에 그는 사업 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그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소량이라도 비용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보다 고학력자들 의 수를 세기를 좋아했다. 다른 회사의 경우 전체공장근로자의 70%가 중.고 등학교 출신인 실정인데 넥스트는 생산직 근로자 70%가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자랑한 바 있다. 이런 최고급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넥스트는 거의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첨단 시설을 구비해야 했고 엔지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윈드터널을 자체 내에 구비해야 했다고 잡스는 말하고 있다. 이런 일은 상식에도 어긋났고 사업적인 측면에서 타당하지 못한 조치였다.
작성일자 : 199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