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많이 들었던 목소리. 그러나 한동안 듣지 못했던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 대한 기억을 순간적으로 더듬어 보았다.
그래, 그 스님 목소리다. 삼년을 기한하고 만행을 떠난 덕신 스님의 목소리였다.
그는 만행 길에서 내가 쓴 그날 아침의 글을 본 것이다. 그날 아침에 내가 쓴 글의 제목이 ‘평화의 햇살’이었다.
그는 그 제목으로 나를 부른 것이다. 반가웠다. 얼마나 됐을까. 시간을 샘해 보았다. 근 팔 개월 쯤 되는 것만 같다.
그가 떠나기 얼마 전에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았었다. 자기 대신 방송을 좀 맡아서 해줄 수 없냐고. 나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말했다.
“나 그동안 너무 서울에서만 살아온 것 같아. 서울을 좀 떠나보려고. 그동안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소임이나 그동안 하던 방송일도 모두 놓고 정말 내 자신을 위한 만행을 한번 해보고 싶어. 한 삼년 걸릴 거야. 선방에 들어가 정진도 해보고 걸어서 우리나라 사찰을 정말 수행자의 가슴으로 만나고만 싶어.”
그는 지금 강원도에서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강릉 용현사의 객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강릉 시내에서 내게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답했다.
“잘 지내. 많이 걷고 그리고 버스 안에서 많은 사람들도 만나지. 그리고 더러는 밖에서 추위에 떨면서 잠을 자기도 해. 잘 재워주는 절도 있지만 객실이 없다고 재워주지 않는 절도 있거든.
그럴 때면 밖에서 그냥 자는 거지. 춥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좋은 점도 있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맑고 아름다운 별을 밖에서 잘 때면 만나거든. 아무리 추워도 절대 여관에 가지는 않아. 왜냐하면 여관에 가게 되면 별을 잃어버리니까. 그래서 내 걸망 속에 꼭 누비를 넣고 다니지.”
별을 사랑함으로 밤의 추위를 잊는 스님. 절 집 객실의 문이 무정하게 닫혀도 그 비정함의 푸념을 별에 대한 사랑으로 잔잔하게 녹여 내며 밤을 밖에서 지새우는 스님. 나는 문득 그가 부러웠다.
일체를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고 밖에서 잠을 자며 별에 대한 사랑으로 추위를 잊는 그의 따뜻한 마음자리가 부러웠다.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 인데 어디로 가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보현사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맑다. 떠나는 자의 자유가 물씬 느껴진다. 나도 문득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떠남으로 인해 자기내면의 사랑을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그의 목소리가 만행은 떠남이 아니라 내면의 사랑을 만나는 것이라고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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