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재난을 두려워 말라. 재난은 곧 종말의 시작인데, 이 종말은 하느님의 심판이며, 끝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한 작업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재난, 어려움, 곤경, 역경 이런 것들로 과거를 심판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 곧 종교적으로 말할 때는 구원에 이르는 첫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재난의 끝에 뭐가 온다고 했습니까. 바로 사람의 아들, 곧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면서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같은 장 26절에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제가 지난주에 컴퓨터 해킹을 당했습니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는데, 잡을 수도 없고, 저는 다음메일을 사용하는데, 복구도 안 된다고 합니다. 모든 편지가 다 날아갔습니다. 보관 필요성이 있는 메일들, 사진들, 서류들, 양식들, 그동안 써놓았던 논문, 글들...모두 날아갔습니다. 당분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들도 모두 중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별일을 다 당합니다. 뉴스에서나 볼 법한 사건사고들을 직간접적으로 나도 당하면서 살게 마련입니다. 이런 일들의 대부분은 내가 잘못해서, 나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또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당하는 천재지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건강을 해치거나(몸 해칠 줄 뻔히 알면서 술 마시고 담배 핍니다.), 빚보증을 잘못서거나, 도박처럼 부주의하고, 과욕을 부림으로써 당하는 예견된 사건과 사고들이 있는가 하면, 태풍, 물난리, 뛰어드는 차, 사고 등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당하는 사건사고도 있습니다.
하여간 뭐가 되었든 간에 그것이 예견되었던, 아니면 느닷없이 당하든 이런 일들을 당하면 일상이 완전히 깨어집니다. 직장을 잃기도 하고,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기도 하고, 가족을 잃기도 하고, 건강을 잃기도 하고,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동안 쌓아온 명예나 체면이 한순간에 다 날아가기도 합니다. 마치 제 메일함에 있는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듯이 한순간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재난의 시작이 됩니다. 옛말에도 좋은 일은 하나씩 오고, 나쁜 일은 떼로 온다고 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은 연쇄작용을 일으킵니다. 메일함에 보관되고 있던 중요한 자료들이 없어져 버리니까, 다음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 자료들을 다시 만들려면 며칠 고생을 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면 또 건강도 해치게 됩니다. 또 짜증을 부리게 되면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연쇄작용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그 재난이 시작되고, 그리고 심판 받고, 사람의 아들이 내려오고, 즉 구원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항상 너무 큰 용량의 제 메일함을 보면서 정리를 한 번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너무 계통 없이 저장을 해두어서 큰 용량의 메일을 받을 때는 다른 데에 일부 메일을 백업 받아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 정리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하지를 못하던 차였습니다. 거기서 뭐 한 번 찾으려면 다시 하는 게 더 빠를 만치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해서, 정말 10여 년 간 모아온 내 자료들은 다 날아갔지만, 모든 것을 비우고 계통을 세워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로 했습니다. 이제 눈도 침침하고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그 일하는 방식도 이제 컴퓨터 앞에서 목 쭉 빼고 앉아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삼아 직접 찾아가고, 얼굴 맞대고, 부딪치면서 해야겠구나... 새로운 방법으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 두어야지 그만 두어야지 하면서도 당장 그만 두면 뭐 먹고 사나 하면서 그냥 다닙니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그 일상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 일상을 깨기 위해서는 뭔가 계기가 있어야만 되는데, 그 외적인 계기가 바로 재난의 시작입니다. 직장 잘린 김에 하고 싶은 일 시작할 수 있고, 집이 무너져야 다시 지을 수 있고, 망해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중병에 걸리면 참 불행한 일이지만, 또 그래야만 좀 쉬면서 무어가 잘못되었는가 생각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일상을 깨는 것은 참 어렵고 두렵기까지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하기 힘든 재난의 시작을 줌으로써 그 일상을 외적으로 깨주십니다.
재난, 고난, 역경, 고통 바로 이런 것들은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 변곡점이 되고, 터닝포인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종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재난으로 과거를 털어버리는 심판의 계기로 삼으시고, 그 종말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재난을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알아봅니다. 우리가 보통 이런 재난이나 곤경이나 어려움이 닥치면 일상이 깨짐으로 해서 당황하게 되고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듭니다. 이럴 때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 때 현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납니다. 현명한 사람은 제대로 된 곳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엄한 데 가서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프면 의사에게 가야 하는데 무당집에 간다든가,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내 주머니를 털려고 하는데 가서 복권을 산다든가, 시험을 잘 치르려면 도서관을 가야 하는데, 점집을 간다든가.... 현명한 사람은 나름대로 도움을 받거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제대로 찾아가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엄한 곳에 가서 시간 낭비하고 일을 더 악화시키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찾아가고, 전문가를 찾아가는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냥 이 세상을 조금 잘 사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물론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해결이라는 것이 나타나는 증세의 완화이지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암에 걸리는 재난을 당합니다. 말기암환자입니다. 그가 살아보겠다고 무당집에 가서 굿판을 벌이거나, 병을 낫겠다고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를 한다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보다 현명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그 병에 권위를 갖고 있는 의사를 찾아가 수술을 받을 겁니다. 수술이 잘 되면 어느 정도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재발할 수도 있고, 전이가 될 수도 있고, 항암치료라는 어려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고, 여전히 죽음의 공포에서는 헤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기에 처하고, 곤경에 빠지고, 재난을 당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되고, 돈이 없으면 은행에 가서 돈을 대출 받아야 하고, 시험을 잘 보려면 잘 가르치는 학원을 찾아가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성서를 통해서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물어보아야 합니다. 성서를 기반으로 묻고 묵상하고 성찰해봐야 합니다.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고 비우고, 그 비운 곳에 하느님이 주시는 평안과 지혜와 용기를 담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병원에 가고, 수술 받으러 가고, 계약하러 가고, 싸우러 가야 합니다.
이때 성서를 잘 모르면, 기도할 줄 모르면, 또 그것을 해석할 줄 모르면 그래도 성경 몇 줄 더 읽은 사제에게 물어보고 상의하면 됩니다. 제게 의료상담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시기 전에 수술을 받기 전에 하느님이 주시는 평안과 용기를 가져가라는 겁니다. 돈을 구하러 갈 때 그 방법을 제제 상의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프면 수술 받기 전에 잠시 성당에 와서 기도하고 가십시오. 시험 보러 가기 전에 그저 몇 분 들러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재난을 당했을 때, 고통 속에 빠졌을 때 조용히 성당에 와서 고요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잠시라도 갖으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퇴원할 때도 바로 집에 가시지 말고 잠시 들러서 감사기도 드리고 가십시오. 5분이면 됩니다. 재난이 끝났을 때, 곤경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잠시 들러서 감사기도 드리고 가십시오. 절대 교만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과 그냥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하느님의 무슨 전능하신 힘이 도와준다거나,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나를 성찰하고 비우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과 소통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게 된다는 다른 말이며, 이 모두를 그리스도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겸양, 겸손, 순응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지막 때에 재난이 시작되는데, 그 때에는 위선과 거짓이 판을 치고, 악이 선을 이길 터인데, 속지말고 우왕좌왕하지 마라. 이 재난 없이는 종말도 없고, 심판도 없고, 구원도 없다. 위기 없이는 기화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의 터닝포인트로 삼아라. 구원의 계기로 삼아라.
많이 힘드시죠? 요즘 우리 교인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거짓에 속지마시고, 항상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와 평안과 용기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역경과 어려움을 기쁘게 겸허히 겪으시면서 새 세상을 희망하시기 바랍니다.
위기가 크면 클수록, 재난이 크면 클수록, 그 기회와 구원은 더 클 것입니다. 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