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원천기술이 조선궁중의 비방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조선시대 약탕감 조지서가 지은 성의학 전문서 성기보감(性器寶鑑)은 그 내용과 효능이 탁월하여 궁중의 비방으로 내려오던 중 을미사변 이후 일본에 빼앗겨 국내에는 없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책이 국립박물관 고문서실에서 필사본이 발견되어 말로만 구전 되던것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성기보감은 고려시대 향약구급방과 조선중기 동의보감과 쌍벽을 이루는 저서였다.
성기보감에는 태백산 깊은 계곡에 동면직전의 뱀과 남자들에 좋다는 69가지 약재와 함께 3일간 탕을 다려 엑기스를 만드는 비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탕액을 복용하면 일주일간 물건이 오그라들지 않아 이름을 ‘비(非) 오그라탕’ 라고 불렀다.
이러한 조선 궁중의 비방은 소문을 타고 중국을 거쳐 실크로드를 통해 전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비오그라탕'의 뛰어난 성능을 전해 들은 서양인들은 결국 배를 타고 조선에까지 오게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흥선대원군은 '비오그라탕' 의 조제 비법이 수록된 (성기보감)이 미개한 서양인들의 손에 넘어가 성도덕이 문란해 지는것을 막고자 강력한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는 1866년에 7척의 군함을 앞세워 강화도를 점령하였으나 대원군은 이들을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격퇴하였으니 이를 병인양요라고 한다.
또한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는 길을 잘못 들어 대동강에서 '비오그라탕'을 팔 것을 요구하다 평양백성과 충돌하여 불타는 일이 있었고, 이에 미국의 군함이 강화도를 공격하였으나 조선의 수비대가 이들을 광성보와 갑곶에서 격퇴하였으니, 이를 신미양요(1871년)라고 부른다.
이처럼 조상들은 뛰어난 의학기술과 굳건한 의지로 지켜낸 민족의 명약 '비오그라탕'의 조제비법이 수록된 '성기보감'이 명성황후가 관리하고 있다는 비밀을 안 일본은 무사와 깡패를 동원하여 궁중을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성기보감'을 탈취해간 사건이 을미사변(1895년)으로 참으로 원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일본이 탈취해간 비서는 태평양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으며, 결국 '비오그라탕'의 비밀제조술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후 승전국인 미국에 또다시 전리품으로 빼앗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비오그라탕'의 비법을 디욱 연구하여 분무제를 개발하였으니 이를 일명 '칙칙이'라고 불렀으며, 전후 미국이 포르노산업에서 전 세계를 주름잡고 외화를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비오그라탕'의 탁월한 효능에 놀란 미국정부는 대대적인 투자와 연구개발끝에 액상의 탕약을 보관과 복용이 간편한 농축알약을 만들었고 명칭을 '비오그라'에서 약간 바꾸어 '비아그라'로 탄생하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 때 국력의 쇠약함으로 인해 우리 조상의 원천기술을 외국에 빼앗겨 버리고, 좋은 외화획득의 기회를 날려버렸으니 다시 한 번 국력을 신장하여 자주국방의 소중함이 절실이 느껴지는 사건이다.
첫댓글 비오그라탕에 이런 유래가 있었군요
그냥 남자들에게 좋다..그런 설로만 들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배웁니다.
역사까지 곁들어지니 더더욱 와닿는것같군요~
비오그라탕....ㅎ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