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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8
복음을 안다는 것은 십자가를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생명의 원리이며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몸소 보이신 삶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었고 교회를 낳았고 십자가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공주야! 복음의 내용과 전달 방식 중 복음의 내용에 대해 다루고 있구나. 본문은 세상이 무가치하게 여기는 ‘십자가의 메시아’에 집중한다.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야.
To know the gospel is to know the cross. The cross is the principle of life and the order of the kingdom of God. It is the way of God's existence and also the life that Jesus Christ himself showed to save us. Therefore, he achieved the salvation of the cross, gave birth to a church, and the cross beat the world. Princess! You are dealing with the contents of the gospel among the contents and delivery methods. The text focuses on the "Messiah of the Cross," which the world considers worthless. You should be on high al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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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지혜와 총명을 페하는 하나님의 지혜란다. 하나님, 메시아, 구원자가 죽다니, 그러고도 구원할 수 있다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자기 지혜로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아주 미련한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삼게 하셨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세상의 능력을 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The cross is God's wisdom, which the world cannot understand and passes all the wisdom and intelligence of the world. It would have been unimaginable that God, Messiah, and the savior could die and still save. Self wisdom in this world cannot know or explain God's history through the cross. God made his people in a very stupid way to convey the degree of the cross. The cross is the power of the world, and His Majesty is God's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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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에게서 출애굽을 능가할 행동을 기대했던 유대인에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저주를 받고 죽은 패배 자였고(신21:23)걸림돌이었으며, 지혜를 추구하던 헬라인에게도 미련하고 무모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지혜에 철저한 자에게만 그것이 초월자 하나님의 구원의 힘이요 지혜가 된다. 끊임없이 내게 사랑받을 힘과 자원이 있고 절대 무시당해서는 안될 만큼 강한 자임을 증명하라는 세상의 요구 앞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에 참여하자.
Jesus on the cross to the Jews, who expected action from Messiah to surpass Exodus, was a cursed and dead loser (God 21:23), and must have been stupid and reckless even to Hellain, who was seeking wisdom. Only to those who are thorough in their abilities and wisdom, it becomes the power of God's salvation and wisdom. In the face of the world's demand to prove that I have the power and resources to be loved constantly and that I am strong enough not to be ignored, let us participate in God's power and victory with the love of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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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십자가는 이제 그것을 믿는 자들을 진정한 지혜 자와 능력자로 창조한다. 그 십자가를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자,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 그분의 성령을 의지하여 사는 자가 갖은 반대와 오해 속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살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을 자랑하는 성도가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구속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다. 십자가가 우리를 그렇게 창조할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 지혜, 십자가가 내게는 걸림돌인가, 생명의 길인가? 왜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인가?
The cross, God's wisdom and power, now creates those who believe in it as true wisdom and powers. Along the cross, those who deny themselves and have Jesus as their master, those who live by his word, and those who rely on his Holy Spirit will be able to survive the kingdom of God in opposition and misunderstanding. He will be a saint who prides himself on the gospel. That is the salvation in Christ that wisdom, righteousness, holiness, and restraint us. That is how the cross will create us. Therefore the gospel without a cross is not the gospel. Is righteousness, holiness, restraint, wisdom, and the cross the obstacle to me or the path of life? Why is the cross the core of the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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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방법과 십자가의 메시아(18-25)
십자가의 역설:18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구원 방법:19-20
세상의 추구와 우리의 전도 내용:22-26
십자가의 메시아와 독자들과의 관계(26-31)
독자들의 구원 이전 상황:26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이유:27-29
하나님의 구원 방법의 결과: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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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가(18a)
멸망하는 자들에게는(18b)
미련한 것이요(18c)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18d)
하나님의 능력이라(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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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바 내가(19a)
지혜 있는 자들의(19b)
지혜를 멸하고(19c)
총명한 자들의(19d)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1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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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자가 (20a)
어디 있느뇨(20b)
선비가 어디 있느뇨(20c)
이 세대에(20d)
변사가 어디 있느뇨(20e)
하나님께서(20f)
이 세상의 지혜를(20g)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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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에(21a)
있어서는(21b)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21c)
하나님을(21d)
알지 못하는 고로(21e)
하나님께서(21f)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21g)
믿는 자들을(21h)
구원하시기를(21i)
기뻐하셨도다(21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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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22a)
표적을 구하고(22b)
헬라인은(22c)
지혜를 찾으나(2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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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23a)
십자가에 못 박힌(23b)
그리스도를 전하니(23c)
유대인에게는(23d)
거리끼는 것이요(23e)
이방인에게는(23f)
미련한 것이로되(2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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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부르심을 입은(24a)
자들에게는(24b)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24c)
그리스도는(24d)
하나님의 능력이요(24e)
하나님의 지혜니라(2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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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미련한 것이(25a)
사람보다 지혜 있고(25b)
하나님의 약한 것이(25c)
사람보다 강하니라(2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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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너희를(26a)
부르심을 보라(26b)
육체를 따라(26c)
지혜 있는 자가(26d)
많지 아니하며(26e)
능한 자가(26f)
많지 아니하며(26g)
문벌 좋은 자가(26h)
많지 아니 하도다(2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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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께서(27a)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27b)
택하사(27c)
지혜 있는 자들을(27d)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27e)
세상의 약한 것들을(27f)
택하사(27g)
강한 것들을(27h)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2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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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28a)
세상의 천한 것들과(28b)
멸시 받는 것들과(28c)
없는 것들을 택하사(28d)
있는 것들을(28e)
폐하려 하시나니(2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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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29a)
아무 육체라도(29b)
하나님 앞에서(29c)
자랑하지 못하게(29d)
하려 하심이라(2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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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30a)
하나님께로부터 나서(30b)
그리스도 예수(30c)
안에 있고(30d)
예수는(30e)
하나님께 로서(30f)
나와서(3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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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30h)
지혜와 의로움과(30i)
거룩함과(30j)
구속함이 되셨으니(3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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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바(31a)
자랑하는 자는(31b)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31c)
같게 하려 함이니라(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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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_ the cross, the wisdom of God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_ the cross, the power of God
십자가는 진정한 창조의 길_ The cross is the path of true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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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와 연약한 자를 부르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이 부끄럽게 여기는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을 부끄럽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위대한 복음을 붙잡고 제 평생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Praise be to the greatness of God's wisdom and ability, who called on the foolish and the weak to shame the strong. The cross of Christ is an event that the world is ashamed of, but in reality it is an event that makes the world ashamed. May this great gospel be the life of Christ for all my life.
2026.6.3.wed. Clay
신학 비평//
십자가는 왜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방식인가? 십자가는 단순한 처형 도구가 아닙니다. 바울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식”이며,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 존재하시는 “방법”입니다. 세상은 힘으로 이기고, 지혜로 증명하고, 성공으로 자기를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반대로 움직이십니다. 약함으로 강함을 드러내고,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낳고, 패배처럼 보이는 사건을 통해 역사를 뒤집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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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십자가는 단지 구원의 입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는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원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헬라인은 논리와 철학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형당한 메시아를 내세우십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도 실패이고 철학적으로도 모순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낌이고 헬라인에게는 미련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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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로 그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한 지혜를 무너뜨리십니다. 여기서 바울의 급진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단지 “강한 자를 도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한 것, 없는 것, 멸시받는 것을 택하여 있는 것을 폐하십니다. 이는 인간의 자랑 체계를 해체하려는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세상은 스펙과 능력과 자기 증명을 통해 존재 가치를 확보하려 하지만, 십자가는 “너는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혁명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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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 미화가 아닙니다. 자기 학대나 패배주의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자기 중심성의 죽음”입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신이 되려는 욕망의 붕괴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인간의 자아 체계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인간을 창조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존재를 하나님이 십자가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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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회의 위기도 여기서 드러납니다. 십자가 없는 복음은 성공학이 되고, 자기계발 종교가 됩니다. 능력은 말하지만 자기 부인은 사라지고, 축복은 말하지만 희생은 지워집니다. 그러면 교회는 세상과 다른 질서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에게 “십자가를 잃으면 복음을 잃는다”고 경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강해야 하고, 증명해야 하고, 무시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소모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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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세상의 인정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존재하는가?” 바울에게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세상은 힘으로 세계를 유지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계를 다시 창조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약함 속에서 생명을 일으키는 힘, 죽음을 통과하여 새 창조를 낳는 힘, 그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