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7년 리스트는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를 가사로 하여 가곡을 작곡하였다. 시적인 사랑의 진실을 노래한 무언가(無言歌)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곡에 담긴 사랑의 감격은 매우 깊은 인상을 준다. 시의 내용은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을 때, 아직 살아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라라는 내용이다.
이 곡이 바로 이후 전 세계에 ‘사랑의 꿈’이라고 알려지게 된 작품이다. 이어 1849년 리스트는 독일 시인 울란트의 시〈고귀한 사랑〉과 〈가장 행복한 죽음〉에 음악을 붙여 두 가곡을 작곡하였다.
이후 리스트는 이 세 개의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1850년 〈사랑의 꿈, 3개의 녹턴〉(Liebersträume, 3 Notturnos)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피아노 버전에서는 ‘고귀한 사랑’이 1번, ‘가장 행복한 죽음’이 2번,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가 3번이다. 현재는 1번과 2번은 잊혀지고 3번만이 「사랑의 꿈」의 제목으로 연주되고 있다.
울란트의 두 개의 시와 프라일리그라트의 시는 세 개의 다른 사랑을 묘사한다. 첫 번째 노래인 울란트의 ‘고귀한 사랑’은 성스럽고 종교적인 사랑이다. 반면, 두 번째 노래인 울란트의 ‘가장 행복한 죽음’은 에로틱한 사랑을 묘사한다. 여기서 ‘죽음’이란 은유적 표현이다. 그리고 세 번째 노래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조건 없는 성숙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를 경고하며, 사랑할 수 있을 때 맘껏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프라일리그라트-독일 시인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언젠가는 그대로 무덤에 묻힐 날이 오리라
탄식할 날이 오리라
그대의 심장이 불타올라
마음속에 품은 연정, 그것을 사랑하라
그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언제나 그대를 즐겁게 해주고
한 순간도 그 사람을 슬프게 하지 말라, 말은 삼가고
나쁜 말일랑 즉시 하지 말라
또 다른 사람이 가서 탄식을 한다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애통해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대는 무덤가에 무릎을 꿇고
슬피 눈물 글썽이며, 더 이상 그 사람을 볼 수가 없게 된다
오래되고 눅눅한 묘지의 풀 속에 두 눈 감춰져 있네
그 때 그 대는 말 하라라. 오, 여기 그대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라고
내가 그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면 용서해 주오
오, 신이시여 악의는 없었나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대 음성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네요
기꺼이 안아달라고 다가오지도 않네요
자주 그대에게 입 맞추던 입술은
난 그대를 오래전에 용서했어요..라고 말도 안 하네요
그대와 그대의 혹독한 말 주변에는 뜨거운 눈물이
그대 잠들어 있어 조용하다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애통해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리스트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기에 피아노 레슨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이 통상산업부 장관의 딸인 카롤린이었다. 두 사람은 카롤린 어머니 승낙하에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용인했던 카롤린의 어머니가 죽고 나자 딸을 귀족이 아닌 평민과, 더더욱 예술가와 결혼시킬 생각이 없었던 아버지는 피아노 레슨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딸을 귀족과 결혼시켰다. 이에 절망한 리스트는 또다시 깊은 허무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두사람은 거의 20년이 지나 뒤에 재회하게 될 것이다.
그 뒤로 리스트는 마리 다구 백작부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등 여러 여성과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한다. 특히 마리 다구부인과 결렬하고 화려한 사랑이 끝나고 만난 비트겐슈타인 부인은 반대로 지적이고 차분한 여성이었다.
▲리스트와 사랑에 빠진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1847년, 리스트는 키예프에서 있었던 한 연주회에서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만나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공작부인은 리스트에게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줄이고, 작곡에 전념하라고 권유했다. 같은 해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 악장으로 취임했는데, 공작부인의 충고대로 이때부터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접고 궁정 악장 일과 작곡에만 몰두했다. 리스트는 궁정 악단의 지휘자로 수많은 작품을 지휘했는데, 이 경험이 관현악곡을 쓰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리스트의 대표적인 교향시가 대부분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리스트는 공작부인과 결혼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교황청에서 공작부인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톨릭에서는 이혼을 원천적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크게 실망한 리스트는 또다시 성직자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었으며, 1865년에 마침내 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편 리스스튼 다구 부인과의 사랑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해준 그녀를 만나 〈위안Consolation〉이라는 곡을 작곡했다. 그가 당시 느낀 행복이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통해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독일 시인 프라일리크라트의 시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으로 가곡을 작곡했고, 다시 이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꿈」이다.
첫댓글 덕분에 오랫만에 다시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도 정말 좋고 곡도 너무 좋네요
즐감해요
제목처럼 감미롭네요~~
넵..감사합니다.
음악 들으면서 시를 다시 읽어보니 새롭네요
넵..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