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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
{복음}*만나 먹고도 죽었다. 요한복음 6장 30-36절(KJV)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평하지 못하여서 누구는 많이 먹고 죽고, 어떤 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습니다. 그러나 많이 먹든지 작게 먹든지 그 양식을 먹는 자는 죽는 것이 확실합니다. ◐천국비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생명/ 계란(유정란) 전파, 아기의 일생10달, / 인생120년 / 예수님 왕국- 영원의 세계)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양식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땅의 양식은 썩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자꾸 먹어도 다시 배가 고프고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목마른 한 여인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13-15절 “13.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구든지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15. 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이 물을 내게 주사 내가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 또 여기로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 일용을 위한 ‘썩는 양식’ ➤요한복음 6장27절에는 “27.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그 양식을 위해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봉인(封印)하셨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 가지 양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매일 육체를 위해 먹는 ‘썩는 양식’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매일 먹어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것을 ‘썩는 양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양식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일차적인 관심은 먹이입니다. 종족 번식과 생존을 위한 ‘먹이 사냥’이 전부입니다. 둘째, 매일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무리 음식이 많아도 먹은 것 외에는 소화를 시키지 못합니다. 셋째,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세상은 먹이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때로는 전쟁도 불사합니다. 결국 전쟁은 ‘먹이’ 쟁탈입니다. 사람들이 식탁을 꽃으로 장식하고 멋진 대화를 나누며 고상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지만 결국 관심은 먹는 것에 있습니다. 주린 창자를 만족시키려는 게 ‘먹이’의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양식을 ‘썩는 양식’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그 양식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충고하십니다. 우리가 ‘먹이’를 위해 산다면 동물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먹는 것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자입니다. 공산당과 북한이 그렇습니다. 먹는 것으로 인민을 조정합니다. 사람의 밥줄, 목줄을 쥐는 것입니다. 2. 영원한 양식의 그림자 ‘만나’ (구약) 성경 말씀에서 또 다른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먹어본 적이 없지만 구약에 ‘만나(Manna)’라는 양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만나는 아주 독특하고 놀라운 음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40년을 광야에서 보냅니다.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으며 잠잘 데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화려한 문명 아래 있지만 역시 광야 생활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독특한 양식 ‘만나’로 이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30-31절 “30. 그러므로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그러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사 우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나이까? 선생님은 무슨 일을 행하시나이까? 31. 기록된바, 그가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빵을 주어 먹게 하였도다. 한 것 같이 우리 조상들은 사막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하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는데 모세가 줘서 먹었습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면 우리에게 보일 표적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만나를 주었는데 당신은 무엇을 주겠습니까?’라는 뜻입니다. 곧 바로 32-33절 말씀입니다. ➤“32.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그 빵을 주지 아니하였느니라. 오직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빵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빵은 하늘로부터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만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지상에 독특한 음식이 있었는데 모세가 준 ‘만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말을 듣고“ 만나는 모세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정정해 주셨습니다. 만나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지만, 그것을 먹어도 사람들은 영생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만나는 영원한 생명의 빵을 예표 하는 양식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먹으면서,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주실 메시아를 바라보았습니다. 율법인 구약을 먹고 죽었지만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인 신약을 먹으면 삽니다. 3. ‘말씀’으로 오신 하늘 양식 예수님 썩는 양식과 만나와 세 번째 양식은 예수님께서 영생하는 양식을 먹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빵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15절“ 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이 물을 내게 주사 내가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 또 여기로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고 간청한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의 말과 똑같습니다. 군중들도 “그런 빵을 항상 주십시오.”하고 요청합니다. 성경 본문 35절 말씀에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썩는 양식이나 만나도 아닌 진짜 영생하게 하는 양식이 바로 나다.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이와 비슷한 말들이 많이 기록돼 있습니다. 4장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물이다”고 하셨고 6장에서 “나는 생명의 빵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8장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10장에서 “나는 양의 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장에서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고 하셨고 이어서 14장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고 15장에서는 “나는 포도나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누구든지 2,000년전 33세에 죽은 청년 예수, 그분을 만나서 믿으면 인생이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허무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빛으로 가득하고 영원한 생명과 부활과 진리로 샘솟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세계의 모든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우리는 엄밀히 말씀드려서 새 창조를 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전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목회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록 구약의 예언을 성취자입니다.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 이전’과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구별 하는데 실제로 예수님을 내 인생의 역사에서도 B.C와 A.D.로 인정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과 역사의 주권자로 인정하십니까? ➤BC는 'Before Christ'(비포 크리스트) 앞머리를 따온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뜻과 AD는 'Anno Domini'(아노 도미니) 라틴어로, '주님의 해(년(年)'란 뜻입니다. 아담은 육신을 지닌 모든 인간을 대표해서 일컬어지고 있음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흙을 먹고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영이신 하나님)에서 오신 ‘둘째 인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사람)이라고 밝히심으로써, 십자가 달려 육신을 죽이셨고, 부활하셔서 영적인 몸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새 창조를 하셨음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머리이신 교회에까지 나왔지만 예수님을 못 만난 사람들이 불평하며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목사가 되었지만 예수님을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쳐다보기만 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는 “여호와께 돌아가자” 라고 합니다. 이것은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성경은 구약이고 예수님 이후는 신약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망정이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가 너희의 음식이다.” 라고 하십니다.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만나를 먹어도 죽지만 나를 먹으면, 나를 만나고 나를 믿으면 인생에서 놀라운 기적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36절 말씀을 보십시오.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도 나를 보았으되 믿지 아니하도다. 하였느니라.” 기적을 보인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믿는 게 아닙니다.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인식의 문제, 감각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속에 믿지 않는 ‘오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모든 사람들이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싶은 불신앙, 인간의 교만,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진리’가 아니라서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참 진리라도 인간에게 믿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꺾이기 싫은, -순종하기 싫은, -굴복하기 싫은, -끝까지 나를 고집하고 주장하며 이기려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6. 하나님이 택하신 불가항력적 은혜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예수님의 음성, 설교, 기적도 못 보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택하시면 모두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도망가고 욕을 하며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핍박하기도 합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형제들이 동생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면 불가항력입니다. ➤37-38절 말씀을 보면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 이것은 ‘불가항력 은혜’입니다. 불가항력은 은혜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까지 가서 택하신 자를 데려오십니다. 아무리 고집스럽게 거부해도 그분께서는 ‘은혜의 줄’로 동여매십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망설이지 말고 얼른 돌아오십시오. 인생의 반환점에서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속히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매를 대서라도 강제로 데려오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은혜 베푸시며 택한 사람들을 한 영혼도 놓치지 않고 ‘잃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도 지나치지 않고 흩어져 있는 택하신 사람들을 모으십니다. 38-3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영혼들은 예외 없이 모두 구원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서지 말고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자유 의지로 거부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1절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들고 해외로 나갑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전도 종족’에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성경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믿을 수 있는 기회나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죽을 것 같은 소명을 받은 그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전하여서 구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전도하는 것은 나의 설득력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하고 입을 열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택한 자녀를 결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포기하시지 않고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16. 너희가 나를 택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게 하려 함이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