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7회 看話禪과 話頭에 대하여 – 3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본다.” 라고 하는 개념속에는,
8정도에서 “正見”이라고 했을 때 눈이 단순히,
안근(眼根) 색경(色境)을 보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엄청난 6식ㆍ7식ㆍ8식까지 넘어가는데까지 깊이 있게 보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觀이라고 하는 것은 학이 목을 길게 빼서 멀리 있는 것까지 다 보는
것을 觀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서는 “觀하다.” 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말에 “~~해보다.”라고 하
는 말이 있잖아요? “시험삼아 먹어본다. 해본다.” 전부 “보다.”라는 말
이 뒤에 붙는 것을 보면 이것 예사롭지 않습니다.
‘모든 체험과 경험과 깊이 있는 증득ㆍ증입 이런 것까지 담보하고 있는
말이다.’ 이렇게 보아질 수 있지요.
그래서 觀이라고 하는 말도 단순하게 듣는 것 이상 넘어가서,
들어서 그 본질까지 굉장히 다 觀하는 것!
관세음보살님이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의 소리에 응해서 정확하게
마음속 까지 읽어내는 것을 “觀했다.” 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위빠사나를 觀이라고 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다.” 라고 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화두를 본다.” 라고 했을 때, 觀자를 다른 글자로 看자를 쓴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그동안에 말했던 “본다.” 라는 개념과 좀 다르다
는 것이지요. 다르다는 겁니다.
“화두를 본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감각적으로,
6근이 6경을 보고 있는 그런 인식과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화두를 본다.”라고 하는 것은 일념삼매가 지속이되게,
“염을 한다.”라고 하는 그런 개념과, 뭔가 간화선에서 말하는 화두드는
그 내용이 일반적인 것과 좀 다른 “깊이 있는 어떤 수행”이라고 하는 것
을 나타내기 위해서, 좀 차별화하기 위했던 그런 용어로써 看자를 썼다
고 우리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탄허스님이 이 看話禪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감을 가지셨나
하면, 본인도 직접 수행을 하셨고, 종정을 하셨던 한암스님의 법맥을
이어서 그렇게 오대산의 대표가 되는 조실스님을 하셨기 때문에,
‘참선수행도 많이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간화선의 전통에 대해서 확실
하게 법맥을 잇고 계셨다.’ 이렇게 볼 수 있거든요.
스님은 많은 경전의 번역을 하셨는데요.
특히 간화선과 관련된 대혜 종고스님의 書狀(서장)이 있지 않습니까?
書라고 하는 것은 편지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書狀이라고 하는 유가 선비들과 많이 대화를 나누어서,
“참선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라고 했을 때,
대혜스님이
“화두참선은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할 때는 이렇게하고,
無자 화두는 이렇게 들어라.”
화두들 때는 어떻게 발심을 하고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선정에
들어서 打成一片(타성일편)이 돼서 惺惺寂寂(성성적적)하게
寤寐一如(오매일여)될 때 까지 쭉~~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을 다 말씀
해 놓은 것이 書狀인데요.
첫댓글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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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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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光스님 – 呑虛思想 - 韓國學을 말하다. 7廻-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