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태양이 숲에 빛을 토해낸다,
이 찬란한 유월의 빛에 나는 마음이 설렌다,
눈이 시리도록 고운 이 유월의 빛에 마음이 흔들리고
동창이라는 모임은 마치 청춘을 다시 찿은 사람처럼 날뛰고 싶어진다,
답답하고 욱하니 눌렸던 마음들을 싹 비우고 쏱아내면서
몸과 마음의 아픈 부분들이 말끔히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아 아 작년에 이어 또 간다,
계촌으로 그 길로
우리가 걸었던 그 길에 쏱기우던 유월의 그리움을 만나러,,,,,,,
대구를 지나면서 동명휴게소에 들러
안동 영주 풍기 제천
중앙고속도로의 묘미는 교통량이 그리 만치가 안아서 풍광들을 구경하면서
갈수가 있어서 좋다.
어느새 강원도의 평창 이정표를 만나면서 어디 쉬어갈곳을 찿아 나선다
섭다리
여전히 연초록의 산들을 물속에 품고 유유히 흘러간다,
70년대 호황을 누렸던 뱃사공의 녹슬은 배가 강가에 서있을 것만 같다,
주인도 늙고 배도 낡았겠지
섭다리의 모습이 경이롭다.
집을 나서니 요로코롬 좋은 것이어라,
영태 종래 영숙
우리는 이 틀간의 이날 만큼은 아주아주 많이 웃고
마누라 걱정 서방걱정 새끼 걱정일랑은 하지말자고 약속도 해가며
평창읍을 지나 계촌이라는 곳으로 달린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유월의 푸른빛이 마구 쏱아진다
점점 갈수록 우리 마음에는 초록물이 더 진하게 진하게 물이든다
수동의 산속물과 향기에 가슴을 토해낸다,
오랫동안 단체사진 친구들이 찍은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그 대열에
언젠가는 한번 끼여서 추억을 남기라라고
행사 끝난 운동장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
계촌에서 둔내 재를 넘어 웰리힐리파크에 도착을 하니
유월의 긴해는 아직 어둠이 내리질 앉아서
남길수 있는 사진이 있었다,
아 아 참 좋다..
서관612호 우리가 머물 숙소 이름부터 외워나야지 되겠다
나중에 오면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 술취한 영태도 로비에서
카운터 지배인에게
방은 못찾아도 호수는 기억을 하고 있더라고 ...
먼곳에서 달려운 우리들 서로의 안부들을 물으며
맛난 음식들로 그득하다.
윤희가 주문해온 감자전이 어쩜 세상에나 그렇게나 먹고 싶던 꿈에 음식이였다
울 엄마 살아생전 하지 지나고 나면 호박 썰어 넣고 매운 고추 넣어서
부쳐주던 바로 그 맛 이였다.
체면이고 뭐고 난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듯 거신 들린 미친년처럼 손으로
막 줏어 먹기 바빴다.
부산에서 가기전 회장이 문자로 종래보고 매운탕 거리를 주문한다,
우린 의견을 모아 바닷가에 살고 있는 우리네 만큼
술안주 거리로 회가 적당하다 하기에
종래가 거래하는 도매집에서 우린
아주 싸고 많은량에 내륙지방에서 회를 먹을수 있는 기쁨도 누렸다
그 기쁨에 우린 부산으로 오면서 매년 모임에 부산팀들은
고정으로 회를 준비해 가자고 약속을 했다,
영태가 호언장담을 하는데 내년에 못가게 되면 자기가
택배로라도 보낸다고 종래하고 나한테 큰소리 뻥뻥 쳤다만
두고 볼 일이지뭐,
모두가 모인 자리
술한잔에 어린시절 이야기에 우린 하하 호호거리며 둔내의 밤을 맞고 있다.
소근거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춘자하고 은수가 수금한 돈을 정리를 하나보다
난 내마음 속에 담고 있는 은수는
을 동창 모임 할땐 항상 앞장서서 말없이 굿은 일들을 항상 도맡아 하는 모습에 감동을 한다,
묵묵히 돕고 있는 은수에게 난 담에 회장 선출할때 추천을 할려고 한다
그러고 나좀 총무한번 시켜 달라고 사정좀 해야 쓰것다 병덕이가 지는 영원한 총무라고 지랄하더만
병덕이 한테 경쟁자가 생겼으니 원
병덕아 ,난 학교 다닐때 그 흔한 분단장질 한번 못해 봤으니 나 좀 시켜줘라
이렇게 해야지,
내가 기억하는 3대 기인중 한명이다
영태가 계촌으로 가면서 물어 본다
남은숙이 오냐고
장난기 발동하여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만나니 이렇게 좋은 것을
그옛날 철수와 영희가 부모님 반대 무릅쓰고 결혼 할려다
영희 부모님이 재주도 없는 철수놈 한테 시집보냈다간 굶어 죽게
생겼다고 반대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철수는 영희한테 우리 멀리 아주 멀리
부산으로 도망을 가서 국제상사 고무신 공장에 가서 밤낮으로 일해서
내가 먹여 살릴테니 그믐날 달뜨는 저녘 함께 도망칠 준비를 해놓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자
눈치챈 영희 아부지 집 사립문 밖으로는 꼼짝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 놓고
감시를 하며
계촌 장터가 서는 봄날의 5일 장날
약초 장사꾼 장씨 한테 중매를 서게 하여
영희를 아주 멀리 두메산골 홍천군 두촌면으로 시집을 보내자
다시금 만날수 없는 그리움 안고 살아오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같다,
세월이 지나도 어릴때의 추억들은 살아 있었다
둔내의 밤이 깊어가도록 많이 마시고 많이 먹고 놀았던 6월의14일
우린 또하나의 추억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