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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는 최근에 와서 현대인의 건강에 대하여 여러 효능이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이 높아졌지만, 선방에서 차는 졸음을 깨기 위한 수행인의 필수품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선원에서 결제를 하면 다각(茶角)소임을 정한다. 석 달 동안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루에 매?12시간씩 앉아서 정진을 하는 선원이니만큼 자연히 다각스님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음산하게 흐리거나 장마가 지는 날이면 더러는 잠이 부족하여 피곤할 때가 있다. 그런 상태에서 정신집중이 순일하게 될 턱이 없다. 이때가 바로 일완청다(一椀淸茶), 한 주발 차를 음미할 절호의 기회다. 흐릿하고 늘어질대로 늘어진 의식과 신경이 금세 활기차지고, 몸 전체가 팽팽해지는 것을 느낀다. 졸음과 잡념은 씻은 듯 가셔지고 초롱초롱하게 화두일념(話頭一念)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빠져든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차를 마시지 않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즐겨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고 한 대목이 절로 수긍이 가는 순간이다. 또 이맘 때 쯤 나는 1987년부터 10년간 양산교육청에서 교사들을 위한 차 강의를 요청해와, 그들과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사흘 간의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즐기곤 했다.
내 상좌 중에 제일 맏이 되는 종원(宗元)은 나와 나이 차이가 겨우 여섯 살이다. 그런데도 해마다 햅차가 나면 하동 차밭으로 달려가 나의 일년 먹을 녹차 양식을 마련해 온다. 이렇게 한 지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종원은 나의 구미에 맞추어 차를 만들고, 나도 어느덧 그 차 맛에 길들여진 것 같다. 남들은 요즘 한국차 보다 중국의 보이차나 오룡차를 더 마신다. 이유인즉 한국차는 위와 장을 차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동의할 수가 없는 것이, 차는 모두 똑 같은데 ‘위와 장을 차게 만든다’는 말은 중국인들의 상술(商術)인지도 모른다.
또 항간에서는 나를 보고 차를 너무 진하게 마신다고 하지만, 실은 ‘효당다성(曉堂茶聖)’ 최범술(崔凡述) 스님의 차가 더 진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나의 차 마시는 습관 때문인지 상좌 녀석들도 자연 진하게 마시는 모양이다.
불국사 선원 겨울 안거 때의 기억이다. 밤 9시에 방선(放禪)을 하면, 6시간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입선(入禪)을 했다. 그런데 다각실에서 밤 9시부터 차 벗 선견(禪見)스님과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 보통 12시까지 계속된다. 그리고나면 3시간 밖에 못 자면서도 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차 덕분에 겨울 내내 정신집중의 즐거움을 누렸으니, 선(禪)은 차를 먹은 양만큼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흔히들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을 쓴다.
선가(禪家)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상징적인 수사가 아니다. 차는 바로 선가의 일용할 양식이자 일구(一句)이며, 불조(佛祖)의 안목(眼目)이며, 혜명(慧命)이다. 한 잔의 차는 그대로 선가의 살림살이인 것이다. 무더운 오늘밤 시원하게 차 마시고 다선삼매에 몰입하면 어디서 더위를 찾겠는가. 아마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을 터이다.
선시(禪詩)를 한 수 말해보자. “몇 조각 흰 구름이 옛 절에 어리었는데 / 한 줄기 푸른 시냇물은 청산을 둘러 흘러가네.(數片白雲籠古寺 一條綠水繞靑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