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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0장이 엘리야 이야기에서 지니는 의미
이승현 (대전신대 구약학)
I. 서론
열왕기상 20장은 이제까지 엘리야 이야기로 간주되지 않았다.2) 그렇다면 왜 왕상 20장이 소위 엘리야 이야기 사이에 들어가 있을까? 여기서는 20장에 대한 문학비평적인 연구를 통하여 이 장이 엘리야 이야기의 일부임을 밝히려 한다.
II. 20장의 통일성과 전후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논리
1. 뷔르트봐인3)
뷔르트봐인은 20장 전체를 신명기 역사 이후의 편집자(nachdtr)가 후대에 집어넣은 이야기라 본다. 그리고 본래는 두 개의 독립적인 이야기(1-21a*; 26-34, 43*)였던 것을 합쳤다고 본다. 그리고 22-25절은 후대에 다시 첨가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35-42절도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며, 처음에 좋게 서술하였던 아합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한 것이 그 증거라 한다.
그러나 20장 전체는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다. 핵심단어들이 전체를 일관하고 있음이 그 증거다. 그리고 20장은 앞뒤의 18-19, 21-22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20장의 앞부분에서 아합을 좋게 평가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자기 아내들과 아들들을 다 내놓으라고 하는 무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는 예언자가 제일 앞서 나가 싸우라는 명을 전했으나(14), 그는 적들이 도망하는 것을 보고, 벤하닷까지 도망친 후에 성에서 나가 잔적을 쳤을 뿐이었다(21).
2. 헨첼
헨첼도 20장의 통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4) 그는 본문을 1-21; 22-34; 35-43절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이 독립적이라 본다. 그는 1-21절과 22-34절이 독립적이라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1) 첫 번째 이야기는 전쟁 상황을 자세히 서술하는데 비해 두 번째 이야기에선 자세하지 않다.
2) 첫 이야기에서 아람이 이스라엘을 압도하였지만 둘째 이야기에선 서로 대치가 계속된 것을 보아 대등했다.
3) 첫 번째는 여호아하스 시대를 반영하고 두 번째는 요아스 때를 반영하는 것 같다.
4) 세 번째 부분은 예언자 편집인데, 처음에는 좋게 서술된 아합이 정죄를 당하는 것이 그 증거 다.
마지막 논지는 이미 위에서 반박하였으므로, 그 앞의 세 주장을 살펴보자. 두 번째 이야기에서 자세한 서술이 없는 것은, 초점이 벤하닷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놓여 있었음이다. 헨첼은 양측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군세가 대등했던 것같이 설명하지만, 이스라엘이 염소 새끼 두 떼와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27)? 양측이 7일동안 대치했던 것은 아람이 지난해에 당한 경험이 있어서 조심했던 때문이다. 전투에서 7일 동안의 대치는 대등한 군세를 뜻하는 기간이 될 수 없다. 사마리아는 삼년간 앗수르와 대치하지 않았던가(왕하 17:5)? 그리고 헨첼의 세 번째 주장, 두 이야기를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때로 맞추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다. 두 번째 이야기를 대등한 군세라고 판단한 데서 나왔음이다.5)
III. 20장의 통일성
20장의 통일성은 무엇보다 어휘의 분포가 증명하고 있다. 같은 단어가 20장 전체를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1-22절과 23절 이하의 두 부분에서 같은 어휘들이 통용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1. ה תוּשׁ(그 해가 돌아오자): 22, 26. הוּשׁ는 열왕기에는 20장에서만 나타나고, 20장 안에서도 이 두 절에서 똑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이 장의 통일성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2. רהמ(서두르다): 33, 41. 열왕기에 4번밖에 안 나오는 단어가 여기에 두 번이나 나타난다.
3. סונ(도망하다): 20, 30(2x). 열왕기상에 여섯 번 나오는데, 그 반이 이 장에 집중되었다.
4. ןוֹמ(시끄러운 무리): 13, 28절에 나타난다. 열왕기에선 여섯 번밖에 안 나오는 단어가 여기서 두 번이나 나타난다.6)
5. שׁגנ(다가서다, 접근하다): 13, 22, 28절에 나타나며, 18장과 19장에 이어 여기서도 이 장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6. הכנ(치다): 20, 21(2x), 29, 35(2x), 36(2x), 37(3x). 적을 치는 경우가 많지만, 친구를 치는 것, 사자가 치는 것도 포함하여 11회나 등장한다.
7. אצי(나가다): 20장 전체에 걸쳐서 10번 나온다. 16, 17(2x), 18(2x), 19, 21, 31, 33, 39. 열왕기에서 한 장에 이렇게 많이 ‘야차’가 나오는 예는 없다.
8. דקפ(사열하다): 15(2x), 26, 27, 39(2x). 전쟁 이야기라서 나올 수 있지만. 성경에서 ‘파카드’가 한 장에 이렇게 많이 나온 경우는 없다.
9. חלשׁ(사람을 보내다): 2, 5, 6, 7, 9, 10, 17, 34(2), 42절에 10번이나 나타나 20장 전체를 이끌고 있다. 처음엔 외교사절을 주고 받는 일에, 나중에는 석방한다는 뜻으로 씌었다.
10. 벤하닷: 1, 2, 5, 9, 10, 12, 16, 20, 26, 327)에 두루 나타난다.
11. 아람: 1, 20(2x), 22, 23. 26, 27, 28, 20에 나타난다.
12. םי(두다): 6, 12(2x), 24, 31, 34(2x)에서 모두 일곱 번 등장하여 이 장을 이끌고 있다.
13. אי(예언자): 13, 22, 35, 38, 41절에 나타나며, 20장의 핵심단어가 되었다.
14. עדי(알다): 7, 13, 22, 28절에 골고루 분산되어 나타난다.
15. שׁפח(찾다): 6, 38절에 나타난다.
이상의 어휘분포도는 20장이 분명히 하나의 단위임을 증명하고 있다.
IV.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와의 연관성
1. 어휘의 분포
20장에 나오는 어휘는 17-19장 및 21-22; 열왕기하 1-13장에 나오는 어휘들과 많이 겹치고 있다. 특히 인접한 18-19장과의 공통성이 확연히 나타난다.
1). םיאָ וּב(5: “그런데 그 사자들이 돌아왔다”)
19:7 ריּ··· הה אַ ב 그런데 야흐베의 사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20:5 וּריּ םיאָ וּב 그런데 그 사자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 은 말했다.
בושׁ, אלמ, רמא의 공통점 외에도 하나님의 사자는 엘리야를 살리러 꾸준히 다시 돌아오고, 벤하닷의 사자들은 이스라엘을 약탈하려고 집요하게 다시 돌아왔다는 점이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2). 20:10의 맹세문은 19:2의 맹세문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19:2 י ןוּפיוֹי ה םי ןוּשׂ־ה ... 않으면 신들이 이렇게 하고 이렇게 더할 것이다.
20:10 ־מאּ וּפיוֹי ה םי י ןוּ־ה 신들이 내게 이렇게 하고 이 렇게 더할 것이다. 만일 ...
이 두 절은 문자적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다. 19:2을 기준으로 하면 20:10에서는 중간에 י(내게)가 첨가되었고, 뒤에 י(않으면) 대신에 םאּ(만일)이 들어갔을 뿐이다. 성경에서 이 두 곳 외에는 이와 비슷한 맹세문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세벨의 엘리야에 대한 저주가 벤하닷을 통해 아합에게 돌아왔다. 이런 구성은 두 장의 저자가 하나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3). 20:13에서 예언자가 나타나는 장면은 19:5에서 천사가 나타나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고 구조도 거의 같다.
19:5 20:13
ה־א 그런데 이것을 보라 ה 그런데 보라
אָ 천사가 ד אי 한 예언자가
가까이 왔다 שׁ 가까이 왔다
וֹבּ 그에게 ל־ באָאַ־ל 아합, 이스라엘 왕에게
וֹל ריּ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ריּ 그리고 말했다.
이 두 대목의 내용과 상황도 유사하다. 하나는 엘리야의 위기를,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위기를 반전시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4). שׁגנ(다가서다)는 열왕기에서 거의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 제한되어 나타난다: 18:21, 30 (2x), 36; 20:13, 22, 28; 22:24; 열왕기하 2:5; 4:5, 6, 27; 5:13. 예외는 열왕기상 5:1뿐이다. 이 단어는 항상 예언자의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5). ף ה(7000명). 19:18절에 나타난 7000명이 20:15절에서 이스라엘군의 숫자로, 30절에는 적들 중에서 성에 깔려 죽은 27000명 속에 나타난다. 이는 열왕기에 나타난 ‘7000’의 전부다.
6). לוכּ(부양하다: 27): 17장(4, 9)과 18장(4, 13)에서 핵심적인 단어(Leitwort)였던 ‘쿨‘이 다시 나타나 그들과의 연관성을 증명한다. 성경에서 전쟁 이야기가 많지만 군량을 받고 나가서 싸운다는 말은 -당연한 이야기여서인지- 여기밖에 없다. 그리고 이 단어는 오직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서만 발견된다.8) 19장에서는 이 단어가 나타나지 않지만 엘리야가 천사에게서 부양을 받았다.
7). שׁ(목숨: 31f, 39, 42): 이 단어는 19장(2ff, 10, 14)과 20장 후반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9) 두 장의 핵심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두 장의 깊은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19장에서는 이세벨이 엘리야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20장에서는 하나님이 벤하닷의 목숨 대신에 아합의 목숨을 요구하여, 대조를 보이고 있다.
19장 20장
죽이려는 주체: 이세벨 하나님
위협을 받는 존재: 엘리야 아합
근거: 죽였기 때문에 살렸기 때문에
누구를 죽였나/살렸나: 바알의 예언자들 벤하닷
어디서: 갈멜산의 대결에서 아벡의 대결에서
이상의 구조는 이세벨이 아합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임을 알게 한다.
8). ר ר(내실 중의 내실). 20:30의 이 숙어는 22:25에 다시 똑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둘 다 적 앞에서 피하여 숨는 상황에서 사용되어, 둘 사이의 연관성을 확신하게 한다. 이 장소는 열왕기하 9:2에서는 예후를 기름 붓는 장소가 되었다.
9). עדי(알다: 13, 28). 20장에서 두 개의 전쟁을 묶어주는 다발 역할을 하는 ‘야다’가(7, 13, 22, 28)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의 다른 부분들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과부는 엘리야에게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고(17:24), 엘리야의 갈멜산에서의 기도의 핵심은 사람들이 알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고(18:36f), 20장에서는 아람을 넘기는 이유가 아합이 하나님이 야흐베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13절)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야흐베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28절). 이런 ‘야다’의 신학은 열왕기하 5장에 연결되고 있으며(8, 15), 예후 혁명 이야기에도 나타난다(10:10).10)
10). טלמ(피신하다: 20). 이 단어는 18:40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을 놓치지 말라는 문맥에서 나왔고, 19:17에서는 하사엘의 칼을 피한 자, 예후의 칼을 피한 자를 거론하실 때에 나왔으며, 열왕기하 10:24에서는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참살하는 상황에서 사용되었다.11)
11). ף ר(속상하고 격분하여: 43). 이런 표현은 성경에서 오직 21:4에 다시 나온다. 이는 21장과의 연결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12). אי(예언자). ‘나비’는 20장에서 다섯 번 나오면서 20장을 이끌고 있는데(13, 22, 35, 38, 41), 18장(12회), 19장(4회), 22장(7회), 열왕기하 2장(4회)을 합하면 엘리야 이야기(왕상 17-22; 왕하 1-2)에서 32회 나타난다. 엘리사 이야기(왕하 3-13)에는 17회 등장하고, 열왕기의 나머지 부분(합 27장)을 모두 합하면 엘리야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빈도와 비슷하게 34회 등장한다. 이는 ‘나비’가 엘리야 이야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서 선도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2)
13). 아람(1, 20[2x], 22, 23, 26, 28, 29). 이는 19:15; 22:1, 3, 11, 31, 35에 다시 나타나는데, 특히 19장에서 하나님이 아람 왕을 말씀하신 이후에 20장에 바로 아람왕이 등장하므로 19장과의 연관이 강하고, 또한 22장에서 다섯 번 등장하며(1, 3, 11, 31, 35), 그 뒤로는 자주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 등장한다.13)
14). םי(두다: 6, 12[2x], 24, 31, 34[2x]). 이는 18장에서도 일곱 번 등장했던 단어로서, 열왕기하 4장에서 네 번, 10장에서 다섯 번 등장하고 있다. 그 외에 19; 21; 22장; 열왕기하 2장에서 한 번씩 등장하고 있다.14)
15). אָ(사자: 2, 5, 9[2x], 12). 열왕기상 19장(2, 5, 7)과 열왕기하 1장을 이끄는 단어(2, 3[2x], 5, 15, 16)15)이므로 열왕기상 19장과 열왕기하 1장과의 연관성이 두드러진다.
16). ר ת(내일 이때쯤: 6): 19:2에도 나오는데, 이세벨의 엘리야에 대한 최후통첩에 사용되었다. 열왕기하 10:6에서는 예후의 통첩에 나온다.
17). ןוֹמ(시끄러운 무리: 13). 이 단어는 열왕기에 오직 다섯 번만 나타나는데, 그 중에 네 번은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 나타난다: 열왕기상 18:41; 20:13, 28; 열왕기하 7:13. 이는 20장이 18장과 연관을 갖고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
18). ם������(정오에: 16). ‘정오’라는 말은 본문 외에 열왕기에서 18:26, 27, 29; 열왕기하 4:20에만 발견된다. 모두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서다. 18장과 20장에서 이 단어는 대결의 시간을 암시한다. 열왕기하 4장에서는 수넴 여인의 아이가 죽는 위기의 시간이었다. 어쨌든 결정적인 시간을 표시하고 긴장을 더해 주는 용도로 쓰인 이 단어는 20장과 18장, 열왕기하 4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19). שׂפת(생포하다: 18). 이는 18:40에도 나타나 18장과 20장을 연결시켜 준다. 18장에선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를 잡으라고 했는데, 이제는 벤하닷이 이스라엘군을 잡으라고 하여 대조되고 있다.16)
20). קזח(22, 23[2x], 25). 이는 비교적 흔한 단어이긴 하나, 20장에서 네 번 나타나고, 17:17; 18:2; 19:11; 열왕기하 2:12에도 나타나 엘리야 이야기와의 연관성을 암시한다. 특히 19장은 아합과 벤하닷이 스스로 강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강함을 대조시키고 있다.17)
21). חכנ(강하다: 29). 이 단어는 열왕기에선 딱 한 차례 더 나타난다. 즉 열왕기상 22:35이다. 이는 20장과 22장의 연관성을 암시한다.
22). ק(베: 31, 32). 21:28에 두 번이나 나온다. 이번에는 아합이 베옷을 입고 참회한다. 그 외에 이 단어는 열왕기하 6:30; 19:1, 2에 나타나는데, 모두 왕이 베옷을 입은 경우이며, 열왕기의 용례 7번 중에서 5번이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 네 번이 20장과 21장에 나타난다.
23). היח(살아나다). ‘하야’는 주로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 등장한다. 엘리야는 죽은 아이를 살리고(17:22; 엘리사는 왕하 8:1), 아합은 짐승들이나 살리려고 했고(18:5), 아하시야는 자기가 살게 될지 바알스붑에게 물었고(왕하 1:2), 예후는 바알을 믿는 사람들을 살리지 않는다(왕하 10:19). 그리고 엘리사의 뼈에 닿기만 해도 시체가 살아났다(13: 21).
24). רהמ(서두르다: 33, 41). 이는 열왕기에서 오직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만 등장한다(22:9; 열왕기하 9:13). 또한 중요한 상황의 변전이 있는 경우들에 나타났다.
25). חלשׁ(보내다). 이 단어는 드물지 않게 나타나지만, 엘리야 이야기에서 그 빈도가 높고, 엘리사 이야기에서도 열왕기의 다른 곳보다 자주 나타난다. 20장에서 10번 나타나는 ‘샬라흐’는 열왕기상 17장과 22장을 제외하곤 18장(3회), 19장(1), 21장(4), 열왕기하 1장(7), 2장(6)에 걸쳐 골고루 나타난다.18)
26). שׂפח(찾다: 6, 38). 20장의 두 부분에 등장하면서, 22:30에 두 번, 열왕기하 10:23에 한 번 나오는 이 단어는 열왕기에서 오직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만 나타난다. 이는 20장과 22장을 연결해 주고 있다.
27). רכנ(알아보다: 41): 열왕기에서 단 네 번 나오는 이 단어는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 중에는 18:7에서 다시 발견된다.19)
28). תחת[대신에: 39, 42(2x)]: 누구 대신에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맥락에서 사용된 것은 열왕기하 10:24을 들 수 있다. 이는 이 장이 열왕기하 10장과 연관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29). 32명(1, 15, 16): 22:31에도 나와서 20장과 22장의 연관성을 암시한다.
2. 20장의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와의 연관성
위의 관찰들을 종합하여 우리는 20장과 각 장들과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열왕기상 19장: 위의 1), 2), 3), 5), 6), 7), 10), 12), 13), 15), 16), 20), 25)에서 20장과의 연관성이 드러나는데,20) 20장은 무엇보다 19장과의 연관성이 가장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자가 돌아오는 장면(19:7; 20:5)이라든지 천사나 예언자가 나타나는 상황(19:5; 20:13), 맹세문(19:2; 20:10)은 한 구가 문자적인 일치를 보인다. 19장에서 이세벨이 맡은 역할을 20장에서 벤하닷이 맡았고, 19장의 천사 대신에 익명의 예언자가 등장하는 구도가 어휘의 공통점을 초래한 듯하다.
2). 열왕기상 18장: שׁגנ, לוכ, עדי, טלמ, אי, 아람, אָ, ןוֹמ, 정오, שׂפת, קזח, היח, חלשׁ에서 20장과 공통되는 어휘가 발견된다. 특히 ‘하몬’, ‘타파스’, ‘정오’는 엘리야 이야기 안에서는 18장과 20장에만 나타난다. 이는 대결 모티프가 두 장의 공통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3). 열왕기상 22장: שׁגנ, לוכ, ר, אי, 아람, חכנ, שׂפח, 32명에서 연관되어 있다. 특히 ר, שׂפח, 32명, חכנ, רהמ 등은 엘리야 이야기 안에서 오직 20장과 22장서만 발견된다. 두 장이 공히 아람과의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4). 열왕기하 10장: עדי, טלמ, םישׂ, ר ת, היח, שׂפח, תחת 등이 두 장을 잇고 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장과의 연관성은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특히 열왕기하 10장은 열왕기상 18장과 비슷하게 대결 모티프를 갖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5). 열왕기상 17장: לוכ, קזח, היח, עדי 등이 20장과 공통되는 단어들이다. 특히 부양(לוכ) 모티프는 17-19장과 20장을 잇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6). 열왕기하 2장: שׁגנ, אי, קזח, חלשׁ 등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두 장이 공히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인 듯하다.
7). 열왕기하 4장: שׁגנ, םישׂ, ם, קזח 등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4장은 엘리사 이야기에 속하면서도 엘리야 이야기(왕상 17:17-24)와 공통점이 많은 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8). 열왕기하 1장: 열왕기상 20장과 אָ, היח, חלשׁ 등의 공통 어휘를 갖고 있는 열왕기하 1장은 왕이 등장하는 것 외엔 별로 공통적인 주제를 갖지 않고 있다.
9). 열왕기상 21장: ף ר, ק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 다른 장에 비해 공통의 어휘가 적은 셈이다. 그러나 ף ר는 성경에서 이 두 곳밖에 발견되지 않으므로 두 장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10). 열왕기하 9장: ר, רהמ의 두 단어밖에 없지만, 군사적인 내용이 두 장의 공통점이어서 주목된다.
11). 열왕기하 6장: ר, ק의 공통점을 지닌다. 두 장은 공히 아람과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에, 20장은 엘리야 이야기임이 분명해진다. 이 장은 특히 18/19/22장과의 연관이 강하다. 엘리사 이야기 중에서 열왕기하 4, 6, 9, 10장과의 연관성이 많은 것은 이들이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 중에서도 엘리야 이야기와 특별히 더 가까운 부분들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V. 20장의 구조
20장의 구조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도표로 나타낼 수 있다.21)
I 아람의 첫 번째 침략(사마리아 포위 전투: 1-22)
A 발단: 벤하닷이 올라왔다(1-12)22)
1 사마리아를 포위하다(1): 32명의 왕도 같이 오다
2 세 번의 협상이 결렬되다(2-12)
B 전개: 전투(13-21)
1 ‘나비’의 약속(13-14): 하몬을 네 손에 넘겨 내가 야흐베임을 알게 한다
2 이스라엘의 사열(15): 232명과 7000명
3 승리(16-21)
a 공격(16-18): 정오에 청년대가 나가니 벤하닷은 생포하라고 하다
b 이스라엘의 승리(19-21): 맨 나중에 아합도 나가 살육.
C 종결(22): 예언자의 재침 예고
II 아람의 두 번째 침략(아벡 전투: 23-43)
A 발단: 벤하닷이 올라왔다(23-26)
1 세 가지 준비(23-25): 평지, 총독, 지난번과 같은 군세
2 아벡으로 침입(26)
B 전개: 전투(27-30)
1 사열(27): 염소 새끼 두 떼
2 ‘하나님의 사람’의 약속(28): 하몬을 넘겨 야흐베를 알게 한다
3 승리(29-30)
a 전장에서(29): 7일 대치, 십만 살상
b 아벡에서(30): 27000 사망, 벤하닷은 내실로.
C 종결(31-43): 하나님의 심판
1 아합의 죄: 벤하닷 석방(31-34)
2 판결(35-42): ‘네 목숨을 내 놔라’
a 예언자의 질문(35-40): ‘포로를 놓쳤는데···’
b 예언자의 선고(41-42): ‘네 목숨을 내놔라’
3 아합의 반응(43): 속상하고 격분했다
헨첼과 뷔르트봐인은 각각 21절과 21a를 첫 이야기의 끝부분으로 보았다.23) 그러나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두 이야기는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22절을 뒷 이야기에 포함시킨다면, 첫 번째 이야기는 종결 부분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또한 두 이야기는 공히 서두에 ‘멜레크 아람’(1, 23)으로 시작한다.
두 번의 전쟁은 각각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되었다. 즉, “벤하닷이 올라왔다”는 것으로 발단이 되고, 이어서 전투가 벌어지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마무리를 한다. 그것은 재침에 대한 준비였을 때도 있었고, 아합의 실수에 대한 책망일 때도 있었다.
두 전쟁기사의 첫 문단은 공히 벤하닷의 침공을 다루며 ל(1, 26)을 공유하고 있다. 첫 문단에서는 공히 세 번이란 횟수가 등장한다. 세 번 협상사절이 오가고, 세 번의 준비가 있었다. 두 번째 문단들은 모두 전투상황을 그리고 있다. 사마리아 전투는 자세히 묘사되었고, 아벡 전투는 간단히 서술되었다. 그리고 ‘전투’ 문단에서는 똑 같이 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즉 사열(‘파카드’), 예언자나 하나님의 사람의 전언, 승리의 세 요소다. 세 번째 문단은 두 번째 문단과는 반대로 사마리아 전투의 종결이 간단하고, 아벡 전투의 종결은 매우 길다. 아벡 전투의 종결은 두 번 전투의 총결산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장 전체의 결론이 되는 셈이다.
각 문단의 길이들이 서로 다른 것은 두 전쟁의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전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압도적인 적도 이길 수 있다는 것에(‘하몬’, ‘야다’가 핵심어휘), 두 번째 이야기는 하나님이 맡기신 포로를 함부로 다룬 아합의 과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하몬’, ‘야다’ 외에 ‘네페쉬’가 핵심어휘로 등장). 두 전쟁사의 구조가 이렇게 같음은 같은 저자가 같은 의도로 썼음을 확신하게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이야기에서 기묘하게 나타나는 교차대구법이다. 먼저 두 번째 기사의 발단 부분인 23-26절은 아람의 전쟁 준비(23-25)와 침공(26)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 형태는 첫 번째 이야기의 1-12절과 교차대구법을 이루고 있다.
1-12 23-26
침공(1) 세 가지 전략(23-25)
세 번의 협상(2-12) 침공(26)
이런 현상은 13-15; 27-30절에서도 나타난다.
13-15 27-28
예언자의 약속(13f) 사열(27)
사열(15) 예언자의 약속(28)
이는 분명히 같은 저자의 솜씨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20장이 매우 조밀하게 짜여진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과, 그것이 앞뒤의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24)
VI. 20장과 21장의 비교
1. 구조의 비교
21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발단: 협상의 실패(1-4): 나봇의 포도원
1 ‘포도원을 주시오’(1f)
2 ‘야흐베께서 금하십니다’(3)
3 속상하고 격분했다(4)
B 전개: 나봇 죽이기(5-14)
1 이세벨의 약속(5-7): ‘당신은 왕권을 행사할 거예요.’
2 편지로 살인을 지시하다(8-10): ‘그를 돌로 쳐라’
3 편지대로 나봇을 죽이다(11-14): ‘나봇이 돌에 맞았습니다.’
C 종결(15-29): 하나님의 심판
1 아합의 죄: 포도원 접수(15-16)
2 하나님의 판결(17-26): ‘개가 먹고 새가 먹고···’
a 질문(17-19): ‘죽이고 상속 받았느냐?’
b 선고(20-26): ‘개가 먹고 새가 먹고···’
3 아합의 반응: 회개(27-29)
발단, 전개, 종결의 각 부분은 세 부분으로 다시 나누어진다. 이상의 구조는 한 눈에 20장과 같은 구조임을 알아보게 한다. 즉, 20장에서 두 번이나 되풀이되었던 구조, 발단, 전개, 종결의 구조다. 21장의 ‘A’ 부분은 사마리아 전투의 ‘A’부분(20:1-12)과 닮았다.
20:1-12 21:1-4
벤하닷이 올라왔다(1)[26]25) 아합이 나봇에게 말했다(1)
은, 금, 아내들, 아들들을 내놔라(3, 5f) 포도원을 팔아라(2)
안 됩니다(9) 야흐베께서 금하십니다(3)
진을 베풀어라(12) 빵을 먹지 않았다(4)
두 가지 이야기에서 1) 강자가 약자에게 찾아와서 2) 약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며, 3) 약자가 이를 거절하니까, 4) 강자가 분노하는 구성이 공통적이다.
‘B’ 부분은 20장의 두 이야기의 ‘B’ 부분과 똑 같은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단, 20장에서는 전투를 다루고 있고, 21장에서는 양민을 쳐 죽이는 살인사건을 보고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다. 그러나 두 사건은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행위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20:13-21(전투) 20:27-30(전투) 21:5-16(나봇 죽이기)
나비의 승리 약속(13-14) 사열(27) 이세벨의 약속(5-7)
사열(15) 하나님의 사람의 약속(28) 편지를 쓰다(8-10)
승리(16-21) 승리(29-30) 살인(11-14)
특이한 것은 20장에서 나비나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역할을 21장에서는 이세벨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21장에서 누워 있는 아합에게 나비 대신 이세벨이 다가간다.26) 또한 앞 장에서 사열에 해당하는 부분이 편지를 쓰는 작업으로 대치되었다. 편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니, 편지 쓰고 도장 찍는 일은 병사를 사열하는 일과 같은 성격이었다. 20장에서는 나비가 약속한 대로 승리했고, 21장에서는 이세벨이 약속한 대로 나봇을 돌로 쳐 죽였다. 화자는 두 개의 동일한 구조로 이 끔찍한 아이러니를 청중에게 부각시키고 있다.
‘C’ 부분은 20장의 아벡 전투 이야기 중에서 ‘C’ 구조와 같다.
20:31-43 21:15-29
1 아합의 죄: 벤하닷 석방(31-34) 아합의 죄: 포도원 접수(15-16)
2 판결(35-42): ‘네 목숨을 내놔라’ 판결(17-26): ‘개가 핥을 것이다’
[질문(35-40): ‘포로를 놓쳤는데]···’ [질문(17-19): ‘죽이고 상속하였느냐?’]
[선고(41-42): ‘네 목숨을 내놔라] [선고(20-26): ‘개가 먹고 새가 먹고···’]
3 아합의 반응: 속상하고 격분하다(43) 아합의 반응: 회개(27-29)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에 내려간 것은 자신이 살인자임을 자인한 셈이었고, 아합이 이 사건의 주모자임이 공식적으로 드러낸 셈이었다. 이는 20장에서 벤하닷을 놓아준 일과 똑같은 범행에 해당했다. 그리고 바로 그 범행의 현장에, 두 이야기에서 공히 예언자가 등장한다. 예언자들은 아합에게 먼저 질문을 던진다. 이는 그 다음에 나오는 선고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20장에서는 포로를 놓쳤을 때엔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서 아합이 스스로의 사건에 재판하게 하였지만, 21장에서는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지시한 내용에 질문이 나온다. 네가 죽이고 또 상속했느냐는 질문이다. 그리고 난 뒤에는 두 이야기에서 모두 엄중한 심판이 선언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아합의 반응으로 끝나고 있다. 앞에서는 아합이 격분하고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아합이 회개했다는 점이 달랐다.
이상에서 볼 때에 20장과 21장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두 장은 세밀한 부분까지 완전히 같은 구조로 만들어졌다. 20장의 통일성 문제도 이로 인해 간단히 해결되었다고 본다. 같은 구조를 가진 것이 하나의 단위가 아니라면 오히려 퍼즐의 한 조각이 빠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2. 어휘의 연관성
20장에서 이미 언급한 공통점 중에서, 21장과 20장만의 연관성을 확인하자면 다음과 같다. ף ר(20:43; 21:4), םי + ק(20:31; 21:27), ן(20:28, 36, 42; 21: 20, 29), חלשׁ(20:2, 5, 6, 7, 9, 10, 17, 34[2x], 42; 21:8, 11[2x], 14). 특이한 것은 하나님의 질문에 나타나는 יאּ가 열왕기에서 20:13과 21:29에만 나타난다는 점이다. 화자는 20장과 21장의 구조가 같은 것에다 어휘도 같은 어휘를 몇 개 써서 독자들이 그 연관성을 확인하게 하였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ה(해악, 불행, 재앙)로서, 20:7; 21:21, 29; 22:23에 나타나지만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에서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고 20-22장에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20-22장이 엘리야 이야기에 속하면서도 그 안에서 독특한 응집력을 가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편 שׁרי(차지하다, 소유하다, 상속하다)는 21장을 이끌어나가는 단어지만 (15, 16, 18, 19, 26절)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 전반에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21장이 개인 기업을 탈취하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3. 내용의 연관성
20장과 21장은 내용면에서도 연관을 가지고 있다. 첫째, 부당한 요구를 당했던 자가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20장에서 벤하닷에게서 은, 금, 아내들, 아들들을 다 약탈당할 뻔 했던 아합이, 이제는 자기 나라의 한 소시민의 재산을 강제로 약탈한다. 물론 팔라고 했지만, 그 요구에 응하지 않으니 죽여 버린다. 이런 모티프는 20장의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것과 똑 같은 행위다. 더구나 자기가 방금 당했던 일을 남에게 요구하고 자기는 더 심하게 처리하는 과정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강조하려는 부분이 틀림없다.27)
둘째로, 20장 전반부의 무대가 되었고 마지막에도 나타나는 사마리아가 21장에서도 계속하여 강조되고 있다.28) 특히 두 장의 첫머리(1절)에서 사마리아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없다. 20장에서 사마리아는 위협당하는 도시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21장에서 사마리아는 부당한 요구를 하고 사람을 죽이는 왕의 도시가 되었다.29) 이런 연관을 통하여 저자는 아합의 불의를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셋째로, 20장에서 두 번 등장하여 아합에게 승리의 약속을 해 주었던 예언자들 대신에 21장에서는 이세벨이 등장하여 똑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즉, 그녀는 아합에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실현시켜 준 것이다. 이세벨은 단순히 분수에 지나친 여인이거나 남편밖에 모르는 아낙네가 아니라 예언자를 죽이고 예언자에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마녀’임이 드러난다.
이렇게 구도, 어휘, 내용면에서 삼중으로 20장과 21장은 단단히 얽혀 있는 것이 관찰된다.
VII. 18-19장과 20-21장의 연관성
20-21장은 18-19장과 내용면에서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엘리야는 18장에서 갈멜산의 대승리를 거두지만(바알 예언자와의 대결에서 이김 + 비가 오게 함), 19장에서 이세벨에게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그는 새롭게 사명을 받고 엘리사를 부르는 등으로 재출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완전히 수행하지는 않고, 하사엘, 예후 건은 뒤로 미루어 둔다. 똑 같은 구도가 아합에게도 나타난다. 아합은 20장에서 자기의 공로 없이 대승리를 두 번이나 거둔다. 그러나 21장에서 작은 포도원 때문에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심판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회개함으로써 새 출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회개는 완전하지 못하였음이 22장을 통하여 나타난다. 이를 도표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엘리야 아합
18장의 대승리 20장의 대승리
1) 바알예언자들을 이기다 1) 사마리아 전투 승리
2) 비가 오게 하다 2) 아벡 전투 승리
19장의 실족 21장의 실수(포도원 하나에)
1) 하찮은 위협에 도망 1) 하찮은 포도원 하나에 실족
2) 호렙산에서 다시 출발 2) 회개하다
3) 불완전한 순종(하사엘, 예후) 3) 불완전한 순종(여호사밧)
화자는 짝이 되는 이 네 장들을 통하여 예언자의 삶과 왕의 삶의 공통점을 보여 주었다. 엘리야와 아합은 서로 비견되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지만 그들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발견된다. 즉, 엘리야와 아합은 공히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고, 실수하고 죄를 짓는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 용감한 엘리야도 하찮은 말 한 마디에 도망하고 죽기를 원하였으며, 그 간교하고 악한 아합왕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는 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예언자로서의 삶 가운데 잠시 낙심한 것이고, 아합은 나봇을 죽여버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엘리야는 마지막에 엘리사에게 영을 물려주고 승천하나, 아합은 여호사밧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으로 인해 죽음을 자초한다.
VIII. 결론
이상에서 열왕기상 20장이 엘리야 이야기의 일부분임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열왕기상 20장은 18-21장까지의 엘리야 이야기와 긴밀하게 짝을 이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엘리야와 아합의 공통점을 교묘하게 드러내고 있으므로, 엘리야 이야기는 단순한 편집이 아니라 어떤 저자의 탁월한 저작으로 보인다.
첫댓글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