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애, 강한 집착, 업이 원인과 결과로 연속해 일어난다. 이를 이해할 때 단견에서 벗어난다.
단견에서 벗어나야 수다원에 오른다, 오염된 사견으로는 법을 얻을 수 없다
갈애가 일어나 소멸되고, 강한 집착이 뒤따라 생멸한다. 이들이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을 알면 '견고하고, 항상하다'는 상견이 청정해진다. ㅡ이를 아는 순간 더 이상 악처에 태어나지 않는다.
매 순간 생멸을 연속하는 물질과 정신은 파괴되지만, 원인과 결과로써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매 순간 물질과 정신의 멸을 볼 때 상견常見이 청정해진다. ☸️💎인과로써 계속 연결되는 것을 본다면 단견斷見이 청정해진다.
오늘은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언급하신 '죽음 직전의 마음'을 공부해 보자. 한 바라문과 부처님의 문답이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바라문: 저는 죽음 앞에 당당한 사람을 못 봤습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부처님: 바라문이여! 죽음이 두려운 사람도 있고 담담한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가 있음을 명심하라.
바라문: 왜 다른지 상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 바라문이여!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다. 반면 진리를 아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인과를 알고,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 물질과 정신의 올바른 성품임을 알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 곧바로 다음 생이 일어난다. 죽음 의식이 소멸하는 순간, 탄생 의식이 연이어 일어난다. 죽음의 고통이 끝나면 탄생의 고통이 시작된다. '업을 쫓아 형성되는 물질과 정신은 생멸한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생겨나서 소멸한다'라고 지혜로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혜로 진리를 철견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법의 성품을 바르게 아는 지혜는 대상을 '사람, 중생, 나, 타인'으로 나누지 않는다. 대상을 좋아하거나 애착하거나 갈망하지도 않는다.
☸️💎(업에 의해 형성되는) 물질과 정신이 각자의 성품에 따라 쉼 없이 생멸하는 것을 지혜로써 알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 ☸️💎죽음조차 두렵지 않으니 평화롭고 아름답게 떠난다.
반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두려움에 압도돼 지옥에 떨어지기 쉽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영혼이 있다'는 유신견과 '나'에 집착한다. (💥💥💥 이 영혼이 나다- 유아견) ●나, 내 아들, 내 재산 등에 집착하며 익숙한 현재에 탐착한다. ● '내가 죽는다'며 비탄에 빠진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두려움에 압도당한 채 죽으면 나쁜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사견에 끄달려 악처에 떨어진다. 💥 도를 증득하지 못한 이상 피할 수 없다. 인간은 모두 죽음의 길을 걷는다. 찰나마다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먼 훗날일지 자신도 모른다. ☸️탄생만큼 죽음도 필연이다. 자신이 맞이할 죽음을 숙고한다면 수행을 안 할 수가 없다.
☸️💎지옥에는 고통만 있다. 고통 뒤에 고통, 이 고통과 저 고통이 틈 없이 이어진다. 지옥 자체가 고통이다 지옥으로 이끌었던 진심[성냄]에, 지옥에서 겪는 고통이 덧쌓여 불선한 업이 가중된다. ☸️💎불선한 업이 과보로 계속 연결되기 때문에 지옥에서 500년을 살더라도, 지옥을 헤어 나올 선업을 쌓을 수가 없다. ☸️💎 그래서 지옥의 고통은 '끝을 기약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열심히 수행하여 이번 생에 마쳐야 한다. 가쁜 숨을 내쉬며 죽음과 사투하는 순간 지옥 영상이 보인다면, 지금 잘난 체하는 만큼 눈물을 쏟을 것이다. ☸️💥그 순간에는 자식, 남편, 친구는 머나먼 곳에 있다. 부처님도 구해줄 수 없다. 날카로운 칼날 위에 파리 한 마리 놓고 누르면 즉사해 버린다. ☸️💚죽음 직전 마음이 찰나에 다음 생이 확정되고서 생이 끝난다. 자연의 법칙이다. 현생을 끝내는 동시에 이미 확정된 내생으로 끌려간다. 그래서 죽음 직전 마음이 중요하다. ☸️💚마지막 찰나에 나를 돕거나 구해 줄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고통에 사로잡혀 임종을 맞아서는 안 된다. 고통이 없는 자리, 편안한 자리에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 생에서 벌어지는 가난과 부귀에 끄달리지 마라. 가난하다고 비굴하지 말고 부귀하다고 자만하지 마라. 지옥 수명에 비하면 현생은 분, 초에 불과하다. 겁주려는 게 아니다. 반드시 가야 하고 필연적인 종착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남겨진 시간이 참으로 짧다. 이토록 소중한 시간을 자식, 사업 등 세상사에 허비해서야 되겠는가? ☸️💚생멸을 낱낱이 더 많이 보는 일이 가장 다급하다. 단계를 올라가면 더 미세한 생멸을 볼 수 있다. ☸️💎🦋생멸이 그친 곳에 닿으면 '할 일을 마친 지혜'가 드러난다.
☸️💎육신의 실체는 '물질과 정신의 생멸'뿐이다. 그 외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확신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생하고 멸하니까 고통이다. '고통의 진리', 실체의 고통을 확실하게 알면 ☸️💎👍오직 생멸뿐인 실체를 두려워하고 혐오하게 된다. ☸️💎👍혐오의 끝에 닿아야 생멸 없는 자리로 달려갈 수 있다. 그것이 '고통이 소멸한 자리, 열반'이다.
위방가 주석서에는 '도성제(팔정도)가 고통이 그친 열반으로 인도한다'라고 나와 있다. 대상이 열반으로 바뀌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