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론적 고찰과 궁극의 이론
우주론은 우리에게 매우 깊고 심오한 레벨에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만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곧 그들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대과학이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연결할 만한 논리를 갖고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런 종류의 논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주론의 연구는 우리에게 ‘우주가 왜 탄생되었는지’를 이해할 만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과학적 질문이 가능한 ‘과학적 우주관’의 폭을 한층 더 넓혀주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질문 자체가 스스로 해답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궁극의 이론을 찾는 과정에서는 이렇게 고아한 자세로 우주론을 상기하는 것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는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지만, 가장 심오한 이론마저 넘어서 있는 우주진화의 원리를 따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주진화의 원리란 무엇인가? 심오하긴 하지만 상상은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표면에서 비스듬한 각도로 던져진 공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 던져진 공의 향후 운명은 중력법칙에 의해 결정되지만, 이것만으로는 공의 도착지점을 예견할 수 없다. 공이 손을 떠날 때 갖고 있던 속도와 진행방향까지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에 주어진 초기 조건 initial condition을 알아야 공의 향후 운명을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의 우주는 ‘역사적 우연’이라는 특성을 가진 채 일련의 인과관계를 따라 진화해왔다. 별과 행성들이 특정 지역에 형성된 것은 지극히 복잡한 사건들이 모종의 규칙에 따라 진행된 결과이며 우리는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초기 우주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들, 즉 물질의 근본이나 매개입자의 특성 역시 진화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우주의 진화방향은 태초에 주어진 초기 조건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끈이론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이미 확인했다. 초기의 뜨거웠던 우주가 진화하면서 여분의 차원은 여러 차례의 변환 과정을 겪었으며, 온도가 충분히 내려간 후에는 하나의 칼라비-야우 공간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위로 던져진 공의 경우처럼, 카라비-야우 공간의 구체적인 형태는 입자와 힘의 특성을 좌우하므로,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태초부터 이미 결정된 운명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주의 초기 조건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으며, 그것을 어떤 개념으로, 어떤 언어로 서술해야 할지조차도 모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표준우주론과 급속팽창이론 inflation theory이 황당한 초기 조건(무한대의 에너지, 무한대의 밀도, 무한대의 온도)을 전혀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끈이론이 우주론이 영역에 접목되면서 무한대의 문제는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우주의 탄생 과정에 얽힌 비밀은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다. 사실 우리의 무지함은 이보다 훨씬 근본적인 레벨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주의 초기 조건이라는 것이 과연 지금 사용되는 언어로 표현이 가능할 것인지, 우리는 그 여부조차 알 길이 없다. 이것은 마치 누군가가 상공으로 공을 던질 때, 공을 던지려는 마음을 먹을 확률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하려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어떤 이론도 그런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없다. 호킹과 하틀 James Hartle을 비롯한 몇 명의 대담한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초기 조건에 관한 질문을 물리학적 언어로 표현하려고 시도해보았으나, 아직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끈이론과 M-이론이 접목된 우주론도 아직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것이 과연 우주의 초기 조건을 물리학 법칙으로 표현하여 ‘만물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이름값을 해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문제는 앞으로 진행될 연구의 화두가 될 것이다.
<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박병철 역, 승산, 200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