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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 어떻게 사진을 찍는가
시각장애인 사진가의 작업 방법과 세계의 주요 작가들
[1] ‘시각장애인 사진가’의 범위
시각장애인 사진가는 하나의 동일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집단이 아니다. 시각장애에는 선천성 전맹, 후천성 전맹, 저시력, 중심시야 손상, 주변시야 손상, 색각과 명암 인지의 제한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어떤 작가는 촉각과 소리만으로 촬영하고, 어떤 작가는 남아 있는 시력을 카메라로 확대하여 이용한다. 또 어떤 작가는 촬영보다 장면의 구상과 연출을 중심으로 작업하며, 비시각장애인 조력자와 협업한다.
‘시각장애인 사진’이라는 말도 하나의 고정된 장르를 뜻하지 않는다. 이들의 작업에는 인물사진, 풍경사진, 거리사진, 다큐멘터리, 셀프포트레이트, 라이트 페인팅, 추상사진, 설치와 개념사진이 모두 포함된다.
[2] 사진은 반드시 눈으로 보고 찍어야 하는가
사진 촬영에는 일반적으로 다음 과정이 포함된다.
① 무엇을 찍을지 결정한다.
② 대상과 장소의 관계를 파악한다.
③ 카메라의 위치와 방향을 정한다.
④ 초점, 노출과 촬영 순간을 결정한다.
⑤ 결과물을 선택하고 편집한다.
⑥ 사진을 배열하고 제목과 의미를 부여한다.
이 과정 모두가 반드시 망막의 시각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을 선택하는 일은 기억, 개념, 촉각, 소리와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카메라의 방향은 신체의 자세와 음원의 위치로 정할 수 있고, 초점과 노출은 자동화하거나 미리 설정할 수 있다. 최종 선택은 음성으로 사진을 설명받거나 조력자와 대화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
사진은 촬영자가 본 것을 그대로 옮기는 매체가 아니다. 카메라는 인간이 촬영 순간에는 확인할 수 없는 장면도 기록한다. 장노출, 고속촬영, 적외선사진, 현미경사진과 무인카메라가 대표적이다. 이런 점에서 사진은 처음부터 인간의 눈과 카메라의 기계적 시각이 결합된 매체이다.
[3] 시각장애 사진가의 세 가지 작업 유형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를 기획한 더글러스 매컬러(Douglas McCulloh)는 시각장애 사진가의 작업을 세 가지 개념적 유형으로 설명한다. 이 구분은 이해를 위한 틀이며, 실제 작가는 여러 방식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출처: UCR ARTS,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 )
https://ucrarts.ucr.edu/exhibitions/sight-unseen/
1. 머릿속의 이미지를 현실에 구현하는 방식
작가는 촬영하기 전에 기억과 상상으로 완성된 장면을 구성한다. 그다음 인물, 사물, 카메라와 조명을 배치하여 머릿속 이미지에 가까운 사진을 만든다.
이 유형에서는 사진이 바깥세계를 발견하는 행위라기보다 내부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물질화하는 과정에 가깝다. 에브겐 바브차르, 피트 에커트, 소니아 소베라츠와 앨리스 윙월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2. 비망막적 사진
작가는 소리, 냄새, 촉각, 온도, 이야기 또는 우연한 만남에 반응하여 셔터를 누른다. 비시각장애인 사진가가 화면을 보고 ‘좋은 구도’와 ‘결정적 순간’을 선택하는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 결과 일반적인 시각 규칙으로는 불완전해 보이는 잘림, 기울어짐, 우연한 대상과 예상하지 못한 거리감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성은 단순한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눈 중심의 선택체계를 벗어나는 작업 방법이 된다. 헨리 버틀러, 헤라르도 니헨다와 로시타 매켄지가 이 방식과 관련된다.
3. 보기 위해 촬영하는 방식
저시력 사진가는 카메라를 단순한 기록장치가 아니라 시각 보조장치로 사용한다.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을 망원렌즈, 접사, 고해상도 촬영과 화면 확대를 통해 확인한다.
이 경우 사진은 “본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보기 위해 찍는 것”이 된다. 브루스 홀과 커트 웨스턴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출처: Douglas McCulloh, 「Inner Vision: Photography by Blind Artists—The Heart of Photography」, Lenscratch)
https://lenscratch.com/2023/12/inner-vision-photography-by-blind-artists-the-heart-of-photography-by-douglas-mcculloh/
[4] 실제 촬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 촉각으로 공간을 측정한다
작가는 촬영 전에 공간을 걸으며 벽, 바닥, 가구와 대상의 위치를 확인한다. 팔 길이, 보폭, 지팡이 길이와 대상까지 걸어간 발걸음 수를 거리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인물사진에서는 모델의 얼굴과 어깨 방향을 허락받아 손으로 확인하거나, 모델에게 자신의 자세를 말로 설명하도록 요청한다. 정물사진에서는 사물을 직접 배열하고 테이블 가장자리를 기준으로 카메라 위치를 결정한다.
촉각은 단지 대상을 알아보는 수단이 아니다. 대상의 크기, 무게, 표면, 방향과 공간적 관계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2. 소리로 방향과 순간을 판단한다
사람의 목소리, 발소리, 차량 소리, 바람과 공간의 울림은 대상의 방향과 거리를 짐작하게 한다.
인물에게 계속 말을 하게 하여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카메라를 향할 수도 있다. 거리사진에서는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신호등 소리와 교통 흐름을 듣고 셔터를 누른다.
선천성 전맹이었던 재즈 피아니스트 헨리 버틀러(Henry Butler)는 뉴올리언스 거리의 소리와 리듬을 촬영의 단서로 사용했다. 그는 필요한 경우 조력자로부터 각도, 거리와 배경에 관한 정보를 들었지만, 어떤 사진을 만들고 선택할지는 자신의 감각과 판단으로 결정했다.
(출처: Henry Butler, 「The Eye of the Beholder」, The Digital Journalist)
https://digitaljournalist.org/issue0504/dis_butler.html

The Eye of the Beholder by Henry Butler- The Digital Journalist
여기를 눌러 링크를 확인하세요
digitaljournalist.org
3. 냄새·온도·바람에 반응한다
꽃향기, 음식 냄새, 바닷바람, 햇빛의 온도, 나무와 풀의 흔들리는 소리는 장소의 존재를 알려준다.
로시타 매켄지(Rosita McKenzie)는 얼굴에 닿는 햇빛,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꽃향기 등이 촬영 충동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촬영 대상은 눈에 보이는 모양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순간 작가가 신체 전체로 경험한 장소가 사진의 출발점이 된다.
(출처: KQED, 「How Blind Photographers Visualize the World」)
https://www.kqed.org/forum/2010101893708/how-blind-photographers-visualize-the-world
4. 기억으로 구도를 만든다
후천성 시각장애인은 과거의 시각적 기억을 이용할 수 있다. 인물의 형태, 건물의 구조, 원근법과 색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조합한 뒤 현실 공간에 배치한다.
그러나 기억은 정확한 복사가 아니다. 현재의 소리와 촉각, 과거 이미지와 상상이 결합된다. 따라서 결과는 외부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 기억과 현재가 겹쳐진 이미지가 된다.
5. 신체를 카메라의 방향축으로 사용한다
카메라를 가슴이나 얼굴 중앙에 놓으면 몸이 향하는 방향과 렌즈 방향을 일치시키기 쉽다. 양발의 위치를 기준으로 수평 방향을 정하고, 팔꿈치 각도로 카메라의 위아래 각도를 반복할 수도 있다.
삼각대의 다리 길이와 헤드 각도를 미리 표시하면 동일한 구도를 되풀이할 수 있다. 카메라와 몸의 관계가 익숙해지면 작가의 신체가 일종의 촬영 좌표계가 된다.
[5] 카메라와 보조기술의 이용
1. 자동초점과 자동노출
자동초점, 얼굴·눈 인식, 자동노출과 손떨림 보정은 촬영자가 시각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부담을 줄인다. 피사계 심도를 넓게 확보하면 정확한 초점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도 주요 대상이 선명하게 기록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모든 시각장애 사진가가 자동 기능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피트 에커트처럼 필름카메라와 수동적인 장노출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도 있다.
2. 촉각 표시
자주 사용하는 버튼과 다이얼에 작은 돌기 스티커를 붙이거나 서로 다른 재질로 표시할 수 있다. 전원, 셔터, 촬영모드, 노출보정과 재생 버튼을 촉각으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기본 설정을 저장해 놓으면 복잡한 메뉴를 매번 탐색하지 않아도 된다.
3. 스마트폰과 화면읽기 기능
스마트폰 카메라는 음성명령, 화면읽기, 얼굴 감지, 수평 안내, 자동초점과 이미지 인식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촬영된 사진의 인물 수, 사물, 문자와 전체 장면을 음성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다만 인공지능의 이미지 설명은 대상을 잘못 식별하거나 사진의 미묘한 관계를 일반적인 문장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설명은 작가의 최종 판단을 대신하는 정답이 아니라 참고정보로 사용해야 한다.
4. 이미지를 소리로 바꾸는 기술
인도의 프라나브 랄(Pranav Lal)은 선천성 전맹이며, 이미지 음향변환 프로그램인 ‘더 보이스(The vOICe)’를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카메라 영상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으며 이미지의 높이를 음의 높낮이로, 밝기를 소리의 크기로 바꾼다.
작가는 반복 훈련을 통해 소리의 패턴으로 수평선, 건물, 나무와 공간 구조를 구별한다. 이는 사진을 언어로 설명받는 것과 다르다. 기계가 “앞에 나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시각정보를 소리로 변환하고, 작가가 그 소리를 학습하여 판단한다.
(출처: The Photographers’ Gallery, 「Slow Looking: Pranav Lal」)
https://thephotographersgallery.org.uk/whats-on/slow-looking-pranav-lal
[6] 장노출과 라이트 페인팅
시각장애 사진가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대표적 형식이 장노출과 라이트 페인팅이다.
1. 작업 과정
① 어두운 공간에 카메라를 삼각대로 고정한다.
② 셔터를 수초에서 수분 동안 열어둔다.
③ 작가가 손전등이나 작은 광원을 움직인다.
④ 빛이 지나간 경로가 사진에 선과 면으로 기록된다.
⑤ 필요한 경우 플래시를 여러 차례 터뜨려 인물의 서로 다른 자세를 한 장에 겹친다.
2. 이 방법이 적합한 이유
라이트 페인팅은 촬영자가 완성된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필요가 없다. 빛을 움직인 신체의 경로, 시간과 순서를 기억하여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다. 작가의 몸짓이 사진 속 빛의 선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따라서 라이트 페인팅은 단순한 특수효과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몸의 움직임, 기억과 시간을 빛의 흔적으로 바꾸는 수행적 사진이다.
3. 한계
시각장애 사진가를 라이트 페인팅이라는 한 형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시각장애 사진가가 장노출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며, 일반적인 스냅사진, 다큐멘터리와 풍경사진을 만드는 작가도 많다.
[7] 조력자와 협업하는 방법
전맹 사진가는 촬영 장소나 결과물을 비시각장애인 조력자에게 설명받기도 한다. 그러나 조력자가 관여한다고 해서 저자성이 자동으로 조력자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상업사진에서도 사진가는 조명기사, 스타일리스트, 모델, 디지털 편집자와 협업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작업의 개념을 정하고, 대상을 선택하고, 촬영 조건과 최종 이미지의 의미를 결정하는가이다.
1. 촬영 전
작가는 만들고 싶은 장면을 설명한다. 조력자는 공간, 빛, 배경과 위험요소를 알려준다.
2. 촬영 중
조력자는 “모델이 화면 중앙보다 왼쪽에 있다”, “카메라가 약간 아래를 향한다”와 같이 사실정보를 제공한다. “이 구도가 더 예쁘다”는 자신의 취향을 작가의 결정처럼 강요해서는 안 된다.
3. 촬영 후
조력자는 사진마다 인물의 위치, 노출, 초점, 흔들림, 잘린 부분과 우연히 들어온 사물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작가는 그 설명을 바탕으로 자신이 계획한 이미지와 비교하여 선택한다.
4. 저자성의 기준
조력자의 역할이 단순한 정보 제공인지, 카메라의 위치와 촬영 순간까지 결정하는 공동창작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공동으로 결정했다면 공동저자로 표기하는 것이 정당하다.
뉴욕의 시잉 위드 포토그래피 컬렉티브(Seeing With Photography Collective)는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사진가의 협업을 숨기지 않고 작업 방법 자체로 삼는다. 이들의 작업은 개인적 저자성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각이 만나는 관계를 작품의 일부로 만든다.
(출처: Seeing With Photography Collective, 「About」, https://www.seeingwithphotography.com/about)
[8] 사진의 선택과 편집은 어떻게 하는가
촬영보다 더 복잡한 문제는 어떤 사진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1. 시각적 설명을 통한 선택
조력자는 촬영된 사진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설명한다.
① 전체 장면
② 주요 대상의 위치와 크기
③ 초점과 노출
④ 표정과 동작
⑤ 배경에 들어온 요소
⑥ 작가가 계획한 장면과의 차이
⑦ 유사한 사진들과의 차이
작가는 설명을 들으며 촬영 당시의 공간, 소리와 신체 움직임을 기억하고 최종 이미지를 선택한다.
2. 여러 사람의 설명 비교
한 사람의 설명에는 그 사람의 취향이 들어갈 수 있다. 필요한 경우 두 명 이상에게 독립적으로 설명받아 공통된 사실과 서로 다른 해석을 비교할 수 있다.
3. 음성·파일 정보 이용
촬영 시간, 노출값, 초점거리와 연속촬영 순서를 음성으로 확인하면 당시 행위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파일에 음성메모를 붙여 촬영 장소와 의도를 기록할 수도 있다.
4. 우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일부 작가는 초점 실패, 화면 밖의 침입물과 예상하지 못한 잘림을 제거하지 않는다. 그것을 작가가 통제하지 못한 오류가 아니라 카메라와 세계가 공동으로 만든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연히 나온 사진이라고 모두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연을 어떤 개념으로 선택하고 배열하는지가 중요하다.
[9] 세계의 주요 시각장애인 사진가들
1. 에브겐 바브차르(Evgen Bavčar, 슬로베니아·프랑스)
바브차르는 어린 시절 사고로 양쪽 시력을 잃은 전맹 사진가이자 철학자이다. 시각장애 사진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선구적 인물이다.
그는 촬영 전에 장면을 머릿속에 명확하게 구성한다. 다른 사람에게 장소와 대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손으로 거리와 위치를 확인하며, 카메라의 자동초점도 활용한다. 어두운 공간에서 손전등과 플래시로 인물이나 사물을 부분적으로 비추는 장노출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그의 사진에는 신체, 얼굴, 손, 천사, 새, 풍경과 빛의 흔적이 꿈이나 기억처럼 나타난다. 사진을 외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내부 이미지가 외부로 나타난 결과로 본다. 그의 작업에서 핵심은 “보지 못하면서도 찍는다”는 기교가 아니라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의 관계이다.
(출처: UCR ARTS,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
https://ucrarts.ucr.edu/exhibitions/sight-unseen/
(출처: ZoneZero, 「Evgen Bavčar)
https://v1.zonezero.com/exposiciones/fotografos/bavcar/intro.html
2. 피트 에커트(Pete Eckert, 미국)
에커트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뒤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조각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경험이 있어 대상을 입체와 공간의 관계로 구상한다.
그는 소리, 촉각과 기억으로 공간을 파악하고, 필름카메라의 장노출과 다중노출을 사용한다. 손전등, 레이저와 불빛을 움직여 인물과 자동차 주변에 에너지처럼 흐르는 빛의 선을 만든다.
그의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촬영 순간의 경험이다. 그는 빛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광원을 움직인 방향, 걸음 수, 시간과 대상의 위치를 기억한다. 사진은 그 수행의 기록이면서 머릿속 이미지가 시각세계로 넘어가는 통로가 된다.
(출처: Pete Eckert 공식 홈페이지)
https://peteeckert.com/
(출처: Lenscratch, 「Inner Vision: Photography by Blind Artists—Pete Eckert」)
https://lenscratch.com/2023/12/inner-vision-photography-by-blind-artists-pete-eckert/
3. 소니아 소베라츠(Sonia Soberats, 베네수엘라·미국)
소베라츠는 시력을 잃은 뒤 뉴욕의 시잉 위드 포토그래피 컬렉티브에서 작업했다. 인물의 위치와 얼굴을 촉각과 대화로 파악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장시간 노출한 뒤 손전등으로 인물의 일부를 여러 차례 비췄다.
그 결과 얼굴과 몸은 한 번에 고정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빛 속에서 중첩되고 해체된다. 《Portrait in Paper》 같은 작업에서는 젖은 종이를 얼굴 위에 겹치고 빛을 움직여 신체의 경계가 생성되고 사라지는 듯한 초상을 만들었다.
그의 작업에서 시력 상실은 단순한 전기적 배경이 아니라 신체와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고 다시 구성되는 과정과 연결된다.
(출처: Smithsonian Magazine, 「Blind Photographer Paints With Light, Creating Stunning Images」)
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blind-photographer-paints-with-light-creating-stunning-images-58502861/
4. 브루스 홀(Bruce Hall, 미국)
홀은 선천적으로 정상 시력의 약 5% 정도만 가지고 태어난 저시력 사진가이다. 심한 근시와 안구진탕이 있으며, 대상을 매우 가까이에서 보아야 한다.
그에게 카메라는 작품 제작도구이면서 시각 보조기구이다. 고해상도 센서, 자동초점, 망원렌즈와 화면 확대를 이용하여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대상을 사진으로 본다. 수중사진을 오랫동안 작업했으며, 자폐성 장애가 있는 쌍둥이 아들들의 일상을 기록한 《Immersed: Our Experience with Autism》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들을 먼저 보고 촬영한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촬영한 사진을 확대해 보면서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을 더 자세히 발견했다. 그의 작업은 사진을 ‘본 것을 기록하는 장치’에서 ‘보게 해주는 장치’로 전환한다.
(출처: Lenscratch, 「Inner Vision: Photography by Blind Artists—Bruce Hall₩
https://lenscratch.com/2023/12/inner-vision-photography-by-blind-artists-bruce-hall/
5. 앨리스 윙월(Alice Wingwall, 미국)
조각가이자 사진가였던 윙월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점차 시력을 잃었지만 사진 기반 작업을 계속했다.
그녀는 건축공간에 대한 오랜 기억, 신체로 익힌 방향감각과 조력자의 설명을 결합했다. 건축물, 자화상과 안내견의 이미지를 중첩하거나 콜라주하여 시각을 잃은 뒤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표현했다.
특히 안내견의 이미지는 단순한 동물사진이 아니다. 자신의 이동과 지각이 다른 생명체를 통해 매개되는 관계를 보여준다. 윙월은 시각장애 작가가 장애미술이라는 별도 범주 안에만 전시되는 것을 넘어, 작품 자체의 수준으로 주류 예술계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KQED Spark, 「Alice Wingwall」)
https://ww2.kqed.org/spark/alice-wingwall/
6. 헤라르도 니헨다(Gerardo Nigenda, 멕시코)
니헨다는 멕시코 오악사카에서 활동한 전맹 사진가이다. 일상에서 들리는 소리, 반복해서 다닌 길, 냄새와 촉각을 기준으로 촬영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화된 흑백사진 위에 점자 문장을 직접 찍어 넣은 것이다. 점자는 사진에 보이는 내용을 단순히 설명하지 않는다. 촬영 당시의 냄새, 바람, 신체감각, 욕망과 기억을 덧붙인다.
비시각장애인은 사진은 볼 수 있지만 점자를 읽기 어렵고,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읽을 수 있지만 평면 이미지는 직접 볼 수 없다. 따라서 작품을 온전히 경험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사진과 문장을 번역해 주어야 한다. 사진은 시각적 표면이면서 동시에 손끝으로 읽는 물체가 된다.
(출처: ZoneZero, 「Gerardo Nigenda: Photographing the Invisible」)
https://v2.zonezero.com/index.php?catid=7%3Ain-memoriam&id=1174%3Agerardo-nigenda-photographing-the-invisible&lang=en&option=com_content&view=article
7. 커트 웨스턴(Kurt Weston, 미국)
웨스턴은 패션사진가로 활동하다가 에이즈 관련 거대세포바이러스 망막염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다른 눈에도 중심시야 손상이 생겼다.
그의 《Blind Vision》 연작은 일반 카메라 대신 평판 스캐너를 카메라처럼 이용한 자화상이다. 얼굴을 스캐너 유리에 매우 가까이 대고 스캔함으로써 일부는 지나치게 선명하고 조금만 떨어진 부분은 검은 배경 속으로 사라지는 이미지를 만든다.
극도로 얕은 초점, 긁힌 표면, 가려진 얼굴과 검은 공간은 자신의 제한된 시야를 그대로 복제한다기보다 시력 상실이 주는 신체적·심리적 경험을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출처: Kurt Weston 공식 홈페이지, 「Biography/Artist Statement」)
https://www.kurtweston.com/artist_bio.html)
(출처: UCLA National Arts and Disability Center, 「Kurt Weston」, https://teams.semel.ucla.edu/nadc/artist/kurt-weston
8. 로시타 매켄지(Rosita McKenzie, 스코틀랜드)
매켄지는 어린 시절 시력을 잃었으며 2006년부터 사진작업을 시작했다. 소리, 햇빛의 온도, 냄새, 바람, 장소에 얽힌 이야기와 자신의 내부 이미지를 촬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녀는 일상적인 디지털카메라와 협업을 활용하지만, 비시각장애인의 촬영 규칙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스스로 만든다. 추상사진과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를 함께 작업하며, 사진과 전시의 접근성을 위한 활동도 지속해 왔다.
(출처: Rosita McKenzie Photography, 「Biography」)
https://rositamckenziephotography.co.uk/aboutcontact
(출처: NHS Fife, 「Photographer Rosita McKenzie Brings Her Unique Perspective to Queen Margaret Hospital’s Community Gallery」)
https://www.nhsfife.org/news-updates/latest-news/2025/08/photographer-rosita-mckenzie-brings-her-unique-perspective-to-queen-margaret-hospital-s-community-gallery/
9. 헨리 버틀러(Henry Butler, 미국)
버틀러는 유아기에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재즈·블루스 피아니스트이자 사진가이다. 1984년경부터 사진을 시작했다.
그는 특히 목소리, 음악, 거리의 소리와 공간의 리듬을 따라 촬영했다. 필요한 경우 조력자가 각도와 배경을 설명했지만, 사진을 선택하는 최종 기준은 자신의 촬영 경험과 감각적 기억이었다.
그의 작업은 음악과 사진이 서로 분리된 활동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소리의 방향, 반복, 간격과 리듬이 사진의 촬영 순간과 공간 구조를 만드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출처: Henry Butler, 「The Eye of the Beholder」, The Digital Journalist)
https://digitaljournalist.org/issue0504/dis_butl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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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프라나브 랄(Pranav Lal, 인도)
랄은 선천성 전맹 사진가이자 사이버보안 전문가이다. 그는 ‘더 보이스’ 프로그램으로 카메라 영상을 소리로 변환하여 풍경과 건축물을 촬영한다.
화면에서 높은 위치는 높은 음으로, 낮은 위치는 낮은 음으로, 밝은 부분은 큰 소리로 전달된다. 그는 이 규칙을 학습하여 수평선과 건물의 윤곽, 밝은 하늘과 어두운 지면의 관계를 판단한다.
그의 작업은 조력자가 이미지를 언어로 해석해주는 방식과 다르다. 시각정보가 일정한 기계적 규칙에 따라 청각정보로 전환되고, 작가가 직접 그것을 해독하여 촬영한다. 이는 카메라가 감각 변환장치이자 시각 보철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The Photographers’ Gallery, 「Slow Looking: Pranav Lal」)
https://thephotographersgallery.org.uk/whats-on/slow-looking-pranav-lal)
(출처: TED, Pranav Lal, 「My Play with Vision」, https://www.ted.com/talks/pranav_lal_my_play_with_vision
11. 마이클 리처드(Michael Richard, 미국)
리처드는 종양 제거 수술 후 심각한 저시력 상태가 되었다. 그는 남아 있는 희미한 형태 인식을 이용하여 로스앤젤레스의 건물과 거리풍경을 흑백사진으로 촬영했다.
수동카메라의 설정을 확대경으로 확인하고, 뚜렷한 대상보다 흐릿한 형태와 도시의 기하학적 구조에 집중했다. 그의 사진에서 저시력은 극복하고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도시를 추상적으로 재구성하는 시각적 조건이 되었다.
(출처: Bedford Gallery,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
https://www.bedfordgallery.org/exhibitions/current-season/sight-unseen
12. 시라토리 겐지(Shiratori Kenji, 일본)
시라토리는 중증 약시로 태어나 점차 시력을 잃은 일본의 사진가이자 미술관 감상 활동가이다. 그는 사람들과 작품 앞에서 대화하는 감상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출퇴근길을 거의 매일 촬영했으며, 촬영 결과를 완전히 통제하기보다 카메라를 자신과 일상 사이에 놓인 감각적 매개체로 사용했다. 한국 작가 정연두는 시라토리가 찍은 수천 장의 사진을 편집하여 영상작업으로 구성했다.
여기서는 촬영자와 편집자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개별 사진과 반복적인 촬영 행위는 시라토리의 것이지만, 수천 장을 선별하고 시간적 구조를 부여한 영상작업은 정연두의 편집과 협업을 통해 성립한다.
(출처: e-flux, 「Jung Yeondoo」)
https://www.e-flux.com/announcements/30436/jung-yeondoo)
(출처: Art Sightama 2023, 「Talk Session with Photographer Shiratori Kenji」, https://2023.art-sightama.jp/en/events/qpt4zraxx_i/
13. 안라쿠지 에미(Emi Anrakuji, 일본)
안라쿠지 에미는 뇌종양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다른 눈에도 선천적 약시가 있는 저시력 사진가이다. 오랜 투병과 회복 과정에서 사진을 독학했다.
그녀의 작업은 자신의 몸, 방, 천, 머리카락과 일상 사물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한 자화상이다. 신체는 완전한 인물로 제시되지 않고 잘리고 가려지며 파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작업은 시각장애를 직접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라기보다 제한된 신체, 친밀성, 욕망과 자기응시를 다루는 동시대 사진이다. 장애가 작품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작품의 의미 전체를 장애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출처: Emi Anrakuji 공식 홈페이지)
https://www.emianrakuji.com/
[10] 주요 집단과 교육 프로젝트
1. 시잉 위드 포토그래피 컬렉티브
(Seeing With Photography Collective,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전맹·저시력·비시각장애인 사진가가 함께 작업하는 집단이다. 시각장애 사진가가 머릿속 장면을 설명하고, 조력자와 함께 모델과 조명을 배치한 뒤 장노출과 라이트 페인팅으로 촬영한다.
작품집 『Shooting Blind』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들의 협업은 조력자를 감추지 않으며 서로 다른 지각이 만나는 과정 자체를 작품의 중요한 부분으로 제시한다.
(출처: Seeing With Photography Collective, 「About」
https://www.seeingwithphotography.com/about
2. 블라인드 포토그래퍼스 길드
(Blind Photographers’ Guild, 미국)
피트 에커트, 브루스 홀과 앨리스 윙월 등이 참여한 소규모 집단이다. 목표는 시각장애 사진을 치료나 복지 프로그램에 한정하지 않고 주류 시각문화 안에서 작품으로 평가받게 하는 것이다.
(출처: Blind Photographers’ Guild, Visual Summit
https://visualsummit.com/link/Promo_Page_-_45714
3. 블라인드 위드 카메라
(Blind With Camera, 인도)
파르토 보우믹(Partho Bhowmick)이 2006년 시작한 프로젝트로, 인도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진을 교육하고 전시와 출판으로 연결한다.
이 프로젝트는 사진을 개인적인 취미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자기표현, 사회참여와 비시각장애인 사회와의 대화 수단으로 사용한다. 수백 명의 시각장애인이 교육에 참여했으며 일부 참가자는 다시 교육자가 되었다.
(출처: PhotoVoice, 「Journey from Darkness to Light」)
https://photovoice.org/journey-from-darkness-to-light/
(출처: Blind With Camera 공식 홈페이지)
https://blindwithcamera.com/
[11] 대표적 국제전 《Sight Unseen》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는 2009년 캘리포니아 사진박물관에서 시작된 국제 순회전이다. 시각장애 사진가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주요 미술관 기획전으로 평가된다.
초기 전시에는 랠프 베이커(Ralph Baker), 에브겐 바브차르, 헨리 버틀러, 피트 에커트, 브루스 홀, 애니 헤세(Annie Hesse), 로시타 매켄지, 헤라르도 니헨다, 마이클 리처드, 커트 웨스턴, 앨리스 윙월과 시잉 위드 포토그래피 컬렉티브가 포함되었다. 이후 전시의 판본과 장소에 따라 알렉스 더 용(Alex de Jong) 등 일부 작가가 추가되었다.
이 전시의 의미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감동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사진을 외부세계의 정확한 시각적 복사라고 보는 관념을 흔들고, 사진이 개념·기억·우연·기계와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매체임을 드러낸 데 있다.
(출처: UCR ARTS,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
https://ucrarts.ucr.edu/exhibitions/sight-unseen/
(출처: Curatorial Assistance,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
https://www.curatorial.org/case-studies/sight-unseen-international-photography-by-blind-artists
[12] 시각장애 사진을 이해할 때 피해야 할 오류
1. 모든 사진을 장애 극복의 결과로만 평가하는 것
작품의 형식, 주제와 미학적 성취보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촬영했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작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감동적인 사례로 소비된다.
2. 모든 우연을 예술로 간주하는 것
화면을 확인하지 않고 찍은 우연한 사진이 자동으로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왜 그 사진을 선택하고 다른 이미지들과 어떻게 연결했는지 검토해야 한다.
3. 조력자가 있으므로 작가가 아니라는 주장
사진의 저자는 반드시 카메라의 모든 버튼을 혼자 조작한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작업의 발상, 지시, 촬영 행위, 선택과 의미화에 누가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4. 시각장애인은 시각 규칙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주장
후천성 시각장애인은 과거의 시각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선천성 전맹 작가도 언어와 문화 속에서 원근법, 아름다움과 사진 구도를 배운다. 따라서 시각장애 사진이 사회적 이미지 코드와 완전히 무관한 순수한 내부 이미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5. 다른 감각이 자동으로 더 뛰어나다는 주장
시각장애인이 소리와 촉각에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수는 있지만, 모든 시각장애인의 청각과 촉각이 생물학적으로 탁월해지는 것은 아니다. 감각 사용법은 경험과 훈련에 따라 다르다.
[13] 사진미학적 의미
시각장애 사진가의 작업은 사진에 관하여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① 사진은 사진가가 본 것을 기록하는가, 아니면 카메라가 기록한 것을 사후에 해석하는가.
② 사진의 저자는 셔터를 누른 사람인가, 장면을 구상한 사람인가, 이미지를 선택한 사람인가.
③ 구도와 결정적 순간은 사진의 필수조건인가, 시각문화가 만든 하나의 관습인가.
④ 사진에서 우연과 통제는 어디까지 구분되는가.
⑤ 시각적 이미지는 반드시 시각만으로 만들어지고 이해되어야 하는가.
시각장애 사진가는 사진의 바깥에 있는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진이 눈, 신체, 기억, 언어, 카메라, 우연과 타인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는데도 어떻게 사진을 찍는가”라는 놀라움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사진을 만든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보는 일이며, 사진에서 ‘본다’는 것은 과연 누구의 시각을 의미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