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한네스버그에서 사는 '아프리카 바람'과 온라인에서 맺어져서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 되었다. 바람과 나는 비젼을 같이 나누면서 6 년 동안 거의 매년 한국에 가는 시간을 맞추어 만나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전국의 공동체를 찾아 다니고 우리가 함께 가려는 길에 대해서 의논했다.
특별히 기억되는 일은 산청에 있는 민들에 공동체를 탐방했을 때였다. 바람이 나에게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기차가 없느냐고 물었다. 버스 밖에 없다고 했더니 2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야 해서 기차를 타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직 젊은데 벌서 그러면 안되지. 치료를 받아야지.”라고 했더니 바람이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면서 어떻게 살아요?” 라고 했다. 그 말 한 마디가 그가 어떻게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감리교 신학대학 출신인 바람과 구름 부부는 한국에서 장사를 하다가 빚을 지고 무작정 가서 처음에는 재고 의류를 노천 시장에서 파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들은 소자본을 만들었고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서 중국이 아니라 지구의 정반대 편인 남아공에서 중국을 오가면서 안경테를 사와서 매주 남아공 일대에 팔러 돌아다니는 보따리 장사를 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어도 남아공에서 지구의 정반대편인 중국으로 보따리 장사를 해 본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가 아니면 차 안에서 지낸 샘이다.
바람 부부는 지난 30년 동안 죽지 않을 만큼 일을 해서 기반을 닦아서 지금은 30여 명의 직원이 있는 회사를 운영할 만큼 성공을 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직원 가족들이 전부 모여서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다. 본인들의 배고픔을 벗어나 흑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바람의 목적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가서 큰 땅을 구입해 직원들과 가족들이 모두 같이 모여 살면서 외교와 국방 외에는 모든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바람 부부는 현실적으로는 위험한 개척자의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크고 넓은 이상을 품고 있었다.
돈이나 물건을 나누어주는 것만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다. 즉 재화의 소비 못지않게 용역의 소비도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즉 남아공에서는 한 집에서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를 고용해주면 그 만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가서 고용인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교육이나 훈련을 시켜 준다면 예수가 따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의 고민은 할 일이 눈에 보이는데 함께 힘을 모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야 하는 사업을 운영해 나가기도 벅차서 마음속에서 꿈꾸고 있는 생활공동체를 추진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막연하게 꿈같은 이상을 품은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한 공동체를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2013년 드디어 바람이 나를 남아공으로 초청했다. 나머지 생애를 그 곳에서 살 가능성을 생각 했기 때문에 여행이 아니라 답사이었다. 그런 까닭에 보이는 체류 기간 내내 단순히 보이는 현상들 보다는 가능한대로 그 현상 뒤에 있는 구조를 보려고 노력 했다. 나는 평생을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 마침표를 남아공에서 찍으려고 했었다. 내가 남아공에 가서 할 일을 찾으려고 한다니까 이구동성으로 위험한 곳에 왜 가느냐고 말렸다.
"만약에 흑인들의 위해서 조그만 일이라도 하다가 흑인들에게 총 맞아 죽는다면
그것 보다 값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가 말했다.
"심장에 정통으로 맞아서 죽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엉뚱한 맞아서 몸도 못 쓰고 병신만 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심장 쪽에 권총 타깃이 그려진 옷을 입어야 되겠다."
그러나 결국 남아공에서 인생을 끝내려던 작전 계획은 “이 나이에 가기는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 철 좀 들어라”라는 경고를 받고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사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에는 만 65세라는 나이는 너무 늦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