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煎) 타령/ 전 성훈
전이 먹고 싶을 때는 집에서 자주 부쳐 먹지만 역시 전집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전이 생각날 때면 종로5가 광장시장이나, 제기동 경동시장 전집이 떠오른다. 종로5가 광장시장 전집은 녹두전과 모듬전으로 인터넷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그 덕분 때문인지 전집을 찾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가끔 광장시장에 들리면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특히 중국인과 일본인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들뜬 마음에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마주친다. 그런데 맛집으로 소개된 집임에도 불구하고 음식 맛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음식은 이름값을 못하는데 유명세 덕에 가게 앞에 줄 서는 손님만 늘어간다. 본질은 제처 두고 형식과 남의 눈을 따라가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광장시장과 달리 경동시장 전집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우선 전집 위치 자체가 대조적이다. 광장시장은 길거리 1층인데 비하여 경동시장은 지하에 있다. 게다가 지하 가게의 모습은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다. 햇볕이 드는 밝은 곳이 아니어서 조금 지저분하다. 그래서 그런지 길게 줄을 서는 손님도 없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 모습은 눈뜨고 찾을 내야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전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광장시장보다는 경동시장 전집을 더 좋아한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전집의 참 맛은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씨에 있다. 장삿속에 빠져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광장시장 전집에 비하여 경동시장 전집은 그야말로 고향집에 온 느낌이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양손바닥을 합친 것보다 커다란 배추전을 후다닥 지져 내놓는다. 더하여 멸치국물에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펄펄 끊인 홍두깨로 밀은 칼국수를 식탁에 올린다. 강된장에 찍어 먹을 잘 씻은 양배추와 못생긴 청양고추 그리고 시큼한 파김치도 한 접시 가득히 내어 놓는다. 아주머니에게 부탁하면 다른 가게에서 파는 싱싱한 홍어회나 육회 사시미도 사다 준다. 소주 한 병 주문하여 아주머니와 술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더 없이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언젠가 전을 먹으며 좋아하는 전의 종류를 꼽아보니 예상외로 상당히 많다. 어린 시절 성북구 월곡동 비좁기 그지없던 셋집 부엌방에서 먹었던 아련한 추억속의 김치전, 폭삭 익어 누린내가 베어나는 텁텁한 맛의 묵은지 김치전은 한 많은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을 느끼게 했다.
전하면 배추전과 김치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풋내가 풀풀 배어나 씹을 때 아삭아삭한 느낌을 주는 배추전은 다른 전을 먹을 때보다 훨씬 감미로운 느낌을 준다. 가느다란 실파나 쪽파를 통째로 넣고 부쳐 가위로 대충 잘라 먹었던 파전, 혈액 순환에 좋다고 식탁에 자주 올랐던 부추전, 재래시장에서 대구나 동태 포를 떠다가 부쳐 먹었던 생선전, 늦은 시간 성당에서 회합을 마치고 출출한 뱃속을 가여워하며 맛보았던 낙지전, 아내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그해 가을 유람선을 타고 건너간 강원도 춘천 청평사 앞뜰에서 아내 눈을 바라보며 먹었던 달콤한 추억의 감자전, 아내가 좋아하는 달걀을 풀어 휘휘 저은 노른자를 살짝 입혀 부쳐 먹었던 호박전도 생각난다.
여름날 푸르른 속초 바다가 그리울 때 생각나는 파래전, 구수하고 고소한 시골 냄새나는 시금치전, 잘게 갈은 녹두에 묵은 김치를 숭숭 썰어 넣는 우리 집 녹두전,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평창 대표 토속 음식 메밀전, 언제 먹어도 싫지 않은 말랑말랑한 아기 손 같은 두부전,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싱싱한 오징어전, 굴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기막힌 식감의 굴전도 빼놓을 수 없다.
이토록 다양한 전의 맛을 한 번이라도 맛보려면 올해는 예년 보다 더욱 전을 가까이 하며 세월의 손맛을 느껴는 즐거움을 가져야겠다. (2019년 3월)
첫댓글 잘 감상합니다.
사먹는 전은 예전 맛이 나지 않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