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낚시꾼의 뻥
도시어부에서 이덕화는 ‘놓쳤어!’ 이 말을 하루 세 번만 하고 두둑한 출연료에 출장비와 숙식비까지 재공 받는다.
그리고 동료와 스텝들로 부터 ‘이덕화! 이덕화!’ 하는 아부성 환호를 듣는다.
자기도 민망한지 어느새 ‘부탁해요’ 하는 말은 사라지고 표정 관리 중이라 밉지 않다.
이경규는 이덕화만 줄줄 따라다니면서 불평만 늘어놓고 낚시질은 하는 둥 마는 둥 그래도 잘 먹고 산다.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코미디 소재가 없어서야!
문인들을 왜 글이나 시를 폼 나게 잘 쓸까? 성악가들은 왜 목청껏 소리를 지를까?
읽어줄 사람이 있고 들어줄 사람이 있으니 그들 앞에서 뽐내고 싶은 거다.
까불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그렇게 만들었다.
뻥을 잘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런 재미에 유치찬란한 언어로 침소봉대한다.
뻥은 뻥튀기에서 유래한 말인데 '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낚시꾼들이다.
‘뻥'은 무궁무진하지만. 이 중에서도 낚시꾼의 '뻥'은 유쾌하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거짓말과 다른 점이다.
광어 낚시를 하러 충남 태안 신진도항으로 갔을 때다.
본격적인 낚시 포인트까지 가는 데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선장이 바로 코앞이요! 하는데. 그건 약과다.
생면부지의 꾼들이 지루한 항해를 오로지 낚시라는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마 무시한 대어를 잡았다거나 쿨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는 등
광어를 한 마리 올렸는데 빨래판 두 개를 붙여놓은 거만 하지 뭡니까?
이때 '뻥치지 마세요.'하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러면 자신도 '뻥'에 합류할 기회를 놓친다.
다음 말이 이어져. 회를 떴더니 동네 사람들 13명이 먹고도 남았다고.
와! 겁나게 컸나 봅니다. 하고 추임새를 넣으면
대문짝만한 회를 떴어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런 '뻥'이 나오면 후속타로 다른 꾼의 경험담으로 이어진다.
제주도로 갈치 낚시 갔는데 갈치를 제대로 올렸지!
10지 정도는 되었을걸요. 하면서 두 손바닥을 펴 보인다.
시장에서 보통 갈치의 크기가 3지 정도이고 4지나 5지는 대물인데,
10지라니? 이건 갈치라기보다는 괴물이다.
뻥도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쯤이면 누군가가 제지를 한다.
에이! 그런 갈치가 어디 있어요? 6지, 7지까지는 잡아봤지만 10지는 들어보지도 못했네!
그러면 10지를 말한 사람은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휴대폰에서 사진을 뒤진다.
대개 실수로 지워졌지만 실제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미 다른 꾼이 또 다른 '뻥'의 세계로 인도하고.
돌돔 대물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용왕님을 알현한 추자도의 전설적인 낚시꾼 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포인트에 도착하면 '뻥'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꾼들은 실전에 돌입한다.
잡은 물고기에 비해 놓친 물고기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크게 자라.
피라미가 팔뚝만한 붕어로, 다음에는 민물이 바다로 넘어가 먹장어를 넘더니 참치 대물로 진화한다.
지난가을 뱃전까지 끌어올려 뜰채에 담으려는 순간 바늘털이를 하며 유유히 바다 속으로 사라진 농어는 1m는 족히 넘었을 것이야!
요동을 치면서 목줄을 끊고 코앞에서 달아난 우럭은 7자는 족히 되는데 아쉽다.
꾼들은 이런 추억의 대어를, 첫사랑의 아련함처럼 몇 마리씩은 마음 한쪽에 간직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다금바리같은 고급 생선을 맛볼 수 있으니. 꼭 한번 먹고 싶다고 말하시라!
풍성한 잔치에 당신을 초대하여 푸른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자연산을 진상할 것이다.
낚시꾼이 '뻥'을 친다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법문
萬丈寒潭徹底淸錦鱗夜靜向光行和竿一掣隨鉤上水面茫茫散月明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맑은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비단잉어는 고요한 밤 달빛을 따라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낚싯대를 잡아채면 펄떡 솟구치니 수면위로 환희롭고 영롱한 달빛이 쏟아진다.
수행자는 낚시꾼입니다. 화두는 낚시 바늘이 되고 무심으로 밑밥을 삼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연못입니다. 너무나 맑고 투명해 어떤 눈 속임수도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오직 철저한 무심이라는 밑밥이라야 주인공 신어(神魚)를 유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분별하는 마음이 일렁이면 곧바로 숨어버립니다.
까마득한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아무리 오랫동안 앉아있다 해도 미동도 해서는 안 됩니다.
벗어날 수 없는 예리한 화두 낚시 바늘을 드리우고 모든 것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밝은 달빛에 정신이 홀려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잉어는 비늘을 번뜩이며 물위로 올라올 것입니다.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 의심스럽거나 경계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 먹이를 덥석 뭅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잠깐의 망설임 없이 순식간에 낚아채 올려야 합니다.
그러면 일념화두의 바늘에 걸려 솟아오르며 푸득거리는 모습에서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무애자재한 해탈의 한바탕 춤사위가 됩니다.
푸득거릴 때마다 달빛 물방울이 장엄하게 아득한 수면위로 떨어집니다. 이는 생사윤회와 번뇌 망상의 미운에서 벗어나 광명으로 충만한 환희의 순간이 것입니다.
斜風時撲面細雨又沾衣杖拂垂林露山中獨自歸
바람이 불어오는데 가랑비가 나그네의 옷을 적시는구나. 지팡이로 휘적휘적 이슬을 떨치면서 유유히 홀로 산중으로 돌아 왔노라
무명거사 합장
허주의 아침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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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Nw9hT4b2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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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 의심스럽거나 경계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 먹이를 덥석 뭅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잠깐의 망설임 없이 순식간에 낚아채 올려야 합니다.
그러면 일념화두의 바늘에 걸려 솟아오르며 푸득거리는 모습에서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무애자재한 해탈의 한바탕 춤사위가 됩니다.
푸득거릴 때마다 달빛 물방울이 장엄하게 아득한 수면위로 떨어집니다. 이는 생사윤회와 번뇌 망상의 미운에서 벗어나 광명으로 충만한 환희의 순간이 것입니다.
斜風時撲面細雨又沾衣杖拂垂林露山中獨自歸
바람이 불어오는데 가랑비가 나그네의 옷을 적시는구나. 지팡이로 휘적휘적 이슬을 떨치면서 유유히 홀로 산중으로 돌아 왔노라
무명거사 합장
허주의 아침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