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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낙동정맥 (아화고개-비슬지맥분기봉-사룡산-숲재-부산성-760봉-독고불재-651봉-당고개) 2012,04,05.맑음. 산행시간;06;59-14;55(약8시간) 산행거리;22.5km(사룡산 왕복1.2km,접근1.5km 포함) 밤11시55분 경주행 심야버스로 경주에 03시30분 도착, 터미널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 06시10분 아화행300-1번 버스로 아화도착, 걸어서 아화고개에 이르러 철길 건너며 산행시작. 15시 조금 못미쳐 당고개 도착,오늘 구간을 마무리하고 355번 시내버스(기사가 날 알아 보았다. 지난번(당고개-소호령 구간때)첫차를 탄 나랑 애기를 나눴다며 반긴다)를 타고 경주터미널로 나와 16시10분 강남터미널행 고속버스에 몸을 얹어 귀경.
아화에서 하차,고개로 가는길에 기차가 지나간다. 중앙선 철도는 일본이 조선을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경부선에 이은 조선 제2의 종관선을 건설하여 경상북도와 충청북도,강원도 및 경기도 등 4개 도에 걸친 내륙일대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탈하고 날로 증가하는 조선과 만주,그리고 일본 간의 여객과 화물의 수송을 원활히 할 목적으로 이 노선을 건설하였는 데 청량리역에서 국토를 남북으로 종관하여 경상북도 경주역에 이르는 철도다. 아화고개 가는 길에 개나리도 보며 애기지휴게소를 지난다 아화고개에서 창고건물 쪽으로 철길을 무단횡단하며 오늘 구간을 시작한다. 아화는 당초 마을 앞에 언덕이 있어 답답하다고 하여 아울이라 하였는데 여름철에는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초목이 메말라 탈 정도로 심한 가뭄을 겪어야 되고 언덕에 불을 붙이면 불이 꺼질 줄 몰랐다 하여 아화라고 마을명을 불렀다 하며 그 마을에 있는 고개라 아화고개란 이름이 붙었다고... 철길을 건너면 마을이 나타나고 과수원을 통과한다 첫봉우리를 올라서서 내려다 본 만불산 줄기 다시 과수원을 내려서면 태양광시설이 나오고 왼쪽으로 조금 내려서서 지하통로로 경부고속도로도 통과한다 보리밭/박화목 나를 멈춘다 휘파람 불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눈에 차누나 고랭지 넓은 채소밭에 보리를 심어 놨는 데 족히 30,000m2는 넘을것 같다
909번 지방도 사룡산 입구에있는 등산도 사룡산.정상을 오르는 데 된비알 봉우리 너댓개를 치고 넘어서서야 겨우 모습을 보여주는 삼면봉인 비슬지맥분기봉 진달래를 처음 보고.. 오봉산 오봉산의 높이는 688미터로 여근곡으로 산을 타고 정상에 올라 부산성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와 전설을 느낄 수 있으며 산세와 조망도 뛰어나다. 여근곡에서 솟아나는 샘물인 옥문지 약수를 맛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당을 건너 산속 오솔길에 들어서면 636년 선덕여왕이 매복한 백제군을 섬멸시켰다는 여근곡이 나온다. 정면으로는 화랑을 느낄 수 있는 부산성의 넓은 평원이 오른쪽으로는 정상이다. 정상에는 1300여 년 전에 의상이 창건했다는 작은 사찰 주사암이 있다.
여근곡은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에 관한 전설 중의 하나에서 유래하는 지명이다. 636년(선덕여왕 5) 여름에 영묘사 앞 큰 연못인 옥문지에 난데없이 두꺼비들이 모여들어 싸우는 일이 생겼다. 모두 궁금히 여기는 가운데 선덕여왕이 해석하기를 두꺼비의 눈이 성난 것같이 생겼으므로 병란이 날 조짐이라 하고 알천과 필탄 두 장군을 불러 2,000명의 군사를 주어 경주 서쪽에 있는 여근곡에 가서 백제의 복병을 치게 하였다. 두 장군이 여근곡에 이르니 백제의 장군 우소가 거느린 500여명의 복병이 있어 쉽게 물리쳤다. 이것은 옥문을 여근으로 해석하여 여근은 음이므로 남근이 여근 속으로 들어가면 토사한다는 음양설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이다. 여근곡의 위치는 자인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마곡산 밑의 회곡치가 있었던 곳으로 지형의 생김새로 보아 여근곡이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오봉산에 있는 주사암도 찾아 본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천촌리 오봉산 꼭대기에 있는 절로서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주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영산전과 관음전 그리고 삼성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은 탁 트여 부산성이 한눈에 들어오며 나머지 삼면은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신라 때 한 노승이 밤마다 자신이 사는 동굴로 임금이 아끼는 궁녀를 데려가자 화가 난 임금이 궁녀에게 주사(짙은 붉은 빛의 광택이 있는 광물로서 정제하여 연료나 한방의 자료로 씀)로 굴 옆 바위에 표시를 해놓으라고 일렀다. 궁녀가 임금의 말대로 주사병을 던져 바위에 물을 들여놓자 다음날 임금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노승이 있는 동굴을 에워쌌다. 그 순간 노승이 주문을 외우니 순식간에 신병 수만 명이 등장하여 노승을 보호하였다. 임금은 부처가 노승을 보호함을 깨닫고 노승을 국사로 모신 뒤 바위 옆에 절을 지어 주사암이라고 하였다. 북동쪽으로는 오봉산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용림산과 구미산 넘어 금오산과 토암산이 우뚝 솟아 있다.
산에는 꽃이 피고...
진달래길
야생화가 모진 겨울을 보내고 봄의 전령이 되어 꽃피고..
현호색은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이며 우리나라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하다. 현호색은 꽃을 피우고 한 달 남짓이면 지상부가 모두 사라지는 짧은 한 살이를 살기 때문에 여름이 오기 전에 대부분 세상에서 사라지는 봄의 요정 같은 꽃이다. 현호색이란 이름은 꽃의 모양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현호색은 마치 입을 벌리고 웃는 입술에 진한 색이 돋보이는 모양이다. 현호라는 이름은 이렇게 입술부분의 색이 돋보이는 데서 온 이름이고 색이라는 표현은 꽃이 가지런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꼬여 있는 듯이 보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현호색은 같은 지역에서 자라는 동일종의 식물일지라도 동색을 찾아보기가 힘들정도로 다양한 색을 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봄은 여린 계절이다. 만약에 현호색이 짙은 색이었으면 봄이란 계절과 잘 동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두릅도 이번 주말쯤엔 지나가는 산꾼에게 냠냠 당하겠고.. 두릅의 효능 두릅은 목두채, 또는 문두채로 불리는데,나무 머리 꼭대기에 나는 나물이므로 목두채라 하고, 두릅은 단백질이 매우 풍부하고 지방, 당질, 인, 철분과 비타민A와 B1, B2, C, 그리고 칼슘, 섬유질등의 함량이 높다고 합니다. 특히 위의 기능을 왕성하게 하여 위경련이나 위궤양을 낫게 하고, 꾸준히 먹으면 위암을 예방해 준답니다.
경부고속철도가 내려다 보이는 데..마침 KTX 한대가 굉음을 내며 지난다
비슬지맥은 낙동정맥이 포항 땅을 지나 경주 땅에 접어들어 경부고속도로에 앉았다가 아화고개에서 부산성으로 일어서기 직전 분기점(656봉)에서 서진하는 산줄기이다. 경산시와 청도군의 경계를 이루며 사룡산(685봉)-구룡산(674.8봉)-대왕산(607봉)- 선의산(756봉)-용각산(693봉)-상원산(674봉)-삼성산(668봉)-비슬산(1083.6봉)에 이르고 다시 남진하여 청도, 경남 창녕군과 밀양군의 경계를 이루며 천왕산(619.2봉)-화악산(930봉)-종암산(664봉)-붕어등(251봉)까지 정맥에서 갈려져나온 지맥으로, 낙동강에서 끝을 맺는다.도상거리가 약 146.5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비슬지맥이라 칭한다. 하지만 분기봉에는 비슬지맥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밀양기맥 분기봉이란 이름이 붙어 있어 지자체간 산줄기 이름을 가지고도 이렇게 다툼이 심한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파옴을 느낀다.
또한 비슬산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줄기는 청룡산(793봉), 산성산(683봉), 궁산(251봉)으로 이어지는 청룡지맥을 이루고, 천왕산에서는 또 한줄기가 열왕산(663봉)으로 남진하며 영취산(740봉), 종암산(546봉), 덕암산(544봉)과 비룡산(252봉)으로 이어지는 열왕지맥을 이룬다.분수계는 북쪽으로는 금호강, 남쪽으로는 동창천 상류의 울타리를 이루다가 비슬산을 지나며 서쪽은 낙동강과 청도천, 동쪽은 청도천과 밀양강의 수계를 이룬다.
사룡산은 경북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와 영천시 북안면 당리 그리고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에 걸쳐 있는 해발 685 미터의 산으로 서쪽으로 구룡산, 남쪽으로 장륙산, 정족산과 이어져 있으며 주봉과 더불어 시루봉, 문방봉(645.2봉), 조래봉(585봉)으로 연결되어 있고 옛날 용 네 마리가 승천한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사룡산은 이웃한 경주 오봉산의 부산성과 연결되는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시대 병사들이 이 산을 거점으로 삼아 적을 물리쳤다하여 영천 사람들은 사룡산을 전방산이라고도 부르고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전배이라고 부른다
사룡산 정상
생식마을
숲재;한문으로는 숙령이라고 쓰는데 버스 승장장 안에는 우라생식마을을 말하는 우라리 시루미기라고 적혀 있고 도로 표지판에는 생식촌길 그리고 2차선 도롯가엔 석두암과 우라2리 마을 표석이 서 있다. 우라리는 중리와 상리 그리고 지경 및 시루미기(생식촌)로 이뤄져 있는데 중리는 개척 당시 동쪽 산정에 산성이 있어 성촌이라 하였고 산에서 우렁이 소리가 들린다하여 명라동이라 칭하다 자연부락의 중간에 위치한다 하여 중리로 하였다고. 상리는 우라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리라 불렀으며 지경은 수피와 중리의 경계되는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땅의 경계란 뜻인 지경이라 불렀다. 또한 시루미기(생식촌)는 골짜기의 지형이 시루와 같이 생겼다하여 시루미기 마을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부산성
고랭지밭
부산성 남문성터 사적 제25호로 지정된 부산성은 백제가 멸망한 3년 후인 663년 정월에 착공하여 3년뒤에 완공하였다. 화랑 죽지랑과 득오곡의 신의와 우정에 대한 사연이 전해진다. 효소왕 때 화랑 죽지랑의 낭도로서 득오곡이 있었다. 어느 날 득오곡이 안 보여 찾았더니 모량부의 익선이 득오곡을 부산성의 창직으로 임명했단다. 죽지랑은 낭도들과 함께 음식과 술을 준비하여 득오곡에게 먹이고 익선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익선은 거부하였다. 익선은 말안장을 받고서야 풀어주니 조정의 화주(화랑들을 관리 함)가 익선의 악행을 벌하려고 하였으나 익선은 도망가고 아들이 잡혀왔다. 화주는 아들을 성 안의 못에서 악행을 씻도록 하였더니 겨울이라 동사하였다. 효소왕도 익선에게 분노하여 모량리 사람은 벼슬과 승려에서 전부 내 쫒았다. 신라시대에는 탐욕과 불의를 색출하여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려고 국왕까지 나섰음을 알 수 있다. 화랑과 낭도사이도 신의와 우정으로 맺어져 화랑도의 정신이 싹텄다. 득오곡의 모죽지랑가에는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이 잘 표현되어 있단다. 성의 둘레는 7.5km에 이르고 넓이는 100만평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부자산성이다. 부산성 축조당시 의상대사가 예언하기를 성 안에다 주사암을 두면 신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으나 주사암을 밖에 두고 산성을 쌓았다. 결국 대사의 예언대로 신라는 망하고 말았다.
760봉.이름도 없었던 봉우리였는 데 청천산악회에서 갖다 부친 이름같다.어떤 고증을 거쳤는지 의심스럽기만..
760봉 정상에는 산불감시탑이 있고 감시원이 있었는 데 그양반이 데리고 온 개들이 객을 요란하게 반긴다.잡아 먹을듯이..
내려다 보이는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마을은 약 400여년전 임진왜란 후에 오천정씨가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소나무밭을 개간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여 송전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마을로는 옛날 복두암 선인대에 8선녀가 매일밤 내려와 중업암 용정에 목욕하며 놀다가 올라갔다라고 해서 선동이라 불려졌다는 선동마을, 신라 때 병사들이 주둔했으며 병기를 보관하고 창고를 지은 자리라 하여 창리라고 하였다 하며 혹은 창터, 말천, 달래, 달래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달천창, 약 150년 전부터 화전민들이 나무를 치고 이 마을을 개척하여 정착하였으며 1300여년 전 신라가 백제의 침공에 대비했던 산성이 이곳 에 있으므로 마을 이름을 산성이라 했다는 마을과 약 300년 전 경주이씨가 마을을 개척할 때 신라시대의 절터가 있었다 하여 절골 혹은 사곡이라고 불렀다는 마을 및 신라 때 위증이라는 당 태조의 신하가 이 마을에서 수도하였다고 하여 우중골이라고 부르다가 송산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인 고로 구름이 덮히고 어두워지면 곧잘 비가 몰려온다고 하여 우징곡 또는 우중굴이 되었다는 마을등이 있는 곳이다.
노랑제비꽃 줄기에서 꽃대가 나와 노란색 꽃이 피는 점이 아주 독특하다. 햇빛이 잘 드는 산 속 풀밭에서 자라며 키는 10~20㎝쯤이고 땅속줄기는 밑으로 곧바로 뻗는다. 잎을 빼고는 식물 전체에 털이 거의 없다. 잎은 2가지가 달리는데 그중 뿌리에서 나오는 잎[根生葉]은 심장처럼 잎 밑이 약간 들어가 있으며 잎가장자리에는 파도처럼 생긴 잔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잎보다 3~5배 정도 길다. 줄기에 달리는 잎[莖生葉]에는 잎자루가 없거나 매우 짧으며 마주보며 달린 것처럼 나온다. 꽃은 이른봄에 줄기 끝에 노란색으로 피며 노랑제비꽃이 무리져 자라기 때문에 꽃이 무리져 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의 뒤쪽에는 볼록 나온 것이 있는데, 이 곳에 꿀샘이 들어 있다. 꽃잎은 5장으로 제일 아래쪽에 있는 꽃잎에는 몇 개의 황갈색무늬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나머지 꽃잎의 밑쪽에도 황갈색 줄무늬가 있다. 이 줄무늬는 꽃을 찾아온 벌이나 곤충들이 꿀을 빨아먹기 위해 들어가는 통로로 여겨진다. 꽃이 필 때는 강한 햇빛이 필요하나 피고 나면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무리져 자라기 때문에 땅을 덮는 지피식물(地被植物)로 쓰이기도 한다.
당고개 이곳 경주시 산내면은 가도가도 산이요 봐도 봐도 하늘뿐인 말 그대로 산속의 고을로서 지리적으로는 남쪽으로 울산시 상북면과 연접하고, 동남쪽엔 내남면, 서쪽으론 청도군 운문면, 북쪽으로는 영천시 북안면과 이웃하고 낙동강 상류인 동창천이 면 중심을 관통 하며 대구시민의 식수원인 운문댐 상류에 위치한 산천어, 꺽지, 피라미, 빙어등 민물고기가 많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당고개는 땅고개로 많이들 불려지고 있으며 휴게소 이름도 땅고개 휴게소이지만 자료를 찾아 보면 당고개가 맞을듯 하며 당고개 버스정류장과 당고개공원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경주시 산내면과 건천읍을 이어주는 20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당고개는 산내쪽에 당집이 많이 있어 당고개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다. 이 고개를 기준으로 건천천과 청도천이 갈라지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