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08. 04 (화)
오늘은 프놈펜 씨티 투어다. 킬링필드 - 러시안 마트 - 뚜얼슬렝 박물관 - 모멘트파고다 - 왕궁 - 국립박물관 - 왓프놈 순으로 볼 계획으로 전용차를 대절하여 8시 45분에 출발하였다. 킬링필드는 프놈펜 외곽에 있는데 출근 시간대라 혼잡하여 차가 달리지 못한다. 시내를 빠져나와 조금 달리니 끝없는 지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차가 주차장에 도착하여 티켓을 발급하여 나누어 주고 회원들만 들여보냈다. 나는 4번째 오는 곳이라 밖에서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기념사진을 찍어 줄려고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들어가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위령탑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 진다. 밖에서 바라보는 킬링필드 위령탑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유골들이 가득히 진열되어 있다. 킬링필드는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 사이에 폴퐅이 만행을 저질렀던 장소 가운데 프놈펜에서 가장 가까운 쯔응아익을 말한다. 프놈펜 근교와 뚜얼슬렝(프놈펜 시내에 있음)의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 한곳으로 당시 집단 매장되었던 8900구의 시신은 1980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총기가 비싸다는 이유로 쇠막대기나 팜 나무줄기를 이용하여 처형했다고 한다. 위령탑 주위를 돌아보면 집단 학살의 현장의 구덩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볼거리는 위령탑 하나지만 아픈 과거의 현장을 보기위해 많은 현지인들이 찾아온다. 우리도 가슴 아픈 과거가 있듯이 캄보디아도 오래오래 기억될 아픈 과거를 가진 나라다.
킬링필드를 뒤로 하고 러시안 마트로 갔다. 러시안 마트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지배하던 시절 원조되던 러시아제 물건을 팔았기 때문에 부쳐 진 이름라고 한다. 우리팀은 주차장이 없는 관계로 길가에 차를 대고 내렸다. 차에서 내려 시장 안으로 들었다. 마트는 재래시장으로 음식, 채소, 과일, 생활용품을 팔고 있다. 여기서 여행자들은 값싼 실크, 골동품, CD를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시장 안은 무덥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였다. 맛있는 두리안도 하나 사먹었다. 가격이 저렴하니 부담이 없어서 좋다. 언제나 느끼지만 동남아 여행 때는 부담 없는 과일값이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하여 좋다.
러시안 마트에서 차를 타고 뚜얼슬렝 박물관으로 갔다. 고문과 학살의 현장 뚜얼슬렝 박물관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소로 프놈펜을 방문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다. 차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허름한 학교가 보인다. 학교 담장 앞에서 차가 멈춘다. 차에서 내리니 그 학교가 우리가 찾는 뚜얼슬렝 박물관이다. 입장료를 2불씩 지불하고 들어가 왼편 건물부터 관람을 한다. 첫번째 건물은 수감된 사람을 조사하고 고문했던 곳으로 각 교실마다 고문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걸려 있다. 두 번째 건물은 수감자들의 사진 촬영, 신체 측정 등을 했던 장소다. 세 번째 건물은 사람들을 수감했던 감방으로 건물 주위에는 철조망이 둘러싸여 있다. 네 번째 건물은 그 당시의 각종 고문 기구들과 고문, 살해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좀더 자세하게 뚜얼슬렝 박물관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기록들을 재조명해 보면 대략 200만 명이란 대규모 종족 살상을 자행했던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의 정치범 수용소였던 뚜얼 슬렝은 과거 크메르루즈 정권 시절 S-21교도소로 불리었다. S-21은 Security Office 21(비밀정보국21)의 약자로서 크메르 루즈 정권의 비밀정보기관으로서 고문, 심문, 그리고 반 크메르 루즈정권 분자들을 박멸시키기 위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S-21이 설립된 1976년 5월 이전까지 이곳은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였다. 이곳에 있는 4개의 건물은 관리, 심문, 그리고 고문을 위한 사무실로 활용되었다. 기존의 교실들은 모두 감방으로 사용되었고 탈출을 막기 위해 모든 창문은 쇠창살과 가시가 돋친 철조망으로 막아 두었다. 1층에 있는 교실들은 또다시 0.8m X 2m의 작은 독실로 쪼개어 수감자들을 가두었다. 교도소는 중앙위원회와 국방부, 그리고‘손 센’동지의 관리 감독을 받았는데 교도소를 총 지휘 감독했던‘캉 켁이에우’교도소장은 과거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대규모의 교도소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고 1976년의 경우 내부관리자 141명, 사무직원 1,148명, 심문담당자 54명, 그리고 일반직원이 1,377명에 달했다.
이곳에는 10살에서 15살 사이의 남녀 어린이들이 고용되어 수감자들을 감시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평범한 아이들이 나중에는 수감자들이나 노인들에 대해 극도로 흉악하고 잔인했다. 병이 들거나 다친 사람들은 하루 세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나 치료는 주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담당했다.
수감자들은 캄보디아인 외에도 베트남, 라오스, 타이, 인도, 파키스탄,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인도 있었다. 수감자들의 직업은 노동자, 농민, 기술자, 엔지니어, 지식인, 교수, 교사, 학생, 장관, 외교관까지 있었다. 잔인함의 극치를 넘어 갓난아기를 포함해 수감자의 온 가족이 수감되어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4년간 수감되어 살육을 당한 자는 약20,000명에 달했으며 이중 약2,000명이 어린아이였다. 살아서 나온 자는 고작 6명이었다. 작은 감방의 수감자들은 족쇄가 채워진 채로 벽이나 바닥에 붙들어 매어져 있었고 큰 감방의 수감자들은 4명이 하나의 쇠막대에 족쇄로 채워져서 한방에 20~30명씩 수감되었다.
수감자들은 수감되기 전에 사진촬영을 하고 속내의를 제외한 모든 것은 압수되고 잠은 맨바닥에서 모기장이나 담요도 없이 잠을 잤다. 모든 수감자는 새벽4시30분에 기상하여 하루 4번 반바지를 무릎까지 내린 채 검사를 받아야 했고 쇠막대에 채워진 채로 손이나 팔다리 운동을 약 30분간 하였다.
수감자들은 2~3일에 한번 감방 내에서 불규칙적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는데, 감방 창문에 물이 흐르는 관을 대서 그 물을 몸에 튀겨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한 각종 두드러기나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수감자들은 작은 쇠로 들어진 상자에 대변을 보고 플라스틱상자에 소변을 보았는데 반드시 미리 교도관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매를 맞거나 20~60대의 채찍질을 받았다.
모든 감방에는 아래와 같은 감방 규칙이 조그마한 크기의 칠판에 내걸려 있었다.
1. 너는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회피하지 마라.
2. 이런 저런 구실로 사실을 감추지 마라. 논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3. 혁명을 훼방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마라.
4. 우물쭈물 대지 말고 질문에 즉시 대답하라.
5. 너의 부도덕함이나 혁명에 대해 말하지 말라.
6. 채찍질을 받거나 전기고문을 받을 경우 결단코 울어서는 안 된다.
7.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내 명령을 기다려라. 아무런 명령이 없으면 조용히 하고 있어라. 명령을 하면 주저 없이 바로 하라.
8. 구실을 만들지 마라.
9. 위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전기채찍질을 받을 것이다.
10. 어떤 규칙이든 준수하지 않으면 채찍질 10대나 5번의 전기충격을 받을 것이다.
끔찍한 참살의 현장을 나오며 과거 우리 우리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점심을 해결하고 모멘트파고다를 둘러보고 곧 바로 왕궁으로 갔다. 왕궁은 잘 보존되어 있어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반바지, 나시티, 스리퍼는 안 된다. 우리 팀은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하여 무사히 통과 하였다. 여기도 여러번 왔던 곳이라 밖에서 기다렸다.
왕궁은 1866년에 전형적인 크메르 양식의 황금색 건물로 멀리서 한눈에 보인다. 정문은 따로 있고 왕궁과 실버파고다의 중간 부분에 입구가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 왕궁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높이 59m의 황금탑 건물이며 즉위전으로 이용된다. 왕궁을 둘러보고 왼쪽 실버파고다로 나오면 된다. 실버파고다는 은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법당 바닥에 총 5만 3294개의 은이 박혀 있어 실버파고다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원 안에는 90kg에 이르는 황금부처상을 비롯해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불상들이 화려한 장식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왕궁 관람을 마치고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입구엔 아름다운 꽃들이 반긴다. 내부를 둘러보고 안에 있는 박물관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박물관은 고대 크메르제국의 조각 및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고, 앙코르 유적과 다른 왕조의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나와서 메콩강가로 갔다. 도도히 흐르는 메콩강은 지난겨울에 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다시 차를 타고 왓프놈으로 갔다. 들어가는 입구에 없었는데 입장료를 받는 사람이 나타난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계단을 오르니 프놈펜 시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법당에 들어가니 사람 키 높이의 촛불들이 군집을 이루고 타고 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자유시간을 주었다. 시장에 가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각시와 함께 나갔다. 좋아하는 구이를 찾았다. 숫불에 구워내는 메추리 맛이 일품이다. 돼지 갈비도 좋다. 오랜만에 호식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해 본다.
킬링필드 위령탑

위령탑안의 모습

오른쪽이 러시안 마트

뚜얼슬렝 박물관(4인1조씩 묶었던 쇠고랑)

뚜얼슬렝(교실을 다시 나누어 감옥으로)

뚜얼슬렝(각종 고문 및 학살도구)

뚜얼슬렝 박물관

뚜얼슬렝 박물관

모멘트파고다

모멘트파고다

모멘트파고다

왕궁입구

독립문

국립박물관

메콩강가..

메콕강가에서 바라본 왕궁
왓프놈

왓프놈

왓프놈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