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
그는 점잖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갈까요?
그는 물어볼 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어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꺽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데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 - 퓨 - 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첫댓글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로 중년의 한 감성을 대변하는, 문화적 상징이라도 만들어낸 듯하지요. 위 시에서 시인은 특정 시구 표현을 놓고 '반대의 의미로 쓴 일종의 반어법'이라 했어요. 반어법은 이런 것이 아니죠. 반어법에 여러 종류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자유시가 아무리 의식과 표현에 자유를 갖는다지만 꼭 이렇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어찌 됐다는건지. 현대시의 표현이 꼭 이래야만 할까요.
문학계의 거장 고은 시인을 대상으로 미투를 하신 분이 아닌가요?
아이구 오랫만입니다. 그곳에서도 수필 작업은 왕성히 하시는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그 시인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