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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Times
Is South Korea Disappearing?
한국은 소멸하는가?
By Ross Douthat(Opinion Columnist)/ Dec. 2, 2023
For some time now, South Korea has been a striking case study in the depopulation problem that hangs over the developed world. Almost all rich countries have seen their birthrates settle below replacement level, but usually that means somewhere in the neighborhood of 1.5 children per woman. For instance, in 2021 the United States stood at 1.7, France at 1.8, Italy at 1.3 and Canada at 1.4. But South Korea is distinctive in that it slipped into below-replacement territory in the 1980s but lately has been falling even more — dropping below one child per woman in 2018 to 0.8 after the pandemic and now, in provisional data for the second and third quarters of 2023, to just 0.7 births per woman.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은 선진국들이 안고 있는 인구문제에서 가장 충격적인 연구사례가 되었다. 거의 모든 부유한 나라들은 출산율이 총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보다 낮다. 이런 상황은 여성 1인당 1.5명을 의미한다. 예컨대 2021년 미국은 1,7, 프랑스는 1,8, 이탈리아는 1,3, 캐나다는 1,4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1980년대에 총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 아래로 떨어졌고 근래에 이르러 더 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2018년에는 여성 1인당 1명 아래로 내려가 팬데믹 이후에는 0,8명으로 그리고 2023년 3,4분기의 잠정 통계로는 여성 1인이 평생 출산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이 0,7명이다.
It’s worth unpacking what that means. A country that sustained a birthrate at that level would have, for every 200 people in one generation, 70 people in the next one, a depopulation exceeding what the Black Death delivered to Europe in the 14th century. Run the experiment through a second generational turnover, and your original 200-person population falls below 25. Run it again, and you’re nearing the kind of population crash caused by the fictional superflu in Stephen King’s “The Stand.”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나라가 이같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국가는 한 세대 200명 인구가 다음 세대에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고 이같은 인구감소는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 보다 더 심각하다. 이런 추세로 두 세대를 지나면 200명이던 인구는 25명 이하로 떨어진다. 게다가 이런 출산율은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드’에 나오는 가상의 수퍼독감으로 인한 인구감소 수준이다.
By the standards of newspaper columnists, I am a low-birthrate alarmist, but in some ways I consider myself an optimist. Just as the overpopulation panic of the 1960s and 1970s mistakenly assumed that trends would simply continue upward without adaptation, I suspect a deep pessimism about the downward trajectory of birthrates — the kind that imagines a 22nd-century America dominated by the Amish, say — underrates human adaptability, the extent to which populations that flourish amid population decline will model a higher-fertility future and attract converts over time.
신문 칼럼니스트의 기준으로 볼 때 나는 저출산 경고주의자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나 스스로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인구과잉 패닉현상이 어떤 적응과정 없이 다만 상승할 것으로 잘못 추정한 것처럼, 말하자면 아미쉬가 지배하는 22세기 미국을 상상하는 것처럼, 나는 출산율의 하향곡선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을 과소평가하는 깊은 비관론은 동의하지 않는다. 비록 인구감소 와중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높은 출산율 모델과 그 전환점을 이끌어내는 범위로 인구는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In that spirit of optimism, I don’t actually think the South Korean birthrate will stay this low for decades, or that its population will drop from today’s roughly 51 million to the single-digit millions that my thought experiment suggests. But I do believe the estimates that project a plunge to fewer than 35 million people by the late 2060s — and that decline alone may be enough to thrust Korean society into crisis.
이런 낙관론에서 보면 한국의 출산율이 수십년 동안 낮게 유지된다거나 약 5,100만 명인 현재 한국의 인구가 몇 백만 명 단위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2060년대 후반에는 한국 인구가 3,500만 명대로 급감할 것이고 이것은 동시에 한국 사회를 엄청난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을 것은 분명하다.
There will be a choice between accepting steep economic decline as the age pyramid rapidly inverts and trying to welcome immigrants on a scale far beyond the numbers that are already destabilizing Western Europe. There will be inevitable abandonment of the elderly, vast ghost towns and ruined high rises and emigration by young people who see no future as custodians of a retirement community. And at some point there will quite possibly be an invasion from North Korea (current fertility rate: 1.8), if its southern neighbor struggles to keep a capable army in the field.
인구연령분포 피라밋이 급격하게 뒤집히면서 앞으로 한국은 가파른 경기 하락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서구사회처럼 적정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이민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설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인세대의 방치, 유령도시, 폐허가 된 고층건물, 노인 세상의 뒤치다꺼리 때문에 미래의 꿈을 잃은 젊은 세대들의 이민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 만약 한국이 인구감소로 인해 야전군의 병력자원을 충족하지 못해 쩔쩔맨다면 현재 출산율이 여성 1인당 1,8명대인 북한이 남침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For the rest of the world, meanwhile, the South Korean example demonstrates that the birth dearth can get much worse much faster than the general trend in rich countries so far. This is not to say that it will, since there are a number of patterns that set South Korea apart. For instance, one oft-cited driver of the Korean birth dearth is a uniquely brutal culture of academic competition, piling “cram schools” on top of normal education, driving parental anxiety and student misery, and making family life potentially hellish in ways that discourage people from even making the attempt.
한편 한국의 사례를 세계적 차원에서 살피면 지금까지 부유한 국가들이 보여 준 일반적 추세보다 더 심각하고 출산율의 감소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국을 차별화하는, 즉 한국에만 해당되는 여러 패턴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들어 한국의 출산 빈곤에 관해 자주 거론되는 주요 동인으로는 정상적 교육 시스템 위에 ‘우격 다짐식 학교’를 쌓아 올린 한국 특유의 잔인한 학력경쟁이다. 이것은 학부모들을 노심초사(勞心焦思)로, 학생들을 불행으로 내몰고 가족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그 어떤 시도를 조차할 수 없게 만든다.
Another is the distinctive interaction between the country’s cultural conservatism and social and economic modernization. For a long time the sexual revolution in South Korea was partly blunted by traditional social mores — the nation has very low rates of out-of-wedlock births, for instance. But eventually this produced intertwining rebellions, a feminist revolt against conservative social expectations and a male anti-feminist reaction, driving a stark polarization between the sexes that’s reshaped the country’s politics even as it’s knocked the marriage rate to record lows.
또 다른 하나는 이 나라의 문화적 보수주의와 사회적, 경제적 근대화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성(性) 혁명은 전통적인 사회적 관습에 의해 많이 무디어 졌다. 이 나라의 혼외출산율은 매우 저조한 것은 그 좋은 사례다. 이 둘은 결국 서로 뒤엉킨 저항들을 불러왔다. 즉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적 기대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와 남성층의 반페미니스트의 반작용이다. 이는 심지어 결혼율을 최저치로 떨어뜨리고 국가정책을 재편하는 성별 간 극단적 양극화를 초래했다.
It also doesn’t help that South Korea’s conservatism is historically more Confucian and familial than religious in the Western sense; my sense is that strong religious belief is a better spur to family formation than traditionalist custom. Or that the country has long been out on the bleeding edge of internet gaming culture, drawing young men especially deeper into virtual existence and further from the opposite sex.
또 한국의 보수주의가 서구적 의미로 종교적이기보다 역사적으로 유교적이고 가족적이라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 내 견해로는 강한 종교적 신념이 전통적 관습보다 가족 시스템의 형성에 더 유익하다고 본다. 이게 아니라면 이 나라 인터넷 게임문화의 지나친 과열이 젊은이들을 가상의 존재로 더 깊이 빠져들게 하고 이성(異姓)으로부터는 멀어지게 하는 것도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But now that I’ve written these descriptions, they read not as simple contrasts with American culture so much as exaggerations of the trends we’re experiencing as well. We too have an exhausting meritocracy. We too have a growing ideological division between men and women in Generation Z. We too are secularizing and forging a cultural conservatism that’s anti-liberal but not necessarily pious, a spiritual but not religious right. We too are struggling to master the temptations and pathologies of virtual existence. So the current trend in South Korea is more than just a grim surprise. It’s a warning about what’s possible for us.
지금 필자가 이렇게 지적할지라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국문화의 단순한 차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트렌드의 부풀림도 살핀다. 우리 역시 소모적 능력주의에 빠져있다. 우리는 날로 점증하는 Z세대의 남녀간 이념적 구분을 보고 있다. 우리는 세속적이고 조잡한 문화적 보수주의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경건할 필요없는 반자유주의, 종교적이지 않은 정신적 권리다. 우리는 가상적 존재의 유혹과 그 병리학을 통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한국의 현실은 단순히 암울한 놀라움 그 이상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경고이다. * 번역; 최익제 / 敎博, (전)안동고역사교사,안동대교육대학원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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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논평
이제 ‘데모크라이시스’ 즉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현상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경사진 비탈길이 아니라 그냥 천길 낭떠러지라는 경고음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인구소멸의 위기를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학교다. 50여년 전 필자의 교직 초임 때만 하더라도 한 반 60명이 넘는 학생들로 교실이 가득했다. 이후 서서히 교실공간이 헐렁해지더니 10여년 전 퇴직할 때는 정확하게 절반으로 줄었고 4년 전인가 안동고에 들렀더니 20여 명이었다. 학령인구 감소는 인구재앙의 가장 상징적인 지표다. 실제로 내년 초등학교 입학생(2017년생)이 사상 처음으로 40만 명을 밑돌 것으로 추산한다. 20년 만에 40%가 줄었고 올해만도 신입생을 단 한명도 받지 못한 초등학교는 145개교, 지난해 114개교에 비해 27%가 증가했다. 전교생이 100명 이하인 미니, 초미니 학교를 합치면 이미 40%를 넘어섰다. 내년 유치원 입학생 수도 20만 명대로 추락한다고 한다. 초중고, 대학을 불문하고 머지않아 ‘줄폐교’가 불을 본 듯 뻔하다는 예측은 더 이상 엄살이 아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이제 온몸을 태울 기세다.
이같은 추세는 생산인구의 급감, 군병력 자원의 급감, 동시에 출산율의 급감이라는 악순환의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지금같은 흐름을 되돌리지 못하면 곧바로 초저출산 리스크는 한국사회 전반을 강타할 것이다. 그래서 인구절벽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재앙 중의 재앙이다. 이미 통계청은 초저출산 현상이 이대로라면 50년 뒤 한국의 인구는 3,500만 명으로 줄어들고 65세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세계 1위 장수국가가 될 거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즉 2024년에 0,6%대로 바닥을 친 출산율이 만약 제대로 반등하지 못하면 203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0%대로 진입하고 2040년대에는 마이너스로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젊은이 100명이 노인 100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더 이상 나라가 아닐 것이다.
우선 한국 사회가 당면한 초저출산 현상은 단순한 인구문제가 아닌 국가소멸이 걸린 안보문제다. 앞의 글, 로스 다우댓의 NYT 칼럼이 ‘한국이 야전군 병력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 출산율 1,8명인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언급할 정도다. 그래서 인구감소는 그 자체가 북핵보다 더 심각한 안보위기다. 지금도 남북한 전투 병력의 역전현상은 더더욱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육군 3개사단 신병교육대가 문을 닫았다. 물론 현대전이 첨단전자무기와 해,공군 주도일지라도 전쟁의 마무리는 여전히 지상군이고 장비와 무기의 운용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연 5조 1000억원이 들어가는 18개월짜리 일반병사의 월급인상이 시급한 게 결코 아니다. 왜일까. 지금 한국군의 핵심은 워라벨 사병들이 아니다. 부사관과 초급장교다. 스텔스 전투기, 미사일, 이지스함 같은 첨단 무기체계는 초급장교, 특히 장기복무 기술부사관이 없으면 다 무용지물이다. 이들에 대한 파격적 처우개선으로 충분한 부사관 병력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인구절벽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안보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저출산의 원인과 나름의 해법은 이제 전문가가 아니라도 안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만큼 문제의 정답도 다 안다. 다만 길이 있음에도 그 길로 제대로 들어서서 나가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럼 그 길은 뭘까?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하는 세상을 만들면 된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따지지 말고 낳기만 하면 나라가 책임지고 양육하고 교육시켜 주면 된다. 엄청난 국가예산이 들어갈 것이다. 국가소멸 위기가 코앞인데 더 이상 망설이거나 주저할 때가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은 이런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자. 일본은 2025년부터 3자녀 이상인 가족의 모든 자녀는 국가에서 대학무상교육을 하기로 했다. 0세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수당 현금지급, 젊은 부부의 육아휴직 지원예산으로 연간 7,000억~8,000억 엔을 투입한다. 일본정부는 내년에 초저출산 문제에 연간 3조 5000억 엔(우리 돈 32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합계 출산율이 1,26명인 일본이 이 정도로 몸부림치는데 더 몸이 달아올라야 할 나라, 출산율 세계 최저 0,78명인 한국 정부는 여전히 한가롭다.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제도가 없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출산율은 내리막이다. 그놈의 쓸데없는 제한 규정이 널려있어 돈은 돈대로 쓰면서 헛발질, 언 발에 오줌누기다. 사실 돈타령도 치사한 변명이다. 정치권이 결단만 내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일본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지금 이 나라는 ‘당신 돈이라면 그렇게 쓰겠나?’라고 따져 묻고 싶은 예산 낭비가 지천에 널렸다. 비용대비 편익비율이 고작 0,483에 불과한 ‘광주-대구간 달빛고속철도’에 들어갈 11조원, 없어도 아무 문제없는 ‘가덕도 신공항’에 10년간 들어갈 13조원, 문정부 포퓰리즘의 대명사, ‘한전공대’에 10년간 들어갈 1조 6,000억원, 국세 20%, 즉 년 수십 조원 예산을 무조건 투입해,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육청들이 돈 감당 못하게 하는 천문학적 ‘지방교육교부금’만으로도 철철 넘친다. 사람 심리는 다 거기서 거기다. 돈의 힘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저출산 문제도 솔직히 그 바닥을 파헤쳐보면 다 돈 문제다. 우왕좌왕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소멸은 시간문제다. 늦으면 늦을수록 저출산 재앙은 더 크고 빠르게 다가온다.
물론 양질의 외국인을 과감하게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이민정책도 필요하다. 그 콘트롤 타워로 ‘이민청’을 시급히 설치해 체계적인 이민수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해외의 많은 나라에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을 폭넓게 설치해 한국어, 한국문화를 널리 보급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해외인력의 한국 정착에 소요되는 비용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이제 한국은 한민족 단일 국가일 필요가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최근 필자가 공감하는 인구문제해법이 있어 자세한 자료를 찾고 있다. 그게 바로 탈북민의 적극적 수용과 조속한 정착지원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중국이 자행한 600여명 ‘중국 소재 탈북민 강제북송’을 규탄하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국회결의안은 고무적이다. 탈북민에 대한 적극적 정책은 인구문제뿐만 아니라 통일문제에서도 대단히 매력적인 해법이다. 게다가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어온 탈북자들은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좌파 국회의원들보다 몇만 몇천 배 더 훌륭한 한국인이고 소중한 인적자원이다. 지금은 35,000명이지만 만약 한국 사회가 수십만 탈북자를 더 받아들여 제대로 된 우리 국민으로 동화, 정착시킬 수만 있다면 인구문제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대박은 없을 것이다.
다시 아이들로 가득 찬 시골학교 운동장을 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폐교된 학교길에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이 다시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성을 다한다면 머지않아 이 나라 방방곡곡 예식장들이 날마다 신혼부부로 붐빌 것이고 산부인과 의사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지는 세상이 반드시 열릴 것이다. 모쪼록 하나님께서 내리실 이 땅의 젊은 여성들을 향한 태(胎)의 축복이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