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66)
파란 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 한강(1970-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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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작별」 전문, 소설 『흰』, 난다, 2016) 지난주에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한강 작가가 소설로 등단하기 전 시로 먼저 등단했다는 건 기사를 보고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이번 주의 시는 작가가 시로 등단한 지 20년 만에 낸 첫 시집이자 현재까지의 유일한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 골랐습니다. 죽어서는 볼 수 있지만 잡을 수는 없는, 반드시 살아서야 잡을 수 있는 「파란 돌」. 아마 당신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시기가 꼭 “십 년 전”이 아닌 오 년 전이거나 일 년 전이거나 아니라면 지난달이거나 지난주이거나 어제일 수도 있고, “그동안 주운 적”도, “놓친 적도” “영영 잃은 적도” 없을지라도요.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빰을 감싸쥐었다.”(『채식주의자』, 창비, 2007, 49쪽) 많은 독자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되지만 저도 처음 한강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위 소설이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전혀 몰라서 일단 수상작부터 구입했고, 이 작품은 퇴근길 좌석버스 안에서 읽었습니다. 고기를 먹게 하려고 애쓰는 가족도 전혀 상상이 안 되는데 거기에 고기를 안 먹겠다고 하는 딸에게 폭행까지 저지르는 아버지라니! 그러니까 그날 버스는 안강을 거쳐 강동을 지나 형산강변을 지나는 길로 막 내려섰는데 위의 저 장면을 읽다가 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나마 소리가 크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놀라서 뛰기 시작한 심장은 한동안 진정이 안 되었지요. 이렇게 시작한 작가가 쓴 소설 읽기는 계속 이어져 여러 편을 읽었고, 시집도 아마 구입은 같은 해에 했을 거라고 짐작되는데 읽기는 그 다음해 친구들과 함께한 중국 여행길에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읽은 건 온통 풍경이 회색빛으로 느껴지던 항주에서 황산 가는 대절버스 안에서였는데 풍경에서 받은 느낌이 감성에 스며들었던가요, 임사체험을 서술한 듯한 문장에서 떠올라오는 여러 기억들로 한동안 책장을 못 넘겼습니다. “죽어서 좋았”고 “환했”고 “솜털처럼/가벼웠”어도 당신도 그렇고 저도 마찬가지로 “죽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니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 알았네/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잊지 않아야 하는 건 “꿈에 본” “파르스름해” “눈동자처럼” “더 고요하던” “파란 돌”입니다. 우리는 이 “파란 돌”을 자주 “돌아가 들여다”봐야 합니다. (20241016)
첫댓글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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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꿈에 본 파란 돌'
나는 파란 돌을 꿈꾼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한번도 제대로 된 꿈을 꾸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파란 돌은 죽고 나서 알 수 있을까?
한강의 시는 오늘 처음 접한다. 그동안 읽어 본 책이 채식주의자 한 권 뿐이었는데, 시를 접해 보니 참 슬픈 느낌이 든다.
소설은 폭력을 주제로 쓰여 졌지만 시는 또 다른 세상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여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