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가 개봉할 때 관람등급은 무척이나 민감한 문제다. 특히 영화도 어쨌든 하나의 ‘상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이 내려지면 당연히 흥행 전선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품을 진열대에 내놨는데 그걸 볼 수 있는 고객층 자체가 제한되는 것이니, 한마디로 핸디캡을 떠안고 시작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가족단위의 관객이 볼 수 없다는 게 흥행 면에서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집계한 역대 박스오피스 기록을 보면 40위 안에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비록 전체관람가 영화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청불’ 딱지가 붙은 불리함을 극복하고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는 영화들도 있다.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 역대 청불 한국영화 중 흥행 톱10을 살펴봤다.(2001년 개봉한 <친구>의 경우 전국 8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순위에서 제외했음을 밝혀둔다.)
10위. 쌍화점 (3,749,034명, 전체 130위)
고려 말기의 공민왕에 얽힌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로, 파격적이고 기상천외한 베드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조인성과 주진모가 연기한 동성 간의 수위 높은 베드신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영화 자체는 가루가 되도록 혹평을 받았지만 여러 모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면서 흥행성적은 준수했다. 특히 당시 미남스타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조인성의 노출 때문에 중년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도 있다.
9위. 타짜-신의 손 (4,015,361명, 전체 121위)
<타짜>의 후속작으로, 전편에 비해 캐스팅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전편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괜찮게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명작의 후속편이라는 기대치를 등에 업고 박스오피스에서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다만 전편의 후광이 없었더라면 흥행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미지수.
8위. 아가씨 (4,288,530명, 전체 109위)
스타 감독의 명성, 칸 영화제 초청소식에 힘입어 개봉 초기부터 흥행에 불이 붙었다. 결국 역대 청불 영화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되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이기도 하다.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 강도 높은 노출과 베드신, 신체 절단으로 청불 판정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특히 두 여배우의 매력과 연기 호흡은 가장 큰 흥행 요소 중 하나.
7위. 도가니 (4,662,914명, 전체 94위)
공지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2005년부터 5년에 걸쳐 광주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끔찍한 아동성폭력 묘사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제작진이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재심의를 신청했지만 결국 청불로 개봉했다. 그러나 사건이 사건인 만큼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과 공분을 불러왔고, 꾸준히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6위. 신세계 (4,682,492명, 전체 92위)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이라는 톱 배우들이 무더기로 캐스팅되며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개봉 첫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잔인한 묘사와 남성적인 테마로 선호도가 갈릴 수 있는 영화였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수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들의 브로맨스에 매료된 여성 팬덤도 만만치 않았다. “드루와! 드루와!”와 “살려는 드릴게” 등 흥행한 영화는 꼭 유행어 하나쯤 있다는 속설을 입증한 작품.
5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4,720,050명, 전체 89위)
전 국민적인 유행어가 된 “살아있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조폭을 폼 나게 미화한 흔한 느와르 영화와 다르게 한국 현대사와 기성세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호응을 고르게 이끌어낸 것이 흥행 성공의 이유로 평가받는다. 20~30대 청년층은 배우들의 신들린 듯한 연기에,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시대적인 배경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4위. 추격자 (5,046,096명, 전체 81위)
이제는 <곡성>으로 남부럽지 않은 흥행감독이 된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로 데뷔부터 대박을 쳤다. 청불 등급이 아니면 답이 없는 잔혹하고 끔찍한 소재, 어둡고 질척한 분위기,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등 흥행 방해요소들을 모두 극복한 영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뒷받침됐으며,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한 현실적인 사이코패스 영화로 사회적 이슈가 된 것도 흥행에 도움이 됐다.
3위 타짜 (5,685,715명, 전체 62위)
허영만의 만화 1부를 원작으로 만들어졌으며, 국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서는 <내부자들>에 이어 역대 2위다. 배우들의 환상적인 앙상블로 만들어진 주옥같은 명장면, 명대사들은 유명하다. 특히 클라이맥스인 선상 노름판 신은 지금까지도 수없는 패러디로 재생산되고 있다. 정작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도 어지간하면 한 번쯤 못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
2위 아저씨 (6,178,592명, 전체 54위)
2010년 흥행작 1위에 랭크된 바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최대 흥행요소 중 하나는 주인공일 것이다. 원빈의 눈부신 미모를 최대한으로 살린 캐릭터는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군더더기 없고 속도감 있는 전개, 청불 영화답게 잔인의 끝을 달리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액션도 탁월하다. “이거 방탄유리야! 이 X새끼야!” 등의 찰진 유행어가 많은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1위 내부자들 (7,072,507명, 전체 42위)
역대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청불 영화 자리는 윤태호의 웹툰을 영화화한 정치 드라마 <내부자들>이 지키고 있다. 현실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스토리, 인간적인 캐릭터와 의외의 코믹함, 명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등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했다. 여성 관객들은 느와르나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깬 사례이기도 하다. 참고로 7,072,507명이라는 숫자는 처음 개봉한 원판의 관객을 집계한 것이다. 이후 추가로 개봉한 감독판 <내부자들-디 오리지널>까지 포함한다면 순위는 더 올라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