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박하 몇 포기를 얻어다 길렀다. 동네 골목 안 온양세탁소 아저씨는 화초 기르기가 취미여서 철마다 세탁소 유리문 앞 화분에는 늘 뭔가가 자라고 꽃을 피웠다. 천냥금이라던가. 사랑의 열매처럼 빨간 구슬이 알알이 달린 화분을 내게 자랑한 적도 있다.
비가 오던 날 바지수선을 하러 들렀다가 우연히 박하를 발견하고 몇 뿌리 달라고 청했다.
아끼는 것이라 주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 문을 열고 나오는데 모종삽으로 여덟 포기를 떠내 주었다. 박하를 선물 받은 하루 내내 나는 들떠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박하는 내게 아주 특별한 풀이다. 어릴 적 박하 향을 맡으며 자란 내게 박하는 허브보다 그냥 들풀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 담배를 많이 피우던 아버지가 오며가며 한 두 포기씩 낫으로 베어다 벽에 걸어주기도 했고, 새참을 들고 나가면 박하 잎을 따서 내게 건네주시기도 했다. 비빔국수나 막걸리를 드신 아버지가 튼튼하고 굵은 대를 가진 박하를 꺾어 내 손에 들려주면 집에 갈 때까지 그 향을 맡고 또 맡았다.
박하는 학명으로 페퍼민트라고 한다. 국화군 꿀풀목 꿀풀과 박하속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그저 향기 나는 좋은 풀이다. 도시에서 살면서 가끔 규모가 큰 꽃집에서 박하화분을 발견하곤 했지만 그 향은 어릴 적 맡던 향에 비교가 안 되었다. 더구나 플라스틱 화분에 작게 영어가 병기된 박하라는 글자는 예전의 박하와 같은 종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동네에서 박하를 보니,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저절로 났다. 아버지의 머리칼이 반백에서 완전한 백발이 되고 십오도 정도 굽었던 등이 사십오도 정도 굽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가던 모습들이, 니코틴이 배어 누렇게 변색된 치아가 하나 둘 빠지던 그 모습도 떠올랐다. 그렇게 다시 박하를 만났고, 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때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빈 화분을 싣고 왔다. 혹시 박하 싹이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다 사월 어느 날 화분에 난 싹을 발견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섯 포기만 싹을 틔웠다. 이론상으로 박하는 번식력이 좋아서 작년보다 더 많은 싹이 나야 했지만 시원찮은 재배실력 때문인지, 좁은 땅 때문인지 아무튼 그렇게 모자라게 싹이 나왔다. 얼마 전에 두 개의 화분에 세 포기씩 나누어 심었다. 줄기가 굵어져 나무젓가락 두 개를 연결해 지지대도 세워 주었다.
장맛비가 시작되었다. 베란다에 서서 비를 보다가 제법 커다란 잎을 달고 무럭무럭 자라는 박하를 보며 고추장떡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매운 고추에 호박을 채 썰어 넣고 고추장까지 풀어 솥뚜껑에 부쳐주던 어머니의 손맛도 그리웠다. 여름 감자를 일찍 수확하고 난 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커다란 소반에 밀대로 칼국수를 해 주던 모습도. 생각해 보면 귀찮았을 텐데 반죽 사이마다 마른 가루를 뿌릴 수 있게 해주었던 어머니는 참여형 학습의 선구자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날은 마당가에 걸어둔 화덕에 장작을 지폈다. 아홉 식구가 두레상에 둘러앉아 뜨거운 김을 후후 불어내며 음식을 먹던 광경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오늘날 캠핑을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풍경과는 아주 다른, 소박하지만 뜨거운 애정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그 많은 풍경과 기억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제 자리를 찾아 돌아올 때가 있다. 살면서 복잡하고 진저리나는 생활을 버티다 힘에 겹다 느낄 때 자동 저장된 프로그램처럼 불시에 찾아온 그 풍경들이 나를 제 자리에 설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목을 시큰거리게 하고 등뼈를 휘게 했던 두 분의 무한노동과 일곱 형제자매의 보이지 않는 우애와 정이 내 혈관 속에 녹아 힘이 되고 있음을 나는 이제 안다. 잠시 구부러졌다가 곧게 설 수 있는 것 또한 모두 그 덕분이라는 것을.
가는 빗줄기 사이로 팔랑대는 잎들이, 흔들리는 여린 나뭇가지가 더없이 싱그럽고 생생해 보인다. 아직은 잎을 거두어 차로 마시기에 아까운 생각이 들어 박하화분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제 자리에 놓아둔다. 8월이면 박하는 잎겨드랑이에 보슬보슬한 보라빛 꽃을 잔뜩 달 것이다.
첫댓글 살품까지 파고드는 박하향처럼, 과거시점부터 살살 어루어 빚어낸 글솜씨가 피톨의 떨림같습니다.
해굽성이 강하고 거름탐이 심하지만 날벌레가 꾀지 않는 천연 방충제인 박하.
읽어내려갈수록 목울대가 뜨거워짐은 왜일까요?
만혼에 늦게 자식을 둔 늙으신 아버지 모습만 기억에 남아서요. 한 번도 아버지의 검은색 머리칼을 본 기억이 없어요. 대신 박하향이 아버지 향으로 남았네요.
아.... 저런
저는 불행히도 그런 추억이 없어서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하나 봅니다.
오늘 점심에는 농심 칼국수면을 냄비에 넣었고요.....ㅎㅎ
장맛비에 공연히 추억에 젖었어요. 아. 이놈의 주체할 수 없는 감상덩어리. 부끄부끄.
박하 어전지 내이름을 쓰다 만 분이 있더래요. 사연이 있어 박하시군요 ,
저도 묵정밭에 박하를 많이 심었어요 거닐기만해도 잡풀속에서 향기가 납니다. 여기있어요 하고~~~~~~~~!
나중에 한 다발 베어다 주세요. 거실에 걸어놓게, 꽃 피었을때도 좋고 잎이 무성할 때도 좋고요. 나름 낭만주의자 필 나나요?
님은 내유외강, 그래서 글을 쓰고 투사가 되지요.
내 사주를 보셨나? 외유내강형이 각광받는 시대에 그 반대로 살고 있으니 제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제가 겉으로는 돌덩이지만 안으로는 너무나 소프트한 먼지부스러기 입니다. 아시쥬?
그 상반되는 두 세계가 님을 끌어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