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나무
오 세 홍
옥수수가 남몰래 수염을 키우며 늙어가고, 강변 밭에서는 참외가 배를 불쑥 내밀고 뒹굴 거리며 노랗게 익어간다.
해가 진 후, 원두막에는 반딧불이 날아들고 그 반딧불을 찾아 나섰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판에 퍼져 나갔다.
어느 날 땡볕이 연한 살갗을 지지듯 이글거린다. 그런 날은 부채로 부쳐도 냉수를 마셔도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해 보아도 시원치가 않다. 결국, 점심을 먹고 시냇가로 뛰어간다. 어느 때는 집에서부터 옷을 홀딱 벗고 뛴다. 마을 앞 들판을 조금 지나면 시냇가가 있고 거기에서 목욕을 했다.
물속을 첨벙거리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풀밭 위를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곤 하였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아 나를 포근하게 이끌어 간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토리나무와의 추억이라 하겠다.
마을 뒷산으로 연결되는 곳에 있던 도토리나무들은 어린 나를 왠지 아름답게 커질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에 늘 고마운 마음으로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어릴 적 도토리나무는 하늘에 닿을 듯 높은 나무였다. 그 나뭇가지에 텃새들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키웠다. 짓궂은 아이들은 그 높은 나무에 올라가 새의 집을 건드리고 새끼들을 집으로 가져와 키우면서 지렁이도 잡아주고 파리도 잡아주었지만 결국 얼마 안 가서 새끼들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도토리나무에는 찌께벌레(집게벌레, 사슴벌레)들이 살고 있었다. 나무의 상처 난 곳이나 뿌리 쪽의 땅을 파헤쳐보면 찌께벌레가 있었는데 우리들이 집으로 가져와서 서로 싸움도 붙여보고 때로는 찌께의 날카로운 곳에 손가락을 물려서 엉엉 울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에 찌께벌레는 우리들에게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주었기에 나름대로 다시 한 번 가지고 놀아보고 싶은 그리움이 있다.
도토리나무에는 풍뎅이도 살았다. 풍뎅이를 잡아다 목을 비틀고 길바닥에 엎어 놓으면 빙빙 돌면서 몸부림을 치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런 짓거리를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숲으로 들어가 벌레를 잡아다 그런 놀이를 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짓이었구나!”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나무가 푸른색에서 검붉은 색으로 변해가는 계절이 오면 나는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망태기를 들고서 도토리나무를 찾아가곤 했다. 큰 돌이나 곰배를 가지고 나무를 향해 힘껏 치면 도토리가 우수수 떨어졌는데 그럴 때면 어린 동생들은 도토리에 맞아서 “아이고, 내 대가리야!” 하면서도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재미있어했다. 도토리를 주워서 구슬치기도 하고 엄마에게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엄마는 도토리가 어느 정도 모이면 묵을 만드셨다. 마당 한쪽에는 앙금을 내리기 위한 함지박이 있고 며칠 지나면 맛있는 묵을 먹을 수가 있었다.
오래전 다른 곳에서 근무할 때이다. 내가 기숙사 사감을 하고 있었는데 가끔 저녁에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어느 날 찾아간 곳이 묵 집이었다. 수덕사 아랫동네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허름한 묵 집이다. 묵밥이라는 메뉴가 있다. 묵밥은 따뜻한 물에 묵과 김치가 나오고 거기에 밥을 말아 먹으면 되는 음식이다. 물론 도토리 부침개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음식도 있었지만, 주로 간단하게 묵밥을 시켜먹곤 하였다. 그 후 그곳을 종종 간 것은 어린 시절의 도토리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을이면 아내는 이산 저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밤을 주워오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의 비닐봉지에는 밤보다는 도토리가 더 많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밤보다 왜 도토리를 주워 올까?” 의아해하다가 물어보니 아내는 “도토리가 밤보다 더 좋다”고 말한다. ‘참 독특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얼마 후, 아내는 그동안 주워온 도토리로 묵을 만들 준비를 시작한다. 도토리묵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웃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보기도 하더니 방앗간에 가자고 했다. 도토리를 빻으니 누런 갈색 빛깔의 가루가 되어 나왔다. 아내는 묵 가루를 끓이고 앙금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더니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따라내기도 하고 다시 몇 군데 알아보기도 하더니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묵이 밥상 위에 오른다. 몇 번의 실패와 우여곡절 끝에 묵을 완성한 것이다. 틈나면 묵이 밥상에 오른다. 묵을 말리고 말린 묵을 뜨거운 물에 담그면 졸깃한 묵이 된다. 어쩌면 나는 평생 먹을 묵을 이 가을에 먹고 있다.
지금에 나는 도토리나무에 미안한 마음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찌께 벌레나 풍뎅이가 도토리나무에 모여든 까닭은 상처 때문이었다. 거기에 수액이 흐르고 그것을 먹으려 벌레들이 달려든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더 많은 도토리를 얻기 위해 도토리나무를 돌로 때리고 곰배로 두드리고 그것이 그대로 도토리나무에는 상처가 되고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 것이다. 그 상처에 벌레들이 달려든 것이리라. 그것이 숲 속의 생존방식이고 도토리나무의 운명이라 해도 가엾고 미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지에 가뭄이 들기도 하고 장마에 곡식이 여물지 못하였을 때, 마을의 들판을 바라보던 도토리나무는 자신이 할 일을 금방 알아채고는 뿌리에 더 많은 물을 빨아들여 더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열리게 한다고 한다. 그런 도토리나무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도토리가 스스로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도토리가 익기도 전에 도토리나무를 마구 두들겨 팼다.
무슨 일이든 그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내게 가끔 있다. 도토리도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 가뭄이 심하게 들었던 해에는 도토리가 왜 많이 열렸는지, 그해 밥상에는 왜 그렇게 도토리묵이 자주 올라왔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도토리묵은 도토리나무가 배고파 우는 인간, 그 지질한 울음에 말없이 베푸는 햇살이었다. 도토리는 또한 다람쥐 같은 작은 산짐승의 먹이라고 한다.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그들에게 도토리는 인간의 피만큼 소중한 것이리라. 이런 것들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참 다행이지, 싶다.
초등학교 모임이 있다. 도토리나무의 추억과 함께 자란 도토리 같은 친구들이다. 지금은 서로 사는 곳이 너무 멀어 가끔 모임에 나가면서 겨우 연결 끈만 가지고 있다. 얼마 전 그 모임에서 오서산으로 등산 온다고 연락이 왔고, 보령 명대계곡 쪽으로 산행하며 친구들은 예전에 올라간 괴산의 무슨 산보다 높지는 않은데 더 많이 힘들다고 안달이다. “한 달 한 달 몸이 느끼는 것이 틀리네.” 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힘겹게 정상에 올라갔다.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챙겨온 김밥, 찰밥, 과일, 막걸리 등을 먹고 마셨다. 오서산엔 억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갈참나무를 비롯한 도토리나무 육 형제도 있었고, 비목나무, 은사시나무, 팽나무도 있었다. 약간 뒤처진 친구들과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들은 하나하나의 나무에 대하여 말해준다. 이것은 떡갈나무, 저것은 은사시나무. 그리고 저 옆에 것은 산딸나무... 오서산의 도토리나무들은 상처 없이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아마도 도토리를 두드려가면서까지 주워가는 사람이 없는가 보다. 먹거리가 좋아진 탓도 농촌 인구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도토리나무에는 좋은 일이리라. 이렇게 바라보는 나도 참 기분이 좋았다.
가끔은 세상사가 여울물을 건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조그마한 여울인데도 물살이 급해 막 떠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도토리나무가 떠오른다. 하늘에 닿을 듯 높고 바다처럼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도토리나무, 어떤 비바람에도 뿌리 뽑히지 않고 꺾이지 않는 위엄, 때가 되면 아기자기한 열매를 사람들에게 내려주는 자상함, 그런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성장한 내가 참 좋을 때가 있다. 한강의 발원지가 강원도의 어느 산골 바위틈이고 금강의 발원지가 전라도의 어느 조그만 옹달샘이듯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정신적 뿌리 중 하나는 분명 도토리나무의 튼튼한 모습과 도토리를 가지고 같이 놀던 때 묻지 않았던 시절의 초등친구들에게서 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 자연 속에서 어울리며 성장한 것이 나의 삶에는 평화로움과 행복이 따른다.
시골이 좋아 시골 살고, 산이 좋아 산에 다니는 그들은 나무에 대하여 풀에 대하여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은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과 더불어 이 세상을 건너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은행나무 잎들의 낙화를 보면서 문득 초등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모두 참! 잘도 물들었네.’ (2013. 11. 11.17:00)
첫댓글 선생님의 글을 보면
우리들의 어릴적 그 추억들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 놓은 것 같아요
정말 우리 오선생님이 우리 문예 아카데미에 오신 것은 크나큰 영광이고
웃기는 표현 보배입니다. 제가 가늠할 때 고로 우리 문예아카데미가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시절이야기를 주절이 주절이 적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천천히 읽으셔도 듣기 좋은 편안한 글인데 빨리 읽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어요
추억이 아련하며 편안하여 좋았습니다
네 그리되었네요 그냥 지난 세월의 한 단면을
써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