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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로: 청량리역-(KTX)-안동역-(버스)-현이네 안동국시집-(버스)-도산서원-(버스)-안동댐-낙강물길공원-(버스)-부용대-화천서원-(버스)-음식의 거리 안동갈비골 구서울갈비-(버스)-안동역-(KTX)-청량리역
산케들: (서울)동우, 종훈, 大仁, 如山, 智山, 淸泫, 東峯, 正允, 丈夫, 長山, 慧雲, 元亨, 回山, 새샘(14명), (대구)重山(1명) [총 15명]
오늘은 올 들어 3월의 목포, 4월의 포항에 이어 세 번째로 가는 특별여행 프로그램으로서 안동 나들이 여행이다.
안동 지방은 맑고 낮 최고기온 16도의 쾌적한 날씨!
현 경북도청 소재지인 안동安東은 전국 시(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포함)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시다.
안동 역사를 보면 신라가 건국된 서기전 57년 이 지역에 창녕국昌寧國을 세운 이래, 열국시대 신라 때 고타야군古陀耶郡, 후삼국시대 때 고창군古昌郡이 되었다가, 고려 태조 13년(930년) 이곳에서 벌어졌던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고창 전투]에서 이 고을 인물들이 큰 공을 세워 태조 왕건이 '능안동국能安東國'[능히 동국을 안정시켜준 고장]이란 글자를 내려줌으로써 이 네 글자 중 가운데 두 글자를 따서 고창군이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그후 고려 때 영가군永嘉郡(980년)과 길주吉州(995년)로 바뀌었다가 1030년 다시 안동부로 환원되었고,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1197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1204년), 복주목福州牧(1308년)을 거쳐 고려말인 1361년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되돌아온 후부터는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안동이란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구한말 1896년 전국이 13도제가 되면서 경북 안동군이 된 이래, 일제강점기인 1914년 예안군을 흡수하고, 1931년 안동읍으로 승격하였으며, 안동시를 승격된 것은 1963년이었다.
1995년 도농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안동시와 안동군이 지금의 안동시로 통합되었다.
안동은 '추로지향鄒魯之鄕' 곧 '공자와 맹자의 고향[맹자 고향이 추나라, 공자 고향은 노나라]'으로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고장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조선 정조대왕이 '동방東邦의 주자朱子'로 불리는 퇴계 이황의 학문을 말하면서 퇴계의 고향 안동을 '추로지향'이라 부르면서 생긴 것이다.
그럼 안동 외에 또 한 곳은 과연 어딜까?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고려 때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安珦 선생(1243~1306)의 고향인 경북 영주榮州가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열 네명이 승차한 안동행 KTX 열차는 9시 정각에 출발하여, 원주-제천-단양-풍기-영주역을 거쳐 11시 5분 종착지인 안동역에 우릴 내려주었다.
1106 안동역사로 들어가니 중산이 대구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가 우릴 반갑게 맞아준다.
역사 내 출입구 위에 걸린 '안동역安東驛' 현판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 글자를 뽑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1112 역 바깥 전세버스가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본 안동역 풍광
1113 안동역사를 배경으로 열다섯 산케들의 첫 번째 인증샷을 남긴다.
1114 우릴 기다리고 있는 버스 정면 위에 '경남고26산악회'란 전광판이, 그리고 아래쪽엔 '경남중고26산악회'란 글이 붙어 있다.
1132 버스를 타고 점심 식당인 현이네로 직행.
이 식당은 안동국시와 고추장불고기 전문점으로서 국시로만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수와 밥, 막걸리 등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다음 도산서원으로 향한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은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조선의 사설 교육기관으로서,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토계리) 낙동강 우안에 자라집고 있다.
도산서원은 선조 때인 1574년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尙德祠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典敎堂과 동재와 서재를 지어 서원을 완성했으며, 1575년 선조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賜額서원[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받은 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산서원은 크게 퇴계 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인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명종 때인 1561년 선생이 후진 양성을 위해 직접 설계한 건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도 함께 지었다.
그리고 도산서원은 선생 사후인 1576년 완공되었다.
1969년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면서 보수와 증축 사업이 진행되어 1977년 도선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산서원의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강세황이 그린 도산서원도, 그리고 건물로는 상덕사 및 삼문, 전교당 등의 보물이 있다.
그리고 2019년 도산서원 등 전국의 조선 서원 아홉 곳이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235 도산서원 입구와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표지석
입구에서 길 오른쪽의 낙동강을 따라 만들어진 잘 정비된 흙길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넓직한 도산서원 앞마당에 이른다.
정문으로 들어가 맨 안쪽에 '陶山書院' 현판이 붙은 도산서원의 중심 건물로서 대강당인 전교당(보물 제210호) 앞에 이른다.
이 현판은 선조가 하사한 것으로, 선조 앞에서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한다.
1255 전교당 앞 계단에서 화이팅 인증샷.
1257 전교당 왼쪽 담 뒤 주렁주렁 열린 감
1305 도산서원을 빠져나와 너른 앞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본다.
가장 눈에 띄는 나무는 가지를 옆으로 땅에 닿듯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나이 400살에 이른다는 두 그루의 왕버들로서 도산서원의 당산나무 역할을 한다.
1310 도산서원 앞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낙동강 안동호 상류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있는 정자 시사단을 배경으로 세 산케들의 기념촬영.
시사단試士壇 위에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지방별과가 치러진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각이 있다.
1792년 정조가 관원을 도산서원에 보내 임금이 지은 제문으로 퇴계의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솔숲에서 어제御題[임금이 낸 시험문제]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는 무려 7천 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각의 비문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채제공 선생이 지었다.
당시엔 물이 거의 흐르지 않고 강폭도 좁아 걸어갈 수 있었다.
안동댐 수몰로 당시 솔숲은 없어져 버렸고 그 자리에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솔숲과 비각을 조성하고 과거 보았던 곳에 비를 세워 표시해 두었다.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버스로 안동댐으로 향한다.
안동다목적댐은 용수 공급, 홍수 방지, 발전 등의 여러 용도로 1971년부터 시작하여 1977년에 본댐(길이 612미터, 높이 83미터, 해발고도 166미터)을 준공하였다.
1358 하류쪽 안동댐의 웅장한 위용
1359 댐 위로 걸어들어가서 댐 상류의 안동호와 댐 하류의 낙동강 풍광 조망.
아래 세 번째의 댐 하류쪽 사진에서 오른쪽 끝 길옆에 보이는 숲으로 내려가서 둘러볼 낙강물길공원이다.
1405 안동댐 위에서 안동호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댐 반대쪽 끝에 있는 준공기념탑까지 간 정윤이 보내준 사진
1408 댐 위에서 되돌아나오면서 하류쪽 길옆을 내려다보니 낙강물길공원의 울창한 숲과 그 오른쪽 윗길에 선 정자 안동루가 보인다.
1410 안동루 안으로 들어가면 정자 가운데 아래쪽 낙강물길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 있다.
1411 안동루에서 내려가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낙동강 풍광
낙강洛江물길공원은 안동댐 하류쪽 바로 아래 우안 길옆에 조성된 인공 분수연못과 정원, 그리고 인공 폭포가 있는 공원으로서, 수련이 많은 연못 때문에 한국의 지베르니 Giverny[모네가 여생을 보낸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로서 모네의 대표작 '수련'의 모델 정원이 있다] 또는 안동 비밀의 숲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낙강이란 낙동강에서 '동' 자를 빼고 붙인 이름.
1415 낙강물길공원에서 바라본 안동댐 하류 낙동강
1416 낙강물길공원 단풍
1420 낙강물길공원의 단풍나무에는 빨간 단풍이 드는 단풍나무는 물론 노란 단풍이 드는 단풍나무도 있다.
1421 철 모르는 개나리가 노오란꽃을 제법 많이 피웠다.
1422 낙강물길공원에 서 있는 안동댐 순직자 위령비
1425 낙강물길공원의 인공폭포와 분수는 안동호에서 흘러내려온 물의 낙차를 그대로 이용하여 펌프를 사용하지 않는 무동력으로 흘러내리고 뿜어낸다.
1429 낙강물길공원의 빨간 덱길
1431 개나리와 함께 철모르게 분홍꽃을 피운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늘푸른 떨기나무 산진달래.
낙강물길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안동하회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대로 향한다.
1516 부용대 들머리
1517 언덕 위에 있는 부용대를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안동하회마을과 마을을 끼고 돌아내리는 낙동강 물길
1526 해발 64미터 언덕인 부용대芙蓉臺는 부용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란 뜻이다.
부용은 연꽃의 다른 이름으로도 사용되며[부용이란 이름의 식물은 따로 있다], 물 위에 떠있는 한송이 연꽃 모양을 한 마을의 모습을 뜻하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하회河回마을을 지칭하기도 한다.
부용대는 태백산맥의 맨 끝에 자리 잡은 절벽으로 이전엔 하회의 북쪽 끝 언덕이라고 해서 북애北厓라 불렀다.
1528 부용대에서 조망한 안동하회마을 전경과 마을을 휘돌아흐르는 낙동강 물길, 그리고 인증샷
1537 올라왔던 곳으로 돌아 내려가지 않고 부용대를 지나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니 버스가 보이고 주변에 한옥이 있다.
1538 버스 오른쪽으로 보였던 한옥 화천花川서원으로 들어가본다.
이 서원은 안동 하회리 출신의 조선 선조 때 문신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선생(1539~1601)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정조 때인 1786년 건립되었다.
그후 이 지역 문신 두 사람을 추가로 배향하고 100여 년 동안 유지하다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평으로 강제 철거되었다가 지역주민들이 기금을 모아 1996년에 지금의 화천서원을 지었다.
서원 출입문 앞에 부용대 250M 표지석이 서 있다.
1539 출입문을 들어서면 부용카페가 있고 카페를 지나야 서원 건물이 나온다.
1540 화천서원
1542 화천서원 앞에서 바라본 낙동강 풍광과 화천서원 뒤로 보이는 부용대가 있는 언덕.
언덕 왼쪽 끝에 부용대가 있다.
이제 안동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자 백미 안동갈비를 먹는 일만 남았다.
1624 안동 경동로의 '음식의 거리' 입구 앞 도착.
음식의 거리 앞 경동로 건너편에 옛 안동역이 있는데, 여기에 진성의 '안동역에서' 노래비가 있다.
인터넷에서 찾은 진성의 안동역에서 노래비(사진 출처-https://blog.daum.net/jangmi-2002/16129801).
1625 음식의 거리 입구 문을 지나면 안동갈비골목이 나오고, 이 골목의 오른쪽으로 2층 건물에 예약 식당인 '구서울갈비' 간판이 보인다.
1626 식당 문 앞 도착.
1630 4개의 테이블에 앉은 열다섯 산케들
1642 200그램에 32,000원 짜리 안동 국내산한우갈비에 약주는 40도 짜리 일품안동소주로
1810 2시간 가량 한우생갈비와 안동소주를 원대로 먹은 산케들은 중산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서 저녁 7시발 KTX를 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1835 안동 여행의 첫 인증샷은 안동역 밖에서 찍었지만, 마지막 인증샷은 안동역사 안에서 만들었다.
1849 안동역에서 KTX 승차하여
2112 청량리역에 내림으로써 안동 여행을 기분좋게 그리고 안전하게 끝냈다!
2021. 11. 18 새샘
첫댓글 서울사람 아닌 사람도 1명 참석한게 보입니다.
안 따라가도 환하게 어찌 돌아갔었는지 알수 있게 기행문을 잘 적었습니다.
'바람에 날려버린 근심 걱정이었네~' 누구는 안동에서 바람을 맞았지만,
우리는 코로나로 찌든 때를
털고 즐거움만 안고 왔다.
맑은 공기와 물, 만추의 숲,
세계 문화유산, 맛난 먹거리ᆢ 이런 걸 만들어 준 건강한 친구들과 참 좋은 조직 산케가 늘 고맙다ᆢ
경북의 중심 안동. 도산서원,안동땜,부용대.낙동강..
몸으로 부디치고 나니 새샘의 후기가 더 새롭고 깊은 감회를 준다. 특히 퇴계와 기생 두향의 사랑이바구는
세월에 찌던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신선하고 아련한 메세지를 남긴다. "세상 모든 사람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라는 문구도 생각나고...
잘 추진한 회장,대장. 마무리 장식한 새샘주필께 감사드립니다..^^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또 만납시다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건강합시다..^^
또 봅시다 중산!
오랫만에 한국의 맛과 향기가 가득한 안동에서 산케친구들과 멋진 풍광과 맛나는 먹거리로 좋은 시간을
보낸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정윤회장,혜운대장,새샘주필 수고 많았습니다.
짧은 하루 일정으로 병산서원을 못봐 아쉬웠지만, 안동 맛탐방을 겸한 산케들과의 답사여행은 기억에 쭉 남을 것같습니다. 안동댐 지나 부용대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찍은 특이한 통일신라시대 국보 법흥사지 칠층전탑 사진을 올립니다. 회장, 대장님, 새샘주필 감사합니다
혜운대장님의 빈틈없는 사전준비와 치밀한 일정 계획 덕분에 한나절의 짧은 시간에 안동의 알짜배기 볼거리와 먹거리를 다 보고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주중에 많은 칭구들과 여행을 떠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았는데, 이젠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도 좋을 듯 합니다.
안동의 맑은 물, 세계 문화유산, 맛난 먹거리등, 모두가 소중한 시간 이었습니다.
마무리 여행까지, 훌륭한 기록 남겨 준 새샘주필 고맙고, 함께한 산케칭구들 수고하셨습니다.
혜운대장이 여러가지로 애 많이 썼소. 댕큐..^^
지금도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혜운거사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리며 새샘의 멋진 사진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두루두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