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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간 [162.5]
살며생각하며
나의 30대, 나의 일기 21마당(3.완)
호암 이정희_도정
◉ 마당16. 1982. 4. 13.
천도교 중앙총부
주선원 청년회 위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최근에 문교부에서 국정교과서 내용 중에 나오는
“동학혁명”을 “동학운동”으로 격하시켰다면서
“천도교인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
부위원장과 함께 편수국장을 만나기로 하였다”면서
나의 동참을 권유한다.
아무리 바빠도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
그들과 함께 문교부를 찾는다.
편수국장에 의하면
천도교를 차별대우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다만 국사편찬위원회의 결의에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화를 발끈 낸다.
문교부의 책임이 없다는 말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따진다.
아무리 위원회에서 결의했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정부에서 하는 것이 아닌가?
위원회에서 옳지 않은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정부에서 바로 잡을 수 있지 않는가?
왜 이 시기에
위대한 동학의 역사를 격하하려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결정과정을 밝혀 주고
앞으로의 대책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물론 편수국장은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그래도 천도교가 살아있다,
역사를 바로 잡으려 하는 젊은이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지난 날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집에 돌아와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문교부 일을 생각해 본다.
나는 좀 다혈적인가?
왜 나 혼자 그렇게 흥분이 되었는가?
왜 그렇게 화를 내면서 이야기를 하였는가?
좀 더 차분하게 나의 뜻을 전달할 수는 없었을까?
하지만 오늘의 행위는
천도교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조치를 바로 잡는 일에
젊은 청년들이 앞장섰다는 것에 대해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천도교가 힘이 없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 마당17. 1982. 4. 24
빨갛게 떠오르는 태양, 구름 한점 없이 해맑은 하늘,
나는 깊은 마음의 기도를 드린다.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오늘 저의 아버님 환갑을 기리는 날에
한울님, 스승님의
특별하신 감응 있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이제 저희들은 뜻 깊고 보람찬
아버님의 60생애를 축하하는 환갑의 자축연에서
두손 모아 비옵건대
아버님의 만수무강하심과
아버님의 깊고 거룩한 큰 뜻이
펴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옵고 갖은 고생을 다하시며
오늘 우리 가정의 기반을 튼튼히 이루시었습니다.
일찍이 천도교에 입도하시고 변치 않는 신앙심으로
어려운 시기에 호암수도원을 지키시고
호남포덕의 기반을 튼튼히 하시고
중앙감사 등 중책을 맡아 많은 업적을 내시었습니다.
언제나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하시고
단 한마디 말씀이라도 옳지 아니하면 하지 않으시고
한번 말씀하시면 그것이 곧 실천으로 이어지는
행동주의자이십니다.
그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의 물정,
사리를 깨닫고 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바램하시며
이웃을 선도하는 사표가 되시고
지역사회정화위원으로서,
평화통일자문회의위원으로서,
이 사회 도처에서 인내천 진리를 펴시고자
변함없는 정성을 바치시고 계십니다.
저의 아버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오며
가정에서, 마을에서, 교회에서, 이 나라에서,
온 세계에서 아버님의 그 깊고 큰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거듭 기원하옵니다.”
아침에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그리고 현재 줄포에 계시는
단 한분의 고모님을 곁에 모시고,
아들들이 먼저 감사와 축복의 절을 올린 후
형완, 형조 두 외숙님, 병운 형님, 상귀조카 등
차례로 인사를 드린다.
이종동생 광수가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여 주었다.
초청장도 보내지 않고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저녁에는 동네 아주머님들이
장구도 치고, 노래도 하고, 한판을 신나게 즐긴다.
우리 어머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노래하며 춤추며 어울리신다.
나 역시 함께 춤추며 재미있게 놀았다.
쾌청한 날씨, 우리 마을 전체가 한 덩어리 되어
함께 어울린 정말 기쁜 동네 잔칫날이었다.
국민학교 교장이신 규성이 형님,
박 종철 상서면장님도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다음날 새벽 3시경 끝까지 남아준
내 친구 성복이와 함께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아버님, 어머님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 마당18. 1982. 6. 12.
천도교 총부의 청년회에서 주관하는
성지순례에 참석하였다.
오후 4시 10분에 30여명의 청년회 회원들이 탑승한
매일관광버스가 성지 경주 용담을 향하여 출발한다.
버스 안에서 출발기도를 한 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2시간여 단위로 세 차례 휴식을 취한 후
경주에는 밤 10시 30분경 도착하였다.
총 6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난생 처음 용담을 향하는 내 마음은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맞이하는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구미 용담정, 우리 수운 대신사께서
5만년 무극대도 동학을 창도하신 바로 그 자리이다.
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 역사적 성지 용담수도원에서 잠을 잔다.
나는 기도하였다.
“한울님 스승님 그 거룩하고 드높은 뜻이
이 소생에게도 감응하시어
그 뜻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울님, 스승님, 제인질병, 만사여의,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 하여 이 땅에
지상천국건설의 힘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동학의 정기가 서리어 있는 이 성지에서
새로운 생명을 싹틔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항상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가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어떤 불의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어떤 불의의 소리에도 울지 않고,
그 어떤 불의의 일에도 가담하지 않는
한울님의 그 큰 뜻이 내리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이 세상은
각자위심으로 한울님의 뜻을 망각하고,
어두운 밤을 헤매고 있사오니
동귀일체의 밝은 길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찬란히 빛나는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한울님의 뜻을 밝혀 주시고
그 뜻 깊이 깨달아 행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6월 13일,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한다.
네 바다의 근원인 용담의 물을 곱게 떠
새벽 기도식을 거행한다.
오만년 후천의 역사를 세운 용담의 새벽바람이
온 세상에 퍼지는 듯하다.
대신사님의 교화가 담긴 훈훈한 바람이다.
한울과 땅이 만나는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새 소리, 풀벌레 소리,
그 소리 한울님 말씀 되어 우주에 가득하다.
새벽 5시 기도식 후
대신사님이 득도하신 바로 그 자리,
대신사님 영정을 모신 바로 그 자리로
역사적인 발길을 옮긴다.
이우영 수도원장님과 표영삼 선도사님으로부터
용담정의 유래와 의의를 듣는다.
온 몸이 오싹하고 눈물이 난다.
무극대도의 큰 뜻이 와 닿는 듯하다.
새생명의 새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해월신사님께서 계신 곳, 검곡으로 출발한다.
우리를 축하하듯, 안개 자욱하고 잔비가 내린다.
경주에서 신광면을 거쳐
마북 저수지를 지나 양수리에서 내린다.
양수리에서 약 10리쯤 떨어진 골짜구니로 간다.
해월신사님이 걸어 다니신 그 길을 걷는다.
약 50여 세대, 300여 주민이 사는 산골이다.
가보자. 어서 가보자.
해월신사님께서
대도의 무궁한 역사를 키우고자 오신 곳,
몰지각한 관의 눈길을 피하여
동학을 지키고자 1년을 계신 곳이다.
그 산골을 흐르는 개울을 따라
마침내 오전 11시 역사의 땅에 도착한다.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가에 여장을 풀고
해월신사님께서 계셨으리라 추측되는
작은 봉우리를 오른다.
5년 전에는 민가 한 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집터 자리만 남아 소나무와 감나무,
채전 밭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 성지에 앉아 우리는 역사적인 시일예식을 거행한다.
시일식의 동덕들! 그 역사의 성지에서
해월신사님의 말씀을 듣는 듯 깊은 생각에 잠긴다.
우리들의 정성을 모아 천도교 성지임을 기리는
기념비 하나쯤 세울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 어느새 우리는
1박 2일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오후 3시 서울로 향하고 있다.
◉ 마당19. 1982. 12. 13.
아버님께서
천도교 중앙총부 감사회의에 참석차 상경하셨다.
아버님은 2년 전 중앙총부 감사에 선임되시어
감사회의가 열리는 여름과 겨울에는
꼭 서울을 찾아오신다.
감사회의 말고도 총부 기념식 등에 참석키 위하여
서울에 자주 올라오시기 때문에
서울에서 뵈올 기회가 많은 편이다.
아버님께서는 총부 감사회의를 하실 때 마다
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들이 총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 잘못을 사건화 하여 시끄럽게 떠들어야만
제 기능을 다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감사들이 무능한 것처럼 치부되기 일쑤다.
종교에도 시비가 참 많다.
문책이나 처벌 위주의 감사만이
능사인 것처럼 떠드는데 급급하다.”면서
잘못된 감사관을 걱정하신다.
“종교집단의 감사기능은
포덕교화중심의 감사, 지도감사 등에
역점이 두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때때로 종교가 사회로부터
크게 지탄을 받고 저주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종교집단 내 파벌간의 끊임없는 투쟁 때문이다.
사회의 등불이오, 사회의 소금이 되겠다는 도덕 집단이
오히려 스스로 파벌을 조성하여
사회로부터의 지탄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종교집단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말씀 하신다.
아버님께서는 이번 회의가 끝난 후
이영복 교령님을 만나 뵙고서도
그러한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는 것을 보았다.
◉ 마당20. 1983. 2. 27.
동학 후예들이 재경호남교구 설립을 추진한지
이제 석 달째의 모임이다.
지난해 82년도 12월 25일에
서울에 있는 우리 재경 호남동학후예들이
재경 호남교구를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그 이후로 매월말 시일에
총부에서 시일예식을 마친 후에
별도로 감사원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금년 들어서 두 번째의 모임이다.
지난 1월에는 20여분 가까이 모였는데
오늘은 약간 적게 모였다.
우리들이 입수한 명단은 모두 50여호 이상인데
개인 사정도 있고 해서 제대로 모이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은 부안의 호암수도원의 유래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 호남은 의암성사님으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은
학산 정갑수 선생님의 제자들이
그 도맥을 이어받고 있다.
학산선생 시절 호남의 교세는 어느 지역보다 더 컸는데
오늘날 우리가 그 뒤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해월신사께서 ‘화개어 부안,
결실어 부안’이라고 하시지 아니하였는가?
호남의 큰 지도자이신
학산 선생님의 가르침을 명심하면서
신앙심을 되찾아야겠다.
서울에 있는 우리들부터
정성을 모아 나가자”고 서로 간에 다짐한다.
다음 달부터는 ‘교회소식지’를 발간하여 서울은 물론
호남지역 교구와의 정보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다가오는 4월에는 전국대회를 치루기 위하여
많은 동덕들이 상경하실 것이므로 그때 우리도
대집회를 갖도록 준비하자는 결의도 하였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는가?
시작하였으니 반은 이룬 셈이고 나머지 반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해야 하겠다.
한울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정성을 모을 때,
반드시 한울님의 감응이 있으리라 확신한다.
◉ 마당21. 1983. 9. 28.
어젯밤에 아버님께서 상경하셨다.
평화통일자문위원회의 참석 통지를 받고 오셨다.
아침식사를 하신 후
장충동에 있는 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실에 가셨다.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홍능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정문 앞 함흥냉면집에서
저녁식사 중 텔레비전 뉴스를 듣는다.
금일 평화통일자문위원들이 대통령과 같이
청와대에서 식사를 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틀림없이
아버님도 거기에 참석하신 것으로 생각되었다.
집에 돌아와 아버님을 뵈었다.
시골에서 올라오실 때는 무조건 상경하라 하여
회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대통령이 초청하여 오찬을 같이 하셨다고 하셨다.
아침 일찍 아버님께서 하향하셨다.
아침 조간신문 조선일보를 보니 아버님께서 대통령과 같이 악수하시는 장면이 신문기사와 같이 나왔다.
아버님께서는 어젯밤 청와대 식사를 위해 의전 상
검은 옷을 착용하라는 통지를 받았으나
준비된 옷이 없어 춘추복 회색 옷을 입고 오셨는데
그래서인지 더 눈에 띄었다.
아버님께서는 참으로 장하신 분이시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다.
어려운 환경 하에서 오늘의 아버님의
높은 인격을 쌓으신 그 힘은 참으로 크고 장하시다.
무엇보다도 아버님의 훌륭하신 인격이다.
크게 노하지 않으시고 크게 기뻐하지 않으시며,
크게 떠들지도 않으시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으신다.
저 깊은 마음속에 한울님의 진실이 밝히시며
한울님의 뜻으로 살아가신다.
오늘 나는 다시한번 나의 신앙관을
깊이 생각하고 거듭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다.
“인간의 지상목표는 한울님이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가 무엇이냐면
그것은 곧 한울님의 경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울님을 늘 잊지 말고 생각하면서
한울님의 참모습을 하여야 한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라고 주신
3.7자 주문이다.
이 주문으로 한울님을 정성하고, 한울님을 공경하고,
한울님을 믿어서 마침내 한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갖도록 하신
나의 아버님께 항상 감사드린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