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는 말려서 복조리 만들고, 열매는 쌀 대신 밥 지어 먹었죠
조릿대
밥을 먹다 딱딱한 돌이 씹히면 이가 상합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조리'라는 도구로 쌀을 들어내 씻으며 돌을 걸러냈어요. 설 명절에는 조리로 쌀을 떠서 이듯 복(福)도 떠서 이라는 의미로 '복조리'를 만들어 벽에 걸기도 했죠. 이렇게 조리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이름 붙은 대나무가 있어요. '조릿대'입니다.
조릿대는 높이 1~2m 정도로 통상 생각하는 대나무류보다 키가 작고 굵기도 가늘어요. 게다가 가볍고 유연해서 대를 뜯어 엮고 묶기에도 적당하죠. 그래서 조릿대로 조리를 만든 거예요. 이렇게 만든 조리는 단단해서 물에 닿아도 잘 썩지 않아요.
조릿대는 키가 크고 넓은 잎을 가진 나무 아래에서 무리 지어 자라요. 그늘 때문에 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도 잘 자랄 수 있거든요.
영양(營養)생식을 통해 번식하기 때문에 생명력도 아주 강해요. 영양생식은 바람이나 곤충이 꽃밥을 퍼뜨려주는 과정 없이 줄기 등으로 번식하는 방법을 말하는데요. 마치 뿌리처럼 땅 아래로 자라는 가는 줄기가 땅 위로 나와 다시 싹을 틔우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번식한 조릿대밭은 모두 유전적으로 같은 한 식물이기 때문에, 밭 전체가 한 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답니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특징 때문에 조릿대는 옛날부터 흉년이나 기근이 심할 때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황(救荒)작물로도 쓰였어요. 여러 해에 한 번씩 조릿대 무리가 꽃을 피우고 나면 쌀알보다 길쭉한 열매<사진>를 맺지요. 이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린 뒤 찧고 불리면 쌀을 대신해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맛있게 먹으려면 다른 곡식과 섞어서 밥을 지어야 했지만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봄철 보리 흉년이 들었을 때 조릿대를 구황작물로 삼았대요.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던 1950년대 제주도에서는 제주조릿대 열매를 먹으며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어디서든 잘 자라 바닥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도 해요. 꽃을 피울 때까지 높게는 어른 키만큼 자라며 작은 동물이 숨을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고요. 꽃이나 열매, 줄기로 먹이도 제공합니다. 조릿대가 말라 죽은 자리는 키 작은 식물들이 새로이 채워요. 시간이 흐른 뒤엔 다시 이곳에 조릿대가 자라기도 하지요.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조릿대가 너무 잘 자라서 골칫거리라고도 해요. 한라산 고산(高山)지대에는 기후변화로 고산 식물이 감소하고 있는데요. 이 빈 곳을 조릿대가 채우면서 개체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인위적으로 이곳의 조릿대를 제거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