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東海)의 명소를 찾아서
-삼척 장호항, 동해 감추사, 양양 죽도암-
동양의 나폴리, 장호항
해마다 여름만 되면 한국 역시 여름 피서계획으로 들 떠 있다. 다들 어디로 갈까 궁리하는 것도 참 고역일 때가 많다.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바다로가면 동해로 갈까? 서해 아니면 남해로 갈까? 갈 곳을 정하고나면 숙박시설, 여행일정을 짜느냐 다시 고민은 깊어만 간다.
뉴스보도에 따르면 여름 피서지로 제일 분주한 곳이 동해안과 부산이라고 한다. 바다하면 아무래도 서해도 좋지만 동해가 사람들 마음 속에 더 큰 낭만과 추억을 안겨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엔 피서지로 동해의 명소를 소개해 볼까 한다.
삼척에서 남쪽으로 옛 7번 국도를 따라 가다 초곡리 황영조마을을 지나면 말굽고개가 나온다.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기암절벽 아래로 아름다운 항구와 해변이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새도로가 개설된 이후 한적인 이곳은 바로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장호리 지역이다.
장호리 인근 6개 마을(장호·용화·갈남 등)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된 바 있다. 장호마을은 유난히 맑은 물과 아직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로 깨끗한 환경을 보존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어촌체험관광마을’로 지정되어서 장호마을에서는 바닥히 훤히 보이는 ‘투명 카누’와 ‘바다 래프팅’, ‘낚시배’ 등의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호리 북쪽 용화는 동해안 치고는 해수면이 낮아서 아이들과 함께 수영하기에 좋으며 2년 전 운행을 시작한 삼척해양레일바이크로 바다풍경을 한껏 체험해볼 수 있어서 찾는 이에게 큰 만족을 선사해 주고 있다.
삼척시는 계속해서 장호항과 용화해변의 아름다움을 공중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로프웨이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갈남1리 앞 바다에는 달이 뜨면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월미도가, 갈남2리에는 남근숭배의 민속을 주제로 조성된 해신당공원이 호기심 많은 여행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도 주민 스스로 장호마을을 아름답게 보전하고 홍보하는데 앞장서서 장호항 지역이 휴식을 찾아 떠나온 나그네들에게 사랑받는 제2의 고향이 되었으면 한다.
동해시 감추사
삼척 장호항에서 북쪽으로 36km, 차로 5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감추사는 동해시를 대표하는 지역사찰로 유명하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창건했다고 한다.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과 결혼한 뒤 백풍병(白風病)이라는 병에 걸렸다. 여러 약을 써보았으나 낫지 않자 전라북도 익산시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師子寺)로 지명(知命)스님을 찾아갔고 스님은 공주에게 동해안 감추(甘湫)로 가보라고 권하였다고 한다. 공주는 감추로 가서 자연동굴에 불상을 모시고 매일 낙산 용소(龍沼)에서 목욕재계를 하는 등 3년 동안 기도를 하였고 마침내 병을 고치고나서 불은(佛恩)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감추사를 창건하였고 또 노후에는 용왕에 대한 보은을 갚기 위해 이곳에 와서 동해를 바라보다 죽었으며, 묘를 이곳에 썼다고 전한다.
오랫동안 폐사로 있던 것을 1902년 절을 세우고 신건암(新建庵) 또는 대은사 분암(大恩寺 分庵)이라고 하였다. 1959년 해일이 덮쳐 석실과 불상이 유실되었으며, 1965년에 와서야 인학(仁學)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태고종 소속 사찰이며 건물은 관음전과 삼성각·용왕각·요사채가 있다.
창건 당시의 절터는 찾을 수 없고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린 석굴만 남아 있다. 절 입구에는 1979년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는데, 한 여신도가 죽을 때 자신의 아들에게 유언을 남겨 만들었다고 전한다. 바닷가 주변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절 입구 샘물에서는 약수가 흘러넘쳐 늘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마을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감추사는 선화공주 설화 때문인지 ‘용궁기도터’로 유명하다. 도량이라 무구사용을 자제하도록 시키고 있지만 많은 무속인들이 여전히 찾고 있으며 감추사 입구에 있는 남양상회(동해용신굿당)나 그 옆 바닷가에서도 무속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옛날 선화공주 설화 때문에 설립된 감추사 안에는 이처럼 2층으로 된 용왕각과 용궁기도터가 불상과 나란히 한 사찰에 있다. 돌아가는 발길에 감추사가 혹여나 무속사찰로 오해받는 건 아닌가 염려가 들었다.
그래도 감추사 앞으로는 확트인 동해바다가 있으며 뒤편으로는 기찻길이 있어서 운 때만 맞으면 파도소리, 절의 풍경소리, 기차소리 그리고 자신의 숨소리 모두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재미인가.
양양 죽도암
다시 북으로 발길을 돌려 68km, 약1시간 정도를 달리면 강릉을 지나 양양군 죽도암에 닿는다. 양양은 예부터 8경이 유명한데 그 중 3경이 바로 ‘하조대’, ‘죽도정’, ‘남애항’이다.
강원도 양양군은 규모로 따지면 외설악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작은지역이지만 동해안 어느 지역보다 빼어난 절경을 품고 있다. 특히, 양양의 최북단엔 동해안 최고의 일출 명소인 하조대가 있고 남으로는 동해안의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남애항이 동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하조대에서 내려 7번 국도를 따라 주문진까지 가는 18㎞ 남짓한 여정은 바다를 사랑하는 낭만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로맨틱 로드’ 일 것이다. 그렇게 가다보면 ‘동산리’라는 작은 포구가 나오고 동산리 포구의 왼편으로 불쑥 솟은 동산 하나가 바닷가에 돌출돼 있다. 그곳이 바로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 산101번지로 둘레 1km, 높이 53m인 죽도다.
죽도는 그 옛날에는 섬이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육지와 연접하고 있다. 섬이었던 지역의 모래가 오랜시간 동안 바닷물을 밀어내어 결국 육지가 된 것이다. 송죽(松竹)이 사시사철 울창하므로 죽도라고 부른다. 이 섬의 장죽은 강인하고 전시용으로 적격이라 조선시대 때는 조정에 진상품으로 장죽을 받쳤다고 한다.
섬이름처럼 섬의 정상에는 멋진 정자가 숨어 있다. 바로 ‘죽도정’이다. 1965년 5월 13일 현남면 대부호들이 주축이 되어 행정의 지원을 받아 정자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팔각집우 전면 3칸, 측면 2칸, 천정은 정자(井子)형으로 되어있다.
아름드리 해송과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죽도정에서 내려다 본 동해안의 절경은 탄식도 아까울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죽도 왼편에 설치된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이 경치를 실감해볼 수 있다.
바다 지척에 세워진 작은 암자, 죽도암은 파도가 심한 날이면 법당 안까지 바닷물이 튀어 들어온다고 한다. 소박하다 못해 휴휴암에 비해 초라한 죽도암이지만 내겐 이 작고 조용한 암자가 관광지로 전락한 휴휴암보다 더 영험한 기도도량 같았다. 정자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면 죽도암 입구와 연결된다. 건물이라곤 작은 법당 하나와 요사채가 전부이기에 크게 볼 것은 없지만 그 소박한 자체가 수행공간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재라도 지내는 날이면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바다의 파도소리와 섞여 산중의 여느 절보다 신묘한 기분이 들게하기에 충분하다. 사람과 자연이 소리로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루니 이것이야말로 바닷가 암자 아니면 어디서 들어볼 수 있겠는가.
죽도암은 한 바퀴 쭉 둘러볼 수 있게 되어있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철구조물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기암괴석과 낚시하는 낚시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생하는 도량 앞에 낚시꾼이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모순의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 그대로가 이승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양양군 남애항
죽도암에서 남쪽으로 3.6km, 차로 7분거리에 동해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남애항이 있다. 가는 길에 죽도암에서 2㎞ 남짓 걷다 보면 ‘쉴 휴(休)’자가 두 개나 씌어 있는 휴휴암(休休庵)에 발길이 닿는다. 평일에도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휴휴암은 죽도암에 비하면 규모가 상당히 크다. 암자라기 보다는 휴휴사로 불러도 무방하다. 10여년 전 이곳에 암자를 짓고 기도를 드리던 중 바다 쪽에 누워 있는 관세음보살을 발견하게 됐다는 영험한 이야기때문인지 용궁암 연화법당으로 불리는 너럭바위가 유명하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오갔는지 경내에 포대화상의 배는 검게 변해있다. 시간이 되면 ‘언덕위의 바다’라는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휴휴암과 바다 풍경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남애항은 1984년 영화 ‘고래사냥’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장소다. 양양에서 제일 큰 항구로 주변에 4개 포구마을이 연이어서 자리 잡고 있다. 전복, 미역, 가리비, 넙치 등의 싱싱한 해산물과 활기 넘치는 어시장이 남애항의 생동감을 선사하고 있다. 2~3㎞ 남쪽에 있는 주문진항과 함께 둘러보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