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 (요한복음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우신 경우는 세 차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요한복음11:35)
둘째는 예루살렘 입성 때 성을 보시고(누가복음19: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세 번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히브리서5:7)
오늘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왜 울었나요? 슬퍼서 아니면 기쁨서 우는 것입니다.
전 눈물이 많은 편입니다. 목사 안수 받을 때 축사하시는 목사님께서 눈물이 참 많은 목사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슬퍼서 울었고 기쁘고 감사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하는 예수님의 친구가 죽었습니다. 나사로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여인입니다.
1. 나사로의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의 눈물
나사로가 병들었고 그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만큼 사랑했다는 말씀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살아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실 때 나사로를 부른 것처럼 우리들의 이름도 불러줘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유일하게 친구와 같이 지냈던 나사로가 갑자기 병들어 시름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태연하게 다른 동네에서 사역을 하시며 시간을 끌었어요. 그러다가 예수님이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깨우러 가자고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나사로의 집으로 갑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영접을 받으시고, 나사로를 찾으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만 있었으면 나사로는 죽지 않았다고 했고 원망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잔다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에 가서 나사로야 나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이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요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나사로의 가족과 이웃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권세에 대해 주님이 분노의 감정을 나타나신 것이에요. 나사로는 다시 살리실 것이지만, 주님이 장차 재림하실 때까지 나사로만 아니라 우리들도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는 귀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44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체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재림할 때 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지 영원한 생명을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42절 끝부분에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여기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눈물을 재림으로 신 예수님 우리가 다시 죽음에서 다시 영원한 곳으로 인도함을 받기 위한 눈물입니다.
2. 예수님이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미래의 눈물입니다.)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 두 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히5:7에도 주님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해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내용으로 보아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눈물을 흘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19:39-40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 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 둘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온 무리들의 환영을 받고, 호산나 찬양 소리를 들으며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는 길을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는 것은 나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우리가 세상에 있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주는 세마포를 입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입성은 이스라엘의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실 때, 여인들이 주님을 보고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여인들에게, “너희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어요.(눅23:28)우리가 어떤 사명-십자가를 질 때 주님처럼 울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습관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나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주님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제가 힘들 때 저에게 어떤 목사님께서 예수님은 전도사님을 위해 피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왜 자신 만 생각하고 있는지 예수님이 나를 부른 목적이 있는데 왜 슬퍼하고 있는지 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종교인이 되어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주님은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하는데 왜 세상 사람들처럼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느냐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저 그 말씀에 눈물과 콧물로 주님 앞에 엎드러져 통곡했습니다. 주님이 나의 어리석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 용서해주세요.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 우신 것은 군중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주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미래를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들의 운명은 장차 큰 비극을 맞이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백성이 한 마음으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우리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찬송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찬양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돌들이 침묵하지 않고 소리 지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가 운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3.누가복음22:44절 말씀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겟세마네 기도와 달리 이 때 주님의 눈물은 자신을 위해서 우신 것이 아니에요.
첫 번째 두 번째는 우리들의 의한 눈물이면 세 번째 눈물을 예수님의 의한 눈물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사명을 다하신 후에 임할 예루살렘의 미래를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버지에게 어떤 기도를 하셨나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 하시면 3번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면 기도할 때 눈물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했으면 땀이 핏방울처럼 하셨을까요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우리는 주님과 얼마의 시간을 통해 만남을 갖고 있는 지 오늘의 말씀으로 생각해 보세요. 개인적으로 눈물을 많이 흘리지만 눈물이 피가 될 때까지 흘리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그냥 힘들고 피곤하면 눈의 핏줄은 터지더라구 그것 말고는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눈은 퉁퉁 부어도 피눈물이 나지 않죠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나에게 눈물을 주는 자들은 자신들은 피눈물을 흘리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렇까요. 예수님도 사람의 마음으로 할 수 없는 길을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누가복음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더하셨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언드립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나 자신의 죽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나요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입성처럼 미래을 위해 기도하셨나요
내가 가기 싫고 하기 싫어도 아버지의 뜻이라면 순종하며 가겠다고 기도하셨나요.
예수님의 눈물을 통해 오는 우리 모두 참회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며 나의 믿음을 한 번 더 깊이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축언드립니다.
사람의 눈물은 대부분 ‘슬픔’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죄와 회개에 대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눈물이 핏방울처럼 될 까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나요?
예수님께서 왜 그토록 심히 우십니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일상 중에 무심코 내뱉는 말, 나쁜 생각, 시기 질투 내 자존심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일 자녀들에게 아프게 한 일 남편 아내에게 상처를 준 일 이 모든 일 때문에 예수님은 동산에서 그 토록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에는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결단코 죄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내 자신의 결점으로 인하여 우리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요 예수를 닮기 원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처럼 사십시다. 예수님이 흘리셨던 그 눈물을 우리도 함께 동참합시다.
이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시며 우시는 주님의 눈물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조용히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