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 본원 양정자 원장, 사회·봉사 부문 수상 -
전국의 지방법원과 지원이 있는 52개 지역에 지부를 개설하라는 故 이태영 박사님의 뜻
상금 500만 원은 정일형·이태영 박사 두 분 성함으로 광주지부 창설회비로 기부
지난 4월 2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컨벤션홀에서 금연 정일형 박사의 41주기 추모식과 제23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시상식이 개최되었습니다.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은 이 땅의 독립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애쓰신 독립유공자 금연 정일형 박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운영을 통해 평생을 여권 신장을 위해 애쓰신 이태영 박사 부부의 활동과 높은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 지난 1997년에 제정된 상입니다.
제23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의 ‘민주·통일 부문’ 수상자로는 탈북학생들의 안정적인 한국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해온 ‘한꿈학교’가 선정되었고, ‘사회·봉사 부문’ 수상자로는 1966년부터 현재까지 57년 동안 소외계층을 위해 법률구조서비스 및 인권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본원 양정자 원장이 각각 선정되었습니다.
‘한꿈학교’는 2004년 민족의 평화통일의 소명 아래 탈북 배경의 자녀들을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민족의 지도자로 육성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현재까지 120여 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하여 성공적으로 사회에 정착하도록 힘써왔으며, 지역 학교에 탈북학생들이 통일교육 강사로 참여하여 통일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본원 양정자 원장은 1966년 3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함과 동시에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 및 소외계층의 인권 옹호와 회복을 위한 뜻에 동역자로 함께 일하자는 스승이신 故 이태영 박사님의 요청을 받고 1966년부터 1999년 3월까지 33년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위원 겸임 부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약 11만 명에게 법률구조서비스를 제공하고, 지부 담당 부소장으로 故 이태영 박사님과 국내 27개, 해외 12개 지부를 창설하였습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퇴직금 전액을 기부하여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1999년 8월 법률구조법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을 창설하였으며, 서울 본원을 포함 국내 7개 지역에 상담원 지부를 개설하여 법률구조 대상자, 영역, 수혜지역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법조공익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돈이 없고 배우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호소할 곳조차 찾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위해 약 39만 명에게 법률구조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들의 인권 옹호와 회복을 위한 헌신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수상소감에서 양정자 원장은 이화여대 법학과 4학년이던 1965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당시 학장님이셨던 이태영 박사님께서 4단계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연수→판·검사 재직→변호사 개업→법률구조 참여] 를 월반시켜주겠으니 동역자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함께 일하자는 권유를 하셨던 순간을 회고했습니다. 시골 출신으로 도시에서 교육받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을 떠나 있어,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보다 이태영 박사님과 함께한 세월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고, “여의도에 안개가 가득하다. 너희들이 삯꾼이냐?” 하는 꾸지람은 세상에서 제일 아픈 회초리와도 같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오로지 후원금과 이태영 박사님의 희생으로 운영되어 형편이 늘 어려웠기에, 유형의 보상을 생각만큼 해주지 못하는 것에 항상 미안해하시며 상담위원들을 차례차례 ‘인권의 날’ 포상자로 추천해, 이를 받게 해주고 싶어하셨습니다. 당시 30대였던 양정자 원장은 그런 상은 독립운동가 정도는 되어야 받는 상인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상을 받은 후 처신하기 힘들 것 같아 사양하였고, 이 박사님께서 “너 때문에 다른 상담위원도 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기적이다.” 라고 야단하시자, “저는 개의치 마시고 다른 선생 먼저 추천하십시오.” 하며 8년 동안 추천을 사양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1983년 L.A.지부 창설을 위해 미국 파견을 앞두고, “네가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상을 받고 가면 교포들이 결혼도 안 한 너를 보며 무슨 가시나 한 명 왔구나 하고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너의 업적을 인정해 포상해주었다면, 네가 지부를 창설하고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신 이 박사님의 말씀에 지부 개설에 다소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을 받아 석류장을 받은 것이 국가나 타 기관으로부터 상을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양정자 원장은 1995년 7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삼척지부 개원식에 다녀오시는 길에 “내가 죽더라도 계획한 대로 지방법원과 지원이 있는 52개 지역에 지부를 개설해라.” 라고 이태영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유지(遺志)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며, 80을 앞둔 본인이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이태영 박사님이 이를 꼭 실천하라는 말씀 같아, 그 뜻을 이어받아 올해 개원을 준비하고 있는 광주지부의 창설회비로 오늘 받은 이 상금을 정일형·이태영 박사님 두 분 성함으로 기부하겠다고 밝히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중 해당 지역에 연고가 있거나 뜻을 함께하고자 하시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담원이 인천, 아산, 부산, 대전, 익산, 강화·서인천에 지부가 있는데, 이 외의 지역에서도 소외계층을 보호하고 국민의 법률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상담원의 지부를 개설하고자 하는 뜻 있는 분들이 계시면 언제든 연락주실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정일형 박사님은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분들, 식도 올리지 못하고 자녀를 낳고 살고 계시는 분들로 축하객이 20명도 참석할 수 없는 형편인 부부들을 위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무료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셨는데,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 유권자와의 약속이 중요하실 텐데도 일정이 겹치면 언제나 무료결혼식 주례를 먼저 서주셨다고 했습니다.
1983년 양정자 원장이 L.A.지부에 근무할 때,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 초청 강연을 오신 이태영 박사님과 함께 근교 투어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양정자 원장은 1979년 미국에 시찰 갔을 때 이미 본 적 있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무리지어 헤엄치는 돌고래였는데, 이를 보고 “좋구나. 너무 좋구나.”를 되풀이하시며 감격하고 감탄하시는 박사님의 모습에 “선생님은 볼 때마다 그렇게 감탄스러우세요?”라고 묻자, “아니다. 나는 오늘 처음 본다.”라고 대답하셨다 합니다. 이미 8번이나 미국에 다녀가신 바 있는 이태영 선생님께서 말입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자유롭게 해외도 나갈 수 없고 힘들게 사는데 본인만 그렇게 구경하고 즐길 수 없어 업무만 하고 돌아갔다며, 오늘은 특별히 네게 구경시켜주고 싶어서 투어를 제안한 분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 박사님의 말씀에 양정자 원장은 깊은 사랑에 감사하고, 나라와 국민을 헤아리는 그 마음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이 상은 57년 간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신 여러분과 ‘뜻’을 함께해 동역자로 동역해주신 국내·외 여러분이 받으실 상을 제가 대표해서 받았습니다. 동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라는 말로 양정자 원장은 수상소감을 마쳤습니다.